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지리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800389
한자 風水地理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전라북도 진안군
집필자 이상훈

[정의]

음양오행설을 기초로 전라북도 진안 지역의 땅에 관한 이치를 설명하는 이론.

[개설]

풍수지리 사상은 전통적인 지리학으로서 우리 민족의 자연관이 잘 나타나 있는 경험 과학이다. 음양론(陰陽論)과 오행설(五行說)을 기반으로 주역의 체계를 주요한 논리 구조로 삼으며, 추길피흉(追吉避凶)을 목적으로 하는 상지 기술학(相地技術學)이다. 전통 시대에 효(孝)의 관념(觀念)이나 샤머니즘과 결합되어 이기적 속신(俗信)으로 진전되기도 하였으나 기본적으로 일종의 토지관(土地觀)의 표출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 민족은 자연과의 조화를 이루려는 독특한 풍수를 발전시켰는데, 그것이 비보 풍수(裨補風水)이다. 비보(裨補)란 자연적 성국(成局)의 결처(缺處)를 보(補)하여 인위적으로 길국(吉局)을 형성하는 것으로, 인간이 자연환경과 상생(相生), 조화 관계를 맺으려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전통 지리 사상이다. 즉 비보 풍수는 결함이 있는 땅을 명당으로 만든다는 개념이다. 여기에서 명당 개념은 물질적·정신적 두 가지 측면에서 모두 안정과 만족감을 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진안현과 용담현 풍수]

1. 진안현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진안현은 백제 때 난진아현(難珍阿縣)이나 월랑(月浪·越浪)으로 불렸다고 한다. 진안현에 사는 백성의 성품은 소박하다고 언급하고 있으며 경제적으로 매우 궁핍한 고장이라고 적고 있다. 또한 진안현의 진산(鎭山)은 현의 북쪽 5리의 부귀산(富貴山)이라 적고 있다.

진안현의 진산인 부귀산[배때기산]의 기운은 읍내까지 뻗어 내려온다. 우백호(右白虎)는 진안에서 전주 지역으로 넘어가는 고개인 강령골재 맥에 해당하고, 좌청룡(左靑龍) 맥은 진안 향교 쪽으로 뻗어 내려온다. 안산(案山)은 진안천 건너편 우화산(羽化山)과 성묘산(聖墓山) 줄기이다. 내룡(來龍)에 해당되는 월랑 공원에 힘찬 기운이 머물고 그 앞자리에 명당 판을 형성해 놓았다. 그 명당 판에 진안군청이 자리 잡고 있다.

진안군청 자리는 옛날 진안현의 동헌이 있던 자리이다. 현재 월랑 공원은 일제 강점기에 신사당을 설치해 맥을 눌렀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신사당 터라 부르고 있다. 월랑 공원이 위치한 곳은 귀두산(龜頭山)이라 하는데, 거북의 머리라 하여 이곳에 묘나 건물 등을 세우지 못하게 하고 있다. 좌청룡 맥에 해당되는 진안읍에서 정천면 가는 길목은 신작로를 내면서 이미 맥을 자른 모습을 볼 수 있다. 일제 강점기에 낸 길은 흔히 신작로라고 부르는데 이때 만든 길은 의도적으로 맥을 끊기 위한 성격이 강했다.

1997년 무주 전주 동계 U 대회를 치르기 위해 도로 확장을 하고 우회 도로를 건설하면서 진안은 더욱 심한 상처를 입었다. 즉 진안의 청룡에 해당하는 강령골재는 파헤쳐질 대로 파헤쳐졌다. 특히 강령골재는 금남 호남 정맥인 영취산[장안산]과 부귀산·운장산을 연결시켜 주는 매우 중요한 산줄기인데, 그 맥이 험상궂게 잘리고 말았다. 맥을 이어 주는 다리를 건설하면 좋을 것이라 생각된다. 우회 도로를 통과하는 성묘산은 강령골재에서 바라볼 때 잠두혈(蠶頭穴)이라고 하는데, 누에 머리를 자른 꼴을 만들고 말았다.

2. 용담현

용담현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백제 때 물거현(勿居縣), 신라 경덕왕 때 청거(淸渠)라 불렸고, 1313년인 고려 충선왕 5년에 현령을 두었다. 백성은 소박하고 꾸밈이 적다고 적고 있다. 진산은 현치에서 3리 떨어진 곳에 있는 용강산(龍岡山)이다.

용담현은 진산인 용강산의 맥이 흘러와 명당 판을 형성시켜 놓았고, 한 가운데 동헌이 있었다. 면사무소 자리가 옛 용담현의 동헌 자리이다. 태고정(太古亭)이 자리한 곳은 용강산의 맥이 닭모산을 거쳐 우백호를 형성시켰다. 우백호 자리를 보강하기 위해 천혜의 절경에 정자를 세우고 인위적으로 숲을 형성시켜 놓고 있다. 예전에 수백 그루의 소나무가 에워싸고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왼쪽으로 진안, 금산으로 빠지는 방향에 남산(南山)인 좌청룡이 길게 용담현을 감싸 안고 있다. 용담현 앞으로 흐르는 주자천운장산에서 발원하며, 주자천 건너편의 매봉산용담현의 안산에 해당한다. 용담현에서 보면 주자천이 빠져나가는 곳이 허하기 때문에 수구막이로서 숲을 조성하여 놓았다. 이곳을 ‘숲거리’라고 부르고 있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선돌을 세운 것도 이를 보강하기 위한 것이라 생각된다.

용담 향교는 용강산의 맥에서 흘러와 음부의 명당혈에 자리 잡고, 안산인 매봉산에서 용담현으로 힘차게 흘러온 남근 같은 쇠좇뿌리가 용담현으로 뻗어 오는 기운 때문에 용담현이 좋지 않은 일이 생긴다고 하여 풍수적으로 비보할 목적으로 쇠좇뿌리에 대응하고자 돌거북을 세웠다. 거북은 영물이면서 그 머리는 남근을 상징하기 때문에 역시 남근인 쇠좇뿌리의 기운에 대응하기 위해서 세운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오늘날 거북은 머리 부분이 잘려 있다.

[진안 지역 비보·진압 풍수]

1. 용담면 소재지

용담현은 진산이 용강산이다. 이 줄기를 타고 내려오는 곳에 용담 향교가 자리 잡고 있다. 이 자리는 여자 음부로서 혈처에 해당한다. 그런데 주자천 건너편 매봉 줄기가 힘차게 용담현으로 뻗쳐 있다. 이를 ‘쇠죽뿔이’라고 한다. ‘쇠죽뿔이’는 ‘숫소의 음경’이다. 이 때문에 용담현에 음풍이 일어난다고 하여 이런 기운을 막기 위해서 거북을 세웠다. 거북은 하거 마을 천변에 위치하는데, 화강암을 조각하여 만들었다. 다른 마을에서도 거북을 만들었는데, 용담면 거북은 관 주도로 조성된 듯하다. 진안읍종평 마을·은천 마을마령면 송내 마을, 용담면 회룡 마을의 거북 신앙은 마주보는 산이 화산(火山)이어서 화재를 막기 위해 수신(水神)으로서 기능을 담당하는 거북을 세운 것이다.

2. 용담면 호미동

호미동은 두 가지 풍수 구조를 갖고 있다. 마을 뒷산 산세가 여우가 산으로 올라가다 뒤돌아보는 형국이다. 마을은 여우 꼬리 부분에 형성되어 있다. 그래서 마을 명칭이 호미동(狐尾洞)이다.

호미동 마을 앞에는 주자천이 흐르고 냇가 건너편에 괘바우[고양이 바위]가 있고 호미동 쪽에는 쥐바우가 있다. 예전에는 징검다리로 건넜다. 이후 와룡교가 건설되면서 마을에 재앙이 생기자 그 원인을 고양이가 마을에 건너와 해코지를 한 것이라 생각하여 다리 입구에 호랑이상 2마리를 세웠다.

3. 정천면 두곡 마을

두곡 마을 북서쪽에 큰 바위가 방죽 한가운데 있다. 그 바위 밑에 소(沼)가 있는데 소(沼)가 모래로 메워지면 마을에 재앙이 발생한다 하여 입석 2기를 세웠다.

4. 상전면 오리목 마을

상전면의 부항 마을은 마을 뒷산이 오리혈이다. 그래서 오리목이라 부른다. 물오리가 물을 찾아 날아갈 수 있기 때문에 날개 부분에 선돌을 세워 눌러 놓았다.

진압 풍수는 마을 지세에 결함이 있어 마을에 불상사가 발생하기 때문에 이를 해결하기 위한 장치로서 만들어진다. 즉 음풍·재앙·화재 등이 일어나면 거북·짐대·선돌 등을 세워 문제를 해결한다. 이는 마을 공동체뿐만 아니라 읍·면 단위에서도 조성된다.

[풍수 설화에 나타난 명당 상실과 단맥(斷脈)]

1. 명당 상실(明堂喪失)

1) 상전면 항동 마을 구시골[구유]

구시골은 옛 마을의 터로 어느 부자가 살았다는 집터와 묘터가 남아 있다. 이곳에 하인을 두고 부자로 사는 사람이 있었다. 그 부자는 애초에 많은 노력을 하여 이곳의 명당인 소구시[구유] 혈을 잡아 묘를 쓰고 재산이 나날이 불어 부자가 된 것이다. 그러나 어느 화주승이 “구시는 본래 성터이기 때문에 성을 쌓아야 인물이 나오고 재물이 불어나지요.”라고 속이자 욕심이 난 부자는 큰 돌을 날라 구시혈에 성을 쌓았다. 그러나 소구시에 돌을 넣으면 소는 여물을 씹을 수 없어 굶어 죽게 마련인 것이다. 그 부자는 점점 망하여 어디론가 떠나고 말았다.

2) 성수면 중평 마을

중평 마을은 배가 떠나는 배 형국이다. 마을에서는 마을 앞 밭 솔정지라 부르는 솔밭을 ‘돛대’로 인식하여 ‘돛대봉’이라 부른다. 그리고 마을 뒤에는 ‘닻’의 역할을 하는 ‘배거리봉’이 있다. 그래서 마을에서는 우물을 파면 안 된다는 전설이 있다.

마을이 한참 번창할 때 한 승려가 찾아와 시주하기를 청하자 오히려 심하게 학대를 하였다. 심지어 콩을 무명천에 감싼 다음에 이를 머리에 둘려 매게 한 다음에 물을 뿌려 콩이 불어 머리를 압박하게 하는 형벌인 태태형을 가했다. 이후 한 노승이 찾아와 마을이 번창하려면 마을에 우물을 파면 될 것이라 이야기 하니 욕심 많은 마을 사람은 이 말을 믿고 우물을 팠다. 이후 마을에 괴질이 돌아 마을이 망했다.

3) 성수면 원좌 마을

원좌 마을은 본래 남원 양씨에 의하여 형성되었는데 남원 양씨가 망하게 된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한다. 이 마을에 한 승려가 시주를 하려 왔다가 오히려 태태형을 당하는 등 학대를 하자 다른 승려가 찾아와 물길을 돌리면 벼슬도 하고 자손이 번창할 것이라 하였꼬, 이 말에 혹하여 물길을 돌리게 되었다. 물길을 돌리자 재물이 빠져나가 양씨는 망했다고 한다.

4) 성수면 상외궁 마을

상외궁 마을 윗쪽에는 사두혈의 묘가 있는데, 예전에 안씨 무덤이었고 마을에서 아주 잘 살았다. 그런데 어느 날 한 승려가 시주하려 왔는데 시주는커녕 오히려 괴롭혔다. 이후 승려가 사두혈 앞에 있는 개구리 바위 크기가 작다고 하면서 좀 더 크게 만들면 좋을 것이라 하여 개구리 바위에 흙을 쌓았다. 그러자 그 이후 안씨 집안은 망하고 말았다. 뱀의 먹이가 없어진 것이다.

이처럼 명당이 상실된 경우는 구유혈에 큰돌을 쌓는다든지, 배 형국인 경우에 우물을 판다든지, 물길을 돌리다든지, 사두혈에 먹이를 없앤다든지 하는 방법 등이 있다. 기본적으로 형국이 갖추어야 할 조건을 무너뜨림으로써 명당을 상실하게 만드는 것이다. 명당 파괴자로는 지관과 승려 등이 등장하는데, 진안 지역에서는 대부분 승려가 등장한다. 승려를 학대하는 풍토는 조선 시대가 유교 사회라는 점을 생각하면 쉬울 것 같다. 명당 상실이 아니더라도 동향의 송장 바위 이야기에서도 승려를 학대함으로써 그 보복으로 집안이 망하는 구조이다. 명당 상실로 망하는 사람들은 대개 욕심이 많은 사람으로 이야기에 권선징악(勸善懲惡)의 성격이 짙다.

2. 명당(明堂)의 단맥(斷脈)

1) 마령면 강정 마을

강정 마을은 마이산 줄기에서 뻗어 나온 광대 모습과 같이 익살스럽다고 하여 붙여진 광대봉을 주산으로 삼고 있으며, 합미성이 있다는 용두봉(龍頭峰)을 청룡으로 하고, 성산을 백호로 감싸 안은 자리에 자리 잡고 있다. 마을 앞에는 섬진강 상류의 지류가 흐르고 있으며 목마른 말이 물을 마신다는 갈마음수(渴馬飮水)의 명당 자리가 있다는 내동산을 안산으로 삼고 있다. 청룡의 맥인 용두봉과 관련된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한다.

옛날에 이 마을에 홍씨가 많이 살았다고 한다. 그런데 마을에 찾아오는 승려를 무척 학대하였다. 어떤 경우는 태태형까지 주었다. 어느 날 명승이 찾아와 마을을 보니 물줄기가 마을 한가운데로 흐르는 것을 보고 이 물줄기를 마을 가장자리로 흐르게 하면 마을이 더욱 번창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물론 홍씨 집안을 해코지할 요량으로 했던 말이다. 그래서 용두봉의 맥을 잘라 물의 방향을 바꾸어 놓았다. 용의 머리를 잘라 놓았으니 홍씨 집안은 망했다. 잘린 바위에서는 날이 궂으면 피가 보인다고 한다.

2) 진안면 유산 마을

유산 마을 앞쪽에 길게 뻗은 줄기를 칼바위라고 한다. 그런데 이 안쪽에 한 백정이 살았다고 한다. 어느 날 승려가 이곳을 지나가다가 백정촌을 향하여 “여봐라”하며 무시하는 말을 하자 백정들에게 승려가 혼이 났다. 그 이후 다른 승려가 백정들을 해코지할 요량으로 이곳을 지나다가 백정촌을 향해 존칭을 하며 호감을 사면서 몇 개월간 묵으며 대우를 잘 받았다. 이후 백정촌을 떠나면서 보답을 하겠다며 칼바위날과 쇠머리봉을 자르면 백정을 면할 수 있게 될 것이라며 떠났다. 그러나 두 맥을 끊은 후 백정촌은 망했다. 그래서 아랫마을인 신흥으로 피가 흘려와 ‘피징이’라 불리게 되었다.

3) 성수면 증자 마을

증자 마을 앞들을 ‘배수평들’이라 부르는데, 이는 풍수상 배 형국이라 한다. 마을 사람들은 배수보에 있는 바위를 ‘돛대’라고 한다. 그러나 마을 앞들 한가운데 있는 느티나무가 돛대 역할을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마을 사람에 의하면 본래 물길이 마을 한가운데로 흘렸으나 홍수로 물길이 마을 뒤로 나면서 본래는 좋은 터인데 나빠졌다고 한다. 알미산 뒤쪽을 노루목이라고 하는데, 일제 강점기에 맥이 끊겼다. 그래서 전에는 증자동에 장사가 나왔는데 맥이 끊긴 이후 장사가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위에서 제시된 풍수 설화는 명당 파괴형에 속한다. 개인적 차원의 단맥의 경우는 ‘아기 장사’ 설화로 대표된다. 내동산[백마산] 주변인 백운면성수면에서 들을 수 있는 아기 장사 설화는 집안에 역적이 날 것을 두려워하여 아기를 죽이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특히 마을 단위에서 나타나는 설화는 기본적으로 마을 지세에 결함이 있음을 의미한다. 단맥의 경우 좌청룡 맥이 끊긴 마령면 강정 마을의 경우나 뒷산과 안산의 맥이 끊긴 진안읍 유산 마을의 경우를 지금도 볼 수 있다. 오늘날에도 마을에 좋지 않은 일이 생기면 마을 뒷산의 맥이 끊겼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진안 지역 비보 풍수의 의의 및 평가]

진안 지역 마을 풍수 중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부분은 비보 풍수이다. 이는 결함이 있는 땅을 명당으로 만든다는 개념이다. 비보 진압책으로 등장하는 대표적인 것은 마을 숲·돌탑·장승·짐대·선돌·거북 등의 민속 신앙물이다. 이는 비보 진압책을 신앙화, 신성시하여 보다 오랫동안 유지하기 위한 방책으로 생각된다.

또 다른 큰 특징은 풍수 설화에서 나타나는 명당 상실과 단맥이다. 이 또한 지세의 결함에서 출발하므로, 비보 풍수 범주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다. 풍수 설화는 지세 결함에 대하여 마을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주의를 환기시키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래서 생명력을 가지고 전승되는 것이다.

비보 관념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생명력 있게 나타나고 있다. 없앴던 마을 숲을 다시 조성한다든지, 탑을 다시 세운다든지 하는 모습을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다. 성수면 중평 마을 뒷산은 닭날이라 하여 닭 형국이다. 또한 외궁으로 가는 솔개재가 있는데, 마치 솔개가 닭을 잡아먹으려는 형상을 하고 있다. 그런데 솔개가 닭을 잡아먹으려는 것을 보고 솔개를 쫓는 아이가 있었다는 아주 고개가 있다. 아주 고개에는 초상이 나면 시신을 운구하지 못하게 한다. 시신을 운구하면 아이들이 무서워 도망치고, 그러면 솔개가 닭을 잡아가기 때문이다. 마을 사람은 동네 뒷날이 다치면 마을에 좋지 않은 일이 생긴다고 믿고 있다.

백운면 두원 마을은 닭 형국이다. 이를 마주하는 반송 마을은 지네혈인데 두 마을 사이에는 하천이 흐르고 있다. 닭은 지네를 쪼아 먹기 때문에 마을 사이에 다리를 설치하지 못하도록 했다.

용담면 호미동은 두 가지 풍수 구조를 갖고 있다. 마을 뒷산 산세가 여우가 산으로 올라가다 뒤돌아보는 형국인데, 마을은 여우 꼬리 부분에 형성되어 있다. 그래서 마을 명칭이 호미동(狐尾洞)이다. 호미동 마을 앞에는 주자천이 흐르고 건너편에 괘바우가 있고 호미동 쪽에는 쥐바우가 있어 예전에는 징검다리로 다녔다. 이후 와룡교가 건설되면서 마을에 재앙이 생기자 그 원인을 고양이가 마을에 건너와 해코지를 한다고 생각하여 다리 입구에 호랑이상 2마리를 세우게 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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