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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8년에서 1392년까지 고려 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의 전라북도 진안 지역의 역사. 고려 시대 진안 지방은 진안현(鎭安縣)·마령현(馬靈縣)·청거현(淸渠縣) 등 세 고을이 전주 계수관 관할 아래 전주와 진례의 속현으로 존재하였다. 고려 말에 진안에 감무가 파견되어 마령을 겸하였으며, 청거현은 충선왕 때 용담현(龍潭縣)으로 개칭되어 주현으로 승격되었다. 각종 지리지에 의하면,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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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 용담 고씨 문인. 선계는 제주 고씨(濟州高氏)이며, 문헌(文獻)이 없어 자세한 세계(世系)나 본관(本貫) 유래(由來)는 알 수 없다. 고여경(高餘慶)[?~?]은 진안군에 소재하는 용담 고씨의 시조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용담편 인물에 ‘벼슬이 삼중대광에 이르다.’고 실려 있고, 『여지도서(輿地圖書)』 용담편에도 같은 내용이 수록되어 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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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진안 용담 출신 무신. 고천백(高天伯)[?~?]은 고려 때 원종과 충렬왕 때에 사신으로 원나라를 내왕하면서 외교를 담당하였다. 일정한 무관직을 맡은 바 없고 비록 계급은 종3품 대장군에 머물렀으나, 원의 고려 간섭기 초기에 사신으로 원을 내왕하면서 대원 외교 관계 정립에 공을 세웠다. 특히, 1274년(원종 15) 장군으로 판각문사(判閣門事) 이신손(李信孫)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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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용담 현령을 지낸 문신. 김봉린(金鳳麟)[?~?]은 『신증동국여지승람』 용담현편 ‘명환(名宦)’에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공민왕 때 최영(崔瑩)에게 명하여 6도를 순찰하게 하였다. 최영이 지나가는 곳에 번진(藩鎭)의 목사와 수령들이 겁을 내 당황하고 어찌할 바를 모르는데, 김봉린이 홀로 태연하게 응대하여 넘기니, 도내 사람들이 칭찬하였다. 당시의 모든 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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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진안현의 남쪽에 설치·운영되었던 교통·통신 기관. 단령역은 전주에서 장수 방면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했는데, 지금의 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 단양리 원단양 마을로 추정된다. 단령역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진안현의 남쪽 5리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금산 제원도 찰방(錦山濟原道察訪)의 속역으로 역리 19명, 노 22명, 비 4명, 말 5필이 있었다.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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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전라북도 진안 지역에 있었던 용담현 달계의 북쪽에 설치·운영되었던 교통·통신 기관. 달계역은 1803년에 간행된 이재(李縡)의 문집인 『도암 선생집(陶菴先生集)』 권3에 실린 「과달계역(過達溪驛)」 및 1776년에 간행된 이희지(李喜之)의 문집인 『응재집(凝齋集)』 권1에 실린 「달계역도중(達溪驛途中)」이라는 시에 등장한다. 달계역은 금산과 진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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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부터 1914년까지 전라북도 진안군 주천면, 용담면, 정천면, 안천면, 동향면 지역에 설치되었던 지방 행정 구역. 용담군은 1895년(고종 32) 옛 용담현에 설치한 행정군(行政郡)으로 1914년 군 통폐합에 따라 진안군에 합쳐졌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용담(龍潭)은 현의 동남쪽에 두 물이 서로 모이는 사이에 용담이 있었기 때문에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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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3년부터 1895년까지 전라북도 진안군 일부 지역에 설치된 지방 행정 구역. 용담현(龍潭縣)의 유래에 대해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서는 현의 동남쪽에 두 물이 모이는 곳에 용담(龍潭)이 있어 이름으로 취하였다고 기록했다. 그런데 ‘용담’의 옛 지명인 ‘물거(勿居)’나 ‘청거(淸渠)’ 등은 모두 물갓·물가의 음차(訓借)이고, ‘용담’의 ‘용’도 훈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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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편찬된 지금의 진안군 용담면 지역의 읍지. 『용담현읍지』는 전라도 용담현의 읍지이다. 편찬 연대는 조선 시대 정조 연간으로 추정된다. 『용담현읍지』에는 진안군 용담면 지역의 역사와 일반 현황이 소개되어 있어 역사와 문화 유적 및 지역의 인물을 연구하는 데 기초 사료가 되고 있다. 연대 미상이나 역대 수령의 명단인 선생안(先生案)에 1790년(정조 14)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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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 군상리 우화산에 있는 누정. 우화정은 진안군 진안읍 월랑산(月浪山) 남쪽 기슭에 위치하고 있는데 기암절벽과 아래의 천이 어우러져 경관이 매우 수려하다. 진안에서 월랑 팔경(月浪八景)의 하나로 일컬어진다. 우화정에서 바라보면 월랑 팔경으로 불리는 마이산, 강령, 부귀산, 고림사, 학천, 우주, 남루가 한눈에 들어온다. 우화정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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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전라북도 진안 지역에 설치·운영되었던 교통·숙박 시설. 원은 역의 기능을 보조하는 교통·숙박 시설로, 역을 이용할 수 없는 일반 여행객들이나 공물 및 노비 신공 운반자들의 숙식 해결을 위한 필수적인 시설이었다. 고려 말에는 국가에서 원에 새로운 인호(人戶)를 배정하고 토지를 지급하는 등 원의 운영이 체계화되었다. 조선 건국 직후인 1392년(태조 1)에는 각 도와 각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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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진안 지역에 근거를 두고 활동하던 지배 계층. 재지 사족은 향촌의 지배 세력으로 수도에서 관직에 종사하다가 국가 변란기 또는 정치적 변혁기 등 특정 시기에 본향(本鄕)으로 낙향한 가문과 다른 지역으로부터 처향(妻鄕)·외향(外鄕) 등의 이유로 이주하여 재지 기반을 확보한 계층으로 분류할 수 있다. 16세기 중·후반부터 향촌 사회에서 중소 지주로서의 경제적 기반과 사족으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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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에서 1863년까지 조선 왕조가 지속된 시기 전라북도 진안 지역의 역사. 조선 시대 진안 지역은 조선 건국 후 진안현(鎭安縣)과 용담현(龍潭縣)의 2현으로 재편되었다. 진안 지역은 웅치 전투, 기축옥사 등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이 일어난 곳이다. 조선 시대에 용담현은 본래 청거현(淸渠縣)으로 금산의 속현이었는데 1313년(충선왕 5) 용담현으로 개칭되면서 독립하였다. 진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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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진안 지역을 포함한 각 지방에서 수취한 조세를 배를 통해 경창(京倉)까지 운반하는 제도. 조운은 조전(漕轉)·조만(漕輓)·해조(海漕)라고도 부르는데, 내륙의 물길을 이용하는 경우는 수운(水運)·참운(站運)이라고 하며 바닷길을 이용하는 경우 해운(海運)이라고 한다. 국가에서는 강변에 수운창을, 해변에 해운창을 설치하여 각 지역의 세곡을 모으고 매해 일정 기간을 정하여 중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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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 지역의 주택과 주거지에서의 삶. 진안군은 기후적으로 남부 내륙 지역에 속하지만 기온의 연교차가 심하고 겨울이면 전라북도 내에서 무주군 장수군과 함께 가장 추운 지역에 꼽힌다. 오늘날처럼 기름보일러나 심야 전기가 대중화되어 있지 않은 19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추위를 견디는 것이 주거 생활의 중요한 요소였다. 그래서 마을 대부분의 집들은 추위를 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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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용담 현령을 지낸 문신. 본관은 삭녕(朔寧). 자는 휘지(徽之). 최선보(崔善甫)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최자충(崔子忠)이고 아버지는 호조 전서(戶曹典書) 최윤문(崔潤文)이며 어머니는 어백유(魚白游)의 딸이다. 좌상을 역임한 최항(崔恒)이 아들이다. 최사유[1372~1455]는 1399년(정종 1) 생원시·진사시에 모두 합격하고 1402년(태종 2) 식년 문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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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진안 지역에 살고 있었던 토착 성씨. 토성(土姓)이란 고려와 조선 시대 지방에 토착하고 있던 성씨에 대한 것이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는 진안에 토성(土姓)으로 이(李)·전(全)·백(白)·한(韓)·유(庾)의 5개 성씨를 기록하고 있으며, 진안의 속현이었던 마령(馬靈)에는 한(韓)·송(宋)·장(張)·가(價)[어떤 본에는 가(賈)로 되었다.]의 4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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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 시대부터 조선 전기까지 전라북도 진안 지역에 있었던 특수 지방 행정 구역. 향·소·부곡은 군현 아래 편성된 특수 행정 구역이었다. 향(鄕)과 부곡(部曲)은 삼국 시대부터 있었지만, 소(所)는 고려 시대에 생겼다. 향과 부곡은 주로 농경에 종사하면서 국가에 대하여 공역의 부담을 지는 반면, 소는 국가에서 필요로 하는 금·은·동·철 및 지류·자기·묵 등 특정 공납품을 생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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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진안에서 활동한 문신. 본관은 하양(河陽). 자는 백방(伯方)·백공(伯公), 호는 숙재(肅齋). 시호는 간숙(簡肅). 할아버지는 도관 정랑(都官正郎) 허윤창(許允昌)이고, 아버지는 판도 판서(版圖判書) 허귀룡(許貴龍)이며, 어머니는 통례 부사(通禮副使) 이길(李吉)의 딸이다. 아들은 공간공(恭簡公) 허성(許誠)이고, 동생은 좌의정 문경공(文敬公) 허조(許稠)이다. 진안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