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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800551
한자 古墳
이칭/별칭 옛무덤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전라북도 진안군
시대 고대/고대
집필자 유철

[정의]

전라북도 진안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삼국 시대 이전 무덤.

[개설]

진안군에는 역사 시대 분묘 유적이 53개소가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주로 충적지가 발달한 곳이나 백제의 현이 설치되었던 지역에 유적이 밀집되어 있다. 백제의 행정 치소였던 진안읍에 10개소, 부귀면에 8개소, 마령면용담면에 각각 7개소의 유적이 확인되었다. 이를 고분의 유형으로 분류해 보면 구덩식 돌덧널무덤은 마령면 평지리·백운면 운교리·상전면 월포리·부귀면 오룡리·용담면 일대에 주로 분포하며, 굴식 돌방무덤은 진안읍 운산리·마령면 평지리·용담면 옥거리 등에서 조사되었다. 고총 고분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으나 부귀면 오룡리 오산 마을에서 봉분의 직경이 10m 남짓 되는 봉토분이 돌덧널무덤와 함께 조사된 바 있다.

53개소의 분묘 유적 중에서 평지리 고분 떼·오룡리 고분 떼·월계리 고분 떼·수천리 고려 고분 떼 등을 제외한 나머지 유적에 대해서는 아직 정밀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이다. 따라서 분묘 유적들 전체에 대해 그 성격이나 조영 시기를 구체적으로 논의할 수 없지만, 지금까지의 조사 내용으로 보아 대체적으로 백제계의 분묘 유적이 대부분이며, 가야계와 신라계 분묘 유적이 일부 포함되어 있다.

[변천]

삼국 시대와 그 이후의 분묘 유적은 대체로 백제의 현이 설치된 곳이나 교통로가 통과하는 지역에 밀집되어 있다. 가야계 구덩식 돌덧널무덤은 상전면·용담면·마령면·백운면에서 확인되었고, 백제계 굴식 돌방무덤은 진안읍용담면·마령면·정천면에서 조사되었다. 용담면 와정 토성에서는 세발 토기를 중심으로 백제 토기가 상당량 출토되어 백제가 언제 이곳으로 진출했는가를 밝힐 수 있는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그리고 용담면 월계리에서는 가야계 구덩식 돌덧널무덤에서 가야 토기·백제 토기·신라 토기가 함께 출토되어 진안고원 일대가 삼국의 각축장이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이로 보아 삼국 시대에 진안 지역이 백제 문화·가야 문화·신라 문화가 공존하는 문화의 완충지로서 성장했을 가능성이 높다.

진안군에 산재되어 있는 고분 떼 중 발굴 조사를 통해 유적의 성격이 드러난 것을 살펴보면 진안군의 묘제 변천을 일부나마 확인할 수 있다.

월계리 고분 떼는 1996년에 용담댐 건설로 수몰된 지구에 대한 발굴 조사 결과 발견되었으며, 모두 구덩식 돌덧널무덤으로 확인되었다. 고분의 장축 방향은 등고선과 평행하며, 바닥은 대부분 특별한 시설을 하지 않고 풍화 암반층을 다듬어 그대로 이용하였다. 토기와 철기 등 105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는데, 부장된 토기류를 살펴볼 때 재지계·가야계·백제계·신라계 등이 혼재된 양상을 보이며, 축조 연대는 5세기 후반에서 6세기 전반으로 판단된다.

평지리 고분 떼는 2개소로 나뉘어 있는데, 모두 7기의 구덩식 돌덧널무덤이 조사되었다. 대부분은 등고선과 직교하게 장축 방향을 두었으며 벽석은 위로 올라가면서 조금씩 안으로 기울어지게 쌓았다. 이 중 2호분에서는 20여 점의 통일 신라 시대 토기류가 출토되어 이 지역의 백제 말~통일 신라 초기의 매장법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판단된다. 고분 축조의 중심 연대는 7세기 말엽으로 추정된다.

오룡리 고분 떼는 1998년 군산 대학교 박물관에 의해서 조사되었는데, 1기의 굴식 돌방무덤이 조사되었다. 이 돌방무덤은 생토면을 모서리의 각을 없앤 장방형으로 파내어 토광을 마련하고 그 안에 벽석의 3단까지만 지하에 묻히도록 축조된 형태이다. 돌방은 평면 형태가 남북으로 약간 긴 장방형이며, 벽석은 3단까지 수직으로 쌓고 그 위로는 올라가면서 조금씩 안으로 기울어지게 쌓았다. 돌방의 내부에는 동벽과 남벽에 붙여진 상태로 시상대(屍床臺)가 마련되어 있으며, 시상대가 마련되지 않은 석실의 바닥에는 작은 판석형 천석을 정연하게 깔고 그 사이에는 점성이 강한 점토를 발랐다. 봉분의 가장자리에는 호석이 둘려져 있는데 그 평면 형태는 남쪽 일부를 제외하고는 전체적으로 원형을 띠고 있다. 유물은 대부분 도굴의 피해를 입어 유실되었는데 돌방 내부의 교란된 흙 속에서 뚜껑 있는 합 조각과 청동제 허리띠 장식[靑銅製帶端金具], 뒤꽂이 등이 출토되어 축조 연대를 대략 7세기 후반으로 추정할 수 있다.

수천리 고분 떼의 고분들은 대부분 지형에 따라 등고선 방항에 직교하게 축조되었다. 조사를 통해 고려 시대 돌덧널무덤 53기, 고려·조선 시대 움무덤 37기, 조선 시대 돌덧널무덤 5기, 회곽묘 3기 등 모두 98기의 고분이 확인되었다. 토기류·금속류·장신구류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으며, 이 중 11세기의 것으로 판단되는 해무리굽 청자와 12~13세기의 다양한 청자와 청동 유물 등이 출토되어 이 지역의 고려 시대~조선 시대의 문화상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유적임이 확인되었다.

이처럼 진안군에서는 정식 발굴 조사가 진행된 고분 유적은 소수에 불과하지만 전체적으로 삼국 시대에서 조선 시대까지의 꾸준히 분묘가 조성되었던 것이 확인되었다.

[현황]

진안군에는 총 53개소의 분묘 유적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으나, 정식 발굴 조사가 행해진 유적들은 5개소에 지나지 않는다. 때문에 분묘 유적의 규모와 성격 등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적은 편이다. 따라서 지금까지 조사된 자료만으로 진안 지역에 있는 고분 전체의 성격을 파악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우며, 부분적인 해석만 가능하다. 그간 진안군에서 시행된 발굴 조사는 개발 사업으로 인한 구제 발굴이거나, 일제 강점기부터 지속적으로 진행된 도굴 및 훼손 행위로부터 유적을 보호하고 최소한의 성격을 파악하기 위한 조사에 국한되었다. 앞으로 고분에 대한 체계적인 보호와 관리, 더 나아가 정밀 발굴 조사까지도 시행될 필요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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