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800931
한자 李萬禎
이칭/별칭 직향(直鄕),근재(謹齋)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전라북도 진안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송만오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활동 시기/일시 1694년 - 이만정 복관
활동 시기/일시 1698년 - 이만정 삭주 도호부사 제수
유배|이배지 이만정 귀양지 - 평안북도 강계
사당|배향지 진안 이산묘 영모사 -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마이산남로 132[동촌리 78]지도보기
성격 무신
성별
본관 진안(鎭安)
대표 관직 사헌부 감찰

[정의]

진안 이산묘 영모사에 배향된 조선 후기 무신.

[가계]

본관은 진안(鎭安). 자는 직향(直鄕), 호는 근재(謹齋). 유계 이달손(李達孫)의 6세손이며, 아버지는 이유항(李惟恒)이다.

[활동 사항]

이만정(李萬禎)[?~?]은 재기가 웅대하고 사예(射藝)에 능하여 무과에 합격하고, 선전관을 거쳐 사헌부 감찰(司憲府監察)을 지냈다. 만암(晩庵) 이상진(李尙眞)의 천거로 곡성 현감을 제수받고 뒤에 고원 군수와 하동 군수를 지내던 중 그때 마침 숙종의 폐비론이 일어나자 그는 서울로 올라와 양곡(陽谷) 오두인(吳斗寅), 쌍백당(雙栢堂) 이세화(李世華), 정재(定齋) 박태보(朴泰輔) 등과 함께 인현왕후의 폐출을 반대하는 상소문 올려, 평안북도 강계로 귀양을 갔다. 1694년(숙종 20)에 복관되고 1698년(숙종 24)에 다시 삭주 도호부사가 제수되었다.

[상훈과 추모]

진안 이산묘 영모사(永慕祠)에 배향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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