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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 문금리 일대에 전해오는 사랑 이야기이자 지명 이야기. 각흘고개는 유구 땅 금계산과 봉소산 사이 온양으로 가는 길에 있다. 고개가 구불구불하고 험준하여 예로부터 외적에 대항하는 장소이기도 하였다. 「각흘고개 전설」은 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대중리에 전해지는 「돌고개전설」과 같이 남녀간의 애절한 사랑의 원한이 깃든 이야기이다. 1992년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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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1년 (공민왕 20)에 공주에 거주하던 이존오(李存吾)[1341~1371]가 지은 시조. 「구름이 무심탄 말이」는 시조집 『청구영언(靑丘永言)』에 전한다. 이존오가 우정언의 직책에 있을 때, 공민왕의 신임을 등에 업고 국정을 전횡하며 풍속을 어지럽히는 신돈의 무리들을 탄핵하다가 장사(전라도 무장, 현 전라북도 고창) 감무로 좌천되었다. 뒤에 향리인 공주의 석탄(石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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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이인면 복룡리에 있는 옥녀봉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2005년 『이인면지』 편찬 때 복룡리에 살고 있는 마을 사람들에게 채록하여 제5장 ‘민속’ 편에 수록하였다. 고려 후기 복룡리의 쌍계에는 만석꾼 부자가 살았다. 만석꾼에게는 옥녀라는 외동딸이 있었다. 만석꾼은 욕심이 많아서 남의 재산까지 탐내어 빼앗곤 했는데, 그때마다 마음 착한 옥녀는 아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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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7년(우왕 3) 정도전이 유배 생활을 마치고 옛집으로 돌아오는 중에 공주의 금강루에 올라 지은 한시. 「제공주금강루」는 작자의 문집인 『삼봉집(三峰集)』 및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권 17, 공주조에 실려 있다. 정도전이 1375년(우왕 원년)에 친원정책을 반대하여 나주로 유배되었다가, 2년 후에 해배되어 상경하는 길에 금강루에 올라 고향으로 돌아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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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문신 이존오(李存吾)의 문집. 저자 이존오는 고려 후기 공민왕 때에 문과에 급제, 우정언이 되어 신돈의 횡포를 탄핵하다가 왕의 노여움을 사 장사감무(長沙監務)로 좌천되었으며, 공주 석탄(石灘)에 은거하다가 세상을 마쳤다. 사후 350년이 지난 1738년(영조 14) 후손들에 의해 문집이 간행되었다. 이것은 초간본이며, 본 『석탄유집』은 초간본을 증보한 중간본(重刊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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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운암리 마곡사 소유의 고려 후기 불경. 『묘법연화경』권6은 절첩본으로 사경의 앞뒤 표지화는 금니로 보상화문 4송이가 장식되어 있다. 표지에는 쌍변의 굵은 태선 안에 네 송이의 보상화문을 바탕에 깔았다. 권의 첫머리에는 ‘묘법연화경권제육요진삼장법사구마라집봉조역묘법연화경 수희공덕품제십팔(妙法蓮華經卷第六姚秦三藏法師鳩摩羅什奉詔譯妙法蓮華經隨喜功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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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운암리 마곡사 소유의 고려 후기 불경. 『감지은니묘법연화경(紺紙銀泥妙法蓮華經)』 권제1은 절첩본으로 사경의 앞뒤 표지화는 금은니로 그려졌고, 권의 첫머리에는 감지에 금니로 변상도(變相圖)가 그려졌으며, 본문은 은니(銀泥)로 사경(寫經)한 것이다. 표지에는 쌍변의 굵은 태선 안에 4송이의 보상화문을 바탕에 깔았다. 권의 첫머리에는 불경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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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운암리 마곡사에 있는 고려 후기의 오층석탑. 탑은 고대 인도 산스크리트어인 스투파(Stupa)를 한자로 음역하면서 솔도파(率堵波), 솔탑파(率塔婆)라 하다가 탑파(塔婆), 탑이라는 줄임말로 부르게 되었다. 스투파의 원래 뜻은 부처의 진신사리를 봉안하는 묘에서 비롯되었다. 처음에는 사원의 중심에 탑을 하나 세워 불사리를 봉안하였으나 나중에는 탑을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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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운암리 마곡사에 있는 고려 후기의 청동 향로. 향로는 보통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졌는데, 고려시대에는 일반적으로 나팔형 받침대를 갖춘 향완(香琓)이 많이 제작되었다. 마곡사 동제은입사향로도 향완의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크게 받침부, 몸체부로 구성되어 있다. 원래는 뚜껑이 있었을 것으로 보이나 현재는 남아 있지 않다. 마곡사 동제은입사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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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6년(명종 6) 공주 명학소에서 망이·망소이의 주도로 일어난 민란. 무신 집권기에 들어서면서 중앙 정부의 지방 통제력 약화, 신분제의 변화, 지방관의 수탈 등이 원인이 되어 전국 곳곳에서 민란이 일어났는데, 특히 소(所)는 특산물을 생산하여 국가에 공납하는 지역으로서 국가나 지방관에 의한 수탈은 다른 지역보다 욱 심각했다. 1176년(명종 6) 정월에 공주에 딸린 천민 마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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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관광단지길 국립공주박물관에 있는 고려 후기의 석조 여래입상. 원래 공주시 신흥리에 있었던 것을 국립공주박물관으로 옮겨 전시 중이다. 원래 석불이 있던 장소의 뒤쪽이 절터로 추정되고 있어서 사찰과 관련 있는 불상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높이 232㎝의 거불로 신체는 거의 원통형이다. 마멸되어 옷주름과 신체의 세부 특징을 파악하기 어렵다. 얼굴은 둥근 편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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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충청남도 공주에 은거한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순경(順卿), 호는 석탄(石灘)·고산(孤山). 이존오는 1360년(공민왕 9)에 문과에 급제하고, 수원(水原)에 있던 경기관찰도(京畿觀察道)의 서기(書記)를 거쳐 사관(史官)에 발탁되었다. 1366년(공민왕 15) 우정언(右正言)이 되어 신돈(辛旽)의 횡포를 탄핵하다가 왕의 노여움을 샀으나, 이색(李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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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기 충청남도 공주에 낙향하여 살던 충신. 본관은 부안(扶安)이며, 1342년(충혜왕 복위3) 전라북도 부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임숙(林淑), 어머니는 유씨(劉氏)이다. 부인은 용성부원군(龍城府院君) 최유(崔濡)의 딸로 네 명의 아들을 두었다. 맏이는 임모(林摹)로 수사(水使), 둘째는 임목(林穆)으로 양양도호부사(襄陽都護府使), 셋째는 임서(林叙)로 충의교위좌군사직(忠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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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6년(우왕 2) 7월 공주목 정현에서 공주목사 김사혁의 부대가 왜구 침입에 대항하여 벌인 전투. 14세기 말은 원의 정치적 간섭으로부터 고려가 벗어나는 시기이지만 또한, 두 차례에 걸친 홍건적의 침입과 함께 전국적인 왜구의 침입이 심각한 현안으로 대두되는 시기였다. 고려 말 왜구의 침입은 충청도의 경우만 53건이 기록되고 있다. 1376년 7월 왜구가 금강을 거슬러서 공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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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공주시 옥룡동에 있는 고려 후기의 효자 이복의 정려비각. 공주시 중동사거리에서 북쪽으로 약 1.08㎞ 정도 가면 도로 오른쪽으로 옥룡동주민센터가 있다. 그 뒤편 언덕에 효자 이복 정려비각이 있다. 효자 이복 정려비각은 원래 옥룡동 비선거리에 방치되어 있었는데, 1978년 이복의 효를 알리기 위해 발기인 이치하와 옥룡동 노인회가 현재의 위치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