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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801675
이칭/별칭 장치기,짱치기,꽁치기,얼레 공놀이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놀이/놀이
지역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성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민속놀이

[정의]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 평장리 하평장 마을을 비롯한 지역에서 놀던 공놀이로, 긴 나무 막대를 이용해 나무로 만든 공을 쳐서 상대편 골문에 넣는 편 놀이.

[개설]

꽁치기는 ‘공치기’를 말하는데 명칭은 지역에 따라 장치기, 짱치기, 꽁치기, 얼레 공놀이 등 다양하다. 오늘날의 필드하키와 유사한 경기이다. 문헌상의 명칭으로 격구(擊毬), 타구(打毬), 봉희(棒戱) 등이 있지만 공치기와 똑같지는 않다. 공치기는 특정 지역에 국한되지 않는 전국적인 놀이이며, 행하는 시기는 주로 겨울철이다. 전라북도 고창군 해리면 광승리 마을처럼 정월 대보름 날 민속놀이로 행하는 마을이 다수 있다.

진안군 백운면에서는 한 패가 최소 3~4명에서 최대 6~7명 정도로 구성된다. 주로 겨울철에 논바닥이나 빈 공터, 경우에 따라서는 얼음판에서도 하였다. 특히 지게 지고 나무하러 갈 때 하는 경우가 있는데, 지게를 벗어 골문을 만들고, 경기의 박진감을 위해서 대개 나뭇짐 내기를 한다.

[연원]

민간의 놀이 문화는 오랜 시간에 걸쳐 전승되었기 때문에 그 역사적 연원과 전승 과정을 명확히 규명하기가 쉽지 않다. 꽁치기[장치기]의 경우도 조선 후기 민간에 널리 유행한 남성 중심의 놀이로 알려져 있는데, 본래 궁중이나 상류층의 놀이 문화였던 마상 격구나 지상 격구가 민간화한 것으로 추정된다.

격구는 기원전 500년경에 페르시아에서 형성되어, 한편은 티베트와 중국을 거쳐 한국과 일본으로, 또 한편은 인도로 들어가 1871년 영국에 의해 ‘폴로’라는 스포츠로 세계에 보급되었다. 우리나라는 당나라를 통해 발해 때에 처음 마상 격구가 등장하였고, 고려 시대 때 가장 성행하였다. 조선 초기의 격구는 다시 마상 격구와 지상 격구로 나뉘었는데, 주로 궁중을 중심으로 상류층에서 전승되었다. 마상 격구는 조선 중기 이후 총포의 발달로 인해 효용성이 약화되어 결국 소멸된 것에 반해 지상 격구는 민간화 하여 공치기의 모습으로 변모, 전승되었다.

결국 공치기는 초기에 지상 격구 형태로 무인들의 개인적 무예 연마나 상층 남성의 여흥적 놀이에서 출발하여, 이후 기층 집단 아이들의 타격 방식의 놀이, 또는 초동들의 격렬한 승부 놀이로 바뀌어 갔다. 그리고 일제 강점기에는 민족의식을 함양하는 놀이로 권장되다가 20세기 중반부터 약화되었다.

[놀이 도구 및 장소]

꽁치기는 공을 치는 장대와 공으로 나뉜다. 장대는 주로 끝이 구부러지고 약 3~4척 정도로 자기의 키에 맞게 나무 막대기를 다듬어 만든다. 공의 재질도 나무인데, 약 10㎝ 크기로 둥글게 깎아 만든다.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에서는 이 도구를 주로 공터 옆에 두었다가 나무하러 갈 때나, 의기투합해서 경기를 벌일 때 사용하였다.

[놀이 방법]

꽁치기는 공터 가운데 선을 긋고 양편 끝에 골대를 정한다. 골대는 지형지물을 이용하거나 인위적으로 만든다. 경기는 한 사람이 중앙에서 공을 높이 던지고 내려오면 서로 치면서 시작한다. 승부는 점수 내기를 하거나 일정한 시간을 정해 놓고 한다. 백운면의 공치기가 단절된 것은 30여 년 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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