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병선 친필」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800542
한자 -宋秉璿親筆-
분야 역사/근현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물/서화류
지역 전라북도 진안군 주천면 주양리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이용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1983년 12월 30일연표보기 - 「송병선 친필」 일반 동산 문화재 제704호로 지정
성격 문서
작가 송병선
소유자 이부용
문화재 지정 번호 일반 동산 문화재 제704호

[정의]

전라북도 진안군 영묘사에 배향된 송병선이 제자인 진안에서 활동한 이덕응에게 써준 친필 유묵.

[개설]

송병선(宋秉璿)[1836~1905]은 송시열의 9대손으로 대사헌을 지낸 인물이다.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로 체결되자 순절하여 많은 선비들의 추앙을 받았다. 1900년에 궁내부 판임관으로 임명된 이덕응송병선을 스승으로 모셨는데 「송병선 친필」은 1897년에 송병선이 제자인 이덕응에게 어지러운 시국을 헤쳐 나갈 철학을 전해준 글로 추정된다. 현재 전주시 금암동에 거주하는 이부용[이덕응의 손자]이 소장하고 있으며 보존 상태는 양호하다.

[형태 및 구성]

「송병선 친필」송병선이 1897년 제자인 이덕응에게 25×40㎝ 크기의 한지에 써준 작품이다. 「송병선 친필」의 글씨는 송시열·송준길의 서체를 이어 강건하고 수려한 선비의 기풍이 풍긴다고 높이 평가되고 있다. 「송병선 친필」은 “우리들은 오늘날 외진 곳에서 풀로 옷을 지어 입고 나무껍질을 벗겨 먹으며 이 세월을 견딜 수밖에 없다.[吾儕今日 只可村僻戚處 草衣木食 度此歲月]”라는 내용이다.

[특징]

「송병선 친필」에는 앞으로 다가올 을사조약과 한일합방을 예견하고 미리 이에 대비할 방안을 세우라는 뜻이 담겨 있다. 「송병선 친필」을 받은 이덕응은 그 영향으로 이 시기부터 항일의식을 가진 것으로 추정된다.

[의의와 평가]

송병선은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을사오적을 처형하라는 내용을 포함한 십조봉사(十條封事)를 올리고 을사조약에 대한 반대 운동을 전개하다가 음력 12월 30일 국권 상실에 통분하여 황제·국민·유생들에게 유서를 남긴 채 독약을 마시고 자결하였다. 송병선의 철학은 제자 이덕응에게 써준 친필을 통해 알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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