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봉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500869
한자 吳海鳳
영어공식명칭 Oh Haebong
분야 역사/근현대,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영덕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신진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97년 7월 26일연표보기 - 오해봉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19일 - 오해봉 창수면 3.1독립운동 참여
몰년 시기/일시 1965년 5월 20일연표보기 - 오해봉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83년연표보기 - 오해봉 대통령 표창 추서
추모 시기/일시 1990년연표보기 - 오해봉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관련 사건 시기/일시 1919년 3월 19일 - 창수면 3.1독립운동 참여
출생지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연평리 지도보기
거주|이주지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신리리 350 지도보기
거주|이주지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신리리 35-2
활동지 창수주재소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창수3길 20-3 지도보기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정의]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영덕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오해봉의 본적과 주소는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신리리, 출생지는 영덕군 영해면 연평리이다.

[활동 사항]

창수면 3.1독립운동은 1919년 3월 19일 창수주재소 부근에서 이수각(李壽珏)·이현설(李鉉卨)·이종구(李鍾龜) 등의 주도 하에 약 200명의 군중이 참여한 가운데 일어났다. 당시 오해봉영해면 3.1독립운동에 참가한 인사의 권유를 받고, 창수면 3.1독립운동에 참여하였다. 오후 4시경 군중들은 태극기와 나무 몽둥이를 휴대하고, 만세를 부르며 주재소를 공격하였다. 이에 오해봉은 김연순·김덕규·정학수 등과 주재소 벽을 무너뜨렸고, 정석출·우억만·윤순석·정재주·신갑수 등과 함께 주재소 서류·장부·공문서 등을 찢어 버리고 파기하였다. 그리고 주재소 순사 숙소에 우주일과 함께 들어가 숙소의 방석을 내던지는 등 기물을 훼손하였다. 이후 일제 경찰에 체포된 오해봉은 5월 2일 대구지검 경주지청에서 대구지방법원 검사국으로 송치되었으며, 7월 11일 대구지방법원과 9월 17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소요, 건조물 손괴, 기물 훼기, 공문서 훼기,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1983년 대통령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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