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먹고 나가면 ‘짠짠바라’ 사무라이 칼싸움하는 영화를 해줬어. 그럼 극장 뒤로 숨어서 들어가는 것을 여러 번 했지.” 요즘 사람들에게는 다양한 놀거리가 있지만, 지금으로부터 50~60년 전까지만 해도 특별한 놀거리 없이 동네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이 전부였다. 그래도 작고 아담한 동네에서 동네방네 아이들이 함께 뛰어노는 즐거움이 있었다. 서로 만나서 몰려 돌아다니는 것만으로도...
“당시 한 공장은 고맙게도 노인정을 짓는 데 후원해 주기도 했다고. 그 기금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지” 송내동이 급격한 도시변화를 이룬 1960~70년대. 오랫동안 공동체적인 삶을 살았던 마을의 생활모습도 예전에 비해 많은 변화를 겪게 되었다. 그 속에는 일상생활을 편리하게 하고, 물질적으로 풍족하게 하는 등의 긍정적인 변화도 있었지만 부정적인 변화도 있었다. 예컨대 마...
“6·25가 났을 때 내가 21살이었는데 26일 쯤 천둥치듯 하는 소리가 들렸는데 그래도 전쟁이 일어난 줄은 몰랐는데...” 한국전쟁 발발. 송내동에도 예외는 없이 전쟁을 알리는 큰 굉음이 일었고 이후 송내동에도 많은 군인들이 오고 가면서 본격적인 전쟁의 시작을 알리게 되었다. 생애 가장 충격적이었던 전쟁의 기억은 송내동 할아버지 할머니들에게 아직도 어제 일처럼 선명하다. 당시 젊...
“학교를 떨어지면 천자문 배우는 애들도 있고, 일을 하는 애들도 있는데, 대부분은 남아서 집안일들을 많이 도왔지.” 지금 우리나라는 의무교육이 정착되어 있고 공부할 수 있는 여건들이 향상되면서 얼마든지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비록 학년이 올라갈수록 사립교육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공부에 대한 부담감이 예전에 비해 월등하게 높아졌지만, 적어도 일정 수준까지는 의무적인...
“왜정 때 남자들은 결혼을 해서 호주로 되어 있으면 징병을 가지 않기 때문에 결혼들을 일찍 했고.” 송내동에는 이제 지역 원로 분들이 거의 계시지 않는다. 그 중에서 조순천, 박병설 할아버지는 송내동에서 거의 가장 연세가 많으신 분들이시다. 그렇기 때문에 송내동에 일어났던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많이 간직하고 계셨다. 특히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은 수십 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