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800872
한자 豪族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
시대 고려/고려
집필자 박노석

[정의]

통일 신라 후기부터 고려 전기까지 전라북도 진안 지역에서 독립된 세력을 형성하여 지배권을 행사하던 세력.

[개설]

호족이란 주로 통일 신라 말부터 고려 초까지의 사회 변동기에, 변동을 주도한 계층이나 인물을 가리키는 용어로 쓰이고 있다.

[진안 지역의 호족]

진안 지역에 거주하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가문에 대해서 살펴보아야 하겠지만 당시 진안과 관련된 기록이 없기 때문에 진안 지역의 호족 세력을 고찰하기 어렵다. 다만 진안 지역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를 통해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

고려 시대 진안 지역에는 고을로는 진안현용담현이 있었으며, 진안 속현으로 마령(馬靈), 용담의 속현으로 동향(銅鄕)이 있었고, 향, 소, 부곡으로 산주(刪朱)가 있었다. 대체로 성씨들은 향소 부곡이나 속현 등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들도 있었지만, 진안 지역에는 진안과 용담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만이 있었다.

이 중 진안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는 진안 김씨, 진안 장(張)씨, 진안 전씨, 진안 이씨가 있고, 용담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로는 용담 고씨, 용담 김씨가 있다.

진안 김씨(鎭安 金氏)의 시조는 김한공(金漢公)이다. 김한공은 신라 제56대 경순왕의 제4자 대안군(大安君) 은열공(殷說公)의 5세손으로 전하고 있으나 사적(事蹟)이 없어서 세계(世系)는 상고할 수 없다. 또한 김려(金呂)[진안군(鎭安君)]를 시조로 전하는 문헌도 보이며 그의 후손들이 본관을 진안(鎭安)이라 하였다.

진안 장씨(鎭安張氏)의 시조는 장원렬(張原烈)이다. 장원열은 고려 개국공신 태사공(太師公) 장정필의 13세손으로서 고려 때 판서 평리를 지냈다. 그 후 그의 손자 장사익(張思翼)이 옹양 장군(甕揚將軍)을 지낸 후 좌리공신으로 진안군에 봉해졌기 때문에 후손들은 장원렬을 시조로 하고 본관을 진안으로 하여 세계를 계승하고 있다.

가문의 대표적인 인물인 장용일은 현감을 지냈다. 그 외 군수를 지낸 광조와 참의를 역임한 제손 등이 가문의 대표적인 인물로 가문을 빛냈다. 1985년 경제 기획원의 인구 조사에 의하면 진안 장씨는 2000년에 총 207가구 622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진안 이씨(鎭安李氏)의 시조는 이특룡(李特龍)이다. 이특룡은 진안에서 정착 세거(定着世居)하며 진사(進士)에 올라 시정(時政)을 바로 잡기 위해, 여러 차례 상소(上疏)를 하여 조정의 미움을 받아 안화(安化)[청주의 고호]로 유배(流配)되었다.

그리하여 후손들은 안화(安化)에 정착(定着)하여 문호를 열고, 선조(先祖)의 전 세거지(世居地)인 진안(鎭安)을 본관으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가문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이특룡의 손자 이득림(李得霖)이 조선에서 직장을 역임했고, 그의 손자 이승영(李承榮)[부호군], 이승복(李承馥)[참봉], 이승빈(李承彬)[시정] 3명이 모두 관직에 올라 가문을 빛냈다.

용담 김씨(龍潭 金氏)는 신라 경순왕의 넷째 아들 대안군(大安君) 김은열(金殷說)의 7세손 김순서(金順瑞)[고려 때 예부 시랑을 역임]를 시조(始祖)로 하였으나, 중간 계대(中間系代)가 실전(失傳)되어 조선 태조 때의 원종공신(原從功臣) 김덕생(金德生)을 일세조(一世祖)로 계대(系代)하고 있으며, 그가 공신으로 병조 참의를 지내고 함북 명천(咸北 明川)에 옮겨 살면서부터 후손들이 본관을 용담(龍潭)으로 삼게 되었다.

용담 김씨는 김덕생의 현손 김국(金國)의 아들 5형제 대에서 가문이 크게 번성하였으며, 특히 맏아들 김계류(金季瑠)는 18세 때 춘당대시(春塘臺試)[창경궁 안에 있는 춘당대에서 보이던 특별한 과거]에 알성 급제(謁聖及第)하여 명성을 떨쳤으며 뒤에 이원 현감(利原縣監)을 역임하였다. 한편 후손 김종려(金琮麗)는 참찬을 지냈으며, 김성필(金成弼)은 의금 부사를 역임하여 오위장을 지낸 김우현(金禹鉉)·김명윤(金明允) 등과 함께 가문을 빛냈다.

용담 고씨(龍潭 高氏)의 시조는 고여경(高餘慶)이다. 고여경은 고려조에 삼중대광(三重大匡)을 지냈다고 하지만 문헌이 없어 자세한 세계는 알 수 없다. 다만 후손들이 시조로 용담(龍潭)을 관향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진안 전씨(鎭 全氏)에 대한 자료는 없다. 진안 전씨 중에 잘 알려진 인물이 전순의(全循義)이다. 전순의의 아들이 전석동(全石童)으로 1469년(예종 1)에 사마시에 입격하였다. 진안 전씨는 2000년 현재 총 258가구 896명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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