항목 ID | GC022007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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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崔雲海 |
영어음역 | Choe Unhae |
이칭/별칭 | 호보(浩甫)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
시대 | 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배상현 |
[정의]
고려말 조선초 창원 출신무신.
[가계]
본관은 통천(通川). 자는 호보(浩甫). 아버지는 호군(護軍) 최록(崔祿)이며, 아들은 무관 출신으로 좌의정에까지 오른 최윤덕(崔閏德)과 최윤복(崔閏福)·최윤온(崔閏溫)·최윤례(崔閏禮)이다.
[활동사항]
최운해는 음보로 공민왕 때 충용위 산원에 기용되었으며, 여러 관직을 거쳐 전공총랑이 되었다. 1385년(우왕 11) 충주병마사가 되어 왜구를 물리쳤고, 다시 순흥·영주 등지에서 조전병마사 겸 경상도병선도관령사가 되어 여러 차례 왜구를 격퇴하였다. 순흥부사로 있을 때 왜구가 객관을 점거하고 하루도 노략질하지 않는 날이 없었는데, 최운해는 이들을 물리치고 노획한 우마와 재화를 병사와 고을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어 널리 칭송을 받았다. 왜구가 물러가고 나서 전법판서에 임명되었다.
왜구가 원주·충주·단양·제천 등지에 침범하자 조전도병마사가 되어 이를 물리치고 충주목사가 되었으며, 이후 전주목사를 거쳐 밀직부사에 임명되고 충근좌명공신의 칭호를 받았다. 또한 양광도절제사 겸 판광주목사가 되어 가는 곳마다 전공을 세웠다. 1388년 요동정벌을 위하여 군대를 출동할 때 좌군도총사 조민수(曺敏修)의 막하로 출정하였으며, 위화도 회군 후 도순문사로 정지(鄭地) 등과 함께 왜구를 격퇴하였다. 1392년 조선이 개국되자 개국원종공신이 되었고, 이듬해 문하평리로 양광도절제사가 되어 박위(朴葳) 등과 함께 왜구를 격퇴하였다.
1396년 경상도병마도절제사가 되어 영해에서 왜구를 격퇴하고 지중추부사가 되었다. 이듬해 항복하였던 왜구들이 지울주사 이은(李殷) 등을 납치해 간 사건이 발생하여 문책을 당하였으나 1399년 전라도조전절제사로 왜구를 방어하였다. 1402년(태종 2) 니성도절제사로 태상왕을 시위하였고, 강계안무사와 서북면순문사를 거쳐 참판승추부사를 역임하였다. 1404년(태종 4) 5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묘소]
묘소는 경상남도 창원시 북면 대산리 갈전마을에 있다.
[상훈과 추모]
태종이 최운해의 부음을 듣고 사흘 동안 조회를 폐하고 예로써 부의(賻儀)하였으며, 양장(襄莊)이라는 시호를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