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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800999
한자 全基泓
이칭/별칭 종기(鍾棄),수용(垂鏞),해산(海山)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임실군 둔남면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김병남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79년연표보기 - 전기홍 출생
수학 시기/일시 1887년 - 전기홍 이한룡 문하 입문
활동 시기/일시 1907년 - 전기홍 이석용과 창의
몰년 시기/일시 1910년연표보기 - 전기홍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62년 - 전기홍 건국 훈장 대통령장 추서
추모각 전기홍 의병장 추모 비각 - 전라북도 장수군 번암면 노단리 시동강 마을
성격 의병
성별
본관 천안(天安)
대표 경력 대동 의병장

[정의]

진안 이산묘 영모사에 배향된 개항기 의병.

[가계]

본관은 천안(天安). 초명은 종기(鍾棄), 자는 수용(垂鏞), 호는 해산(海山). 아버지는 전병국(全炳國)이며 어머니는 경주 김씨이다.

[활동 사항]

전기홍(全基泓)[1879~1910]은 전라북도 임실에서 태어났다. 9세에 이한룡(李漢龍)의 문하에 입문해 24세까지 수학하였다. 특히 『춘추좌씨전』에 심취하여 정치에 관심과 안목을 갖게 되었다. 1907년에 한일 신협약이 체결되어 한국군이 강제 해산되자, 그 해 임실의 이석용(李錫庸)을 찾아가 거병하였다.

이 때 호남 일대에서 제일 먼저 의거를 일으킨 고광순(高光洵)기삼연(奇參衍)이 붙잡히자, 전기홍의 부하 김준(金準)이 의병을 재수습해 장성(長城) 일대를 중심으로 전세를 떨치고 있었다. 이에 이석용에게 김준의 의병들과 연합 전선을 전개할 것을 제안했다. 이들은 남진하고 이석용의 의병들은 북진해 장성에서 합류하기로 하였다. 그즈음 부하를 거느리고 남하한 정원집(鄭元執)전기홍을 7월 25일에 대동의병장으로 추대하였다.

의진은 선봉장 정원집, 중군장 김원범(金元範), 후군장 윤동수(尹東秀), 호군장 박영근(朴永根), 도포장 이범진(李凡振) 등으로 구성되었다. 의병은 영암 불갑산(佛甲山)으로 진군해 몇 명의 적을 포살하고, 27일에 나주 석문동(石門洞)에서 큰 전과를 올렸다. 이어 10월 16일의 대명동(大明洞), 10월 24일 대치(大峙), 11월의 고막병참(古幕兵站) 전투에서 많은 전과를 올렸다. 이러한 의진의 명성을 듣고 입대하는 의병의 수도 많았다.

그러나 1909년에 일제가 ‘의병대 토벌전’을 강력하게 추진하자, 마지막 접전을 준비할 수 밖에 없었다. 1월 17일에 일시 고향으로 돌아가 마지막 인사를 고하고, 고향 일대에 「본고을 반당(反黨)에게 보내는 격문」을 띄웠다. 그리고 2월 22일에 의병들을 거느리고 화산(化山)을 거쳐 궁관산(宮冠山)으로 행군해 3월 27일에 영광 오동치(梧桐峙)에 이르러 적에게 포위되어 접전하였으나 형세가 불리해 많은 사상자를 낸 끝에 간신히 포위망을 뚫고 탈출해 의병들은 일시 해산하고 말았다.

그 뒤 전기홍은 장수 고래산(古萊山)의 서당에서 훈장을 하면서 지내던 중 조두환(曺斗煥)·이경오(李景五)의 밀고와 김현규(金顯圭) 인솔로 붙잡혀 영산포 일본 헌병대로 압송되었다. 광주 재판소에서 교수형을 선고받고, 1910년 5월 대구 형무소로 이송되어7월 18일에 교수형으로 순국하였다.

[저술 및 작품]

『전해산 진중 일기(全海山陣中日記)』 5책이 있으며, 그중 2책이 전해진다. 종질인 전종하(全鍾廈)가 보관해 온 것이다. 내용은 무신년편(1908)과 기유년편(1909)으로 나누어져 있어 1908년 8월 13일부터 이듬해 윤 2월 23일까지의 약 7개월간의 종군기이다. 진중일기는 전해산 자신이 쓴 것이기 때문에 사료로서 가치가 매우 높다.

전해산은 특히 의병장으로서 호남에 명망이 드높았는데, 격문을 국한문으로 쓰고 평민의병장을 우대하여 신분보다 공적으로 군사를 다룬 사실들이 기록되어 있어 그의 사상과 인품을 엿보게 하고 있다.

그러나 전기홍이 전씨라 하여 녹두(綠豆)[전봉준]의 아들이라 말하는 것을 싫어하여 스스로 의병이 동학군과 다르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으며, 성교당(聖敎堂)의 양대인(洋大人)을 찾아 신식 무기의 공급을 요구한 사실 등 흥미 있는 사실들을 기록하고 있다.

[상훈과 추모]

1962년 정부에서는 전기홍의 공로를 인정하여 건국 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전기홍 의병장 추모비각(全基泓義兵長追慕碑閣)이 전라북도 장수군 번암면 노단리 시동강 마을에 있으며, 진안 이산묘 영모사에 배향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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