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선대원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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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2년에 편찬된 『1872년 군현지도』에 수록된 온양군의 지도. 『1872년 군현지도』 온양군 편은 1872년 현재의 아산시 배방읍, 송악면 일대를 묘사한 군현 지도이다. 고종 즉위 이후 재정 확보, 군제 정비를 위하여 1871년 열읍지도등상령(列邑地圖謄上令)이 발표되고, 각 군현에서는 지도를 제작하여 1872년에 올렸는데 이때 제작된 온양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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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강당리에 있는 골짜기. ‘강당골’은 조선 후기 외암(巍巖) 이간(李柬)[1677~1727]이 강당을 짓고 후진을 양성한 데서 명칭이 유래했다. 법정리인 강당리도 여기서 비롯되었다. 강당골 아래 자리한 외암민속마을이나 외암천은 이간의 호에서 비롯되었다. 강당골이 속한 송악면은 충청남도 아산시의 가장 남쪽에 있는 면이다. 송악면 남쪽 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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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강당리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소속 사찰. 강당사(講堂寺)는 강당리 광덕산 북쪽의 강당골계곡 옆에 있는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麻谷寺)의 말사이다. 강당[외암정사] 자리에 생긴 절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며, 예전 주민들은 ‘강당절’이라고도 불렀다. 계곡과 마을 이름도 모두 외암정사로 인하여 생긴 이름이다. 강당사는 유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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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고종 원년)부터 1910년까지 충청남도 아산 지역의 역사. 개항기(開港期)는 1876년(고종 13) 강화도조약 체결 이후 기존의 봉건적인 사회 질서를 타파하면서 근대적 사회를 지향해 가던 시기이다. 충청남도 아산 지역은 본래 온양군, 신창현, 아산현으로 충청도 소속이었으나, 1894년(고종 31) 갑오개혁[갑오경장]의 지방제도 개혁으로 온양군, 신창군, 아산군으로 개편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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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강당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유학자 이간의 서재. 관선재(觀善齋)는 ‘인물성구동론(人物性俱同論)’으로 잘 알려진 조선 후기의 유학자 외암(巍巖) 이간(李柬)[1677~1727]이 1707년(숙종 33)에 강학 공간으로 지은 외암정사에 덧붙여진 이름이며, 흔히 ‘강당’이라고 불렸다. 아산시 송악면 외암마을에서 남쪽의 광덕산 강당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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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을 전후로 한 시기부터 1945년 8월 15일 광복까지 충청남도 아산 지역의 역사. 1863년(철종 14) 고종이 즉위한 뒤 실질적인 권력을 장악한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은 서구 열강의 침략 가능성이 높아지던 상황에서 왕권 강화책을 추진하였다. 양반 유생층의 지역적 기반인 서원 철폐가 대표적이었다. 이로 인해 충청남도 아산 지역에서도 도산서원(道山書院), 인산서원(仁山書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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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시 배방읍 중리 서원골에 있던 조선 후기의 사설 교육기관. 금곡서원(金谷書院)은 맹사성의 부친 동포(東浦) 맹희도(孟希道)를 제향하던 사우이다. 1837년 4월 20일에 동포 맹희도의 옛집에 창건하고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 의해 1871년 훼철된 것으로 추정된다. 맹희도는 본관이 신창이며 고려 말의 신진사대부이자 성리학자였다. 1365년에 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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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시 신창면 읍내리에 있는 김육의 대동법 시행을 기리는 조선 후기 비석. 김육(金堉)[1580~1658]은 서울 출신의 실학적 개혁 정치가로서 평생 대동법의 시행을 추구하였다. 김육은 1638년(인조 16) 충청도관찰사와 1649년(효종 즉위년) 우의정으로 재임할 때 충청도에 대동법을 시행하려고 노력했으나 김집 등 충청 지역 양반 지주들의 반대로 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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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시 도고면 도산리에 있던 조선 후기의 사설 교육기관. 도산서원(道山書院)은 당시 신창현 지방 유림들의 공의로 포저(浦渚) 조익(趙翼)[1579~1655]을 배향하기 위해 1670년(현종 11)에 건립된 서원으로 1720년(숙종 46)에 야곡(冶谷) 조극선(趙克善)[1595~1658]을 추배하였다. 조익은 경기도 광주 출신이며 본관은 풍양이다. 신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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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시 도고면에 속하는 법정리. 도산리(道山里)는 도산1리와 도산2리로 이루어지며 도고면의 남서쪽에 있는 오래된 마을이다. 주업은 농업으로 벼농사와 쪽파 농사를 짓는데, 특히 쪽파는 도산리의 특산물이다. ‘도산리’라는 명칭은 1914년 도촌리(道村里)와 노산리(老山里)를 병합할 때 두 마을의 이름을 하나씩 따서 붙인 것이다. 도산리는 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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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동정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사설 교육기관. 독성서사(獨醒書社)는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동정리와 쌍죽리에 세거하는 풍천임씨 집안의 충정공(忠定公) 강개옹(慷槪翁) 임창(任敞)[1652~1723]과 충헌공(忠憲公) 서재(西齋) 임징하(任徵夏)[1687~1730]를 배향하기 위해 건립된 서원이다. 후손인 전재(全齋) 임헌회(任憲晦)[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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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동정리(東亭理)는 동남부에 염치저수지[가혜저수지]가 넓게 펼쳐지고 마을 주변에는 산이 둘러싸고 있는 아름다운 마을로 대부분이 벼농사를 짓고 있다. 동정리는 자연마을인 독정이에서 명칭이 유래되었는데, 옛날에 큰 우물이 있었다 하여 ‘독정이’라 하였다고 한다. 동정리는 본래 아산군 원남면(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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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 지역에 유림들이 설립한 조선 후기의 사설 교육기관.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은 주세붕(周世鵬)이 1543년(중종 38)에 경상북도 영주 순흥에 세운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이다. 충청남도 아산 지역의 서원은 1610년(광해군 2)에 지역 유림들이 뜻을 모아 염치읍 서원리에 세운 인산서원(仁山書院)이 최초의 서원이었다. 설립 당시에 출신 지역이나 붕당과 관계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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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시 신창면 읍내리에 있는 개화기의 척화비. 척화비(斥和碑)는 척양비(斥洋碑), 위정척사비(衛正斥邪碑) 등으로도 불리며, 1866년 병인양요(丙寅洋擾)와 1871년 신미양요(辛未洋擾)를 겪은 뒤 서양 세력의 침략을 경계하기 위해 1871년 흥선대원군의 명에 따라 전국에 세워진 비석이다. 김택영(金澤榮)이 지은 『한사계(韓史綮)』에는 "대원군이 스스로 양인(洋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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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강당리에 있는 조선 말기의 석각. 충청남도 아산 시민들의 사랑을 받는 강당골계곡에서 매우 아름다운 장소가 용추(龍湫)이다. 강당골계곡 초입의 용추는 비스듬한 폭포 아래의 깊은 못이며 용이 승천하였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좌우가 수직에 가까운 암벽으로 이루어져 폭포 부분이 돌문과 같다고 보아 ‘석문용추(石門龍湫)’라고도 불렀다.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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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백암리에 있는 이순신 관련 조선시대 사적. 아산 이충무공 유허(牙山李忠武公遺墟)는 흔히 ‘현충사’라 통칭하기도 하지만 충무공 이순신의 사당인 현충사(顯忠祠)를 중심으로 이순신이 혼인 후 살던 옛집, 활터, 이면공 묘소, 구 현충사, 정려, 충무공이순신기념관 등 141만 5331㎡[16만 3096평]에 달하는 경역 전체를 가리킨다. 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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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시 영인면 아산리에 있는 조선시대 아산현의 관립 교육기관. 아산향교(牙山鄕校)는 조선 초기에 세워진 관립 교육기관으로 유교 선현을 제향하며 유교 이념을 보급하고 아산현 지방의 인재를 양성할 목적으로 설치되었다. 향교 운영은 아산현감의 주요 임무 중 한 가지였으며, 교과목은 대체로 소학(小學), 사서오경(四書五經) 등의 경서와 주자가례(朱子家禮)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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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서북부에 있는 시. 아산군은 1914년 3개 군현[온양군, 아산현, 신창현]이 통합되어 생겨났으며, 1986년 온양시가 분리 독립하였으나 1995년 다시 아산군과 온양시가 통합되어 도농복합시인 아산시가 되었다. 충청남도 아산시는 동단[배방읍 휴대리, 동경 127° 06′ 32″], 서단[선장면 신덕리, 동경 126° 50′ 32″], 남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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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의 3대 온천인 온양온천, 도고온천, 아산온천 이야기. "물은 아름답다." 소설가 이태준의 수필에 적혀 있는 글귀이다. 이태준의 말처럼 흐르는 모양, 흐르는 소리도 아름답거니와 물에는 맑은 덕, 남의 더러움을 씻어는 줄지언정 남을 더럽힐 줄 모르는 어진 덕이 있다. 마음을 맑힐 수 있고 몸을 깨끗이 할 수 있는 물은 기쁘고 성스럽다. 여기서는 그 성스러운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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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국왕이 충청남도 아산 지역에 있는 온양온천에 온행을 와 머물기 위해 건립한 별궁. 조선시대 최고의 온천욕 장소로 각광을 받았던 곳은 충청도 온양이었다. 조선 전기에는 황해도 평산과 경기도 이천에 왕들이 거둥하기도 했지만, 온양온천의 뛰어난 치료 효능과 지리적 여건은 이곳에 온양행궁(溫陽行宮)을 조성하고 일부 정사를 보게 하는 공간이 되게 하였다. 온양행궁은 충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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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0년~1870년 이후에 필사본으로 간행된 온양군의 읍지. 『온양군읍지』는 19세기 아산 지역의 연혁, 지리, 인물 등을 기록한 책이다. 『온양군읍지』[19세기]는 온양군에서 간행하였다. 고종 즉위 이후 흥선대원군이 군현을 정비하면서 영조 대 편찬된 읍지에 이후 변동된 사실 등을 추가하여 1860년~1870년에 간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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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시 권곡동 소재 온양민속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후기 관복의 가슴과 등 부분에 붙였던 자수 놓은 천. 흉배(胸背)는 조선시대 백관의 관복인 단령(團領)의 가슴과 등에 붙였던 사각형의 장식물이다. 장식의 목적과 함께 착용자의 신분을 나타내기 위하여 품계에 따라 문양을 달리하여 만들었다. 관복과 같은 색의 사(紗)나 단(緞)에 다양한 문양을 직조하거나 수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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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시 읍내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관아 건물. 온주아문(溫州衙門) 및 동헌(東軒)은 백제 이래로 고을 관아가 있던 치소(治所)로, 조선시대 온양군의 관아 건물 중 온주아문과 동헌이 현존하고 있다. 온양군이었음에도 ‘온주아문’이라 한 것은 온양의 격을 높여서 ‘온주’라 칭했던 것이며, 이는 백제 때부터 탕정군이었던 이곳 인근에서 백제 부흥 운동이 치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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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강당리에 있는 이간을 기리는 조선 후기의 사우. 외암서사(巍巖書社)는 전부터 있었던 외암정사[외암영당(巍巖影堂)이라고도 함]의 이름을 바꾼 것으로 서원의 성격을 지니며 외암(巍巖) 이간(李柬)[1677~1727]을 기리던 사우였다. 아산시 송악면 강당리 광덕산 북쪽 강당골계곡 초입에 있다. 국도 39호선 중 송악면 소재지 남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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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강당리 강당사에 있는 외암 이간의 문집을 판각한 조선 후기 목판. 외암선생문집판각(巍巖先生文集板刻)은 조선 숙종·영조 때의 학자 외암(巍巖) 이간(李柬)[1677~1727]의 문집 『외암유고(巍巖遺稿)』를 인쇄하기 위해 만든 목판(木板)[책판] 307매를 말한다. 이간 사후에 이간의 둘째 아들인 이이병(李頤炳)이 1760년(영조 30)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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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 지역과 관련된 유교 지식인의 학문·사상·활동 및 문화유적. 충청남도 아산은 애국과 충절로 뛰어난 선비의 고장이다. 고려 말 성리학을 받아들이고 조선이 건국되면서 들판과 산이 어우러지며, 바닷길도 가까운 지리적 특성 때문에 낙향하여 은거하는 선비들이 들어와 맹사성(孟思誠)과 김질(金秩)처럼 이곳을 입향조로 삼은 집안들이 나왔다. 조선 중기에 이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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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와 대한제국 시기 충청남도 아산 출신의 무신이자 관료. 한말의 정치가 윤치호(尹致昊)의 아버지이다. 1910년 일제가 조선을 강점한 후 조선 합병에 공을 세운 친일 인물들을 포상할 때 남작(男爵) 작위를 받았다. 윤웅렬(尹雄烈)[1840~1911]의 본관은 해평(海平)이고, 자는 영중(英仲), 호는 반계(磻溪)이다. 충청남도 아산 지역의 입향조 윤득실(尹得實)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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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남도 아산 출신의 문신이자 학자. 윤혼(尹焜)[1676~1725]은 외암(巍巖) 이간(李柬)과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강당리에 관선재(觀善齋)를 짓고 후학을 양성하였다. 윤혼의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회이(晦爾), 호는 천서(泉西)이다. 관찰사 윤희길(尹希吉)의 5세손이며, 참판 윤근(尹根)의 현손(玄孫)으로 윤동명(尹東明)의 아들이다. 어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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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남도 아산 출신으로 호락논쟁에서 인물성동론을 주장했던 대표적인 학자. 이간(李柬)[1677~1727]은 일찍부터 과거 공부를 거부하고 문장과 경전 공부에 몰두하였으며, 학자들과 교류하면서 학문적 토론을 즐겼다. 조선 숙종 때 수암(遂庵) 권상하(權尙夏) 문하의 강문팔학사(江門八學士)의 한 사람으로, 같은 문인인 남당(南塘) 한원진(韓元震)과 벌인 이른바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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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남도 아산 출신의 문신. 이단석(李端錫)[1625~1688]은 평소 언사가 준엄하여 남의 미움을 받게 되어 나주목사로 좌천되는 등 벼슬에 기복이 있었다. 가족이 궁핍을 면하지 못했다 할 정도로 청백리로도 이름이 났다. 이단석의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유초(有初), 호는 쌍호당(雙壺堂)이다. 종실 경명군(景明君) 이침(李忱)의 후손으로 아산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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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충청남도 아산 출신의 문신. 이제형(李齊衡)[1605~1663]은 1658년(효종 9) 사헌부장령(司憲府掌令)으로 있을 때 윤선도(尹善道)가 올린 상소의 잘못된 점을 일일이 지적하여 명백하게 분별할 것을 효종에게 아뢰고, 이어서 윤선도의 관직을 삭탈하고 고향으로 돌려보낼 것을 주청하기도 할 만큼 강직하였다. 이제형의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원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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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서원리에 있던 조선 후기의 사설 교육기관. 인산서원(仁山書院)은 1610년(광해군 2) 아산 지역 유림의 공의로 김굉필(金宏弼), 정여창(鄭汝昌), 조광조(趙光祖), 이언적(李彦迪), 이황(李滉) 등 이른바 동방 오현(五賢)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된 아산 지역 최초의 서원이었다. 후에 기준(奇遵), 이지함(李之菡), 홍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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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남도 아산 출신의 지사. 임창(任敞)[1652~1723]은 숙종의 계비(繼妃) 인현왕후(仁顯王后)의 죽음을 애도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유배되고 처형당한 재야 선비이다. 임창은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쌍죽리 출신으로 본관은 풍천(豊川), 자는 회이(晦而), 호는 강개옹(慷慨翁)이다. 증조할아버지 사예(司藝) 임희지(任羲之) 때 아산으로 들어왔고,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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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대동법 실시를 주도하였던 학자이자 문신으로 충청남도 아산시 도고면의 풍양조씨 입향조. 조익(趙翼)[1579~1655]은 김육(金堉)과 함께 대동법을 확장, 시행하는 데 기여하였다. 풍양조씨(豐壤趙氏) 중시조(中始祖) 평장사공(平章事公) 조신혁(趙臣赫)의 10세손으로 도고면의 풍양조씨 입향조(入鄕祖)이다. 조익의 본관은 풍양(豊壤), 자는 비경(飛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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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시에서 이루어지는 초자연적인 절대자의 힘에 의존하여 삶의 궁극적 의미를 추구하는 신앙 행위의 총칭. 유교가 우리나라에 전래된 시기는 정확하지는 않으나, 삼국시대 이전으로 본다. 우리 생활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보편적 사상 체계로서의 유교를 이해하는 것은 우리의 삶과 문화를 이해하는 것과 다름없다. 372년(고구려 소수림왕 2)에는 태학을 설립하여 유학을 가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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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시에서 활동하는 있는 로마가톨릭교. 충청남도 아산시의 천주교는 조선 후기 1890년대에 세계에서 유일하게 자생적인 노력으로 서울, 경기 지역에 이어 아산 지역을 비롯한 내포 지역에 전래되었다. 이후 천주교가 성리학적 사회 질서를 어지럽힌다는 이유로 100년간 모진 박해로 수많은 순교자를 내면서도 내포 지역에는 천주교 신앙의 뿌리가 확고하게 내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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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시에 있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온천이며, 온양행궁의 내력과 함께 우리나라 최고 수준의 온천 문화를 간직한 온양온천 이야기. 온양온천이 역사에 등장하는 것은 삼국사기에 백제 온조왕 36년(18)에 탕정성(湯井城)을 쌓았다는 기록에서 비롯된다. ‘탕정(湯井)’은 끓는 물이 나오는 우물이란 뜻으로, 온양온천을 지칭한다. 역대 국왕들의 온양 방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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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온양행궁이 쇠락해진 시기에 새롭게 지은 것으로 고종 때 정치적 실권자였던 흥선대원군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되는 건물. 함락당(涵樂堂)에 대한 기록은 고종 초반에 편찬된 『온양군지』부터 기존의 전각들과 함께 함락당과 혜파정(惠波亭)이 처음 보이고 있다. 1871년(고종 8)에 편찬된 『온양군읍지』에서도 내정전과 외정전이 없어지고 혜파정과 더불어 함락당이 새롭게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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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시 지역에 있는 인재 양성과 유교 이념 보급을 위해 설립된 조선시대의 관립 교육기관. 향교는 고려 중기부터 조선시대에 걸쳐 유학 교육을 위해 지방에 설립된 관립 교육기관이다. 충청남도 아산에는 조선시대에 향교가 설립되어 인재 양성과 유교 이념 확산, 백성 교화 등의 기능을 담당하며 조선 초기 성리학 보급에 큰 역할을 담당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주(州), 부(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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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백암리에 있는 현충사 터를 알리기 위해 1906년에 세운 비석. 현충사는 이순신과 이완, 이봉상의 제향을 이어오다가 1868년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 따라 철폐되었다. 그 뒤 일제의 강압으로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이에 항거하며 지역 유림이 1906년 2월에 현충사 터에 유허비를 세웠다. 현충사 유허비는 충청남도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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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 충무공 이순신의 묘소와 위토가 일본인의 손에 넘어갈 상황에서 전개된 거족적 모금운동. 1931년 충무공 이순신의 묘소가 경매로 일본인의 손에 넘어갈 지경에 처하게 되었다. 동아일보에서는 관련 기사를 작성하여 실었으며 송진우(宋鎭禹)·정인보(鄭寅普) 등은 이충무공유적보존회를 조직하여 동아일보사의 협력으로 성금을 모으기 시작하였다. 이후 전국적으로 자발적인 성금이 답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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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남도 아산시 온양온천 지역에 흥선대원군의 별장으로 사용된 건물. 조선 전기에 건립된 온양행궁(溫陽行宮)은 여러 국왕들의 온행(溫幸) 장소였다. 조선 후기 숙종·영조·장헌세자(莊獻世子)[사도 세자(思悼世子)]에 이르기까지 오랫동안 국왕과 왕세자의 온행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그러나 장헌세자 온행 이후 국왕과 왕실 종친들의 온행은 중단되었으며 온궁의 건물 등이 많이 퇴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