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치호 시혜 불망비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800809
한자 尹致昊施惠不忘碑
분야 역사/근현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비
지역 전라북도 진안군 부귀면 부귀로 313-9[거석리 788]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유호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929년연표보기 - 윤치호 시혜 불망비 건립
현 소재지 윤치호 시혜 불망비 - 전라북도 진안군 부귀면 부귀로 313-9[거석리 788]지도보기
성격 불망비
관련 인물 윤치호
재질 화강암
크기(높이,너비,두께) 135㎝[높이]|55㎝[너비]|12.5㎝[두께]

[정의]

전라북도 진안군 부귀면 거석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의 비석.

[개설]

진안군 부귀면에 많은 토지를 소유하고 있었던 윤치호부귀 초등학교 부지를 희사하고 소작료를 경감해 준 사실을 기리기 위하여 1929년에 비를 건립하였다.

[건립 경위]

윤치호(尹致昊)[1865~1945]는 한말 개화파로 알려진 인물로, 전라북도 진안군 부귀면에 많은 토지를 소유하고 있었다. 윤치호부귀 초등학교를 짓는 데 필요한 학교 부지를 희사하였으며, 자신의 땅을 소작하고 있었던 이 지역민들에게 소작료를 경감하여 주었다고 한다. 이를 기리기 위하여 1929년에 소작인들이 시혜 불망비를 건립하였다. 바로 옆에는 또 다른 윤치호의 흥학 불망비(興學不忘碑)가 세워져 있다.

[위치]

윤치호 시혜 불망비는 원래 진안군 부귀면 거석리부귀 초등학교 안에 세워져 있었다. 2009년 7월 민족 문제 연구소 전북 지부에서 어린이를 위한 교육의 요람에 친일파를 기리는 비석을 둘 수 없다면서 바로 옆에 있던 윤치호의 흥학 불망비와 함께 2기를 철거했다. 그 뒤 친일이라도 진안군의 역사를 담은 문화재라는 일부의 주장과 윤치호 종중 후손들의 끈질긴 요구를 받아들여 2012년 8월 다시 부귀 초등학교 교정 밖 대창 정미소 옆에 불망비를 놓았다. 부귀 초등학교에서 부귀로를 따라 100m 이동하다가 좌회전해 다시 13m 이동하면 대창 정미소가 있다. 그 왼쪽에 보면 비가 세워져 있다.

[형태]

비대석에 높이 135㎝, 폭 55㎝, 두께 12.5㎝의 비신을 세우고 가첨석을 얹었다.

[금석문]

비의 전면 중앙에는 ‘전 자헌대부 윤공 치호 시혜 불망비(前資憲大夫尹公致昊施惠不忘碑)’라고 새겨져 있다. 그리고 좌우에는 “경자토족식막비지은지덕 등차교유지식의호재송재륵(耕玆土足食莫匪之恩之德 登此校牖智識宜乎載頌載勒)”라고 적혀 있다. 비의 후면에는 “기사 2월 일(己巳 二月 日)”라고 새겨져 있다.

[현황]

친일파로서의 행적 때문에 윤치호의 불망비는 철거되었다가 다시 설치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또한 원래 있었던 부귀 초등학교 교정에서 쫓겨나 교정 밖에 세워졌다. 현재 윤치호 관련 2기의 비석이 나란히 서 있다. 그리고 바로 왼쪽에 민족 문제 연구소 전북 지부에서 세운 윤치호의 친일 행위와 관련하여 비석을 철거하였다가 다시 반환하게 된 사유를 설명한 게시판이 있다.

[의의와 평가]

윤치호의 친일 행위로 인하여 윤치호 시혜 불망비가 겪었던 수난사는 그대로 한국 현대사의 비극을 상징한다. 윤치호의 비석은 역사 교육의 생생한 증거로 남아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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