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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의고』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801878
한자 -金三宜稿-
이칭/별칭 삼의당고,김삼의당고,김삼의당 시문집,삼의당 김부인 유고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전적
지역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방화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영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편찬 시기/일시 1930년연표보기 - 『김삼의고』 편찬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50년 - 『김삼의고』 『조선 역대 여류 문집』에 수록
번역 시기/일시 1982년 - 『김삼의고』 번역본 『김삼의당 시문집』 발간
번역 시기/일시 2004년 - 『김삼의고』 번역본 『삼의당 김부인 유고』 발간
성격 시문집
저자 김삼의당(金三宜稿)
편자 정형택(鄭逈澤)[수집 및 발문]|김기현(金箕現)[수집]|오상철(吳相喆)[교열 및 서 집필]
발행자 정일섭(丁日燮)
권책 2권 1책

[정의]

전라북도 진안에서 조선 후기에 활동한 삼의당(三宜堂) 김씨의 시문집.

[저자]

김삼의당(金三宜堂)[1769~1823]은 당호가 삼의당(三宜堂), 본관은 김해이다. 전라북도 남원의 서봉방(捿鳳坊)[현 교룡산 서남 기슭]에서 탁영(濯纓) 김일손(金馹孫)[1464~1498]의 후손 김인혁(金仁赫)의 딸로 태어났다. 1786년(정조 10) 18세가 되던 해에 같은 해, 같은 날, 같은 동네에서 출생한 진양인(晉陽人) 담락당(湛樂堂) 하립(河氵+昱)과 혼인했다. 이후 14년 동안 남원에서 생활하다가 빈한한 가세를 극복하기 위하여 1801년 신유년 32세에 진안군 마령면 방화리로 이주하여 죽을 때까지 진안에서 살았다. 가난한 살림을 꾸리면서 남편에 대한 애정과 기대, 일상생활 속의 일과 전원의 풍치 등을 260여 편의 한시와 문장으로 남겼다.

[편찬/간행 경위]

『김삼의고(金三宜稿)』는 장사(長沙) 김기현(金箕現)과 승평(昇平) 정형택(鄭逈澤)이 원고를 모으고, 함양 오상철(吳相喆)이 교열하여 서(序)를 썼다. 오천의 정형택(鄭逈澤)이 발문을 썼으며, 1930년에 광주 삼기당(三奇堂) 석판 인쇄소에서 정일섭(丁日燮)이 발행하였다.

[형태/서지]

1930년 최초로 발행된 것은 석판본이었다. 이 판본은 1950년 을유 문화사 발행의 『조선 역대 여류 문집』에 수록되었다. 1982년에 제일사에서 황안웅이 번역한 『김삼의당 시문집』이 발간되었으며, 2004년에 이월영 역주 『삼의당 김부인 유고』가 신아 출판사에서 번역·출간되었다.

[구성/내용]

1930년에 발행된 『김삼의고』의 목차는 맨 앞에 발행자 정일섭(丁日燮)의 국한문 혼용의 서언(緖言), 함양 오상철(吳相喆)의 서(序), 김삼의당이 남긴 자서(自序), 오천 정형택(鄭逈澤)의 발(跋)이 순서대로 실려 있다. 이후에 삼의당의 시문이 2권 1책으로 되어 있다. 1권은 시이고, 2권은 산문이다. 1권에 실린 시는 총 111편 253수이다. 2권에는 편지글 6편, 서(序) 7편, 제문 3편, 잡지(雜識) 6편 등 총 26편의 산문이 실려 있다.

삼의당의 시 세계를 3단계로 나누면 미혼 시절의 시, 결혼 후 남원 시절의 시, 진안 시절의 시로 분류할 수 있다. 각 단계의 시들은 삶의 환경 변화에 따른 소재와 제재, 주제 의식이 달라지고 있다. 결혼 이전에는 시관을 정립하던 시절로, 「계년음」을 비롯하여 4편 18수가 남아 있고, 결혼 후 남원 시가에서 생활하던 시절의 시는 주로 남편을 그리워하는 규원시가 많다. 이 시기의 시가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삼의당의 시부 및 시형제 다섯이 모두 시문에 능하였는데, 엄격했던 유교 가문의 생활 규범 속에서도 시댁으로부터 삼의당의 시가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1801년 진안으로 이주한 뒤에는 일상의 일이나 전원생활 중 마주하는 자연을 주로 읊고 있다.

[의의와 평가]

조선 시대 여성은 정규 교육을 받을 수 없었으며 자신의 내면세계를 표출하는 문필 활동은 양반가 여성의 경우에는 더욱 해서는 안 될 단정치 못한 행위로 간주되었다. 그러기에 조선의 이름난 여성 시인은 저절로 기녀군에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삼의당은 몰락한 민간 양반가 여성으로, 현모양처 효부로서의 위상을 실추시키지 않으면서 창작 생활을 유지했으며, 여성으로서는 가장 많은 작품을 남긴 것으로 추정된다. 더구나 문집으로 정리할 목적으로 자서까지 써서 남겨 둔 점에서 그녀는 강렬한 자의식의 소유자임을 알 수 있다. 『김삼의고』는 사대부 남성도 남기기 쉽지 않은 문집을 여성의 이름으로 출간하여 후대에 전한 희소성만으로도 그 가치가 이미 크다. 나아가 조선 후기 여성의 자기표현의 욕망과 시관을 연구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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