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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에서 조상을 모시며 수백 년 터 잡고 살아온 집성촌이라 하면 보수적인 이미지가 떠오를 수밖에 없지만, 육곡2리 마을 초입에는 백년 역사를 가진 교회가 자리하고 있다. 교회가 처음으로 설립된 것은 부여서씨들이 주도적으로 기독교를 도입하면서부터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는 우리나라의 아픈 역사가 담겨져 있다.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은 기독교인들은 서양인들과 같이 생각하여 목숨을 부지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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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곡리는 매봉산과 태봉산이 좌우로 뻗어내려 마을을 아늑하게 둘러싸고 있고, 마을 앞으로 서천내가 흐르는 배산임수의 마을이다. 살기 좋은 자연환경 덕분인지 백제시대부터 고을이 존재했다고 알려질 만큼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다. 육곡리의 옛 이름은 ‘여수울’, ‘여술’이라 했는데, 수백 년간 사람들의 입을 통해 전해지며 1970년대까지도 이 지역 사람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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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필원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자는 재이(載邇), 호는 육곡(六谷)이며 만죽헌 서익의 증손이다. 1614년 서운기의 아들로 태어났다. 당시는 부친과 조부가 ‘칠서의 옥’으로 인해 유배 중이었던 탓에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다. ‘칠서의 옥’은 7명의 서얼 출신 인물들이 영창대군을 보위에 올리려 역모하였다는 사건으로 당시 부여서씨 서양갑이 연루되어 그의 집안이었던 부여서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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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부터 조선 전기까지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에 자리한 덕은현의 치소(治所) 자리. 덕은현은 충청남도 논산시 은진면 일부의 삼국시대 행정구역으로, 덕은현의 백제 때 명칭은 덕근군이다. 백제의 덕은현 치소는 지금의 가야곡면 면소재지인 행정리의 서쪽에 있는 덕은골로 전해 온다. 통일신라 경덕왕 때는 덕근군을 덕은군(德殷郡)으로, 고려 전기에는 덕은군(德恩郡)으로 개정하였다. 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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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수에 의해 논산시 가야곡면과 처음 인연을 맺은 부여서씨 봉례공파가 이후에 어떤 과정을 통해 지금의 육곡리에 뿌리를 내리게 되었는지는 알려진 것이 없어 정확하게 단정하기 어렵다. 다만 후손들 사이에서는 처음 두월리, 야촌리 일대에 터를 잡고 살던 선조들이 가문이 번창하고 가세가 부흥하면서 바로 옆 마을이었던 육곡리에까지 자리를 잡았던 것으로 여겨지고 있을 뿐이다. 봉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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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음력 3월 3일이면 부여서씨들은 ‘윤스님’이라는 사람의 무덤 앞에서 제사를 지낸다. 그는 문중인물도 아니고 그렇다고 서씨가와 혼인한 사람도 아닌 타인이지만 그에 대한 제사는 아주 오랜 세월 이어져왔다. 서승길(77) 씨는 윤스님이 정확하게 누구인지, 왜 이 사람의 제사를 지내게 되었는지, 언제부터 시작된 건지 등에 대한 자세한 상황은 알 수 없다고 했다. 단지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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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중앙에 자리한 행림서원은 부여서씨들의 정신적 지주이자 자랑거리로 조선시대 그들의 권위를 상징하는 상징물이기도 하다. 행림서원의 건립연대는 정확하지 않지만 서씨 집안에서는 1867년으로 보고 있으며 만죽헌 서익과 도애 이소(李韶, 1564~1646)를 배향하고 있다. ‘행림’이란 이름은 서원 앞에 서익이 직접 심었다고 전해지는 은행나무 두 그루의 이름을 따서 부르게 되었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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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0년대 후기에 이 지역과 인연을 맺은 부여서가는 시간이 흐를수록 문중활동을 강하게 펼치며 자신들의 전통과 사회적 지위를 고양시키기 위해 다양하고도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그중에서도 1867년 이루어진 행림서원의 건립은 이런 그들의 노력에 가장 큰 정점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유서 깊은 문중으로 발돋움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는데 그 중 하나가 문중사람들의 규약인 종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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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삼전리에 있는 조선 중기 서익의 묘갈. 1672년(현종 13) 서익의 묘소 앞에 세워져 있는 묘갈로 서익의 행적이나 업적, 관직 등 서익 개인에 관련된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으며 또한 그의 후손들에 대해 자세하게 적고 있다. 육곡리에 위치한 가야곡면사무소에서 지방도 602호선을 따라 동쪽으로 500m 정도 가서 다시 남쪽으로 향하는 지방도 643호선을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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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지리지인 신증동국여지승람(1530년)의 부여현 성씨조에는 서씨가 부여의 토성으로 기록되어 있고, 고려시대 효자 서공(徐恭)의 일화가 있는 것으로 보아 부여서씨는 고려시대에 부여현의 유력한 성씨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부여서씨가 육곡리에서는 언제부터 살았던 것일까. 후손들은 백제가 멸망할 때부터 육곡리 일대에 은거했을 것이라고 전하고 있으나, 그들의 구체적인 행적이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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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중에 홍길동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그러나 홍길동전의 모델이 되었던 서양갑에 대해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서양갑의 일생은 소설 속 홍길동과 너무도 흡사하며 허균과 동시대를 살았던 인물이란 점에서 매우 흥미롭다. 서양갑은 허균, 이사호, 그리고 김장생의 서제였던 김경손 등과 친분을 쌓으며 지냈으므로 허균이 소설을 집필하며 서양갑의 행적을 많이 반영하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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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곡리 마을 초입에는 아름드리 느티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이 느티나무는 주민들의 쉼터이자, 육곡리를 찾는 사람들의 이정표다. 원래 이 자리에는 수령이 200년 넘었다고 알려진 고목이 있었는데, 나무가 죽고 썩어버리자 1988년경 주민들이 다시 이 느티나무를 심었다. 나무의 나이가 30여년에 불과해도 나무 그늘은 육곡리 사람들의 최고의 휴식 공간이다. 봄부터 늦가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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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육곡리에서 음력 정월 14일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해 지내던 마을 제사. 육곡리는 시냇물을 중심으로 여섯 개의 골짜기가 있다 하여 육곡(六谷) 또는 여섯 개의 자연마을이 ‘육두레’를 형성하는 까닭에 육곡이라 부른다. 육두레란 서풍골·산정너머·행정·고사뜸(음지뜸)·큰두레·양지뜸 등을 일컫는다. 산신제와 다리제는 이들 여섯 마을이 매년 음력 정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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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서씨 집안의 대표적 인물이자 육곡리 봉례공파 후손들의 자랑인 서익 선생은 논산에 이거해서 뿌리를 내리고 대표적인 큰 가문으로 성장하는데 발판을 마련한 인물이다. 서익은 조선시대 문신으로 자는 군수(君受), 호는 만죽(萬竹) 또는 만죽헌(萬竹軒)이다. 1542년 태어나 1569년 처음 과거에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역임하던 중 1585년 의주 목사 재직 당시 정여립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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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행림서원에 제향된 조선 중기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광구(光九), 호는 도애(桃崖). 효령대군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석탄(石灘) 이신의(李愼儀)이며, 외조부는 영의정 심연원(沈連源)이다. 선조 때 문과에 급제하여 조정에 나아가 관직 생활을 하였으며, 여러 관직을 거쳐 사옹원주부(司饔院主簿)에 이르렀다. 그러나 광해군 즉위 뒤 정치의 문란함에 회의를 느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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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육곡리는 면소재지의 작은 마을에 불과하지만 전통시대에는 호남에서 서울로 갈 때에 반드시 지나는 큰 길목이었다. 오늘날처럼 여러 갈래 도로가 발달하기 전인 1970년대만 해도 논산, 강경, 대전을 가려면 반드시 육곡리를 거쳤다. 이 같은 지리적 환경 덕분에 육곡리는 백제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 행정중심지의 역할을 하였고, 독립적인 군현지역으로서 행정체제가 마련될 수 있었다. 백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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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육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에 건립된 서원. 행림서원은 1867년(고종 4)에 세워진 부여 서씨의 문중 서원으로, 육곡리를 중심으로 세거하는 부여 서씨들의 상징적 유물이기도 하다. 논산시내에서 은진 사거리 쪽으로 가다가 왼쪽 가야곡면 방향으로 약 5㎞ 직진하면 노래골 삼거리가 나온다. 이곳에서 다시 야촌리 사거리 방면으로 지방도 68호선을 타고 약 2㎞ 직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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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곡리에는 가야곡면사무소를 비롯해 우체국, 농협, 하나로 마트, 경찰파출소 등 많은 행정과 서비스 기능을 담당하는 시설들이 존재한다. 또한 가야곡면 교통의 중심으로 가야곡을 통과하는 시내버스는 육곡리를 거점으로 삼고 있다. 육곡2리에 있는 가야곡면사무소의 역사는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일합방 이후 일제는 조선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목적으로 행정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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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산노리에 있는 조선 후기에 건립된 서원. 가야곡면소재지에서 산소지를 거쳐 연산면으로 향하는 도로를 타고 4.5㎞ 가면 산노리 효암서원 앞에 이른다. 서원 입구 오른쪽에 강응정 정려가 있다 효암서원의 전신은 임진왜란 당시 소실된 가야곡면 두월리의 갈산사로서, 1713년(숙종 39) 현재의 자리인 산노리에 다시 세운 것이다. 당시 갈산사는 중화재 강응정을 모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