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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에 창립된 경상남도 수필인의 문학단체. 수필 문학의 문학성 제고를 통해 향토문학 발전을 도모하고, 수필의 장르적인 정체성을 확보하여 수필인의 창작 의욕과 참여 의식을 높이는 데 목적이 있다. 1976년 3월 25일 회장 박민기, 부회장 김인호, 사무국장 정목일을 중심으로 한 창립회원 47명이 결성하였다. 동인지『경남수필』을 간행하고, ‘경남수필문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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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 진주성 내에 있는 사우. 고려 초 거란에 끝까지 대항하다 순절한 충신 하공진(河拱辰)[?~1011] 장군의 영정과 위패를 봉안한 곳으로, 1804년(순조 4) 수곡면 사곡리 낙수암(落水菴)에 창건하였다.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향사를 일시 중지하였으며, 1869년 부조묘(不祧廟)로 되어 다시 자손 봉사하게 되었다. 하공진 장군의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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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에 있는 경충당의 기둥과 벽에 장식으로 붙어 있는 한시. 6언 8행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지은이는 알려져 있지 않다. 景忠堂 柱聯(경충당 주련) 徃事龍蛇變亂(왕사용사변란) 玆州湖嶺要衝(자주호령요충) 將軍殞首全城(장군운수전성) 節士挺身赴水(절사정신부수) 輕重一於以義(경중일어이의) 敗成非所論人(패성비소논인) 至今氣壯山河(지금기장산하) 自昔醴尊香幣(자석예존향폐) 지난 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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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에 있는 김시민(金時敏)의 공적을 기리는 비. 김시민[1554~1592]은 조선 중기의 무신으로, 임진왜란 당시 진주목사로 있으면서 임진왜란의 3대 대첩 중 하나인 진주성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김시민 장군 전공비는 1619년(광해군 11)에 진주 지역 백성들의 열망에 의해 세워졌다. 성여신의 문집인 『부사집(浮査集)』에는 ‘진주목사김공전성각적비명(晋州牧使金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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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남강 가에 있는 바위벽과 그에 새겨진 글씨. 남강 암각은 ‘일대장강 천추의열(一帶長江 千秋義烈)’이라는 논개(論介)의 충절을 기리는 내용의 글이 새겨져 있는 바위벽이다. ‘남강 암각(南江 巖刻)’이라는 명칭은 진주시에 있는 남강 가에 있는 바위벽에 글씨가 새겨져 있다는 데서 유래하였으며, 그냥 ‘암각’이라고도 불린다. 창렬사 경내 어제비문을 정비한 다음 처절했던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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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 97-1번지에 있었던 우리나라 농업 기계화의 선구자적 역할을 담당했던 기업. 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 97-1번지에서 창업하여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오로지 농기계 생산의 외길을 걸어온 대동공업주식회사는 창립 당시 농기구를 생산하는 철공소에 불과했으나 발동기 생산을 계기로 점차 ‘철우시대’를 열고 종합농기계 메이커로 발돋움하여 현재 세계 초일류 농기계회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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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 진주성 내에 소재하는 건축물. 1740년(영조 16) 이래로 의기 논개의 호국정신을 기리기 위한 의기사(義妓祠)를 지켜온 진주 기생들의 모임 장소로 건립되었다. 원래는 논개 사당 아래 있었는데, 진주성 정화사업을 추진하면서 1969년 지금의 촉석광장 서북쪽, 임진대첩 계사순의단 북쪽으로 옮겼다. 목조기와의 익공형식 건물이다. 대문채는 정면 2칸, 측면 1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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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 조선 전기의 문신인 하륜(河崙)[1347~1416]이 태어난 곳. 하륜의 본관은 진주이며, 자는 대림(大臨), 호는 호정(浩亭)이다. 이방원(李芳遠)을 적극 지지하여 제1차 왕자의 난으로 정종이 즉위하자 정사공신(定社功臣) 1등이 되었고, 태종이 즉위하자 좌명공신(佐命功臣) 1등이 되었다. 이후 영의정부사·좌정승·좌의정을 역임하였다. 사후 태종의 묘정(廟庭)에 봉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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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성지동(행정동)에 속하는 법정동. 진주성의 한가운데에 있어 본성동 혹은 중성동(中城洞) 이라고 하였다. 1914년 3월 1일 당시 진주군 성내면(城內面) 2동과 성내면 3동 지역의 일부를 통합하여 진주면 중성동이라 하였다. 1932년에는 일본식 지명으로 본정(本町)이라 하였는데, 해방과 정부 수립 후 1949년 8월 15일 본성동(本城洞)으로 개칭되어 오늘에 이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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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 449-1번지에 있는 느티나무. 본성동 공원 입구의 왼편, 성지 안쪽 우측에 위치한다. 입간판(90×60㎝)이 있고, 보호책도 있다. 바닥의 상태가 좋지 않은 편이다. 잎과 수간의 상태는 보통이고, 전체적으로 안전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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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 469-2번지에 위치한 느티나무. 제일극장 동남쪽 대지에 위치(성지 화장실 뒤쪽)한다. 보호책이 있고, 입간판(90×60㎝)이 있다. 잎과 수간의 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바닥의 상태는 보통이고, 전체적으로 보면 안전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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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에 소재한 봉남서원의 기둥과 벽에 장식으로 붙여진 한시. 자연적 환경이 수려한 곳에서 학문에 정진한다면 학식과 덕망이 훌륭한 사람이 배출될 것이 분명하니, 『시경』과 『예경』의 중요함과 수덕(修德)의 필요성을 노래한 것이다. 한시는 중재(重齋) 김황(金榥)이 지었다. 8언 8행으로 된 한시로, 내용은 다음과 같다. “비봉산 굽이굽이 서리고 솟아 우러러 볼수록 더욱 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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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 진주성 내에 있는 비. 1971년 7월 1일 3·1운동 52주년을 맞아 독립운동에 참여한 선열들의 의거를 기리기 위하여 진주시민들의 뜻을 모아 세운 기념비이다. 1919년 3월 1일 서울 태화관에서 민족대표 33인에 의하여 독립선언이 있은 후, 거족적인 민족운동은 전국 방방곡곡에서 일어났다. 이에 진주에서는 3월 18일부터 5월까지 대소 20여 회의 시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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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가 영화업자와 함께 운영해 왔던 유료 영화관. 원래 시공관은 진주시의 공관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건립되었기에 글자 그대로 시공관이라 하였다. 6·25 전쟁 때 진주시청 등이 불타고 없어 마땅한 행정공관 장소가 없었다. 따라서 당시 진주시는 진주시의 공관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대규모 강당용 공관으로 1958년에 시공관을 건립하였다. 1958년에 진주시의 공관으로 사용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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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에 있는 실크의 전시·판매 시설. 진주의 실크산업 부흥을 위해 중소기업청과 경상남도와의 협의 끝에 진주시 소재의 실크 제조업체들이 공동 브랜드인 (주)실키안을 만들고, 1999년 6월에 진주성 앞에 있는 문화관광센터 1층에 실크전시장을 설립하여 실크로 만든 제품들을 전시·판매하고 있다. 실크전시장에서는 다양한 진주 특산품들과 더불어 실크로 된 상품들을 상설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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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중 잃은 관인(官印)을 다시 찾아 세운 비.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이듬해 경상우도병마절도사 최경회(崔慶會)가 병마절도사 관인을 안고 남강에 투신 순국하였다. 이후 1747년(영조 23) 이 도장을 남강 물속에서 건져 당시의 병사 최진한(崔鎭漢)이 조정에 아뢰었다. 도장에는 ‘慶尙右道兵馬節度使印(경상우도병마절도사인)’이라 새겨져 있고, 1582년(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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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시 진주성 전투에서 나라를 위해 순국한 장졸들을 기려 지어 내려준 제문. 1833년(순조 33) 3월 11일 임금이 우병사(右兵使) 안광찬을 보내어 충무공 김시민(金時敏)의 넋에 제사하도록 유시하고, 아울러 문열공 김천일(金千鎰), 무민공 황진(黃進), 충의공 최경회(崔慶會), 충의공 장윤(張潤)에게 각각 제문을 지어 내려 제향토록 하였다. 그리고 양산주를 비롯한 12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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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 진주성 내에 있는, 진주병사 윤선정(尹先正)의 선정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윤선정의 본관은 파평, 자는 은로(殷老)로, 1611년부터 1613년까지 진주병사를 지냈다. 윤선정이 진주병사 재임 중 병사를 사랑하며 선정을 베푼 공덕을 기리기 위해 진주병영 군졸들이 1614년(광해군 6)에 세운 유애비(遺愛碑)이다. 지대석 위에 비신을 세우고 그 위에 뚜껑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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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 진주성 내에 있는 의기사의 중건에 관한 기문. 진주성 내에 소재한 의기사는 1593년(선조 26) 제2차 진주성싸움 뒤 왜장을 껴안고 남강에 투신한 논개(論介)의 영정과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임진왜란 중 진주성전투에서 중과부적으로 진주성이 함락되자, 논개는 왜장을 촉석루 아래 의암(義巖)으로 유인하여 함께 강물에 투신한 것이다. 이러한 논개의 의로운 기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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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학자 정약용(丁若鏞)이 논개 사당인 의기사에 부쳐 쓴 글. 의기사는 진주시 본성동 진주성 내에 있는 논개의 사당으로, 1740년(영조 16) 경상우병사 남덕하가 건립한 것이다. 1956년 의기창렬회에서 시민의 성금으로 재건하였으며, 1983년 7월 20일 문화재자료 제7호로 지정되었다. 이 글은 1802년(순조 2) 다산 정약용이 지은 것이다. 의기사 기문의 원문은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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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의기(義妓)인 논개의 우국충정을 기리는 비. 조선 중기의 기생 논개는 진주목의 관기(官妓)로 1593년(선조 26) 임진왜란 중 진주성이 일본군에게 함락될 때 왜장을 유인하여 순국하였다. 논개의 충절을 기념하기 위해 1721년 봉작 하사 및 사당 건립 등이 추진되었다. 이후로도 1740년(영조 16)에 의기사(義妓祠)가 세워지는 등 논개를 추모하는 사업이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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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 진주성 내에 있는, 조선 중기 무신 이수일(李守一)의 선정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이수일[1554~1632]의 본관은 경주, 호는 은암(隱庵), 시호는 충무이다. 임진왜란 때 경상좌도 수군절도사로 왜군 격퇴에 공을 세우고 1603년 진주성을 증축하는 등 1605년 길주목사로 갈 때까지 진주를 위해 많은 업적을 남겼다. 이수일이 진주병사 재임 중 병사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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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 진주성 내에 있는 병사(兵使) 이진경(李眞卿)의 선정을 기념하는 비. 경상우병사 이진경의 선정을 기념하기 위하여 1702년(숙종 28) 건립하였다. 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 진주성내에 있다. 1973년 진주성 내 비석군(碑石群)으로 옮겨졌다. 사각형의 받침돌 위에 높이 160㎝, 폭 71㎝, 두께 15㎝의 몸돌을 세우고, 그 위에 이수를 얹었다. 이수의 조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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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과 동성동 일부에 형성된 장어구이 전문업소 거리. 천년이 넘는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진주에서 널리 알려진 거리 중의 하나로, 진주의 별미인 장어구이집이 늘어서 있는 거리라 하여 붙여진 명칭이다. 진주 남강가 식도락의 맛자랑 가운데 장어구이를 손꼽는 이들이 많은데, 장어구이는 비린내가 없고 담백한 영양만점의 진주 전통음식이다. 또한 진주야경을 바라보며 먹는 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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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 진주성 내에 있는, 병마절도사 정기택(鄭騏澤)의 선정을 기리는 비. 병마절도사 정기택의 선정을 기념하기 위해 1888년(고종 25)에 고을 사람들이 세웠다. 1973년 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 진주성 내 비석군(碑石群)으로 옮겨졌다. 사각형의 받침돌 위에 높이 94㎝, 폭 32㎝, 두께 2㎝의 철제(鐵製) 비신(碑身)과 높이 33㎝, 폭 44㎝, 두께 2㎝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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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 진주성 내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조시영의 선정을 기리는 비. 1899년(고종 36)에 고을 사람들이 세웠다. 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 진주성 내 비석군에 있다. 시내에 무연고 비석으로 있던 것을 1973년에 진주성 내로 이건(移建)하였다. 비두는 현재 유실되었고, 비신은 너비 49㎝, 두께 16㎝, 높이 172㎝의 백색 대리석으로 되어 있다. 비의 제목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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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에 있는, 제말(諸沫)·제홍록(諸弘祿)의 공을 기념하는 사적비. 제말[?~1592]은 경상남도 고성 출신의 의병장으로,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웅천·김해·정암 등지에서 큰 공을 세워 성주목사에 임명되었다. 그 뒤 전투에서 전사하였는데, 정조 때 병조판서에 추대되었다. 시호는 충의(忠毅)이다. 제홍록[1558~1597]은 제말의 조카로서, 1581년 무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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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때 적장을 안고 남강에 투신하여 순국한 의기 논개(論介)의 사당. 의기사는 1721년(경종 원년) 경상우병사로 부임한 최진한이 진주지역민 등의 요구와 유몽인(柳夢寅)의 『어우야담(於于野談)』을 근거로 논개에 대한 포상을 조정에 건의하였고, 1740년(영조 16) 경상우병사 남덕하의 건의가 받아들여져 건립되었다. 1779년(정조 3)에 경상우병사 홍화보(洪和輔)가 낡고 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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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 촉석루에 있는, 의기 논개가 왜장을 끌어안고 순국한 바위. 1593년(선조 26) 6월 29일 임진왜란의 제2차 진주성 전투에서 진주성이 함락되고 7만 민관군이 순절하자, 논개는 왜장을 끌어안고 이 바위에서 남강에 뛰어들어 순국하였다. 논개의 의열(義烈)을 상징하여 진주의 선비와 백성들이 이 바위를 의암(義岩)이라고 명명하였다. 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 촉석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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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에 있는 임진왜란 당시 순국한 인물들을 기리는 전적비. 임진왜란 때 진주성 싸움에서 왜적에 대항하여 싸우다 순국한 인물들의 충정과 전공을 후세에 길이 전하기 위해 1686년(숙종 12)에 세워졌다. 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 499-1번지 촉석(矗石) 광장에 위치하고 있다. 비신의 높이는 1.43m이며 너비는 0.92m, 두께는 0.21m이다. 비신은 수성암(水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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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과 본성동에 위치한 진주성 내에 있는 누각. 호정 하륜이 지은 「촉석루기(矗石樓記)」에 의하면 남강 가에 뾰족뾰족한 돌들이 솟아 있는 까닭에 그 모습을 따서 누각의 이름을 촉석루라고 지었다고 하나, 다른 일설에 의하면 촉석산에서 돌을 캐다가 누각을 지었으므로 촉석루라고 하였다고도 한다. 진주성의 남장대 혹은 장원루라고도 불린다. 전자의 남장대라는 이칭에서는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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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에 있는 기독교 사회단체. 기독교청년회(YMCA)는 1844년 윌리엄스(G. Williams)가 영국 런던에서 창설한 단체이다. 우리나라에 기독교청년회가 창설된 것은 1903년 10월 28일이었는데, 당시 명칭은 황성기독교청년회였다. 황성기독교청년회는 이후 1913년에 조선중앙기독교청년회로 개칭되었다가 현재는 기독교청년회로 불리고 있다. 2004년 현재 6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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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경상남도 진주 지역을 중심으로 조직된 문인 및 동호인 단체. 경상남도 진주 지역 출신이거나 이곳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모임으로, ‘진주문학회’로도 불린다. 1987년에 조직되어 현재까지 꾸준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 작품 발표회를 통해 회원들의 작품성을 향상시키고 있다. 문학 작품 활동으로 회원들의 문학성을 제고하고, 지역 문화 예술의 저변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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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에 있는 진주시의 지역문화사업과 향토문화 연구를 위해 설립된 단체. 진주의 향토사 연구와 전통문화의 계승·발전 및 각종 문화행사를 통한 진주지역문화의 진흥을 목표로 1949년 10월 1일에 설립되었다. 1949년 10월 1일에 USIS 진주지원으로 발족하여 박세제를 초대원장으로 하였다. 1950년 10월 10일에 진주미국공보원으로 개칭되었다가 195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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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본성동에 위치한 진주성 내에 있는 귀부. 진주성 내에 있는 호국의 종각 남쪽 언덕에 위치하고 있다. 전체 길이가 160㎝, 폭 140㎝, 높이 40~60㎝이다. 머리 부분에는 목 비늘이 새겨져 있고, 이빨을 조각하는 등 섬세하지만 등 부분에는 무늬가 없어 밋밋하다. 비좌의 크기는 75×15㎝이며, 귀부 자체는 4개의 발에 각각 발가락 3개씩, 그리고 꼬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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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 진주성 내에 있는 불상좌대. 합천댐 축조 때 합천군 봉산면 죽죽리 옛 절터에서 출토된 것을 이곳으로 옮겨온 것이다. 석질은 화강암으로 상·중·하대석 중 중대석은 없고 상·하대석만 있다. 상대석 측면에 16엽의 겹꽃잎 연꽃이 조각되어 있고 위 테두리는 음각으로 돌려져 있으며, 한쪽에는 광배꽂이 구멍이 있다. 하대석은 8각형이며 한 변이 16㎝ 규모로 상하 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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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본성동에 위치한 진주성 내에 있는 벽돌기단. 건축물의 기단부를 벽돌로 쌓은 것으로, 원래는 경상남도 합천군 봉산면 죽죽리의 폐사지에 있던 것을 옮겨와 복원한 것이다. 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본성동에 있는 진주성 내 박물관 앞에 위치하고 있다. 기단석 위에 일정 간격으로 높이 15㎝가량의 탱주(撐柱)를 세우고, 그 사이에 벽돌을 쌓은 다음 갑석을 덮었다.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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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임진왜란 당시 진주성 전투에서 순절한 충혼들을 위무하기 위해 세운 단. 임진왜란 진주성 1차 전투(1592년 10월)에서 진주목사 김시민(金時敏)을 비롯한 아군 3,000여 명이 왜군 2만여 명을 맞아 치열한 전투 끝에 적을 물리쳤다. 이듬해인 1593년 6월 진주성 제2차 전투 때에는 창의사 김천일(金千鎰), 경상우도병마절도사 최경회(崔慶會), 충청도병마절도사 황진(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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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에 있는 청소년 문화시설. 진주지역 청소년문화의 정착과 민주시민의식 함양 등 청소년의 복지증진을 위하며, 지역주민에게 사회교육과 생활체육시설을 제공하고 지역주민과 청소년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생활권 내의 청소년 수련시설로 이용하기 위해 2001년 12월부터 공사를 시작하여 2002년 12월에 완공하였다. 2003년 5월 23일 개관하여 현재까지 운영 되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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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에 있는 무용단체. 한국무용의 전통적 바탕을 전수하면서 현대적인 감각과 융합하는 무용의 창출로 한국무용의 발전에 기여하는 한편 진주시민의 정서함양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1990년에 무용을 전공한 회원 20명을 중심으로 경상남도 진주시 칠암동 509-13번지[진주대로 934]에 연습장을 두고 창립되었으나 현재는 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 12-1번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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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의 의기(義妓) 논개의 사적을 기록한 비. 명암(明庵) 정식[1683~1746]이라는 선비가 진주 사민(士民)들로부터 금품을 모아 논개 의거의 징표로서 1722년(경종 2)에 다듬은 것이다. “비석을 다듬어 놓은 해로부터 18년 뒤인 1740년(영조 16) 가을에 진주 우병사인 남덕하[1588~1742]가 왕의 득명을 받고 이듬해 봄에 비를 세우다”라는 기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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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당시 진주지구 내 북한군을 격퇴시킨 전승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1950년 7월 29일 미 제25사단 ‘칸’ 기동부대가 진주지구에 쳐들어온 북한군 제6사단과 제9사단 병력을 격퇴시킨 전승을 기리기 위해 1958년(단기 4291년) 7월 10일 육군 제1206 건설공병단에서 건립하였다. 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 진주성 내에 위치하고 있다. 진주지구 전승비에 기록된 비문의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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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 진주성 내에 있는 창렬사를 중수하고 지은 글. 창렬사는 1607년(선조 40)에 건립되어 수차의 중수가 있었으나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심히 퇴락하게 되었다. 따라서 1962년 11월 15일 퇴락한 창렬사를 중수하고 이를 기념하여 창렬사 중수기를 지었다. 경상남도지사 명의로 되어 있으며, 창렬사의 건립 경위, 일제강점기 때의 퇴락 모습, 진주 유림들의 중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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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에서 전승되는 창열사(彰烈寺) 중수와 관련한 설화. 창열사 중수 전설은 특정 지역을 한계로 하는 지역적 전설이며, 역사적 사실로부터 성립하고 성장한 역사적 전설이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귀신은 민간에 전승되는 설화에서 뿐만 아니라 유학자들 사이에서도 널리 다루어진 소재였다. 귀신담은 민담에서는 신이담(神異談)의 일종으로 널리 전승되는 소재이다. 사실 이러한 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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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 진주성 내에 있는 서원. 고려 현종 때 거란의 침입을 물리치는 데 공을 세운 은열공(殷烈公) 정신열(鄭臣烈)과, 고려 말 물레를 만들어 백성들에게 따뜻한 목면(木棉, 목화) 옷을 입게 한 문충공(文忠公) 정천익(鄭天益)의 위패를 봉안한 서원이다. 두 분은 각각 진양부원군(晋陽府院君), 진양군(晋陽君)에 봉해졌다. 본래 대평면 마동에 건립되었으나, 186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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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말선초의 문신 하륜이 촉석루의 변천과정을 기록한 글. 진주하씨인 하륜(河崙)[1347~1416, 충목왕 3~태종 16]이 촉석루가 지어진 연대를 고찰하고 또 중수한 동기와 과정을 상세하게 그렸으며 이 누대가 개수됨으로 미치는 영향을 순차적으로 기술하였다. 촉석루의 명칭 유래와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 및 촉석루에서 바라보이는 장관을 시작으로 촉석루가 어떻게 세워지게 되었는가를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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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수일이 촉석루의 공사과정을 표현한 글. 진양하씨인 하수일(河受一)이 1583년에 진주성 내의 촉석루 중수 공사과정을 설명한 글이다. 하수일[1553~1612]은 남명 조식의 뛰어난 제자였던 각재 하항의 종질(從姪)이면서 그의 문인(門人)이기도 하다. 그는 촉석루가 중수되자 이를 기려서 기문을 짓게 되었다. 촉석루가 만들어진 역사적 배경과 여러 차례 헐리고 다시 세워진 사실을 알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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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유학자 정식이 지은 촉석루 보수에 관한 글. 명암(明庵) 정식(鄭栻)[1683~1746]이 1725년에 촉석루에 대한 설명을 곁들이고 보수공사를 통하여 새롭게 태어난 촉석루의 아름다움을 그린 글이다. 기문의 내용은 촉석루의 웅장한 자태, 논개가 적장을 죽인 일의 역사적 의미, 주변의 아름다운 자연환경에 감탄하여 처음에 글을 전개한다. 하지만 세월의 흐름 속에 촉석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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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말선초의 문신 하륜이 지은 촉석성 공사과정을 기록한 기문. 하륜(河崙)[1347~1416, 충목왕 3~태종 16]은 진주에서 태어나 고려 말, 조선 초를 거쳐 진주에서 인생을 보낸 인물로서 진주성, 촉석루 등에 기문을 지어 진주의 역사적 경관에 관한 귀중한 기록을 남겼다. 그 중 하나가 「촉석성문기(矗石城門記)」로 촉석성은 지금의 진주성을 의미한다. 그 성을 왜 쌓아야 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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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에 있는 하공진의 사적비. 고려 현종 때 거란의 침입으로 나라가 위기에 처하자, 하공진은 자신을 볼모로 하여 국난을 극복하고 나라에 충성을 다하였다. 하공진의 이와 같은 충절을 후세에 전하기 위하여 1969년에 하공진의 후손이 건립하였다. 방형의 대좌와 거북형태의 비좌가 한 돌로 되어 있고 비신 위의 비수는 두 마리의 용이 여의주를 다투는 모양을 하고 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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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에 있는 사단법인 한국무용협회의 진주지부. 한국무용과 외국무용을 전공한 회원들이 모여 무용예술의 연구와 발표를 통하여 향토예술 발전에 이바지하고, 회원 상호 친목과 권익옹호를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1962년도에 창립되었으나, 한국무용협회 진주지부로 인준을 받은 것은 1979년도이며 초대 지부장으로 김정애가 위촉되었다. 2005년 2월 28일 신임 진주시지부 지회장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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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 진주성 내에 있는, 한규설의 선정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석. 1887년(고종 24년) 병총판 한규설이 등짐장사들의 세금을 감해주는 등 선정을 한 것에 대해 7개 고을 등짐장사들이 협력하여 건립하였다. 1973년 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 진주성내 비석군(碑石群)으로 이건(移建)하였다. 비의 제목은 “병총판한공규설혁폐불망비(兵總辦韓公圭卨革弊不忘碑)”로, 비의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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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에 있는 형평사 활동 기념탑. 형평 운동 기념탑은 조선 시대 최하층 천민이었던 백정들이 신분 해방과 인간 존엄성 실현을 도모한 ‘형평사’의 활동을 기념하여 건립한 탑이다. 1992년 진주 남성당 한약방에서 형평 운동 70주년 기념 사업회가 구성되었고, 형평사 창립 70주년 기념식을 1993년 4월 24일에 거행하기로 결정하였다. 이와 함께 국제 학술 대회를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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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호국사 내에 있는 주련. 호국사 주련은 7언 6행으로 된 한시로, 내용은 다음과 같다. 흰 옷으로 관세음보살, 아무 말씀 없으시니 남으로 떠도는 동자는 듣지도 못했네. 병풍엔 푸른 버들 삼복더위 여름인데 바위 앞 푸른 대는 이제야 봄이라. 천상천하에서 부처같은 이 없으니 시방세계 또한 비할 곳 없네. 白衣觀音無說說 南巡童子不聞聞 甁上綠楊三際夏 嵒前翠竹十方春 天上天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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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본성동에 위치한 진주성 내에 있는 종. 1980년 12월에 선조들의 거룩한 호국의 얼을 계승, 선양하기 위하여 진주시민들의 뜻을 모아 제작하였다. 호국의 종 주조는 김철호(金哲怙)가 맡았으며, 처음에는 1972년에 준공된 촉석문에 걸었다. 그러나 종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자 촉석광장에 호국의 종각을 건립하여 보관하고 있다. 호국의 종각은 재일동포 최복순(崔福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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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시인 이은상(李殷相)[1903~1982]이 호국의 종각을 새로 건립한 것을 기념해 쓴 축시. ‘호국의 종’은 서기 1980년 12월 진주시민의 뜻을 모아 선조들의 거룩한 호국의 얼을 계승 선양하기 위하여 주조된 것이다. 당초 촉석문루에 걸려 있었으나 문루가 종의 무게를 지탱하지 못하여 이전을 추진하던 중 일본에 거주하는 재일동포 최복순이 거액의 사재를 희사함으로써 종각을 건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