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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 전씨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800895
한자 天安全氏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전라북도 진안군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박노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입향지 전극례 입향지 -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강정리 지도보기
성씨 시조 전섭(全聶)
입향 시조 전극례(全克禮)

[정의]

전섭(全聶)을 시조로 하고, 전극례(全克禮)를 입향조로 하여 전라북도 진안군 일대에 살고 있는 세거 성씨.

[연원]

천안 전씨의 시조는 전섭(全聶)이다. 전섭은 고구려 고주몽의 셋째 아들로 온조(溫祚)가 백제를 개국할 때 오간(烏干), 마려(馬藜), 을음(乙音), 해루(解婁), 흘간(屹干), 곽충(郭忠), 한세기(韓世奇) 등 9사람과 함께 공을 세워 십제 공신(十濟功臣)으로 환성군(歡城君)에 봉해졌다. 이후 전섭의 29세손인 충달공(忠達公) 전낙(全樂)을 중시조로 하고 있다.

전낙은 좌복야(左僕射)를 역임하였고 천안 부원군(天安府院君)에 봉해졌다. 이로써 후손들이 전낙을 중시조로 모시고 천안을 본관으로 삼았다. 그 뒤 후손이 증가하여 판결사공파(判決事公派), 대제학공파(大提學公派), 삼재공파(三宰公派), 두평군파(兜平君派), 문효공파(文孝公派) 등 5대 공파로 나뉘었다.

[입향 경위]

진안에는 세종 대 판서를 지낸 낭헌 전극례의 후손이 대성을 이루고 있다. 전극례는 시조 전섭의 42세손이며, 도은 전문식(全文軾)의 후손으로 단종 대에 벼슬에서 물러나 교하에서 마령면 강정리에 시거하였다. 이후 대사간 전명한(全明漢)의 증손인 전한걸(全漢傑)이 1594년(선조 27)에 금산에서 정천면 망덕리로 이거하였다.

이외에 진안에 들어와 우거한 천안 전씨로는 현감 전윤온(全允溫)의 후손인 전수호(全秀鎬)가 금산에서 안천면 백화리 도라곡으로, 판서 전사민(全思敏)의 후손인 전율환(全律煥)이 철종 대 전주에서 진안읍 가림리로, 판서 전혜(全惠)의 후손인 전재근(全在根)이 1895년(고종 32)에 남원에서 백운면 봉서동으로 이거하였다. 판서 전혜의 후손인 전재환(全在煥)이 같은 해에 남원에서 백운면 운서리로, 대제학 전익(全翊)의 후손인 통정대부 전종탁(全宗鐸)이 순조 대에 담양에서 마령면 평지리로, 천성군 전세주(全世柱)의 후손인 전창룡(全昌龍)이 고종 대에 용안에서 안천면 노성리 노채로 들어와 살았다.

[현황]

천안 전씨진안군 마령면 평지리, 백운면 운서리, 안천면 노성리 노채, 안천면 백화리 도라곡, 정천면 망덕리, 진안읍 가림리 등지에 세거하고 있다.

2000년 기준으로 전국 4만 740호에 13만 3074명, 전라북도 4,882호에 1만 5427명, 진안군에는 348호에 1,066명이 거주하고 있다.

[관련 유적]

진안군 마령면 강정리에 있는 영계 서원(靈溪書院)최양(崔瀁)진안 이씨 이인현(李仁賢), 전의 이씨 이정난(李廷鸞), 천안 전씨 전계종(全繼宗)을 모시는 서원이며, 마령면 강정리에 있는 영산사(靈山祠)전문식(全文軾), 전극례(全克禮), 전자온(全自溫), 전자양(全自讓)을 모시는 사당이다. 성수면 도통리 거사곡 마을에 있는 쌍충단(雙忠壇)은 전자온전자양을 모시는 사당이고, 마령면 강정리오현사(五賢祠)천안 전씨 전계종(全繼宗), 동래 정씨 정대수(鄭大壽), 남양 홍씨 홍필(洪滭), 영산 신씨 신기(辛麒), 연안 송씨 송대홍(宋大弘)을 모시고 있다.

한편 진안군 마령면 계서리 계남에 전행권(全幸權) 처 동래 정씨 효열비, 계서리 오동 마을에 독립운동가 전영상(全永祥) 기적비, 백운면 남계리 오정에 천안 전씨 효행비, 백운면 평장리 가전 마을전인권(全麟權) 정려, 성수면 도통리 음수동 북쪽에 천안 전씨 효열각 등이 있다.

재각으로는 성수면 도통리 산주 마을영사재(永思齋), 진안군 백운면 평장리 정송[양지] 마을 정송길 27-5에 송학재(松鶴齋) 등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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