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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진주목 사천군 장암리에 설치된 조창(漕倉). 경상도는 1403년(태종 3) 조운 영역에서 제외된 뒤로 경강선(京江船)의 주요 활동 지역이었다. 그러나 항로가 험하여 해난사고가 많았고, 사선(私船) 선가(船價)의 지급도 막대하였다. 또 왕권을 확립하려고 여러 제도 개혁을 추구하던 영조는 세곡 운송제의 문제점을 조운 기능의 강화로 해결하려고 관선조운제(官船漕運制)를 복구하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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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전후부터 562년까지 낙동강 유역과 남해안 지역에 존재하였던 소국들의 연맹체. 가야는 자체적인 역사기록을 남기고 있지 못했기 때문에 각종 문헌에 따라 여러 가지로 표기되고 있는데, 가야(伽倻·加耶·伽耶), 가라(加羅·伽羅·迦羅), 가락(駕洛·伽落), 구야(狗耶·拘耶), 임나(任那) 등이 그것이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한반도 남쪽에서 마한(馬韓)·진한(辰韓)·변한(弁韓)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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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소재의 가요로 살펴보는 진주의 역사. 진주는 도심의 한 복판을 가로질러 흐르는 남강(南江)이 빚은 천혜의 풍광으로 예로부터 시인묵객(詩人墨客)의 발길이 끊이지 않은 멋과 풍류의 고장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일찍이 교방문화(敎坊文化)가 꽃 피웠던 곳으로 예로부터“북 평양, 남 진주’라고 했다. 그 전통은 자연 현대 대중음악에 영향을 끼쳐 우리나라 최초의 창작가요를 만드는 등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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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여중(汝中), 호는 매촌(梅村). 호조참의에 추증된 임계(臨溪) 강심(姜深)의 아들이다. 1560년(명종 27)에 출생하여 1627년(인조 5)에 별세한 무인으로, 일찍이 무예를 익혀 같은 시대에 무인으로 활약한 정기룡(鄭起龍)·주몽룡(朱夢龍)과 함께 ‘3룡(三龍)’으로 불렸다. 1583년(선조 16) 무과에 급제하였고, 1592년 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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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 자는 자장(子章). 아버지는 지창녕현사(知昌寧縣事) 강우덕(姜友德)이며, 어머니는 지보주사(知甫州事) 이혜(李惠)의 딸 재령이씨이다. 1410년(태종 10) 태어나 1429년(세종 11)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예문관의 벼슬을 두루 거치고 1448년 지승정원사, 1452년(문종 2)에 도승지를 지냈다. 1453년(단종 1) 이조참판으로 있으면서 계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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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강맹경의 신도비. 강맹경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진주이다. 1410년(태종 10)에 태어나 1429년(세종 11)에 중시문과에 급제한 후 우부승지·도승지를 지냈다. 1453년(단종 1) 이조참판으로서 계유정난 때 수양대군을 도왔고, 1455년 수양대군이 왕위에 오르자 좌익공신 2등에 책정되고 진산부원군(晋山府院君)에 봉해졌다. 이후 우의정과 좌의정을 거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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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의 장군. 본관은 진주(晋州). 목종(穆宗) 때 문과에 급제하였으나, 지기(志氣)가 있고 강하고 과감하여 주로 전공을 통하여 입신하였다. 1021년에 생을 마쳤다. 1012년(현종 3) 5월에 안찰사(按察使)로서 영일(迎日)·청하(淸河) 등지에 쳐들어온 동여진(東女眞)을 도부서(都部署)의 문연(文演)·이인택(李仁澤)·조자기(曺子奇)와 함께 격퇴하였다. 1016년 내사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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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의 장군 강민첨(姜民瞻)[963~1021]을 그린 초상화. 강민첨 장군은 본관이 진주이며, 목종 때 문과에 급제하였으나 지기(志氣)가 있는데다가 굳세고 결단력이 있어 주로 전공을 세워 입신하였다. 「강민첨 영정」은 조선 후기의 화가 박춘빈(朴春彬)이 18세기에 그린 반신상의 초상화이다. 「강민첨 초상」의 상단에 있는 찬문(贊文)과 그 옆의 기록에 의하면, 이 영정은 고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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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 자는 자명(子明), 호는 완역재(玩易齋). 정당문학 강회백(姜淮伯)의 아들이며 강희안(姜希顔)과 강희맹(姜希孟)의 아버지이다. 1395년(태조 4) 태어나 태종 초에 음보(蔭補)로 계성전직(啓聖殿直)이 되었다. 1416년(태종 16) 공조좌랑으로 있을 때, 천추사(千秋使)가 중국에 가지고 간 무역품 가운데 공조에서 납품한 은이 가짜로 밝혀져 파직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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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晋州). 시호는 공목(恭穆). 아버지는 정당문학(政堂文學) 강군보(姜君寶)이고, 어머니는 전객시령(典客寺令) 여진(呂珍)의 딸이다. 아들 강회계(姜淮季)는 공양왕의 부마가 되었다. 1357년(공민왕 6) 성균관시(成均館試)에 급제하고, 1362년 대관서승(大官署丞)이 되었다. 이후 전공좌랑(典工佐郞)·합문인진부사(閤門引進副使)를 거쳐, 전법(典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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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대림(大臨), 호는 성재(誠齋). 아버지는 현감을 지낸 강관(姜琯)이며, 어머니는 곡부공씨(曲阜孔氏)이다. 1495년(연산군 1)에 출생하여 1532년(중종 27) 37세의 나이로 늦게 별시문과에 급제하여 그 이듬해 예문관에 들어갔다. 1541년부터 성균관전적과 사헌부지평을 역임하였고, 1544년에는 지평으로 있으면서 경연(經筵)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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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인화가.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성순(聖淳), 호는 약산(若山)·유당(留當). 1788년(정조 12)에 태어났으며 영조·정조 때 예단(藝壇)의 총수였던 강세황(姜世晃)의 손자이다. 무과에 등제하였으며 벼슬로는 군수를 지냈다. 벼슬은 높지 않았으나 문인화가로서 기량이 높았다. 매화와 산수(山水)에 능하여 김정희(金正喜)와 신위(申緯)의 칭송을 받았다. 「강안주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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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의 통일신라시대 및 고려시대 지방통치구역. 강주는 본래 백제의 거열성(居列城)인데, 신라 문무왕 3년(663) 2월에 빼앗겨 신라 영토가 되었다. 이후 신문왕 5년(685)에 거열주를 뽑아내어 청주(菁州)를 설치하고 총관(摠管)을 두었다. 경덕왕 16년(757)에는 다시 전국의 지방조직을 9주, 5경으로 정비하고 명칭을 고쳤는데, 이때 청주를 강주(康州)로 개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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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형지(詗之). 아버지는 승지와 전라도관찰사를 지낸 강자평(姜子平)이다. 1490년(성종 21) 별시문과에 급제하여, 그 해에 정언으로 등용되고 이듬해 지평이 되었다. 1495년(연산군 1) 장령이 되고 그 뒤 승진을 계속하여 1504년에는 대사간에 올랐다. 그러나 같은 해 일어난 갑자사화 때 연산군이 생모인 폐비 윤씨를 왕후로 복위시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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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조선 초의 문신.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백부(伯父), 호는 통정(通亭). 할아버지는 중대광(重大匡) 강군보(姜君寶)이며,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 강시(姜蓍)의 아들이다. 강종덕(姜宗德), 강우덕(姜友德), 강석덕(姜碩德), 강순덕(姜順德)을 아들로 두었다. 1376년(우왕 2) 문과에 급제하여 성균좨주[成均祭酒]가 되었으며, 밀직사의 제학·부사·첨서사사(簽書司事)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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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 자는 경순(景醇), 호는 사숙재(私淑齋)·국오(菊塢)·만송강(萬松岡). 지돈녕부사 강석덕(姜碩德)의 아들이며, 조선 전기 문신 강희안(姜希顔)의 동생이다. 1424년(세종 6) 태어나 1447년(세종 29) 별시문과에 장원급제한 후 종부시주부로 벼슬을 시작하였다. 1450년 예조좌랑에 이어 돈령부판관을 역임하였고, 1453년(단종 1) 예조정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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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 자는 우경(愚景)·경덕(景德), 호는 인재(仁齋). 지돈녕부사 강석덕(姜碩德)의 아들이고 좌찬성을 지낸 강희맹(姜希孟)의 형이다. 1417년(태종 17)에 태어나 1441년(세종 23)에 식년문과에 급제한 후 돈녕부주부(敦寧府主簿)가 되었다. 1443년(세종 25) 정인지(鄭麟趾) 등과 함께 훈민정음 28자에 대한 해석을 상세하게 덧붙였으며,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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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때 경상남도 진주시에 설립되었던 인쇄소. 진주지방에서 가장 먼저 평판인쇄를 도입한 인쇄소로, 1936년 9월 15일자 『영남춘추』의 인쇄인으로 등록되면서 진주 인쇄계의 선두로 자리매김하였다. 평판인쇄는 일반적으로 오프셋인쇄라고 하는데, 잉크가 묻는 부분과 묻지 않는 부분이 같은 평면상에 있는 데서 나온 말이다. 비록 일본인이 창업한 인쇄소이나 선명한 인물사진과 풍경사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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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종교개혁의 결과로 로마가톨릭에서 분리하여 성립된 그리스도교의 분파. 루터가 독일에서 일으킨 종교개혁은 1526년 이후 독일의 여러 지방으로 확산되었으며, 스위스에서도 츠빙글리와 칼뱅 등이 프로테스탄트적 종교개혁에 앞장섰다. 이 같은 일련의 교회개혁운동의 결과 유럽의 종교적 통일성은 무너져, 독일에서는 1648년 베스트팔렌조약으로 신앙의 자유가 인정되었다. 이후 유럽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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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시대 지방제도인 9주의 하나. 신라 통일기의 지방제도를 9주 5소경제라 한다. 통일 이전에 신라는 전국을 5주로 나누어 지배하였으나, 삼국통일 이후에는 확대된 영토에 걸맞게 지방제도를 재편성했다. 종래의 상주, 하주, 한산주, 수략주, 하서주 가운데 하주의 영역을 문무왕 5년(665)에 낙동강을 중심으로 동서로 나누어 동쪽 지역을 삽량주라고 하고 서쪽지역을 거열주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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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지역에 있는 서원. 경상도 지역에 건립된 193개의 서원 중 경상남도 지역은 19개 군에 44개 서원이 건립되었는데, 그 가운데 진주지역에 해당되는 서원은 7개로 경상남도에서 가장 많다. 재실의 수에 있어서도 진주지역에 약 500여개가 분포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으며, 현재도 문중에 따라 새로 건립하고 있는 실정이다. 서원은 선현을 모시는‘사(祠)’와 제자를 교육하는‘재(齋)’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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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 진주성 내에 있는 사우. 고려 초 거란에 끝까지 대항하다 순절한 충신 하공진(河拱辰)[?~1011] 장군의 영정과 위패를 봉안한 곳으로, 1804년(순조 4) 수곡면 사곡리 낙수암(落水菴)에 창건하였다.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향사를 일시 중지하였으며, 1869년 부조묘(不祧廟)로 되어 다시 자손 봉사하게 되었다. 하공진 장군의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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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8년 왕건(王建)의 건국 이래 1392년 이성계(李成桂)의 조선에 멸망할 때까지 34대 474년 간 존속한 왕조. 진주는 통일신라 말부터 후백제를 거치면서 강주(康州)로 불리다가 940년(태조 23)에 진주로 개칭되었고, 983년(성종 2)에 전국에 12목을 설치할 때 진주목이 되었다. 이에 앞서 광종 때에는 진주향교가 창설되어 진주의 학동들에게 학문을 가르치게 되었는데,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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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로쇠 나무에서 빼낸 물. 고로쇠나무는 고로실나무·오각풍·수색수·색목이라고도 하며, 산지 숲 속에서 자란다. 높이 약 20m로, 나무껍질은 회색이고 여러 갈래로 갈라지며 잔가지에 털이 없다. 잎은 마주나고 둥글며, 대부분 손바닥처럼 5갈래로 갈라진다. 잎 끝이 뾰족하고 톱니는 없다. 긴 잎자루가가 있으며 뒷면 맥 위에 가는 털이 난다. 고로쇠라는 이름은 뼈에 이롭다는 뜻의 한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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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무줄의 탄력성을 이용한 여자 아이들의 놀이. 노래에 맞추어 고무줄을 발목에 걸어 넘는 놀이로 어린 여자 아이들이 즐겨한다. 고무줄 길이는 일정하지 않으나 3~4m 정도가 적당하며, 2~4명이 하는 것이 보통이며 경우에 따라 집단으로 하는 경우도 있다. 놀이도구에는 특별한 것이 없다. 일정한 길이의 고무줄만 있으면 가능한 놀이다. 학교 운동장이나 집안의 마당, 혹은 일정한 공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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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지역에 있었다고 하는 변한(弁韓) 12개 소국 중 하나. 삼한 중 변한에 있었던 12개 소국은 지금의 경상남도 전역과 경상북도 일부 지역에 산재하고 있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이 중 고순시국의 위치를 진주 지역으로 비정했던 이병도의 견해와는 달리 정인보는 경상북도 상주군 함창 지역으로, 천관우는 경상남도 사천 지역으로 각각 비정했다. 대체로 낙동강 본류를 중심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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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력 4월 20일 경, 청명과 입하 사이에 드는 절기. 24절기의 하나로 이때부터 본격적인 농사철에 접어들며, 특히 벼농사에서 중요한 절기의 하나이다. 지금은 비닐하우스가 일반화되고 수리안전시설이 잘 갖춰져 벼농사가 일찍 시작되지만, 옛날 하늘에 의존하던 시절에는 이 날부터 본격적인 농사가 시작된다고 봤다. 이 날에 맞춰 볍씨를 담그며 못자리를 마련했다. 그 무렵이면 봄비가 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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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의병장. 본관은 현풍(玄風). 자는 계수(季綏), 호는 망우당(忘憂堂). 황해도관찰사 곽월(郭越)의 아들이고, 남명 조식(曺植)의 외손이다. 1585년(선조 18) 문과에 급제하였으나 왕의 뜻에 맞지 않는 글귀 때문에 파방(罷榜)되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 선조가 황해도 의주(義州)로 피난하자, 경상남도 의령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1592년 5월 경상남도 함안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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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 지역에서 행했던 남자들의 성인의식. 남자아이가 15세가 넘으면 상투를 틀어 갓을 씌우는 의식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의식이 행해졌다. 관례는 혼례(婚禮), 상례(喪禮), 제례(祭禮)와 더불어 4대 의례라 하는데, 이들 행사는 유교문화가 지배하던 조선시대의 양반사회를 지탱하는 중요한 행사였다. 이 중 관례가 맨 첫 의례인데 이는 성년이 되었음을 상징하는 것으로 삼국시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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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지식과 기술, 인격 등을 가르치고 배우는 모든 행위. 교육은 원만한 사회생활을 위해 갖추어야 할 인간 형성의 과정이며 사회 개조의 수단이다. 따라서 개인적으로는 인격완성과 자아실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임과 동시에 가정, 사회, 국가 공동체 속에서 주어진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공동체의 발전을 꾀하는 작용으로 볼 수 있다. 우리나라는 홍익인간(弘益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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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학자 정이오(鄭以吾)의 시문집. 1939년에 정이오의 후손인 정장현(鄭璋鉉)이 경상남도 진주의 영남재(潁南齋)에서 간행하였다. 현재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권1·2에 시(詩) 73수, 전(箋) 2편, 소(疏) 1편, 서(序) 4편, 기(記) 14편, 전(傳) 1편, 묘지명 1편, 잡저 1편과 부록으로 사제문(賜祭文) 1편, 이조사척록(李朝史摭錄) 1편, 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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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진양문화원에서 『진양지』·『진양속지』·『진양속지 증보』 등을 국역한 책. 모두 10권으로, 『진양지』4권, 『진양속지』4권, 『진양속지 증보』2권이다. 이 중 『진양지』는 조선 광해군 14년(1622)부터 인조 10년(1632)에 걸쳐 성여신(成汝臣)이 편찬한 경상도 진주목 읍지로, 본래 2책으로 되었으나 목판본 인출 때 4권 3책으로 되었다. 그리고 『진양속지』는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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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사봉면 봉곡리에 있는 사당. 공자(孔子)를 모시는 사당으로, ‘궐리’는 중국 산뚱성 곡부(曲阜)에 있는 공자가 태어나서 살던 궐리촌을 본떠 지은 이름이다. 진주 이외에 충청남도 논산시의 노성(魯城)[충남기념물 제20호], 경기도 오산시의 궐동[경기도 기념물 제147호] 등에 공자의 사당인 궐리사가 있다. 노성궐리사는 1716년(숙종 42)에 권상하·김만준·이건명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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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리를 목적으로 한 화폐의 수요와 공급 관계. 금융이란 자금, 즉 화폐의 융통을 말하는데, 현대 경제사회는 화폐의 순환, 즉 화폐의 흐름에 의해서 운영되고 있다. 화폐의 흐름은 산업적 유통과 금융적 유통으로 크게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전자에 있어서는 교환수단을, 후자에 있어서는 가치저장의 기능을 수행한다. 이와 같이 화폐가 어떤 경제행위를 영위하는 수단으로 이용될 때 이를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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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를 갖지 못하는 집안에서 잉태를 위해 신령한 힘을 가진 대상물에 치성을 드리던 풍속. 아이를 얻기 위하여 치성을 드리는 일은 단순한 것이 아니어서 치성을 드리는 사람, 시간, 장소, 기간, 그리고 치성의 대상과 방법이 매우 다양하였고, 잉태를 한 뒤에도 딸을 아들로 바꾸는 전녀위남(轉女爲男) 등 다양한 주술이 행해져 왔다. 진주지역의 경우, 치성을 드리는 사람은 아기를 갖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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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울주(蔚州). 자는 성원(聲遠), 호는 백암(白巖). 찰방 김추(金樞)의 아들이다. 1536년(중종 31)에 태어나 1558년(명종 13) 생원이 되고, 1570년 식년문과 갑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도사(都事)를 거쳐 풍기군수를 지냈다. 재능과 학식이 뛰어나 사람들의 칭송을 받았다. 벼슬을 내놓고 향리에 돌아가서 날마다 시골 자제들과 더불어 강학하며 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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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의성. 자는 사순(士純), 호는 학봉(鶴峰). 안동 출신이다. 아버지는 김진(金璡)이고, 동생은 김복일(金復一)이다. 1556년(명종 11)에 아우 김복일과 함께 이황(李滉)의 문하에 들어가 학문에 정진하였으며, 1564년에 진사가 되어 성균관에서 수학하였다. 이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후 관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1586년 나주 사직단(社稷壇)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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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면오(勉吾). 목천(木川) 출생으로 아버지는 지평 김충갑(金忠甲)이다. 1578년(선조 11) 무과에 급제하여 군기시에 입사하였으며, 1581년에는 부평부사가 되었으나 구황(救荒)에 전력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파직되었다. 1583년 이탕개(尼湯介)의 난 때 도순찰사 정언신(鄭彦信)의 막하 장수로 출정하여 공을 세웠다. 그 뒤 훈련원판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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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본관은 상주. 자는 성인(成仁). 고려 때 직제학을 지낸 김후(金後)의 후손으로 군수 김녹돈(金祿敦)의 손자이다. 아들 김봉승(金鳳承)은 정유재란 때 진주 발재[鉢峴]에서 전사하였다. 출생년은 미상으로 산청의 단성에서 살았다. 일찍이 무과에 급제한 후 1583년(선조 16) 북평사 이제신(李濟臣)과 함께 군관으로 출정하여 북쪽 야인을 격퇴하였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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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지수면 승산리 김해허씨 문중에 있는 조선 후기의 서신. 1649년(인조 27) 평안병마절도사 안주목사에 재직 중이던 허동립(許東岦)[1601~1662]이 진주의 하진(河溍)[1597~1658]에게 보낸 서신이다. 한 통에서는 하진의 약재 요구에 대한 답장과 아울러 자신의 심정을 나타내었고, 또 다른 한 통에서는 하진의 완쾌를 비는 내용이 담겨 있다. 경상남도 진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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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지역에서 오월 단오 때 과일 수확이 많기를 빌어 나뭇가지 사이에 돌을 끼워 넣는 풍속. 흔히 가수(嫁樹)라고 이르며, 설날이나 정월대보름날 전국적으로 광범위하게 행하던 풍습이다. 대보름에 감나무를 시집보내거나, 단오에 대추나무를 시집보냈다. 단오의 경우 대추나무만 시집보내므로 별도로 ‘대추나무 시집보내기’라고도 하였다. 진주의 경우, 주로 오월 단오 때 행해졌다. 대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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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역사에 있어서 남쪽의 통일신라[676~935]와 북쪽의 발해[698~926]가 양립하던 시대. 고구려와 백제를 멸망시킨 후 당나라 세력을 한반도에서 몰아내고 676년 삼국을 통일한 신라는 이후 935년까지 대동강과 원산만 이남의 영토를 다스리게 된다. 한편, 통일신라 북방에는 698년 고구려의 장수 출신인 대조영이 고구려 유민과 말갈인을 이끌고 중국 길림성 돈화시 동모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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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진주에서 순절한 의기(義妓). 본관은 신안(新安). 아버지는 주달문이고, 어머니는 허씨이다. 전라북도 장수 출신이다. 1593년(선조 26) 진주성전투에서 전사한 경상우도병마절도사 최경회(崔慶會) 혹은 충청병사 황진(黃進)의 각별한 사랑을 받았다는 등 여러 가지 주장이 있으나 확실하지 않다. 임진왜란 중이었던 1593년 6월 김천일, 황진, 최경회, 고종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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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 단목리에 있는 연자방아. 연자방아는 맷돌의 일종으로, ‘연자매[硏子磨]’라고도 한다. 둥글고 넓적한 돌판 위에 그보다 작고 둥근 돌을 세로로 세워서, 이를 소나 말 따위로 하여금 돌리게 하여 곡식을 찧는 기구이다. 단목리의 연자방아는 1930년대까지도 많이 이용하였다고 하는데, 지금은 들판에 보존되어 있다. 밑돌 위에 곡식을 찧기 위한 작은 돌이 얹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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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고종 32) 11월 김홍집(金弘集) 내각이 성년남자의 상투를 자르게 한 명령. 1895년 8월 20일 을미사변을 일으켜 명성황후(明成皇后)를 시해하는 국제적 범죄를 자행한 일본에 대한 저항의식이 고조되고 있을 때 일본의 지원으로 들어선 김홍집 내각이 11월 15일 고종의 조칙으로 단발령을 실시한다고 선포하였다. 당시 내세운 단발의 이유는 “위생에 이롭고 작업에 편리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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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 대보름날 떠오르는 달의 모양을 보고 그 해의 농사를 점치는 세시풍속. 대보름날 달이 늦게 뜨거나 밝고 희면 그 해 농사가 풍년이 들 징조라고 믿었다. 또한 달이 북쪽으로 기울어져 뜨거나 빛깔이 붉으면 가뭄이 들어 농사가 흉년이 된다고 믿었다. 달은 재생의 상징이며 생명력 그 자체의 상징이 될 수 있다. 또한 달은 바다의 조수, 여성의 생리 주기 등과 관련되어 있어 달과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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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 대보름날 밤에 태우기 위하여 쌓아 올려 만든 나무 무더기. 노송이나 대나무 등을 이용한다. 대보름날에 달집을 태우는 행사는 대보름날 밤에 하는 달맞이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으며, 전국적으로 시행되는 세시풍속이다. 주로 소나무와 대나무를 쌓고, 그 사이에 생솔가지나 짚, 고추대, 무명대 등을 넣어 달집을 지었다. 이 달집은 달이 떠오르는 것과 동시에 불을 질렀는데 맨 먼저 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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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으로 새해 첫 보름날. 전 같지는 않지만 지금도 각 지역에서는 대보름날에 축제의식이 열리고 있고, 어느 정도 그때의 풍속이 남아 있다. 한때 대보름날의 하이라이트인 달집짓기가 산림을 훼손한다고 하여 중단되었으나 지금은 도시지역을 중심으로 부활되어 여러 곳에서 행해지고 있다. 대보름날 풍속은 다양하다. 진주지역도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대보름날에는 마을의 공동의식인 동제가 베풀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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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을 지켜주는 동신(洞神)에게 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기원하는 제의. 동제는 마을 단위의 공동 제의로써 마을공동체의 안녕을 기원하며 상부상조의 의미를 가진 것으로 당산제, 동신제, 당제 등으로 불린다. 동제는 전통적인 연례행사로서 마을 집단의 사회적 의미와 의례라는 종교적 기능이 복합된 토속신앙으로 볼 수 있다. 동제를 지내는 목적은 주로 마을의 안녕과 복을 기원하고 액을 쫒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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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고종 31)에 전라도 고부의 동학접주 전봉준(全琫準) 등을 지도자로 하여 동학교도와 농민들이 합세하여 일으킨 운동. 동학운동 당시 동학군과 일본군과의 대규모 격전이 있었던 곳은 진주 고승당산(高僧堂山)이었다. 고승당산은 해발 185m로, 일명 고시랑산 또는 고성산(高城山)이라 한다. 고승당산은 지표로부터 완전히 독립되어, 동남쪽 들판은 덕천강을 경계로 하여 진주시 수곡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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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을 지켜주는 동신(洞神)에게 사람들이 공동으로 기원하며, 제의를 올리는 민간신앙의 한 형태. 마을신앙은 일반적으로 고등종교와 달리 형식과 내용이 조직적이지 못하며, 지역마다 성격이 다르게 나타난다. 자연을 숭배하면서 자연을 신격화하고 신앙하면서 형성된 마을신앙의 대상은 산·물·바위·나무·동물 같은 자연물을 신으로 섬기며, 신앙의 목적도 단순히 재앙을 물리치고 복을 비는 극히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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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를 뽑아 그 뿌리의 수로 그 해 농사의 풍흉을 미리 점치던 풍속. 흔히 ‘보리뿌리점’이라고 말하는 맥근점은 입춘 날 행해졌다. 보리를 뽑아 그 뿌리의 수로 그 해 농사의 풍흉을 짐작했던 것이다. 뿌리가 하나이면 흉작이고, 두 개면 평년작, 셋이면 풍작이라고 생각했고 입춘과 백로의 기간이 길면 농사가 늦되고 짧으면 올된다고 생각했다. 이는 점을 치는 게 아니라 자연적인 현상을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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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명석면 신기리에서 음력 정월 대보름날 행하는 세시풍속. 달집이란 달맞이할 때에 불을 질러 밝게 하려고 생소나무 가지와 짚 따위를 묶어 쌓아 올린 무더기를 말한다. 매년 정월 대보름날 저녁에 마을의 태평과 풍년을 비는 뜻에서 행하는데, 나불마을과 동진마을에서 오래 전부터 시행하여왔다. 정월 대보름날 달이 떠오르면 달집에 불을 지르고 농악대가 풍물을 울리고 놀면서 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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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문산읍 일원에서 행하여지는 동제. 풍신제는 영남지방과 강원도, 또는 기타 해안지방에서 음력 2월 초하루부터 스무날 사이에 풍신인 영등할머니에게 지내는 제사이다. 집에서 지낼 경우에는 집집마다 부엌이나 뒤뜰에 제단을 차리고, 폭풍우의 피해를 면하여 주고 집안 식구에게 복을 내려 주기를 빈다. 명칭은 ‘영동할만네’, ‘풍신할만네’, ‘영동바람’, ‘영동(등)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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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에서 섬겨온 집 문간의 출입을 단속하는 가신(家神). 일명 수문신(守門神)이라고 한다. 진주지역에서는, 대문을 통해 모든 것이 드나들기 때문에, 잡귀나 부정도 대문을 통해 들어온다고 생각하여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진주지역에서는 집안으로 들어오는 액(厄)을 막아주는 문신을 모시기 위해 주로 뚜껑 있는 바구니에 오색 헝겊을 담아 두었다. 때로는 무당의 쾌자를 넣기도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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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인의 사고, 언어, 행동이 구체적으로 형상화된 유형·무형 민간문화 현상 또는 문명국가의 서민사회에 전승되는 기층문화. 민속은 민중에 의하여 역사적으로 전승되어온 전통적인 문화이기 때문에 그 나라의 원시·고대 문화가 역사적으로 지속되어온 것이 민속이다. 우리나라의 민속은 그 지방 고유의 민속으로 자리를 잡기보다는 대개 어느 지방에서나 유사한 모습을 보이는 일반적인 양상을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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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지역에 전승되는 구전 민요에 대한 개관(槪觀). 진주 지역은 남강을 낀 진주 분지의 비옥한 땅에서 농사를 지어 농업이 발달하였고, 이런 지역적 배경으로 반촌(班村)이 많아서 농업 기능요는 물론이고 효친(孝親)을 비롯한 가족간의 정의를 노래한 민요가 많이 전승되고 있다. 모심기노래는 모를 심을 때 앞소리꾼이 4음보 1행을 노래하면, 모심는 사람들이 뒷소리꾼으로 4음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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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의병. 본관은 태안(泰安). 자는 행원(行遠), 호는 능허(凌虛). 1566년(명종 21)에 태어나 정구(鄭逑)에게서 『대학(大學)』과 『심경(心經)』을 배웠다. 당시의 권세가였던 정인홍(鄭仁弘)을 만나보고 스승인 정구에게 정인홍을 멀리할 것을 요구하였으나, 모두 그의 말을 믿지 않을 뿐 아니라 도리어 그를 못마땅히 여기게 되었다. 1623년 인조반정 후 이원익(李元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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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때의 의병. 본관은 태안(泰安). 자는 진경(眞卿).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관민(官民)이 흩어짐을 보고, 같은 고향의 뜻있는 선비들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이에 합세하여 그를 대장으로 추대하려 하였지만 사양하고 자신은 종사관(從事官)이 되어 군무를 정돈하며, 여러 곳으로 옮겨다니면서 군의 사기를 높였다. 1593년(선조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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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학자. 본관은 태안(泰安). 자는 춘경(春卿). 호는 서계(西溪). 능허(凌虛) 박민(朴敏)의 증손으로, 아버지는 황해도수군절도사를 지낸 박창윤(朴昌潤)이며, 어머니는 진주하씨(晋州河氏)로 하달영(河達永)의 딸이다. 『영남인물고(嶺南人物考)』에 의하면, 1677년(숙종 3) 출생하여 1736년(영조 12) 59세의 나이로 별세하였다. 1706년(숙종 32) 사마시에 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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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무신. 본관은 초계(草溪). 자는 오원(吾元). 변남룡(卞南龍)의 5대손이다. 1538년(중종 33) 출생하여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전사할 때까지 대의를 위하여 살았다. 어렸을 때부터 재주가 뛰어나 일찍이 변훈남(邊勳男)에게서 수학하였는데, 학문뿐만 아니라 무예에도 능하여서 활쏘기와 말타기를 연마한 뒤 무과에 급제하여 훈련원주부가 되었다. 임진왜란이 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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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부상·화재 등의 뜻하지 않은 사고에 대비하여 일정한 금액을 내개하고, 사고를 당한 사람에게는 일정한 금액을 주어 손해를 보상하는 제도. 사람은 생존하는 동안 끊임없는 사고·위험에 직면한다. 이 같은 위험에는 태풍·홍수와 같은 자연적 위험, 화재·도난과 같은 인위적 위험, 실업·공황과 같은 사회적 위험 등이 있다. 이들 위험에 대비하기 위한 방법으로는 위험회피·위험보유·손실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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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해의 복을 받을 수 있다는 뜻에서 설날 새벽이나 섣달 그믐날 자정이 지난 후에 사서 벽에 걸어두는 조리 복조리 장수는 섣달 그믐날 밤 복조리를 한 짐씩 지고 다니면서 팔았다. 조리는 물량에 비해 무게가 그다지 많이 나가지 않아 멀리서 보면 ‘산더미처럼 많다.’는 표현을 할 만큼 많이 지고 다니면서 팔았다. 복조리는 산죽(山竹)으로 만드는 만큼 지리산 주변에서 많이 생산되는 재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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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지역에서 행해진, 정월 대보름 전날 부잣집의 흙을 훔쳐오는 풍속. 복토 훔치기는 진주지역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행해지던 대보름 세시풍속의 하나로, 조선시대의 풍속을 기록한 『경도잡지』, 『동국세시기』 등에도 나오고 있다. 정월 대보름 전 날 가난한 사람들은 부잣집의 부엌이나 뜰의 흙을 훔쳐와 자기의 부엌 부뚜막에 펴놓았다. 부잣집의 흙을 가져오면 복도 함께 묻어온다는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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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의 고통과 번뇌에서 벗어나 부처가 되는 것을 궁극적 이상으로 삼는 종교. (1) 삼국시대의 불교 : 삼국 중 불교를 제일 먼저 수용한 나라는 고구려이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372년(소수림왕 2) 6월에 전진(前秦) 왕 부견(苻堅)이 사신과 중 순도(順道)를 파견하여 불상과 경문을 보내왔다고 하였다. 『삼국유사』에도 이와 유사한 내용이 있다. 이때 도입한 고구려불교의 특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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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을 타고 공중을 날아다니는 수레(일명 비행기). 동양의 가장 오래된 고전 중 하나인『산해경(山海經)』에서 처음으로 하늘을 나는 수레, 비거(飛車)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산해경』은 중국 고대의 지리서로 기원 전 2세기 때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책이다. 재미있는 사실은『산해경』에 하늘을 나는 수레인 비거가 그림까지 곁들여 소개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 그림에 대해 약간 언급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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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려가 불상을 모셔놓고 불법을 수행하고 설하는 장소. 사찰은 순수 우리말로 ‘절’이라고 한다. 절은 불상과 당탑을 모시고 승려들이 거주하면서 불도를 수행하고 교법을 가르쳐 펴는 기능을 가진 집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절은 고구려의 불교 도입 이듬해인 373년(소수림왕 3), 평양에 세워진 이불란사(伊弗蘭寺)와 성문사(省門寺)이다. 신라의 경우에는 아도가 선산지방에서 최초의 포교활동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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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각 지방 군현의 촌락에 설치된 곡물 대여 기관. 사창은 중국에서 각 지방 행정단위인 ‘사(社)’에 창고를 세워 기근에 대비한 의창(義倉)과 남송의 주희(朱熹)가 실시한 사창법에 기원을 두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제도들을 본받아 고구려 때는 진대법(賑貸法)을, 고려시대에는 의창·상평창 제도를 실시하였으며, 조선시대는 이를 더욱 발전시켜 사창제도를 실시하였다. 사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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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의 수호신으로 산신을 모셔놓은 신당. 우리민족 최초의 산신은 단군이다. 왜냐하면 『삼국유사』「고조선조」에 따르면 단군이 아사달에 들어가서 산신이 되었기 때문이다. 아사달은 한문으로 조산(朝山)으로 번역된다. 따라서 산신은 일반적으로 남성이면서 나이가 많은 노인으로 형상화된다. 그러나 드물기는 하지만 『삼국유사』에 나오듯이 박혁거세와 알영부인의 어머니인 선도산(仙桃山) 신모(神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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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백제·신라의 삼국이 정립하였던 한국사의 한 시기. 삼국시대는 신라의 건국(서기전 57년), 고구려의 건국(서기전 37년), 백제의 건국(서기전 18년)에서 시작하여 백제의 멸망(660년), 고구려의 멸망(668년)까지의 약 700여년을 말한다. 이 시기 진주는 처음 백제의 영토에 편입되어 거열성(居列城)이라 불렸다. 백제는 475년(개로왕 21) 9월에 고구려의 침공으로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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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 지역에서 섬겨온 산육(産育)을 관장하는 신. 경상남도 진주지방에서는 산육을 관장하는 신을 여신으로 보아서 삼신할미라 부르게 된 것이다. 우리 민족에게는 삼신신앙이 있다. 신앙의 대상이 되는 삼신에는 두 종류가 있다. 먼저, 삼신할아버지가 있다. 환인·환웅·단군의 삼신으로서 때로는 천신·용신·산신으로 부르기도 한다. 다음으로 삼신할미가 있다. 풍백·우사·운사를 가리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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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1일을 기하여 일어난 거족적인 독립만세운동. 1919년 3월 1일 민족대표 33인의 지도로 서울에서 시작된 독립만세운동으로, 1919년 5월에 이르기까지 전국적인 독립운동으로 확산·전개되었다. 연 집회횟수 1542회, 집회 참여인원 200여 만명을 기록하며 평화적 시위를 전국적으로 전개하였으나 일제의 가혹한 탄압으로 사망 7,500여 명, 부상 1,600명, 피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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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죽은 후 장사를 지내는 일과 관련된 의례. 사람이 죽음으로써 관련하여 발생하는 일에 대한 모든 의식절차를 상례(喪禮)라고 한다. ‘상(喪)’이라는 것은 ‘죽음’이라고 차마 말하지 못하는 상태를 의미하기도 한다. 상례는 다른 통과의례와는 달리 최근까지도 굴건제복(屈巾祭服)을 입고, 곡(哭)을 하는 등의 전통형식으로 치러졌지만, 요즘은 서양의 방식과 다양한 종교의례를 따르는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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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신을 모셔놓은 신당. 마을 어귀나 고개마루에 원추형으로 쌓아놓은 돌무더기를 성황당(城隍堂)이라고도 한다. 그 돌무더기 곁에는 보통 신목으로 신성시되는 나무 또는 장승이 세워져 있기도 하다. 이곳을 지날 때는 그 위에 돌 세 개를 얹고, 침 세 번을 뱉고 지나가면 재수가 좋다는 속신이 있다. 서낭신앙은 중국으로부터 전래하였다는 설과 민족 고유의 신앙인데 중국의 것과 복합된 형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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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의 의병장. 경상남도 양산(梁山) 출생으로, 원래 의원으로서 고향에서 의업(醫業)에 종사하다가 1907년 한일신협약(韓日新協約)이 체결되어 군대가 해산되고, 고종이 양위(讓位)하는 등의 사태가 벌어진 직후인 1907년 12월 임진강·한탄강 유역에서 활동 중이던 의병장 허위(許蔿) 휘하에 들어갔다. 1907년 12월 허위로부터 영남으로 내려가 의병을 일으키라는 명을 받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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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무신. 당시 명사로 이름을 날린 서인원(徐仁元)의 동생이다. 출생연도는 미상이며, 1593년(선조 26) 제2차 진주성전투 때 진주목사로 있으면서 제대로 싸우지도 않고 숲속으로 도망쳐 있다가 살해당하였다. 본래 힘은 세었지만 어리석고 겁이 많아 무장으로서 별다른 전공을 세우지 못하고 일생을 마쳤다. 그러나 그의 형 서인원이 당시 존경받던 명사였기 때문에 그 덕으로 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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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지역에 전승되는 설화에 대한 개관(槪觀). 진주지역에는 명석전설[鳴石傳說]과 같은 지명전설과 정온전설·강목발전설 등의 인물전설이 다수 전승되고 있다. 운돌전설의 내용은 고려 말 왜군의 침략에 대비하여 진주성을 석성으로 개축하였는데, 그 역사에 가담했던 스님이 명석면(鳴石面) 동전리를 지나다가 암수 두 개의 큰 돌이 걸어오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어디로 가느냐고 물었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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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의 종교전례를 위한 건물. 1784년에 한국에 천주교가 전래된 이후 신교의 자유가 획득된 1882년까지는 박해시기로서 지금과 같은 형태의 성당은 건립되지 못하고 교인들의 사가나 서당이 그 역할을 대신하였다. 종교의 자유가 획득되자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신부들은 박해시대 때 교회와 인연이 깊었던 곳이나 그 인근지역을 구입하여 성당을 건축하였다. 이 때 건축된 성당의 특이한 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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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창녕(昌寧). 직제학을 지낸 성사재(成思齋)의 6대손이며, 성흔(成忻)의 아들이다. 출생연도는 미상이며 음서로 진주판관에 임명되었다가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전사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초유사(招諭使) 김성일(金誠一)에게 진주판관으로 발탁되어 군무를 맡아 성벽을 개수하고 무기를 수선하는 등 전비를 갖춘 후 격문을 붙여 충의지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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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학자.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공실(公實), 호는 부사(浮査, 桴楂)·야로(野老). 우윤을 지낸 성두년(成斗年)의 아들로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우고 충절을 지킨 성여충(成汝忠)과 성여효(成汝孝)가 그의 형이다. 1546년(명종 1) 출생하여 1632년(인조 10) 86세로 별세하였다. 조식(曺植)의 문인으로 일찍부터 문명을 떨치다가 1609년(광해군 1) 63세로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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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 진주성 내에 있는, 진주목사 성이성(成以性)의 선정을 기리는 비. 성이성은 본관은 창녕, 호는 계서(鷄西)이다. 인조 때 과거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아갔다. 진주목사로 있을 때 어사 민정중(閔鼎重)의 보고로 선정이 조정에 알려졌다. 후에 청백리로 뽑혔으며 사후 부제학에 추증되었다. 1657년(효종 8)부터 이듬해까지 진주목사를 지낸 성이성[1595~1664]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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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집현면 대암리와 냉정리 경계 사이에 있었던 다리 대암리와 냉정리 사이에는 정수천(亭水川)이 있는데, 물살이 셀 뿐 아니라 그 위에 놓는 다리가 잘 썩어 조선 말엽 큰 나무를 숯으로 구워 다리를 놓았다 하여 숯다리라 불렀다. 이후에 숯다리는 돌로 바뀌었다. 폭이 1m 30㎝, 길이 4m, 두께가 30~40㎝이었던 이 돌다리는 원래 4개였으나 2개만 남아 있었는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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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년 서울에서 조직된 민족운동단체인 신간회의 진주지역 산하 조직. 일제강점기에 민족주의자들과 사회주의자들의 공통의 적은 일본 제국주의 세력이었으므로, 두 진영이 협력하여 1927년 신간회(新幹會)를 조직하게 되었다. 1926년 순종의 장례일을 계기로 일어난 6·10만세운동에 자극되어 민족유일당운동으로서 조직되었는데, 1927년 1월 19일 발기인대회에서 발표한 강령과 창립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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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 진주성 내에 있는, 진주 병사 겸 목사 신경원(申景援)의 선정을 기리는 비. 신경원[1581~1641]의 본관은 평산, 자는 숙헌(叔獻)이다. 1605년(선조 36) 무과에 급제한 후 1624년 이괄(李适)의 난 때 패전한 관군을 수습하여 반군을 대파함으로써 진무공신(振武功臣)으로 녹훈되었다. 1636년 병자호란 때는 분전하다가 적의 포로가 되어 단식 항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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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집현면 장흥리에 있는 비각. 조선 1718년(숙종 44) 9월 12일 숙종이 지족당(知足堂) 조지서(趙之瑞)[1454~1504]의 위패를 모신 신당서원을 사액하고 예조좌랑 이안국(李安國)으로 하여금 제를 고하는 사제문비를 세우고 이를 보호할 비각을 세웠다. 조지서는 1474년(성종 5) 과거에 합격한 후 사가 독서하였으며, 연산군 때 창원부사(昌原府使)로 내려왔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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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이 상대방의 샅바를 잡고 손과 발, 그리고 몸을 이용하여 먼저 넘어뜨리는 것으로 승부를 겨루는 우리나라 고유의 운동. 씨름은 우리나라에서 자생된 전통 민속놀이의 하나로, 우리나라 역사상 농경문화와 함께 성행하였다. 각력(角力)·각저(角抵)·각희(角戱)·상박(相搏) 등의 이름으로 불리어지기도 하였다. 이와 비슷한 형태의 놀이는 중국과 일본 등지에서도 행해지고 있으나 그 방법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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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지역에서 활동한 서양화가. 호는 여산(黎山). 1908년에 경상남도 거제에서 출생하였다. 어려서 양친을 여의고 인척집에서 농사일을 거들며 불우한 소년기를 보냈다. 16세 때 고학을 결심하고 통영의 사립청년학원을 거쳐 진주농업학교에 진학하여 그림에 뜻을 두게 되었다. 오랫동안 개천예술제 심사위원을 역임하면서 진주미술발전에 크게 기여를 한 서양화가로 1984년에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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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본관은 제주(濟州). 자는 회원(會元). 기묘명현(己卯名賢) 양팽손(梁彭孫)의 후손이며, 대사성을 지낸 양응정(梁應鼎)의 아들이다. 1561(명종 16)에 태어나 성혼(成渾)의 문하에서 수업하였으며,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경서(經書)에만 전심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적과 끝까지 항전하다가 진주성전투에서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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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경상남도 진주시의 역사. 진주시는 경상남도의 서남부에 위치한 도농 복합형 통합시로, 동쪽은 함안군, 서쪽은 하동군, 남쪽은 고성군·사천시, 북쪽은 산청군·의령군과 접하고 있다. 면적은 712.84㎢, 인구는 약 33만명이며, 1읍, 21동, 15개 면을 관할하고 있다.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교육도시이자 문화도시로, 현재는 첨단산업단지가 입지한 혁신도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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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관, 즉 담뱃대를 만드는 일을 하는 사람. 전하는 바에 의하면, 약 550여 년 전부터 경상남도 진주시 문산읍 상문리에 담뱃대를 만드는 사람들이 모여 살았다고 하며, 때문에 이곳을 ‘댓방골’이라 부른다고 한다. 이러한 전통을 윤태섭(尹泰燮) 옹이 이어받아 담뱃대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담뱃대는 꼭지 반지름, 몸통, 물치의 크기에 따라 소죽(小竹), 중소죽(中小竹), 중죽(中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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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개가 높은 여자. 열녀는 일반적으로 위난을 당하여 죽음으로 정조를 지켰거나 또는 오랜 세월에 걸쳐 고난과 싸우며 수절하거나 남편을 위해 헌신한 여인을 일컬으며, 열부(烈婦)나 절부(節婦)를 통칭한다. 열녀는 어느 나라 어느 시대에나 있었지만, 상하귀천을 막론하고 과부가 되면 마땅히 수절을 하여야 하고, 위난을 당하면 목숨을 바쳐 정조를 지키는 것이 부녀자의 도리로서 정착된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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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의 의병. 본관은 함양(咸陽). 자는 형보(瑩甫), 호는 성산(聖山). 이조판서 오팽숙(吳膨叔)의 증손이며, 아버지는 오사운(吳思雲)이다. 1547년(명종 2)에 태어나 1593년(선조 26)에 죽었다. 1590년 증광 문과에 급제하였고 홍문관 정자(正字)에 등용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의병장 고경명 휘하의 의병으로 금산전투에서 활약하였다. 159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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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의 효자. 본관은 의령. 진주 출신으로 부인은 함안조씨이다. 어릴 때부터 효성스러워 어버이를 지성으로 섬겼다. 아버지가 병으로 눕게 되자 백방으로 약을 구하고 맛있는 음식을 구해 병구완을 했다. 어느 날 의령까지 가서 약을 구해 진주로 돌아오는데 밤이 되고 비가 와서 길을 걷기가 힘들었다. 이때 마침 호랑이가 나타나 그를 호위하여 인도하였으며, 스님이 나타나 사연을 듣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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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시대의 호족. 처음 강양군(江陽郡) 의상현(宜桑縣)[泉州縣이라고도 하였으며 지금의 宜寧] 일대를 근거지로 하여 세력을 떨쳤으며, 뒤에 강주(康州)[지금의 경상남도 진주] 지역도 석권하였다. 924년(경명왕 8) 천주절도사(泉州節度使)를 자칭하고 중국 후당(後唐)에 사신을 보냈다. 927년에는 후당이 권지강주사(權知康州事) 왕봉규를 회화장군(懷化將軍)으로 봉하자, 사신을 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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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의 문신. 예빈경을 지낸 왕유(王惟)의 아들이다. 젊어서 문과에 급제하였고, 이후 승진하여 감찰어사가 되어 원칙대로 법을 집행하여 칭송을 받았다. 뒤에 진주부사가 되어 선정을 베풀었으며, 동경유수(東京留守)가 되어 경주로 전임하게 되었으나 진주 백성들의 청으로 1년을 더 유임하였다. 성품이 강직하고 청백하였을 뿐 아니라 절도가 있었으므로 모든 일을 백성에게 이롭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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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에 일본인 해적집단인 왜구가 남해안에 출몰하여 인명 살상과 재물을 약탈한 사건. 고려 말에 이르러 진주가 위치하였던 남해안에 두드러지게 나타난 현상은 왜구의 출몰이었다. 기록에는 고려시대를 통하여 약 500회의 왜구 침략이 있었고, 진주의 인근 해역에만도 31회나 침입하여 적지 않은 피해를 주었다고 한다. 진주에서는 이와 같은 잦은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여 1379년(우왕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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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화가.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자고(子固)·성유(聖攸), 호는 수운(峀雲)·가산(茄山). 『진양지』에 따르면 묵죽을 잘그렸다는 유진동(柳辰仝)의 6대손이며, 유혁연(柳赫然)의 종손이자 사간(司諫) 유성삼(柳星三)의 아들이다. 벼슬은 종2품인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지냈다. 묵화(墨畵)로 대나무를 잘 그렸는데, 조선 중기의 이정(李霆), 조선 후기의 신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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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해평(海平). 자는 태승(泰升), 호는 하곡(霞谷). 영의정 윤두수(尹斗壽)의 증손이며, 할아버지는 윤휘(尹暉)이고, 아버지는 첨정 윤면지(尹勉之)이다. 어머니는 참판 경섬(慶暹)의 딸이다. 1650년(효종 1) 사마시에 합격해 진사가 되었다. 1662년(현종 3)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해 승문원(承文院)에 들어갔다. 1665년 전적·감찰·예조좌랑을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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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옥봉동에 있는 고려 장군 강민첨(姜民瞻)의 사당. 강민첨은 고려 전기의 명신 겸 장군으로 본관은 진주, 태어난 곳도 진주이다. 옥봉동의 강민첨 탄생지는 1974년 12월 28일 경상남도 기념물 제14호로 지정되었는데, 장군의 위업을 기리고 추모하기 위하여 1980년대에 사당과 정문, 그리고 재실을 신축, 정화하였다. 은열사는 강민첨의 호를 따서 이름 지었으며, 부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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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가 외침을 받아 위급할 때 민중이 스스로의 의사에 따라 조직하는 자위군. 의병의 전통은 이미 삼국시대부터 비롯되었다. 한국은 역사적으로 외침을 많이 받아 고려·조선 시대까지 중요한 순간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의병이 일어났다. 특히 조선 말기의 의병은 항일 독립군의 모태가 되었다. 의병의 역사에서 가장 탁월한 활동을 보여준 것은 임진왜란·병자호란 양란의 의병과 조선 말기의 의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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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진지(鎭之). 군수를 지낸 이호약(李好約)의 아들이다. 1557년(명종 12) 출생하여 1608년(선조 41) 51세로 별세할 때까지 무인으로 활약하였으며, 특히 임진왜란 때 많은 공을 세웠다. 1584년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을 거쳐 1592년 곤양군수가 되었는데, 때마침 임진왜란이 일어나 왜군이 영남 일대에 침입해오자 선봉에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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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치백(致伯), 호는 안호(安湖). 정종의 열째아들 덕천군(德泉君)의 13대손이며, 이집(李𠍱)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기항(李基恒)이고, 아버지는 이완길(李完吉)이며, 어머니는 박세현(朴世炫)의 딸이다. 경상도 진주 출생으로, 1838년(헌종 4) 문과에 급제하여 승무원 부정자가 된 이후 휘릉(徽陵) 별검, 성균관 전적, 사헌부 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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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소폰연주자·가요작곡가. 1931년 5월 1일 경상남도 남해에서 출생하였고, 진주에서 초·중·고등학교를 다녔다. 진주중학교 재학시절 가요작곡가 이재호(李在鎬)의 문하생이 되었다. 1952년 한양대학교 건축공학과에 입학하였으며, 테너색소폰 연주자 엄토미(嚴吐美)의 문하생이 되어 본격적인 연주법을 사사받았다. 1987년 8월 31일 심장마비로 별세했다. 1958년 한양대학교 졸업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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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벽진(碧珍). 자는 여휴(汝休), 호는 용암(龍巖). 승지 이유번(李有蕃)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군수를 지낸 이석명(李碩明)이다. 아버지는 현령 이민선(李敏善)이며, 어머니는 김봉(金崶)의 딸이다. 김장생(金長生)의 문인으로, 1618년(광해군 10)에 아버지를 따라 경상도 선산으로 낙향하였다. 인조반정 후 사마시에 합격하고, 1630년(인조 8) 식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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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 출신의 판소리 명창. 1872년(고종 9) 경상남도 진주에서 출생하여 10살 때부터 판소리 공부를 시작하여 15살에 송우룡(宋雨龍)의 문하에서 3년간 공부하였다. 그 뒤로는 독학을 하다가 30살에 김세종(金世宗) 문하에 들어 간 뒤 판소리 명창이 되었다. 만년에는 진주지역에서 은거하며 후배를 양성하다가 세상을 떠났다. 이선유는 비록 성량은 풍부하지 못하였으나 동편(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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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무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계순(季純), 호는 은암(隱庵). 주부(主簿) 이오(李塢)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생원 이자침(李自琛)이다. 아버지는 증 영의정 이난(李鸞)이며, 어머니는 참봉 우담령(禹聃齡)의 딸이다. 아들은 우의정 이완(李浣)이다. 1583년(선조 16) 무과에 급제, 훈련원의 벼슬을 거쳐 1586년 소농보권관(小農堡權管)이 되었다가 남병사 신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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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 진주성 내에 있는, 조선 중기 무신 이수일(李守一)의 선정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이수일[1554~1632]의 본관은 경주, 호는 은암(隱庵), 시호는 충무이다. 임진왜란 때 경상좌도 수군절도사로 왜군 격퇴에 공을 세우고 1603년 진주성을 증축하는 등 1605년 길주목사로 갈 때까지 진주를 위해 많은 업적을 남겼다. 이수일이 진주병사 재임 중 병사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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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선비. 본관은 고성(固城). 자는 옥오(玉吾), 호는 운당(雲塘). 기국이 웅위(雄威)하고 용모가 수려하였다. 어릴 때부터 도량이 커서 『소학(小學)』과 사서(四書)를 힘써 공부하여 유학에 정통하였다. 특히『대학(大學)』의 「성의(誠意)」편을 몸소 실천하여 체득하려 노력하였으며, 실제로 효우(孝友)가 지극하여 부모를 섬김과 형제를 사랑하는 데 도(道)를 다하였다. 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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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선비. 본관은 여주(驪州). 자(字)는 문재(文哉). 아버지는 이만영(李晩榮)이다. 1556년(명종 11)에 태어나 진주 반동산에 살았다. 1579년(선조 12)에 생원에 합격하였으며, 성질이 단중하고 언론이 적당하며 착한 것을 좋아하고 악한 것을 미워하였다. 재주가 있었으나 뜻을 펴보지 못하고 1593년 진주성이 함락될 때 죽었다. 『진양지(晋陽誌)』권3「효행조(孝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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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무신. 무과에 급제하여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도체찰사 정철(鄭澈)의 막료로 있었는데, 적개의병장(敵愾義兵將) 변사정(邊士貞)이 그의 현명함을 듣고 청하자 부장이 되었다. 처음에는 나이가 너무 어려 부하들이 잘 따르지 않았으나, 신상필벌(信賞必罰)을 강화하고 사졸과 고락을 함께 하니 사람들이 점차 이에 복종하였다. 1593년 진주성이 위급하다는 소식을 듣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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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개성(開城). 자는 인언(仁彦)이다. 이황(李滉)의 문인으로 어려서부터 용감하고 호협하여 일찍이 무과에 급제하고, 1583년(선조 16) 북도병마사 휘하의 군관이 되어 이제신(李濟臣)의 반란을 평정했고, 야인정벌에 공을 세웠다. 1593년 4월 왜군이 진주성을 공격하자, 경상우병사 김성일(金誠一)의 아장(牙將)이 되어 선봉에서 적장을 사살하여 적을 퇴각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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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숙희(叔喜). 이극견(李克堅)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반(李攀)이고, 아버지는 이영부(李英符)이며, 어머니는 이효완(李孝完)의 딸이다. 장령(掌令) 이수경(李首慶)의 동생이다. 1546년(명종 1) 생원으로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1548년 예문관 검열로 처음 벼슬길에 들어섰다. 1549년 정언으로 언론활동을 하였고, 155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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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지수면 청원리에 있는 조선 후기 학자 이중광(李重光)의 묘비. 이중광[1592~1685]의 본관은 재령(載寧), 자는 경현(景顯), 호는 행정(杏亭)이다. 청송에서 태어나 일찍 부모를 여의고 학문에 정진하여 후학을 가르치고 유학을 진흥시키는 데 힘썼으며, 경상남도 진주시 지수면 청원리 재령이씨 입향조이다. 병자호란 때 용양위부호군(龍驤衛副護軍)을 지냈다. 이중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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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국권강탈 이후 1945년 광복에 이르는 일본제국주의에 의한 식민통치 시기. 일본제국주의의 식민지정책은 사회·경제적 수탈뿐만 아니라 한국민족 말살정책을 강행하는 악랄한 정책을 집행하였다. 한편 일제강점기에 설치한 교통·통신시설은 비록 그것이 근대적인 시설이었다 하더라도 설치목적과 그 기능은 자국의 이익만을 위한, 그리고 대륙침략의 병참기지화에만 있었다. 이러한 식민지정책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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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의 의병. 본관은 장흥(長興). 자는 홍보(弘甫), 호는 삼도(三島). 아버지는 임희중(任希重)이다. 1576년(선조 9) 별시문과에 급제, 진보현감(眞寶縣監)을 지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전 현감 박광전(朴光前), 능성현령 김익복(金益福), 진사 문위세(文緯世) 등과 보성에서 1000여 명의 의병을 일으켰다. 당시 와병중이던 박광전 대신 의병장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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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금산면 가방리에 있었던 서원. 조선 숙종 28년(1702) 신암(新菴) 이준민(李俊民), 성재(誠齋) 강응태(姜應台), 부사(浮査) 성여신(成汝信), 창주(滄州) 하증(河憕), 조은(釣隱) 한몽삼(韓夢參) 등 다섯 분의 학문과 그 공적을 추모하기 위해 지방 유림의 의견을 모아 창건하였다. 그 가운데 하증은 어머니 진주강씨 부인이 왜놈에게 항절하다 죽음을 당하였기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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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전통공예품 중의 하나인 장도(粧刀:칼집이 있는 작은 칼)를 만드는 장인. 장도는 소도(小刀)의 일종으로 처음에는 허리춤에 차고 다니는 휴대용에서 출발하였다. 이후 점차 용도가 다양해지면서 주머니에 넣어 다닌다고 하여 낭도(囊刀)라고도 하고, 허리에 차고 다닌다고 하여 패도(佩刀)라고도 하였다. 칼을 만드는 소재에 따라서도 은장도·목장도·골장도·금장도·뿔장도 등이 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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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목천(木川). 자는 명보(明甫). 아버지는 선전관 장응익(張應翼)이다. 성품이 강직하고 키는 팔 척이며, 특히 힘이 뛰어났다. 평소 유학에 뜻을 두어 경사자집(經史子集)에 통달하였다. 여러 번 문과에 응시하였으나 낙방하자 활쏘기와 말 타기에 전념, 1582년(선조 15) 무과에 급제하여 북도 변장을 제수받았다. 아버지의 병환으로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여 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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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문산읍 옥산리에 있는 비. 1694년(숙종 20)에 진주 유림들의 공의로 창건되었던 정강서원의 옛터에 세운 비이다. 정강서원은 창건 후 거유들이 모여 학문을 강론하고 유생들을 가르쳤고, 1720년에 이르러서는 9인의 학자를 배향 봉사하면서 구현사(九賢祠)라 하였다가 1868년(고종 5) 서원철폐령에 따라 훼철되었다. 배향된 학자는 우곡 정온(鄭溫), 수헌 강숙경(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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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곤양. 자는 경운(景雲). 호는 매헌(梅軒). 진주정씨에서 분적한 곤양정씨(昆陽鄭氏)의 중시조이다. 좌찬성에 추증된 정호(鄭浩)의 아들이다. 초명은 무수(茂壽)이나 1586년(선조 19) 무과 급제 후 왕명에 따라 기룡으로 이름을 고쳤다. 1562년(명종 17) 출생하여 1622년(광해군 14) 60세로 별세하였다. 무과에 급제한 후 1590년 경상우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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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진양. 자는 자유(子), 호는 애일당(愛日堂). 할아버지는 정신중(鄭臣重)이고, 문정공(文定公) 정이오(鄭以吾)의 아들이다. 문음(門蔭)으로 벼슬에 나가 경승부승(敬丞府丞)에 이르렀고, 1416년(태종 16) 친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이후 이조좌랑·승문원교리 등을 역임하였다. 1422(세종 4)년부터 1438년까지 사간원헌납, 함길도경차관, 승정원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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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운경(雲卿), 호는 호음(湖陰)이다. 부사 정광보(鄭光輔)의 아들이며, 영의정 정광필(鄭光弼)의 조카이다. 1507년(중종 2)에 진사가 되고, 1509년(중종 4) 별시문과에 급제하였다. 1514년 사가독서(賜暇讀書)하였고, 1516년 황해도도사로서 문과중시에 장원하였으며 사간을 거쳐 1523년 부제학이 되었다. 1534년 동지사(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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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 자는 이신(而信). 대제학을 지낸 정척(鄭陟)의 아들이다. 출생년은 미상이다. 1474년(성종 5) 식년 문과에 을과로 급제한 후 1475년(성종 6)에는 홍문관부응교로서 전라도에 파견되어 백성들의 어려움을 보살폈다. 1479년 수찬으로 경연관(經筵官)을 겸하였다. 그 뒤 해주목사와 경기도경차관, 우부승지를 거쳐 좌부승지에 이르렀는데, 이때 해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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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무신. 사과(司果) 정형손(鄭亨孫)의 아들이며, 정항(鄭沆)의 아버지다. 생몰년은 미상이며, 진주 대여촌(代如村)에 살았다. 활쏘기를 비롯한 무술에 뛰어났고 명장의 풍모가 있었다. 1489년(성종 20)에 무과에 합격한 후 함경도 군관을 거쳐 우도수사(右道水使)에 올랐다. 1509년 아버지의 상을 당하여 시묘살이를 하고 있었는데 이듬해 삼포왜란이 일어나 웅천(熊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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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 호는 면재(勉齋). 평장사를 지낸 정연(鄭椽)의 아들이다. 1320년(충숙왕 7) 국자시에 합격하여 1345년(충목왕 1) 정당문학이 된 후 국정에 참여하였으며, 이어 청천군(菁川君)에 봉해졌다. 1352년(공민왕 1) 당시의 권세가 조일신(趙日新) 세력의 배경으로 찬성사가 되었으나 곧 조일신이 주살되자 그 일파가 함께 투옥되었다가 광양군수로 좌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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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효자. 본관은 진주. 자는 제옹(濟翁). 지중추원사(知中樞院事) 정척(鄭陟)의 손자이고, 조선 전기 진주 출신의 문신인 정성근(鄭誠謹)의 아들이다. 1472년(성종 3)에 태어나 1501년(연산군 7) 문과급제한 후 승문원 부정자·박사를 지냈다. 일찍이 그 아버지의 성품이 강직하여 연산군의 귀에 거슬리는 간언을 하는 것을 보고 아버지께 물러날 것을 진언하였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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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진양. 자는 명지(明之), 호는 정암(整菴)·창재(暢齋). 아버지는 증호조판서 정설(鄭舌)이며, 어머니는 진주강씨(晋州姜氏)로 산원(散員) 강우(姜祐)의 딸이다. 1408년(태종 8) 사마시에 합격하여 생원이 되었고, 1414년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교서관정자가 되었다. 세종대에서 세조대에 걸쳐 지승문원사, 첨지중추원사를 거쳐 공조·호조·예조의 참의, 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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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때 활약한 군관이자 비거(飛車) 발명가. 정평구는 전라북도 김제군 출신으로 어렸을 때부터 총명하여 『논어』와 『맹자』를 줄줄 읽었다고 한다. 그러나 청년이 되어 문과에 응시했으나 낙방하여 다시 무과에 응시하였고, 이후 무관 말단직으로 관직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전라 우수사로 부임해온 당시의 명장 이억기(李億祺)가 정평구의 사람됨을 알아보고 중용함으로써 비로소 능력을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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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초계(草溪). 자는 보여(保汝), 호는 박원(璞園). 정기화(鄭琦和)의 아들로 1817년에 태어났다. 1867년 진주목사(晋州牧使)로 부임하여 1870년까지 활동하였다. 의기사를 중건하였으며, 교방기구(敎坊機具)를 재설치하고, 의암별제(義巖別祭)를 신설하였다. 1870년에 김해부사로 전임되어 갔다. 문장명필(文章名筆)을 겸비한 선비로서 음악에 대한 관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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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이나 문중 등에서 돌아가신 조상이나 특정 신(神)에 대하여 예(禮)를 갖추는 추모 의식. 제례란 가정이나 문중에서 돌아가신 이를 대상으로 기일이나 특정 계절에 맞춰 예를 갖추는 의식 일체를 의미한다. 흔히 ‘제사(祭祀)’라고도 하는데, 정성들인 음식들을 진설한 후 절을 올리고 축문을 읽으며 돌아가신 이를 추모한다. 예외가 없지는 않으나 대개의 경우 조상(祖上)에 대한 추모를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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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에서 1910년까지 조선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 1392년(태조 1) 진주를 진양이라 하고 태조현비의 내향이므로 목을 높여서 진양대도호부라 개칭, 진양대도호부사를 두었다. 1402년(태종 2) 진양을 진주로 고치고 대도호부를 목으로 개칭하였다. 1413년(태종 13) 지방제도의 대대적 개편 때 진주는 목으로서 정3품의 목사가 배치되고, 그 아래 판관(종5품)과 교수(종6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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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에 있었던 금융기관. 조선식산은행(朝鮮殖産銀行)은 일제강점기인 1918년에 산업기관에 자금을 대출할 목적으로 설립된 특수은행이다. 실제적으로는 일제의 조선식민지화 산업을 지원하여 조선인에 대한 착취와 약탈을 감행하였고, 조선총독부 산하 최대의 금융정책기관으로 활동하다가 해방 후 한국산업은행에 흡수되었다. 진주지역에 있던 산업기관에 자금을 대출해 주기 위한 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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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선비·효자. 본관은 함안. 자는 인수(仁叟), 호는 횡구(橫溝). 아버지는 동몽교관에 증직된 조광식(趙匡植)이며, 어머니는 김해김씨로 김석신(金錫信)의 딸이다. 자신의 호는 중국 북송 때 사상가 장횡거(張橫渠)의 ‘횡(橫)’자와 옛날 유방과 항우가 힘을 겨루었던 역사의 현장인 홍구(鴻溝) 땅 이름의 ‘구(溝)’자를 따서 지었다. 장횡거는 왕안석(王安石)과 뜻이 맞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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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창녕. 자는 문위(文偉). 현령을 지낸 조안중(曺顔仲)의 아들이다. 1434년(세종 16)에 태어나 1475년(성종 6) 문과에 급제한 후 선전관에 발탁되었다. 1478년 이조좌랑에 재직 중 평안도에 파견되어 민심을 회유하였다. 1479년 건주위(建州衛) 여진을 정벌할 때 도원수 윤필상(尹弼商)의 종사관이 되어 참전하였고, 이듬해 적진 깊숙이 들어가 독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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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무신. 본관은 창녕. 할아버지는 울진현령 조안중(曺顔中)이고, 아버지는 대사헌을 지낸 조숙기(曺淑沂)이다. 어머니는 정유의(鄭攸宜)의 딸이다. 진주 송곡리에 살았다. 1502년(연산군 8) 무과에 급제하고, 이듬해 선전관이 되었다. 1506년 유빈(柳濱)·윤상로(尹漡老) 등과 협의하여 연산군을 폐하려 하였으나 박원종(朴元宗)·성희안(成希顔) 등의 반정이 먼저 성공하였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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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무신. 선조 때 무과에 급제한 뒤 1592년(선조 25) 고성현령으로 있을 때 임진왜란을 맞았다. 왜군이 진주성을 포위, 공격해오자 목사 김시민(金時敏)을 중심으로 왜적에 대항하였다. 이 때 조응도는 고성의 가장(假將)으로서 진주 복병장(伏兵將) 권유경(權惟敬)과 함께 500명의 병력을 이끌고 남쪽 문을 지켰다. 십자(十字) 횃불을 들고 남강(南江) 밖 재 위에 벌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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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백유(伯由), 호는 대소헌(大笑軒). 아버지는 참봉 조언(趙堰)이며, 어머니는 대사성 강로(姜老)의 딸이다. 진주 소남리에 살았다. 1537년(중종 32) 태어나 1558년(명종 13) 생원시에 합격한 뒤 천거로 안기도찰방(安奇道察訪)이 되었다. 그 뒤 사도시직장(司䆃寺直長)·상서원직장(尙瑞院直長)·통례원인의(通禮院引儀)·장례원사평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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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임천(林川). 자는 백부(伯符), 호는 지족(知足). 아버지는 사헌부감찰을 지낸 조찬(趙瓚)이며, 어머니는 생원 정참(鄭參)의 딸이다. 1454년(단종 2) 태어나 1474년(성종 5) 생원시에서 1등으로 합격하고, 같은 해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면서, 권지승문원정자에 제수되었다. 이후 1478년에는 통신사 이계동(李季仝)의 군관(軍官)이 되어 일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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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곳이나 사는 지역에서의 생활 모습. 진주지방의 주거 흔적은 진주시 대평면 유적에서 찾을 수 있다. 대평리 집터유적은 마을 앞을 흐르는 남강변의 평야지대에 넓게 분포되어 있다. 대평리 집터유적은 진주지방에서 가장 오래된 집터의 흔적인데, 기원전 1000년~300년 사이의 청동기시대 유물로 기록되어 있다. 대평리 집터는 동서로 18.6m, 남북이 4.6m에 깊이는 30㎝인 대규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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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경상남도 진주에서 간행한 『주자어류』 50권의 책판. 『주자어류(朱子語類)』는 본래 송나라 때 여정덕(黎靖德)이 주자와 그 문인들과의 문답을 집성하여 편집한 50책이나 되는 거질(巨秩)이며 성리학 연구의 필독 도서이다. 1575년(선조 8)에 처음으로 우리나라에서 간행하였지만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고, 인조 때 영남감영(嶺南監營)에서 다시 간행했으나 또 소실되었다. 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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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때 경상남도 진주지역에 있었던 진주 최초의 전문건설업체. 죽본조(竹本組)는 일제시대에 설립되어 주로 건축·토목 분야에서 활동하였다. 경상남도 진주 최초의 전문건설업체로 진주는 물론 서부 경상남도 전역의 주요 공사를 독점하였으며, 죽본조의 중심인물인 죽원웅차(竹元熊次)는 정미업과 운수업에도 손을 댔다. 합자회사인 죽본조는 죽원웅차를 중심으로 하여 좌등금장(佐藤金藏)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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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 국립진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 중기의 유통식 화포. 우리나라에 보물로 지정된 중완구(中碗口)는 2점이 있다. 1점은 국립진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고, 다른 1점은 해군사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국립진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중완구는 경상남도 하동군 옥동면 동화리 산 57번지 등산길에서 우연히 발견되어 매장문화재발견신고를 거쳐 동년 12월 20일 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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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여양(驪陽). 자는 낙이(樂而). 아버지는 진사 진복명(陳福命), 어머니는 판중추부사를 지낸 황진(黃璡)의 딸이다. 또 문인으로 이름을 떨친 진우(陳宇)가 그의 형이다. 1519년(중종 14) 출생하여 1568년(선조 1) 49세로 별세하였다. 1547년(명종 2) 알성문과에 합격하여 검열·대교·정언·이조정랑·병조정랑 등을 역임하였다. 1560년 형조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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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서남부에 1994년까지 존속했던 행정 구역. 1895년 지방 제도 개정에 의해 진주부 진주군이 되었다가, 1896년에 13도제(道制) 실시로 경상남도 진주군이 되면서 경상남도의 도청 소재지가 입지하게 되었다. 1914년 군·면 통폐합에 의해 진주군의 44개 면이 17개 면으로 통합되고, 함안군의 3개 면이 2개 면으로 폐합되어 진주에 편입되었다. 1925년 경상남도 도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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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여신(成汝臣)이 편찬한 경상도 진주목 읍지. 1622년(광해군 14)부터 1632년(인조 10)에 걸쳐 편찬하였는데, 정구(鄭逑)가 1587년(선조 20) 편찬한 『함주지(咸州誌)』(경상도 함안군 읍지)의 영향을 받아 그 체재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 필사본이다. 1730년(영조 6) 반포되었으며, 현재 규장각도서에 있다. 2책으로 구성되었으며 채색지도가 첨부되어 있다. 제1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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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옥봉동에 있는 고려 전기 때의 장군 강민첨의 탄생유적지. 강민첨은 고려 전기의 명신 겸 장군으로 본관은 진주, 태어난 곳도 진주이다. 1018년(현종 9) 거란의 소배압(蕭排押)이 10만의 군사를 이끌고 침입하자 강감찬(姜邯贊) 장군을 도와 부원수로서 귀주전투에서 적을 격파, 전승을 거둔 바 있다. 그 공으로 1019년에 응양상장군주국이 되고, 곧 이어 우산기상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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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소를 마주 세워 싸우게 하고 이를 즐기는, 진주지역에 전래된 전통 민속놀이. 진주 소싸움에 관하여는 여러 곳에 그 기록이 전해지고 사진자료들도 많이 남아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제12권 〈소싸움〉항목에서는 “경상남도 지방에서 주로 성행하였으며…… 경상남도 진주에서는 남강의 모랫벌에서 소싸움을 해왔으나…… ”라고 적고 있다. 같은 책 제21권의 〈진주시〉 항목의 민속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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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를 중심으로 하는 서부 경상남도지방에서 차와 관련된 자연환경, 역사, 차인(茶人)들의 활동, 그리고 도구와 기물 등이 관련되어 이루어진 독특한 생활문화 풍토. 한자 ‘茶’는 ‘차’ 또는 ‘다’로 읽히나, 진주지방에서는 ‘차’로 많이 읽히므로 ‘차’로 쓰고자 한다. 차(茶, tea, cha)는 마시는 음료로써, 몸과 마음의 건강과도 관련되고, 자연과도 연관되면서 차생활·차예술·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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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에 있는 사우.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왜적의 침입에 맞서 싸운 진주성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한 진주목사 김시민(金時敏), 창의사 김천일(金千鎰) 등 39위와 모든 군졸의 신위를 안치하기 위하여 1595년 경상감사 정사호(鄭賜湖)가 건립하였다. 1607년 창렬사라 사액되었고, 1712년(숙종 38) 병사 최진한(崔鎭漢)에 의하여 중수되었다. 김시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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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이반성면 용암리 117[용암길 59-2]에 있는 사우.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충의공(忠毅公) 정문부(鄭文孚)를 제향하기 위해 건립하였다. 본래 귀곡동에 있었는데, 1995년 남강댐 공사로 인하여 현재의 장소로 이건하였다. 정문부는 호가 농포(農圃)로, 함경도 경성에서 의병을 일으켜 길주에서 왜적을 물리치고 그 전공으로 길주목사가 되었다. 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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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공립농업학교와 진주고등보통학교 학생 전원이 동맹하여 휴학한 사건. 일제강점기에 자질을 갖추지 못한 일본인 교사의 한국민족에 대한 민족차별 및 모욕적 언동에 의한 멸시에 항의하여 1927년 6월에 진주공립농업학교 2·3 학년생 중심으로 동맹휴학을 단행하였다. 학교당국은 주모자 6명을 퇴학, 6명을 정학시켰다. 이에 대하여 학부형과 졸업생이 조정책을 강구하여 퇴학생을 무기정학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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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고종 32)에 진주목이 진주군으로 된 후 1939년 진양군으로 개칭될 때까지 진주의 행정구역 명칭. 1894년에 실시된 갑오경장의 일환으로 이듬해 5월 혁신적인 행정구역 개편이 이루 어져 국초부터 시행해오던 8도제를 폐지하고 전국을 23부로 구분하고 그 아래 337군을 두었다. 이때 진주에는 진주부가 설치되어 21군을 관할했고, 진주목은 진주군으로 개칭되어 군수를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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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에 진주에 있었던 기생조합. 조선시대의 기생제도 하에서 기생은 관기(官妓)로서 궁중의 약방이나 상의원(尙衣院 : 왕의 의복이나 궁중의 일용품을 맡던 관부) 등에 소속되어 있으면서 평소에는 약을 달이거나 바느질을 하다가 연회가 있을 때는 불려가 노래나 춤을 추었다. 국권을 상실한 후 관기제도가 없어지면서 서울의 기생들이 처음으로 조합을 결성하였는데, 이것이 한성권번(漢城券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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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에 있는 기독교 사회단체. 기독교청년회(YMCA)는 1844년 윌리엄스(G. Williams)가 영국 런던에서 창설한 단체이다. 우리나라에 기독교청년회가 창설된 것은 1903년 10월 28일이었는데, 당시 명칭은 황성기독교청년회였다. 황성기독교청년회는 이후 1913년에 조선중앙기독교청년회로 개칭되었다가 현재는 기독교청년회로 불리고 있다. 2004년 현재 6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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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초부터 조선시대까지의 진주 행정구역 명칭. 진주는 고려 초기 청주(菁州)라 하였다가 다시 강주(康州)로 환원하였고, 983년(성종 2) 2월 주제(州制)를 목(牧)으로 개혁하면서 진주는 전국 12목 중의 하나인 진주목이 되었다. 성종 14년(995) 9월 처음으로 전국에 10도를 두었는데, 이때 진주에는 산남도(山南道)가 설치되어 10주 37현을 통할했다. 현종 9년(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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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진주목에서 편찬한 관찬 읍지. 진주지역의 역사, 지리, 풍토는 물론, 인물, 사건 등 모든 문화현상이 서술되어 있는 문헌으로 세 종류가 전해지고 있다. 현재 규장각에 보관되어 있는 것으로 1832년(순조 32)의 임진본, 1871년(고종 8)의 신미본, 1895년(고종 32)의 을미본이 있으며, 이 중 임진본은 1991년 진주문화원에서 번역본으로 발간한 바 있다. 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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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철종 13)에 경상남도 진주에서 일어났던 농민봉기. 1862년에 경상도우수사 백낙신(白樂莘)의 불법탐학에 반발하여 진주 출신 유계춘(柳繼春) 등이 일으킨 민란으로, 자진 해산하기까지 4일간 진주 일대를 휩쓸며 부정 관리와 부호들을 응징하였다. 이후 중앙조정에서 보낸 진주안핵사에 의하여 민란은 수습되었으나, 같은 해 전국적으로 일어난 임술민란의 도화선이 되었다. 조선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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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고종 32)부터 정부수립 후인 1949년까지의 진주 행정구역 명칭. 1895년(고종 32) 5월 26일 칙령 제98호에 의거 그동안 시행해오던 8도제(道制)를 폐지하고 전국을 23부(府)로 구분하고, 그 아래에 336군(郡)을 설치하는 획기적인 개편을 단행했다. 그리하여 부에는 관찰사(觀察使)를 두고 군(郡)에는 군수(郡守)를 두었는데, 이때 진주에는 지금의 도격인 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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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 지방에 고유한 향토음식으로 전해오는 비빔밥. 진주비빔밥은 제사에 쓰던 나물과 탕국을 즐기던 음식의 형태로 지금은 그 맛이 약간씩 변형되어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진주비빔밥의 독특한 맛은 사골국물로 밥을 짓는 데 있다. 밥 위에는 숙주·고추·근대나물 등을 얹어 보탕국과 같이 내는데, 동황색의 둥근 놋그릇과 흰빛의 밥테, 그리고 다섯 가지의 나물이 어우러져 일곱 가지 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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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 진주성 내에 있는 하마비(下馬碑). 하마비는 조선시대 종묘 및 궐문 앞에 세워놓은 비로 말을 타고 이곳을 지나는 사람은 누구든지 말에서 내려야 한다는 글이 적혀 있다. 진주는 1604년(선조 37) 이래로는 경상도 우병영, 1895년에는 진주관찰부, 1896년 이래로는 경상남도관찰사가 있던 곳이다. 이곳을 방문하는 수령 이하 모든 관리와 일반인은 말에서 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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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상대동에 있는 기독교 사회단체. 여자기독교청년회(YWCA)는 1855년 영국 런던에서 창립된 단체이다. 여자기독교청년회가 우리나라에 창설된 것은 1922년 4월이며, 정부수립 후인 1949년에 당시 문교부로부터 사단법인 허가를 받았다. 2006년 현재 31개 지방에 조직을 갖고 있으며, 회원수는 200여만 명이다. 여자기독교청년회(YWCA)는 젊은 여성들로 하여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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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개와 풍류를 지닌 진주 기생들의 생활 모습과 그로 인해 형성된 문화상. 진주의 논개(論介), 평양의 계월향(桂月香)으로 인해 ‘남 진주, 북 평양’란 말이 회자될 정도로 진주의 풍류와 멋은 그 명성이 높았다. 그리하여 조선 기녀하면 “일강계(一江界), 이평양(二平壤), 삼진주(三晋州)”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게 되었다. 1910년 1월 7일자 『경남일보』에 위암 장지연(張志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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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지역에만 전래되거나 새로 생겨나고 있는 별미음식. 남부지방에 위치하고 있는 진주는 일반적으로 쌀과 보리를 섞어먹는 쌀보리밥을 주식으로 하고 있으며, 부식으로는 채소나 어육이 있는데, 특히 채소를 많이 먹는 편이다. 밥, 김치, 나물, 국, 묵, 떡, 생선회 등이 진주지역의 일반적인 음식인 반면 진주지역에만 전래되었거나 새로 생겨나고 있는 전통별미음식으로 진주비빔밥, 진주헛제사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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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 지방의 교방에서 추어지던 일종의 놀이춤. 원래 「포구락무」는 궁중에서 행했던 춤과 노래 중 하나로 공을 구멍에 던져 넣는 놀이를 표현한 것이다. 진주포구락무는 채구(彩毬)를 구문(毬門)의 풍류안(風流眼)에 던져 넣는 놀이를 음악과 무용으로 형상화한 궁중정재가 진주권번에서 지역화 된 춤으로서 고종[재위 1863~1907] 때 진주부사를 지냈던 정현석의 『교방가요』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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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옥봉동 진주향교 입구에 있는 비. 진주향교 출입자를 통제하기 위해 세운 비로, 여기에 출입하는 자는 누구라도 말이나 가마에서 내려 걸어 들어가야 함을 알린 내용의 비이다. 하마비는 조선시대 종묘 및 궐문 앞에 세워놓은 비로, 말을 타고 이곳을 지나는 사람은 누구든지 말에서 내려야 한다는 글이 적혀 있다. 진주향교는 고려 말 조선 초에 창건된 향교로, 임진왜란 때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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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 지방에 내려오는, 제사상에 올리는 반찬을 비벼 먹도록 만든 음식. 진주헛제사밥은 쌀이 귀했던 시절에 드러내놓고 쌀밥을 먹지 못했던 유생들이 저녁 늦게까지 글공부를 하다가 출출해진 배를 채우기 위해 제사음식에다 향과 축문을 읽는 헛제사를 지낸 뒤 그 음식을 먹은 데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선비의 고장인 진주에서 선비들의 해학적 풍류가 만들어낸 전통 향토음식이라 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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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 진주성 내에 있는 서원. 고려 현종 때 거란의 침입을 물리치는 데 공을 세운 은열공(殷烈公) 정신열(鄭臣烈)과, 고려 말 물레를 만들어 백성들에게 따뜻한 목면(木棉, 목화) 옷을 입게 한 문충공(文忠公) 정천익(鄭天益)의 위패를 봉안한 서원이다. 두 분은 각각 진양부원군(晋陽府院君), 진양군(晋陽君)에 봉해졌다. 본래 대평면 마동에 건립되었으나, 186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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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생활에 필요한 기초적인 초등보통교육을 실시하는 교육기관. 현대 학교교육의 제도상 가장 먼저 취학하는 학교이다. 따라서 설립자나 지역에 관계없이 공통의 목표 아래 동일한 교육과정을 이수하게 된다. 근대 이후 세계 각국에서는 국민교육이 국가의 기본기능으로 인식되어 국민교육의 제도적 확립과 확충·강화책이 강구되고 있다. 초등학교는 나라에 따라 초등학교·보통학교·기초학교·소학교 등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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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의 문신, 의병장.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선우(善遇). 호는 삼계(三溪)·일휴당(一休堂). 전라남도 능주(陵州)[화순] 출신. 고려 명신 최충(崔冲)의 후손으로 최천부(崔天符)의 아들이다. 1532년(중종 27) 출생하여 1593년(선조 26) 의병장으로 왜적과 싸우다 진주 남강에 투신, 자결하였다. 양응정(梁應鼎)·기대승(奇大升)에게서 수학하였으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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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때의 의병. 본관은 전주. 자는 규중(圭仲), 호는 모산(茅山). 출생년은 미상이다. 천성이 어질고 품행이 발라 일찍이 지방관의 추천을 받아 봉사가 되었다. 이후 진주부관을 지낸 뒤, 관직에서 물러나 진주 서쪽 백운동(白雲洞)에 살며, 젊은 유생들과 함께 학문과 도의를 강론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지휘하여 1593년(선조 26) 진주성에서 왜적과 싸우다 성이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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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학자. 본관은 화순. 자는 효원(孝元), 호는 수우당(守愚堂). 아버지는 병조좌랑을 지낸 최세준(崔世俊)이고, 어머니는 평해손씨(平海孫氏)로 현감을 지낸 손준(孫濬)의 딸이다. 1529년(중종 24) 태어나 남명 조식(曺植)의 문인으로서 학문에 몰두하였다. 과거에 실패하고 1572년(선조 5) 경주참봉에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고, 이후에도 조정으로부터 수령·도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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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와 임금을 위하여 충성을 다하는 신하. 충신은 전통시대의 사상을 포괄하여 내려오는 용어이지만, 나라에 충성함은 예나 지금이나 변할 수 없는 기본적 덕목이다. 이러한 충성심을 발휘하여 오늘날까지 후세의 칭송을 받고 있는 충신들은 그 마음이 항상 나라와 임금, 그리고 겨레를 위하는 일념에 차 있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때문에 개인의 영달이나 어느 한 집단의 권력 쟁취를 위하여 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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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의 무신·학자. 본관은 진주. 자는 우석(禹碩). 호는 사헌(思軒). 아버지는 하한조(河漢祖)이며, 어머니는 밀양박씨로 박기찬(朴基欑)의 딸이다. 1825년(순조 25) 진주에서 출생하여 이우빈(李佑斌+貝)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853년(철종 4) 무과에 급제한 후 부사과, 훈련원첨정 등을 지내고 1862년 거제도호부사로 나갔다. 1866년(고종 3) 병인양요 때는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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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의 유학자. 본관은 진주. 자는 숙형(叔亨). 호는 회봉(晦峰) 또는 외재(畏齋). 송정(松亭) 하수일(河受一)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하재익(河載翼)이며, 어머니는 김해김씨이다. 1870년(고종 7) 진주에서 출생하여 13세에 사서오경을 익혔고, 24세부터는 성리학을 논하기 시작했다. 27세 때 곽종석(郭鍾錫)을 찾아가 제자가 되었다. 이후 평생을 학문과 저술에 힘쓰다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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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 아버지는 병조판서를 지낸 하승해(河承海)이며 어머니는 보성선씨 전객령(典客令) 선진기(宣眞起)의 딸이다. 조선 초에 병마도절제사를 지낸 양정공(襄靖公) 하경복(河敬復)이 형이다. 진주 주위 고을 수령을 지내며 형 하경복을 대신하여 모친 봉양에 정성을 다하여 효행의 명성이 높았다. 당시 하경복은 나라의 북경 수비를 맡아 15년간이나 국방과 영토 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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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 994년(성종 13) 압강도구당사(鴨江渡勾當使)가 되고, 1009년(목종 12) 중랑장(中郞將)이 되었다. 목종이 병들어 자리에 눕자 친종장군(親從將軍) 유방(庾方), 중랑장 탁사정(卓思政) 등과 함께 목종이 거처하는 궁궐 주변을 지켰으며, 얼마 후 상서좌사낭중(尙書左司郞中)이 되었다. 1010년(현종 1) 동서계(東西界)에 있을 때 임의로 군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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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 자는 첨경(瞻卿), 호는 양정재(養正齋). 아버지는 대사헌에 증직된 설총(雪聰) 하철(河澈)이며, 어머니는 고령박씨 박신(朴紳)의 딸이다. 1664(현종 5) 하동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부모에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가 돈독하였으며, 육례(六禮)에 통달하여 주위의 칭송을 받았다. 부친이 별세하자 예에 따라 상을 치르고 여막을 지켰는데, 모친에게 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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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와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 자는 대림(大臨). 호는 호정(浩亭). 하공진(河拱辰)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순흥부사를 지낸 하윤린(河允潾)이다. 1347년(충목왕 3)에 태어나 1365년(공민왕 14) 문과에 급제한 후 1367년 감찰규정이 되어 신돈(辛旽) 문객의 비행을 탄핵하다가 좌천되었고, 1388년(우왕 14)에는 최영(崔瑩)의 요동정벌을 반대하여 양주로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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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 자는 자경(子敬), 호는 죽헌(竹軒). 아버지는 하위보(河魏寶)이며, 어머니는 참의를 지낸 이륜(李倫)의 딸이다. 뒤에 영모정(永慕亭) 하진보(河晋寶)에게 입양되었다. 1571년(선조 4) 태어나 최영경(崔永慶)에게서 학문을 익혔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경상남도 창녕 화왕산성(火旺山城)으로 곽재우(郭再祐)를 찾아가 군무를 도와 공을 세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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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 자는 태이(太易), 호는 송정(松亭). 고려 명신 하공진(河拱辰)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하면(河沔)이며 어머니는 함안조씨 조정견(趙庭堅)의 딸이다. 부인은 파평윤씨 윤언례(尹彦禮)의 딸과 밀성손씨 손천뢰(孫天賚)의 딸이다. 1553년(명종 8)에 출생하여 어릴 때부터 남명(南冥) 조식(曺植)의 가르침을 가장 충실히 전수받은 종숙 각재(覺齋) 하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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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 자는 연량(淵亮). 호는 경재(敬齋)·신희(新稀). 부윤을 지낸 하자종(河自宗)의 아들이다. 1376년(고려 우왕 2)에 태어나 일찍이 정몽주(鄭夢周)의 문하에 들어가 공부하였다. 1396년(조선 태조 5) 문과에 급제한 후 예문춘추관 수찬관이 되었다. 이어 집의, 동부대언, 예조판서를 지냈다. 1423년(세종 5) 대사헌으로 있을 때에는 조계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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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하연(河演)의 묘. 하연의 본관은 진주, 시호는 문효(文孝)이다. 1376년(고려 우왕 2)에 태어나 일찍이 정몽주(鄭夢周)의 문하에 들어가 공부하였다. 1365년(조선 태조 5) 문과에 급제한 후 예조판서·대사헌·대제학·형조판서 등을 지내고 우의정과 좌의정을 거쳐 1449년(세종 31) 영의정에 올랐다. 문종이 즉위하자 벼슬에서 물러나 있다가 1453년(단종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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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 찬성사로 치사(致仕)하고 진주군(晋州君)에 봉해진 하즙(河楫)의 아들이다. 벼슬에 나가 여러 지방에서 백성들을 돌보았으며, ‘잘못된 것을 알고서 그릇 판단한다면 하늘이 벌을 내릴 것이다.’라는 글을 써서 걸어놓고 일을 보았다고 한다. 어머니의 별세로 3년 동안 벼슬자리에서 물러나 있었을 때 우왕이 ‘효를 옮겨 충으로서 삼고 그 애통함을 억제하고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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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晋州). 1344년(충혜왕 복위 5) 과거에 급제한 후 1363년(공민왕 12) 전공정랑(典工正郞)으로 있으면서 홍건적의 침입을 막아 개경을 수복한 공으로 1등공신에 올랐다. 1375년(우왕 1) 전라도원수 겸 도안무사에 있으면서 임의로 정원 외의 연호군(煙戶軍)과 별민군(別民軍)을 두었다하여 파면 당하였다. 이때 후임으로 온 원수 유영(柳瑩)이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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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 자는 원룡(元龍). 호는 영무성재(寧無成齋). 1540년(중종 35)에 태어나 남명 조식(曺植)의 문하에서 공부하였다. 효심이 깊고 우애가 남달리 뛰어나 3형제가 한 집안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가난하게 살면서도 항상 웃으며 사람들을 대했다고 한다. 명종 때 진사시에 합격한 후 소촌도찰방(召村道察訪)이 되었고, 임진왜란 후에는 이원익(李元翼)의 천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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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자평(子平), 호는 창주(滄州)이다. 진주 내당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성균생원인 하위보(河魏寶)이고 어머니는 참의 이윤(李綸)의 딸이다. 숙부 하국보(河國寶)에게 입양되었다. 진주 단지동에 살았다. 기질이 순후하고 지조가 독실하여 자기를 다스리기를 매우 엄하게 하였으며 독서에 충실하여 어려운 곳은 반드시 질의와 논란으로 해결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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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 자는 한경(漢卿), 호는 일헌(一軒). 집의를 지낸 하진(河溍)의 아들이다. 1634년(인조 12)에 출생하여 나이 13세에 허목(許穆)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았으며, 성년이 되어서는 조선 중기 진주지역의 학자인 하홍도(河弘度)의 문하에 출입하면서 남명 조식(曺植)의 학문을 사숙하였다. 인조반정(仁祖反正) 이후 덕천서원(德川書院)을 중심으로 남인계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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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학자.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중원(重遠), 호는 겸재(謙齋). 아버지는 하광국(河光國)이며, 어머니는 강양이씨(江陽李氏)로 이광우(李光友)의 딸이다. 1593년(선조 26)에 출생하여 1666년(현종 7) 73세로 별세하였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의 상을 정성껏 치렀으며, 옛 성현과 같이 되겠다는 큰 뜻을 가지고 스스로 몸가짐을 엄숙히 하였다. 촌부(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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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인 이상의 학습자에게 30일 이상의 교습과정에 따라 지식·기술·예능을 교습하거나 30일 이상 학습장소로 제공되는 시설. 평생교육기관 설립목적은 국민에게 실력보충의 학습기회 제공, 취업에 필요한 지식·기술의 습득기회 제공, 정서함양 및 소질개발 기회의 제공, 여가시간 활용방안의 제공, 승진 및 전직에 요구되는 능력향상을 위한 기회 제공 등을 들 수 있다. 학원은 학교교육 이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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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청주. 자는 중명(仲明). 사직 한승리(韓承利)의 아들이다. 생몰년은 미상이다. 품행이 매우 방정하고 효도가 극진하여 이름을 날렸다. 1543년(중종 38)에 생원이 되었고, 1548년(명종 3)에는 부묘별시문과(祔廟別試文科)에 을과로 급제하였으며, 그 후 예문관 검열을 지냈다. 1553년 무렵에 공조좌랑을 지낸 바 있으며, 이어 헌납 등을 거쳐 성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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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시대의 관리. 진주도독으로 있던 822년(헌덕왕 14) 3월 웅천주(熊川州)[지금의 공주] 도독으로 있던 김헌창(金憲昌)이 반란을 일으켜 세력을 떨치면서 여러 군·현의 수령들을 협박하여 복속시켰다. 이때 향영(向榮)은 끝까지 복속하지 않고 저항하다 지금의 밀양으로 후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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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지수면 청담리에 있는 허소유의 정려. 허소유(許小(由+己))는 고려 공민왕 14년(1363) 사헌부장령을 지낸 관리였다. 본명은 계도(繼道)이다. 1384년(우왕 10) 모친상을 당하여 애통한 예를 지극한 마음으로 다하면서, 당시 침입한 왜구도 겁내지 않고 평소처럼 집례하는 것을 보고 그 효심에 감동하여 주위 수십 리에 침범을 금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허소유의 효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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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지역을 중심으로 일어났던 백정(白丁)들의 신분해방운동. 형평운동은 1923년 4월 진주에서 조직된 형평사(衡平社)의 활동을 일컫는다. ‘저울[衡]처럼 평등한[平] 사회를 지향하는 단체[社]’란 뜻을 가진 형평사의 주목적은 가장 차별받던 천민 백정들의 신분해방이었다. 이때 백정들 가운데는 일반인을 능가하는 자산가가 많았고, 교육을 통해 지적 수준이 높아지면서 신분의 불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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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 진주성 안에 있는 사찰. 고려 말 처음 건립될 당시의 이름은 내성사(內城寺)였다고 한다. 조선시대 숙종이 임진왜란 때 진주성 싸움에서 전사한 승병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호국사(護國寺)라는 이름을 내렸다. 고려 말기에 왜구(倭寇)의 빈번한 침입을 막기 위해 진주성을 고쳐 쌓고, 승병(僧兵)을 양성하기 위해 세웠다. 진주성 내 서장대와 창렬사 사이의 골짜기에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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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에서 행해진 혼인하기 전의 처녀와 총각이 선을 보는 일에서부터, 혼인하여 첫날밤을 치를 때까지의 관련 의례. 혼례는 예나 지금이나 남녀가 부부가 되는 사회적인 의미를 지닌 의례이다. 전통적인 예법에 따르면, 친척이나 이웃을 통해서 중매가 이루어지고, 신랑집에서 신랑의 생년월일과 태어난 시간이 적힌 사주단자(四柱單子)를 신부집에 보내며, 이를 받은 신부집에서 혼인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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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무신. 본관은 장수(長水). 자는 명보(明甫). 영의정을 지낸 황희(黃喜)의 5대손이며, 좌의정에 추증된 황윤공(黃允恭)의 아들이다. 1550년(명종 5) 출생하여 1593년(선조 26) 진주성에서 왜적과 싸우다 전사할 때까지 일생을 무장으로서 활약하였다. 평소 인품이 중후하고 절개가 남달리 굳었으며, 힘세고 날쌨다. 1576년(선조 9) 무과에 급제하였으며, 15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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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를 극진히 잘 섬기는 아들. 효자에 상대되는 개념으로 효녀(孝女)가 있지만, 전통적인 가족제도 하에서는 부모와 아들의 관계가 우선적이었으므로 ‘효자’라는 용어가 ‘효도를 하는 자식’의 개념을 포괄할 수 있다.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를 지배한 전통적인 규범으로서의 효 또는 효도는 부모가 살아 있을 때 정성껏 모시는 것뿐만 아니라 사망한 뒤에도 극진히 제사를 모시는 일 등을 포함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