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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투 노래」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801721
이칭/별칭 「화투 타령」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문화유산/무형 유산
유형 작품/민요와 무가
지역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원동촌길 17-6[동촌리 412]
집필자 김월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채록 시기/일시 2010년 2월 4일 - 「화투 노래」 채록
채록지 동촌리 하순덕 자택 -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원동촌길 17-6[동촌리 412]지도보기
성격 유희요
가창자/시연자 하순덕[여, 1931년생]

[정의]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동촌리에서 화투를 소재로 하여 부르는 유희요.

[개설]

「화투 노래」는 정월부터 섣달까지 있는 화투의 열두 패에 인생의 희로애락을 비유하여 부르는 노래이다. 화투의 열두 달 그림을 월마다 해학적으로 풀이한 달거리 형식을 띠고 있다. 「화투 노래」는 화투 놀이를 하면서 부르기도 했고, 화투를 이용해 운세를 보는 화투 점을 치면서 부르거나 여럿이 또는 혼자서 심심파적으로 부르기도 했다.

[채록/수집 상황]

「화투 노래」는 한국학 중앙 연구원 어문 생활 연구소와 안동 대학교 민속학 연구소가 공동으로 추진한 ‘한국 구비 문학 대계 개정·증보 사업’ 전북 조사팀이 2010년 2월 4일 진안군 마령면 동촌리로 현지 조사를 나가 주민 하순덕[여, 1931년생]으로부터 채록하였다. 한국학 중앙 연구원에서 지원하는 한국 구비 문학 대계 웹 서비스[http://gubi.aks.ac.kr/web]를 통해서 조사 자료 텍스트와 연동되는 디지털 음원을 들을 수 있다.

[구성 및 형식]

화투의 열두 패에 있는 열두 달의 그림 내용을 먼저 제시하고 그 다음 자신의 속마음을 노랫말로 엮어 달거리 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화투의 열두 패를 열두 달에 비겨 각 달의 특색을 재미있게 읊조리는 노래이다.

[내용]

화투의 열두 패는 열두 달을 상징하여 각 패에는 그 달에 해당하는 특징적인 화초 그림이 그려져 있다. 정월은 솔[송학], 2월 매화, 3월 벚꽃, 4월 흑싸리, 5월 난초, 6월 모란, 7월 홍싸리, 8월 공산명월, 9월 국화[국준], 10월 단풍, 11월 오동, 12월 비[우(雨)]다. 「화투 노래」는 화투 패의 그림 내용을 먼저 제시한 후에 자신의 속마음을 사설로 표현하여 열두 달을 엮는다.

과거 우리나라에는 투전이라는 노름이 있었는데 일제 강점기에 화투가 유입되면서 투전의 자리를 점차 화투가 대체하게 된 듯하다. 투전과 화투는 승부를 겨루는 놀이기 때문에 무언가를 내기에 걸고 놀이를 하는 경우가 많다. 가볍게는 술이나 음식 정도를 내기에 걸지만 판이 커지면 금품이나 논을 걸기도 했다. 진안의 「화투 노래」 마지막 구절에 “한 잔 먹고 두 잔 먹세/ 이러다가 논 팔겄네/ 이 사람들아 집이 가세”는 화투 노름판이 자꾸 커져가는 것을 제지하는 상황을 표현한 것이다.

정월 솔가지 속살근 마음 이월 매주에 맺어 놓고/삼월 사구라 산란헌 마음 사월 흑싸리에 잡아매고/ 오월 난초 날던 나비 유월 목단에 춤 잘 춘다/ 칠월 홍싸리 홀로 누워 팔월 공산에 달이 솟네/ 구월 국진 굳은 마음 시월 단풍에 뚝 떨어지네/ 동지섣달 기러기 잡아 국화 놓고 공산패여/ 한 잔 먹고 두 잔 먹세 이러다가 논 팔겄네/ 이 사람들아 집이 가세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화투 놀이는 일제 강점기 무렵에 우리나라에 들어와 현재 가장 대중적인 놀이로 정착한 놀이이다. 일제 말기와 광복 후 몇 해 동안에는 항일 감정이 높아서 놀이를 거의 하지 않는 분위기였으나 그 뒤 조금씩 이런 분위기에서 자유로워져 현재는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화투 놀이를 즐기고 있다. 이 밖에도 부녀자나 노인들이 화투를 가지고 심심풀이로 ‘재수보기’와 ‘운수 떼기’ 등의 화투 점을 치기도 한다.

[현황]

「화투 노래」는 최근까지 전국 곳곳에서 많이 불렸다. 진안군의 하순덕 제보자는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총기가 좋아서 여러 곡의 노래를 가창하였는데 「화투 노래」도 그 중 하나이다.

[의의와 평가]

「화투 노래」는 열두 달을 상징하는 화투 열두 패의 그림 내용과 화자의 속마음을 달거리 형식으로 엮어낸 언어 유희요이다. 화투가 일제 강점기 무렵에 조선에 유입되었기 때문에 「화투 노래」는 근대에 생성되어 불린 노래라 할 수 있다. 놀이 자체는 일본에서 들어온 것이나 이것을 소재로 하여 노래로 엮어낸 방식은 우리의 전통을 계승한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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