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유옹주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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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여월동에 있는 조선 후기 영조의 후궁인 귀인 조씨의 묘. 귀인조씨(貴人趙氏)[1697~1780]에 대한 사항은 사위인 창원황씨 가에 전해 오는 『영세보장(永世寶藏)』에 수록된 귀인 조씨의 묘표(墓表)를 통해 알 수 있다. 귀인 조씨는 1697년(숙종 33) 10월 16일 아버지 풍양조씨와 어머니 밀양박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1716년 10세의 나이로 입궁하여 29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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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작동에 있던 골짜기. 능안[陵內]이라는 이름은 능이 있는 골짜기[일명 능골] 안쪽이라는 뜻에서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 능안을 에워싼 골짜기는 여흥민씨와 청주한씨의 선산인데, 여흥민씨 족보에는 능안이 한자로 ‘능내(陵內)’라고 기록되어 있다. 능안을 ‘능안골’이라고도 부른다. 부천시 작동 142번지 일대로, 웃말 동쪽으로 길쭉하게 뻗은 골짜기였으며 서울로 통하는 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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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에 있는 조사·연구·감상의 대상이 되는 것들을 수집·보존·연구하여 전시하는 시설. 부천시의 박물관은 문화 도시를 지향하는 중·장기 시정 목표에 따라 꾸준히 증가해 왔으며, 2007년 12월 현재 모두 10개의 박물관이 운영되고 있다. 부천의 박물관은 설립·운영하는 주체의 성격에 따라 공립 박물관·사립 박물관으로 나누어지며, 수집 자료의 종류에 따라서는 자연사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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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서부에 있는 시. 부천시는 서울특별시의 위성 도시로서 동쪽과 북쪽은 서울특별시, 서쪽은 인천광역시, 남쪽은 경기도 시흥시와 각각 접한다. 2016년 9월 현재 인구는 33만 50가구 84만 9475명이며, 행정 구역은 36개 동, 688개 통, 4,943개의 반으로 구성되어 있다. 부천시청은 길주로 210[중동 1156]에 있다. 부천시의 자연 환경을 살펴보면, 기반암은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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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의 도시화 및 산업화, 교통 및 관광, 행정 구역, 인구 등의 인문 지리적 요소. 부천시는 대도시인 서울과 인천 사이에 위치하고 있고, 동서남북으로 교통이 편리해 많은 사람이 삶의 터전으로 삼고 있다. 특히 중동 신시가지 건설 이후 전입 인구가 급속히 늘어나는 등 매년 20% 내외의 인구가 활발하게 이동하고 있다. 부천은 ‘주부토(主夫吐)’, ‘장제(長提)’, ‘수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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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옹주들의 능묘가 쓰인 귀한 땅 작동 현재 성종의 다섯 번째 따님이었던 경숙옹주와 여천위 민자방의 묘는 현재 까치울초등학교 근처에 보존되어 있다. 경숙옹주 묘는 부천 지역에 남아있는 조선시대 옹주들의 묘 가운데서도 가장 오래된 묘로서 높은 가치를 지닌다. 1988년에 발간된 부천시사는 작동을 ‘호암산이 에워싸고 벼리내가 흐르는 생기복덕(生氣福德)한 땅’이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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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는 문화의 세기라고 한다. 이 때문에 많은 지방자치단체들이 다투어 문화 도시를 표방하며 변별력 없는 문화 사업과 축제를 경쟁하듯 벌이고 있다. 부천시 역시 5대 문화 사업을 앞세워 세계 지향의 문화 도시 부천이라는 지향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차이가 있다면 부천시에서는 현대 문화 콘텐츠인 만화와 영화, 음악 등을 통해 새로운 문화 사업을 개발하고 있다는 점인데, 이는 부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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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여월동에 있는 조선 후기 화유옹주의 묘. 화유옹주(和柔翁主)[1740~1777]는 영조와 귀인 조씨(貴人趙氏) 사이에서 태어난 열 번째 옹주이다. 황인점과 혼인하였다. 부천시 여월동에 있는 귀인 조씨 묘 왼쪽에 위치한다. 작동 126번지에 있었던 묘역은 1991년 6월 도로 확포장 공사 때문에 작동 산28-6번지로 이장하였다. 2차 이장 이후 묘비나 석물 없이 봉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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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시 작동에 있는 화유옹주 묘에서 출토된 조선 후기 유물. 화유옹주(和柔翁主)[1740~1777]는 영조(英祖)와 귀인 조씨(貴人 趙氏) 사이에서 태어난 열 번째 옹주이다. 14세 때인 1774년(영조 29)에 황인점(黃仁點)과 혼인하여 1남 1녀를 두었다. 아들 황기옥(黃基玉)은 이조참판을 지냈으며, 딸은 김제만(金濟萬)과 혼인하였다. 화유옹주 묘는 원래 부천시 작동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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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사빈(士賓). 어머니는 영조의 딸인 화유옹주(和柔翁主)이고, 아버지는 황인점(黃仁點)이다. 부인은 송형중(宋瑩中)의 딸이다. 3남 1녀를 두었지만, 모두 일찍 세상을 떠나 사촌동생 황기찬(黃基瓚)의 둘째 아들 황종림(黃鐘林)을 양자로 들여 대를 이었다. 황기옥(黃基玉)은 1781년(정조 5) 영희전 참봉으로 관직에 올라, 장악원 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