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방개 타령」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801914
이칭/별칭 「늦은 방개 소리」,「방개 소리」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문화유산/무형 유산
유형 작품/민요와 무가
지역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평지리
집필자 김성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채록 시기/일시 1998년 5월 15일 - 「늦은 방개 타령」 채록
채록지 원평지 마을 -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평지리 지도보기
성격 민요
출현음 솔 라 도 레 미
기능 구분 노동요[농요]
형식 구분 선후창 방식
박자 구조 3분박|2분박
가창자/시연자 황덕주[67세, 남, 앞소리]|오길현[63세, 남, 앞소리]|황삼주[59세, 남, 뒷소리]|김문선[60세, 남, 뒷소리]|최원석[58세, 남, 뒷소리]

[정의]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평지리 원평지 마을에서 김매기 할 때 부르는 민요.

[개설]

「늦은 방개 타령」진안군 마령면 평지리 원평지 마을에서 김매기 할 때 「양산도」에 이어서 부르는 논농사 민요이다. 김매는 소리 특유의 ‘숨을 다하는 소리’로 부름으로써 한가하면서도 유장한 가락의 맛을 지니고 있다. 원평지 마을의 김매기는 원칙적으로 두벌까지 매고, 세벌은 두레라고 해서 부잣집에서 내는 술을 먹기 위해서 형식적으로 치르는 주민 공동체 김매기이다.

[채록/수집 상황]

「늦은 방개 타령」은 1998년 5월 15일~16일에 마령면 원평지 마을에서 토박이인 황덕주[67세, 남, 앞소리]와 오길현[63세, 남, 앞소리], 황삼주[59세, 남, 뒷소리], 김문선[60세, 남, 뒷소리], 최원석[58세, 남, 뒷소리] 등으로부터 채록하였다. 앞소리의 가창자인 황덕주는 육자배기 토리에 능했고, 오길현은 기운찬 성음이 특징이었다.

평생을 농사일에만 종사한 황덕주는 근동에서 소문난 앞소리꾼이었던 그의 선친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소리를 익혔다고 한다. 오길현은 우체국 직원으로 근무한 바 있는데 마을의 토속 민요에 대한 애정이 대단히 깊다. 오길현은 소리하는 항성이 크고 우렁차며 매우 신명이 있다. 농요는 젊어서 어른들이 하는 소리를 듣고 자연스럽게 배우게 되었으며, 마을 농요가 마지막으로 불리던 때를 그의 나이 스물 서너 살 때쯤이라고 하는 것으로 보아 1960년대 초중반으로 보인다.

[구성 및 형식]

「늦은 방개 타령」은 호흡에 따라 자연스럽게 노래하다보니 3분박과 2분박이 자연스럽게 섞이어 출현한다. 한 사람이 앞소리를 메기면 나머지 사람들이 일제히 후렴구를 받는 선후창 방식으로 부른다. F음을 밑음으로 하는 ‘솔 라 도 레 미’의 솔음계이다. 솔음과 레음을 요성하고, 도음을 형음으로 내나 싯가가 길면 뒷부분에서 가만히 흔들어 안정감을 찾으며, 미음과 라음은 퇴성한다. 라음으로 시작하고 솔음으로 종지한다.

‘늦은’은 ‘잦은’의 상대어로서 호흡이 매우 느리게 부른다는 의미이고, 이 노래보다 호흡과 장단이 빠른 「잦은 방개 타령」도 이 노래와 짝을 이루어 전승되고 있는데, 주로 오후 새참을 기다리며 부르는 민요이다.

[내용]

「늦은 방개 타령」은 메기는 소리[앞소리]와 받는 소리[후렴]로 구성된 노래이다. 먼저 앞소리꾼이 “에헤야 하아하 헤에헤 아헤 영개로다”라고 메기면 나머지 일꾼들이 모두 함께 “에헤야 하아하 헤에헤 아헤 영개로다”로 똑같이 받는다. 그러면 다시 앞소리꾼이 “저산 너머 소첩을 두고”라고 메긴다. 그러면 다시 뒷소리꾼이 앞에서 받은 후렴을 그대로 받아서 부른다. 앞소리꾼이 메기는 사설은 대개 “저산 너머 소첩을 두고 밤질 걸기가 난감허네”, “옥사장아 문 열어 도라 불쌍한 춘향이 옥 안에 있다”, “일락서산 해 떨어지고 월출동령에 달 솟아온다”, “님도 종종 날 섬겨주면 나도 종종 님 섬겨줌세” 등이다.

[현황]

원평지 마을의 ‘논매는 소리’가 농경 현장에서 사라진 시기는 1970년대이다. 결정적인 계기는 제초제의 보급으로 더 이상 집단 김매기의 필요성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늦은 방개 타령」을 부를 수 있는 주민들은 마을을 지키고 있어서 그 후에도 논매는 민요는 가창되었다. 1990년에 MBC 한국 민요 대전을 통해서 음반으로 녹음되었고, 전라북도립 국악원에서 녹음 및 보고서를 출간하기도 하였다. 또 7월 백중 술멕이 때는 여흥으로 간혹 부르곤 했다. 다만 현재는 앞소리를 메기는 사람들이 매우 고령인데다 건강까지 좋지 못하고, 또 「늦은 방개 타령」을 부를 기회가 거의 없어 더 이상의 자연 전승은 힘든 상황이다.

[의의와 평가]

「방개 소리」는 전라북도 논매는 소리 가운데 전승 범위가 가장 넓게 분포한다. 노래명도 지역에 따라 「방개 소리」, 「방아 타령」, 「진방아 타령」, 「오호 타령」, 「들소리」 등 명칭도 다양하고 악곡의 유형 또한 그렇다. 「방개 소리」는 지역에 따라 선율적 변격(變格)과 파생형, 장르간의 확장 등이 생성되면서 전라북도 전역을 포괄한다는 측면에서 전라북도 노동요의 대표성을 부여하기에 충분하다.

원평지 마을「늦은 방개 타령」은 전라북도 동남부 지역에서 부르는 전형으로 가장 광범위한 전승 형태를 보이는 소리이다. 「방개 소리」는 본래 서울과 경기 지역의 「방아 타령」이 남하하는 과정에서 각각의 지역 형태로 변형되어 정착된 노래로 보고 있다.

진안군 마령면, 백운면 일대에서 불렀던 논농사 민요는 주로 「논매는 소리」에 집중되어 있으며, 그 중에서도 「방개 소리」, 「잦은 방개 소리」, 「쌈싸는 소리」로 압축된다. 「방개 소리」를 「늦은 방개 소리」와 「잦은 방개 소리」로 구분하기도 한다. 이 구분은 박자의 늦고 빠른 정도의 차이일 뿐 기본적으로 같은 곡을 말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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