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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과 호국ㆍ보훈의 애국심 낙동강 방어선은 6.25 전쟁 당시 북한군의 남진을 막아내기 위해 낙동강을 따라 설정한 방어선을 의미한다. 이 방어선은 동서 80km, 남북 160km로 서북쪽으로는 경북 왜관을 기점으로 하여 동해안의 포항에 이른다. 한편 서쪽은 낙동강 본류를 따라 진주 남강과의 합류지점인 창녕군 남지읍에 이르고, 다시 함안 진동리를 거쳐 진해만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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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각지에서 확인된 여러 형태의 가마터. 가마란 각종 토기, 도기, 자기, 옹기, 기와, 벽돌 등을 고온에서 구워 내었던 구조물이며, 숯을 만들기 위한 시설물도 숯가마[炭窯]라 하여 가마 범주에 포함시킨다. 가마터는 이러한 시설물이 폐기되고 남은 흔적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가마를 크게 한데가마[露天窯]와 굴가마[構造窯, 室窯]로 나누고 있다. 굴가마는 소성실 바닥의 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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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냉천리 가창초등학교 내에 있는 조선 후기의 선정비군.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가창초등학교에는 1753년 건립된 '순찰사 정 상국 휘 익하 영세 불망비(巡察使鄭相國諱益河永世不忘碑)', 1758년 건립된 '관찰사 이 상국 휘 익보 영세 불망비(觀察使李相國諱益輔永世不忘碑)', 1758년 건립된 '관찰사 윤 상국 휘 동도 영세 불망비(觀察使尹相國諱東度永世不忘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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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신라 시대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에 있던 지방 통치 구역. 신라 경덕왕(景德王)[재위742∼765] 때 왕권 강화를 목적으로 한화 정책을 펼치면서 본래 위화군(喟火郡)을 수창군(壽昌郡) 또는 가창군(嘉昌郡)으로 개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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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옥포읍 강림리에 있는 삼국 시대 고분. 강림리 고분 떼는 대구광역시 달성군 옥포읍 강림리 689-1번지에 위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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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검단동 금호강 변에 축조된 고대 토성. 검단토성(檢丹土城)은 대구광역시 북구 금호강변 일대에 축조된 초기 국가 시대의 토성이다. 금호강 교역망을 직접 관여할 수 있는 강변 거점성 구실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는 도로와 공단 등의 건설로 말미암아 흔적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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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지역에서 조선시대 경상도의 행정과 군사·재판 등을 관할하던 행정조직. 조선 전기 경상도는 행정 군사적 필요에 따라 좌도와 우도로 빈번히 분할되기도 하였다. 따라서 경상감영은 조선 개국 때는 경주에 있었으나 그 후 상주와 경주로 나뉘었다가 합치기를 거듭하다가, 임진왜란 이후인 1601년(선조 34)부터는 경상감영이 대구에 정착하여 1895년(고종 32) 8도가 23부로 개편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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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년 2월 4일 대구에 경상감영이 설치된 사건. 조선 전기 경상감영은 경주(慶州)와 상주(尙州)에 있었다. 경상도는 면적이 넓어 낙동강을 중심으로 좌도(左道)와 우도(右道)로 나누기도 하였는데, 경주는 좌도의 감영이었고 상주는 우도의 감영이었다. 경상감영은 임진왜란이 종결된 후 1601년(선조 34)에 대구에 설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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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도호부에 두었던 경상도 감영. 조선은 건국 이후 국가 지배 체제 강화 및 탄력적인 운영을 위하여 고려의 5도 양계제를 8도(道) 체제로 바꾸었다. 이로 인하여 각 도를 관리하기 위한 관찰사, 즉 감사(監使)를 파견하였다. 감사는 감영(監營)이 설치되는 관할 지역의 행정 및 사법권과 나아가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 혹은 수군절도사(水軍節度使)도 겸직하였으므로 군사 지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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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서구 신당동에 있는 계명대학교 동산도서관에 소장된 기록유산. 계명대학교 동산도서관은 1968년 한적실을 설치하여 600여 책의 옛 문헌들을 갖추기 시작하여 현재는 7만 6000여 책을 소장하고 있으며 국가지정문화재 보물 자료 21종 93책과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4종 9책을 보유하고 있다. 국내 대학도서관 가운데 고문헌 소장 규모로는 두 번째 해당할 만큼 우리나라를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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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서구 신당동에 있는 계명대학교 행소박물관에 소장된 국보 및 보물급 탁본. 금석문(金石文)은 종이 기록물에 대응하는 개념으로서 금속이나 돌로 만든 각종 유물에 남겨진 문자 자료를 포함하는 개념이다. 고대사회의 생활상을 연구하는 데에서 제작 연대와 당시 문장 구조, 연호, 인물 등 고대 역사 기록의 공백을 알 수 있게 하는 금석문의 학술적 가치는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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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한시대부터 통일신라까지의 대구광역시 지역의 역사. 한반도 중남부 지방에서 삼한시대는 위만조선의 멸망[기원전 108년]에서부터 이야기할 수 있다. 위만조선의 멸망을 전후하여 다수의 유이민이 남하하였고, 진한(辰韓)의 성립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낙동강 이서 지역에서는 변진(弁辰) 혹은 변한(弁韓)이 성립하였다. 3세기 중엽의 모습을 전하는 『삼국지』 동이전에 의하면, 진한·변한은 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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씩실마을 뒷산 너머에 있는 안건마을의 북동쪽 구릉 자락에는 논공읍의 낙동강 일대 고분군 가운데 가장 숫자가 많은 고분이 조성된 지역이었다. [달성군의 고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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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국가 시대부터 남북국 시대까지 달성 지역의 역사. 달성 지역은 청동기 문화가 발전하면서 주민의 수가 늘어나고 사회 분화가 진행되면서 몇 개의 지역 집단으로 나누어졌으며, 점차 소국[성읍 국가] 단계로 성장하여 삼한 시대에는 변한에 속하였다. 현재 그 정확한 이름은 알 수 없으나, 『일본서기(日本書紀)』에 보이는 탁순국(卓淳國)을 화원 일대에 비정하는 설이 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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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철기 시대부터 남북국시대까지 대구광역시 동구 지역의 역사. 서기전 2세기 무렵부터 한반도 남부 지역 전반에 나타난 현상과 마찬가지로 대구지역에서도 새로운 문화가 유입됨으로써 기존 고인돌문화를 대체해 가는 현상이 벌어졌다. 고인돌과 전혀 계통을 달리하는 나무로 짠 널무덤을 바탕으로 삼은 문화가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처음에는 흑도장경호[검은간토기]나 삼각형점토대토기 등 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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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8년부터 1392년까지 고려왕조 시기 대구광역시 지역의 역사. 후삼국시대는 889년(진성여왕 3)의 이른바 ‘도적 봉기’에서부터 시작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후삼국시대 무렵 신라의 지방 지배 체제가 이미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었고, 각지에서 도적이 그야말로 벌 떼처럼 일어났다고 한다. 이에 각지에서 자위적인 조직이 결성되었는데, 대구 지역에서도 여러 성을 중심으로 독자적인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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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달성 지역의 역사. 현재 대구광역시에 속하는 달성군의 행정 구역은 화원읍·논공읍·다사읍·옥포읍·현풍읍·유가읍등 6읍과 가창면·하빈면·구지면의 3개 면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고려시대에는 독립된 행정 구역으로 존재하지 않았다. 고려 시대에 달성 지역은 동경 유수관(東京留守官)의 속읍인 수성군(壽城郡)·해안현(解顔縣)과 밀성군의 속현인 현풍현(玄豊縣), 상주목 관내인 경산부(京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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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8년부터 1392년까지 고려 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 대구광역시 동구 지역의 역사와 문화 고려 현종 때 5도 양계 체계가 확립되면서 고려 전기 행정 구역은 어느 정도 완성이 되었다. 지방에는 지방관을 파견하는 주현(主縣), 지방관을 파견하지 않는 속현(屬縣)으로 구분하였다. 주현으로는 경(京), 도호부(都護府), 목(牧) 등의 계수관(界首官) 지역과 현(縣)이 있었다. 주현의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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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지역에 있던 조선 후기 유기장 마을. 조선 시대의 소외 계층인 백정(白丁)은 고려 시대의 양수척(楊水尺)이 재인(才人)과 화척(禾尺)으로 분화되었다가 1423년(세종 5)에 개칭된 것이다. 백정으로 개칭된 이후에도 백정들은 성(姓)을 갖지 못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여기저기 떠돌면서 구걸, 사냥, 도살 및 고리·가죽 제품 제조와 판매, 공연[창우(倡優)] 등을 업으로 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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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에 전해오는 고문서와 고도서류. 고문헌(古文獻)은 일반적으로 문서와 서책을 통칭하는 것이다. 달성군의 고문헌은 주로 향교와 서원에 집중되어 있으며, 개별 문중으로는 남평 문씨 인수 문고가 대표적인 소장처이다. 현풍 향교와 도동 서원은 필사 성책류가 주류를 이루며, 녹동 서원과 인흥 서원은 고서가 다수 있다. 이외에 서적 간행을 확인할 수 있는 책판도 도동 서원,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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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 시대에 조영된 달성 지역의 무덤. 고분(古墳)은 일반적으로 지하 또는 지상에 매장 시설을 만들어 시신을 안치하고 그 위에 흙을 높이 쌓아 올려서 만든 오래된 무덤을 통칭한다. 사람의 죽음이 그 신분에 따라 졸(卒)·사(死)·훙(薨)·붕(崩)으로 나누어지듯이 그 주검이 묻힌 무덤도 묘(墓)·분(墳)·총(塚)·능(陵) 등으로 구분되어 사용되고 있다. 묘는 봉분이 없는 일반적인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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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동구에 있는 삼국시대 고분. 대구광역시 북동부에 있는 동구는 금호강변의 너른 충적평야[충적지]와 팔공산에서 내려온 구릉지[산지와 평지의 중간 형태를 갖는 지형]가 발달된 전형적인 배산임수 지형이다. 그래서 대구광역시 동구는 예로부터 사람들이 모여 살기 좋았던 지역으로 보인다. 따라서 여러 골짜기 주변과 강변 충적지를 앞에 둔 개활지[앞이 막힘 없이 탁 트여 시원하게 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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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말 대구의 위상과 수창군 호국성의 장소 추정에 필요한 최치원의 기문. 최치원(崔致遠)[857~?]은 강수(强首), 설총(薛聰)과 더불어 ‘신라 3문장(三文章)’의 한 명으로 존경받는 인물이다. 최치원은 신라의 주도 세력인 진골 출신이 아닌 6두품 출신이다. 868년(경문왕 8) 12세 때 당나라로 유학을 떠나, 874년(경문왕 14) 18세에 빈공과(賓貢科)에 합격할 정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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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에서 확인되는 청동기시대 무덤. 고인돌은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으로 주로 경제력 또는 정치 권력을 가진 지배층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다. 거대한 바위인 덮개돌[상석(上石)], 고임돌[지석(支石)], 석관형·석곽형 무덤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형태에 따라 탁자식(卓子式), 기반식(基盤式)[바둑판식], 개석식(蓋石式), 위석식(圍石式), 묘역식(墓域式)[구획묘(區劃墓)] 등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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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기 시대 달성 지역의 고인돌. 고인돌[支石墓]은 거대한 돌을 이용해 만든 우리나라 청동기 시대의 가장 대표적인 무덤으로, 돌널무덤[石棺墓], 독무덤[甕棺墓]과 함께 사용되었으며 전국적으로 분포하고 있다. 고인돌은 대부분 무덤으로 쓰였지만 공동 무덤을 상징하는 묘표석(墓標石)으로, 또는 종족이나 집단의 모임 장소나 의식을 행하는 제단[기념물]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거대한 고인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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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말 고려 초 현재 대구광역시 수성구에 편입된 고산 지역에 있었던 성. 『신증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경산현 고적 조에 금성(金城), 우곡성(于谷城)과 함께 나타나 있다. 세주(細註)에 인용된 『주관육익(周官六翼)』에는 신라 때 금성, 우곡성, 고포성을 합쳐서 압량군(押梁郡)을 만들었고 통합한 뒤 고쳐서 세 성으로 만들었다고 되어 있는데, 대체로 신라 말에 압량군, 즉 장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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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 많고 다리 많은 대촌, 다리목마을 교항리(橋項里)는 본래 다리목마을인 교항 1리와 법화 마을인 교항 2리로 이루어져 있었다. 최근에는 이들 마을 사이에 뉴제림 타운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교항 3리가 새로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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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7년[태조 10] 지금의 대구광역시 동구 팔공산 일대에서 고려태조 왕건과 후백제 견훤 사이에 벌어진 전투. 공산전투는 후백제의 견훤(甄萱)이 영천 지방을 습격하고 신라의 수도인 경주를 핍박할 즈음에 위기를 느낀 신라의 경애왕이 고려의 왕건(王建)에게 구원을 요청한 데서 비롯된다. 태조 왕건은 곧 군사를 이끌고 출전하였다. 그러나 태조의 원군이 이르기도 전에 후백제군은 경주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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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 대암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곽월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신도비. 곽월(郭越)[1518~1586]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현풍(玄風), 자는 시정(時靜), 호는 정재(定齋)이며, 의병장 곽재우의 아버지이다. 1546년(명종 1)에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1556년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호조 참의, 청송 부사, 남원 부사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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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 대암리에 있는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 곽재우의 묘비. 곽재우[1552~1617]는 경상남도 의령군 유곡면 세천리에서 출생하여 임진왜란 때 의령에서 큰 공을 세웠고, 여러 벼슬에 제수되었으나 관직에 오래 머물지 않고 귀향하여 낙동강 변에 망우당(忘憂堂)을 짓고 수학하면서 조용히 생애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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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읍 가태리에 있는 의병장 곽재우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신도비. 곽재우(郭再祐)[1552~1617]는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으로 본관은 현풍(玄風), 자는 계수(季綏), 호는 망우당(忘憂堂)이다. 1592년 5월 하순경 함안군을 완전 점령하고 정암진 도하 작전을 전개한 왜병을 맞아 대승을 거둠으로써, 경상 우도를 보존해 농민들로 하여금 평상시와 다름없이 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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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읍 가태리에 있는 임진왜란 때 순절한 곽준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신도비. 곽준[1551~1579]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현풍(玄風), 자는 양정(養靜), 호는 존재(存齋)이다. 임진왜란 때 의병장 김면(金沔)이 의병을 규합하자 평소에 친히 지내던 교분으로 참가하여 공을 세웠다. 1597년 정유재란 때 안음 현감으로 함양 군수 조종도(趙宗道)와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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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에 있는 조선 후기 별무사와 선무군관의 시험을 관장하던 관아. 관덕당(觀德堂)은 1749년(영조 25) 관찰사 민백상(閔百祥)이 별무사(別武士)와 선무군관(選武軍官)의 통합 시험장이 있던 대구읍성 남쪽에 세운 관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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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 도동리에 있는 조선 후기에 세운 정자. 관수정(觀水亭)은 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 구지서로 706-20[도동리 65]에 있다. 달성군 현풍읍 소재지에 위치한 현풍 중학교·현풍 고등학교 정문에서 현풍교를 건너 약 300m 가서 달성 우체국 반대 방향으로 우회전하여 현풍서로를 따라 다람재를 넘어 약 8㎞를 가면 달성 도동 서원이 있는 달성군 구지면 도동 1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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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중구 달성동 달성공원 내에 있는 누각. 관풍루는 1601년(선조 34)에 경상감영이 대구 지역에 설치되면서 세워진 경상감영의 정문인 누각이다. 대구에 감영이 설치되면서 선화당(宣化堂)의 정남쪽에 포정문(布政門)을 세우고 포정문 위에 관풍루를 만들었다. 관풍루의 원래 명칭은 ‘폐문루(閉文樓)’였다. 주위에 북, 종, 피리, 나팔 등을 갖추어 놓고 매일 새벽 다섯 시와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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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연경동에 있는 조선 15대 임금 광해군의 태실. 태실(胎室)은 조선 왕실에서 자녀가 태어날 경우 아이의 태를 길한 곳에 묻던 곳을 말한다. 아이의 태를 소중히 하는 것은 아이의 성장에 중요하다고 여겼고, 특히 왕실의 경우에는 국운과도 연관이 있다고 여겼다. 광해군왕 태실(光海君王 胎室)은 조선 15대 임금 광해군(光海君)[1575~1641]의 태실인데, 1609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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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옥포읍 강림리에 있던 청동기 시대부터 근대까지의 유적. 현재 대구광역시 달성군 옥포읍 교항리와 강림리의 대규모 아파트 단지인 옥포 지구가 교항리·강림리 유적(橋項里·江林里遺蹟)이 위치하였던 곳이다. 조사 당시 유적의 북쪽은 유정지, 남쪽은 88 올림픽 고속 국도, 동쪽은 달성군 농업 기술 센터, 서쪽은 강림1리 마을과 경서 중학교가 조사 경계 지점이었다. 8개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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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에서 확인된 구석기시대·신석기시대 유적. 구석기시대(舊石器時代)는 지질사적으로 갱신세(更新世)[Pleistocene]에 속하는데, 지금으로부터 약 260만 년 전부터 12,000년 전까지의 시기에 해당하며, 이 때 지구의 기후는 추워져 흔히 빙하시대라고 부른다. 구석기시대의 편년은 주로 지질학적인 구조, 기후와 연관된 퇴적학적인 주기, 절대연대 그리고 석기의 기술적인 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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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시대부터 고려 시대까지 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에 있던 특수한 지방 통치 구역. 부곡(部曲)에 대해서 가장 명확하고 구체적인 설명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여주목 고적 조에 있는 등신장(登神莊)에 관한 기록에서 찾을 수 있다. 여기에 “이제 살펴보건대 신라가 주군현(州郡縣)을 설치할 때 그 전정(田丁)이나 호구(戶口)가 현이 될 수 없는 것은 향 또는 부곡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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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에서 출토되는 삼국시대 항아리. 귀항아리는 어깨 또는 목 부분에 귀[耳] 모양의 손잡이가 여러 개 달린 항아리 모양 토기[호형토기(壺形土器)]이며, 여러귀항아리[다이호(多耳壺)]라고도 한다. 귀항아리의 귀의 수는 2개에서 5개까지 있으며, 귀의 형태는 네모·사다리꼴·닭 볏 모양·짧은 쇠뿔 모양·원통 모양 등 다양하다. 귀에는 작은 원형 구멍이 뚫린 것과 뚫려 있지 않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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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논공읍 금포리에 있는 삼국 시대 고분. 금포리 고분 떼는 대구광역시 달성군 논공읍 금포리 1173-2번지 일대 공살미산에 위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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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논공읍 금포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의 고인돌 떼. 금포리 고인돌 떼는 대구광역시 달성군 논공읍 금포리 1631번지에 위치한다. 낙동강으로부터 동쪽으로 약 2㎞ 떨어져 있는 달성군 논공읍 금포리 새터 마을 동쪽 산기슭에 6기가 있다. 1기[1호]는 괴석형[塊石]이고, 나머지 5기는 장방형으로 자연석에 가까워 진위 여부를 판단하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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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동쪽에서 유입하여 북쪽을 거쳐 서쪽으로 흘러 달성군 다사읍 부근에서 낙동강으로 합류하는 강. 금호(琴湖)는 오늘날 금호강(琴湖江)이다. 『세종실록지리지』 150권 「경주부·대구군」 편에 의하면 “금호는 그 근원이 영천(永川) 모자산(母子山)에서 나와 서쪽으로 흘러서 군(郡) 북쪽으로 지나가고, 또 서남쪽으로 흘러 낙동강(洛東江)으로 들어간다”고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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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 상리에 있는 김광태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조선 후기의 기적비. 김광태(金光泰)는 1755년(영조 31)에서 1760년까지 현풍 현감을 지냈다. 현감 재임 시 현 위치로 현풍 향교를 이건하였는데, 이로 인해 김광태의 공적을 칭송하는 비가 세워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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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 도동리에 있는 문신 김굉필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조선 후기의 신도비. 김굉필(金宏弼)[1454~1504]은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학자로 본관은 서흥(瑞興), 자는 대유(大猷), 호는 사옹(簑翁)·한훤당(寒暄堂)이다. 김종직(金宗直)의 문하에 들어가 『소학(小學)』을 배웠으며, 이를 계기로 스스로를 ‘소학 동자’라 일컬었고, 평생토록 『소학』을 독신(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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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남구에서 선사시대부터 근대까지 전하여 오는 주요 문화유산. 대구광역시 남구의 문화유산을 문화재·유적 위주로 살펴보면, 국가지정문화재 보물 3점, 국가등록문화재 1건이 있으며, 대구광역시 지정 문화재로는 유형문화재 6점, 무형문화재 1건, 기념물 1건, 문화재자료 1건이 있어, 모두 13건의 지정문화재가 있다. 그 밖에도 비지정문화재로 청동기시대의 고인돌와 취락, 삼국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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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논공읍 남리에 있는 봉수 터.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를 비롯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여지도서(輿地圖書)』 등 조선 시대에 편찬된 지리지 등에 현풍현(玄風縣)의 봉수로 1곳이 기재되어 있는데, 바로 '소산 봉수(所山烽燧)'이다. 소산 봉수는 현풍현의 북쪽에 있는데 남쪽으로 창녕(昌寧) 합산(合山)[봉수]에 응하고, 북으로는 성주(星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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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 내리에 있는 삼국 시대 고분. 내리 고분 떼는 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 내리 산24-1번지에 위치한다. 장동 마을 북쪽에 동쪽으로 뻗어 내린 해발 60m가량의 나지막한 구릉의 정상부와 비탈에 분포하고 있다. 도로 맞은편에는 달성 2차 지방 산업 단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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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 내리에 있는 토성. 내리 토성(內里土城)은 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 내리 441-1번지 성담 마을 북서쪽 구릉 일대로, 낙동강과 접하는 해발 25m 돌출된 독립 구릉 정상에 위치한다. 마을 이름을 따라서 성담 토성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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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냉천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의 고인돌. 냉천리 고인돌은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냉천리 33번지의 신천 변에 위치한다. 냉천리지석묘군(冷泉里支石墓群) Ⅲ[대구광역시 기념물 제14호]에서 신천을 따라 북쪽으로 800m 가면 행정리 밑끝 마을로 들어가는 행정교 입구의 버스 정류장이 있는데, 버스 정류장 옆 밭둑에 고인돌 1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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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냉천리에 있는 삼국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의 유적. 냉천리 유적(冷泉里遺蹟)은 현재 국가 지원 지방도 30호선 가창~청도 구간 중 가창중학교 진입로와 가창 초등학교 사이의 도로 일부에 위치한다. 조사 지역은 신천의 상류 지역으로 곳곳이 산록으로 이어져 평야는 없으나,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냉천리와 대일리 일대의 신천 범람원과 산록 산상지의 곡간 평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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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냉천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의 고인돌 떼. 냉천리지석묘군(冷泉里支石墓群)은 크게 세 지역에 걸쳐 분포하고 있다. 냉천리지석묘군 Ⅰ은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냉천리 416번지에, 냉천리지석묘군 Ⅱ는 냉천리 385-12번지에, 냉천리지석묘군 Ⅲ은 냉천리 387-1번지에 위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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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시대 대구광역시 달성군 일대에 있던 소국. 다벌국(多伐國)은 초기 철기 시대 철기 문화를 바탕으로 사회 통합을 진전시켜 나갔으며, 읍락(邑落)을 중심으로 국가를 형성시켰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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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시대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에 있던 지방 통치 구역. 신라가 고대 국가로 성장함에 따라 확대된 영토를 효과적으로 통치할 목적으로 군현 제도를 시행하였다. 파사 이사금 시기에 음즙벌국을 취해 현(縣)을 설치하였다는 예로 보아 다사지현(多斯只縣)은 108년(파사 이사금 29) 다벌국을 병합함에 따라 109년에 다사지현을 설치하였다고 짐작된다. 반면에 무열왕 이전의 중고 시대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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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9년 신라 신문왕이 도읍을 지금의 대구 지역인 달구벌로 옮기고자 하였으나 실현하지 못한 사건. 『삼국사기(三國史記)』 신라본기 신문왕 9년(689) 조에 도읍을 달구벌(達句伐)로 옮기고자 하였으나 실현하지 못하였다[未果]고 기록되어 있다. 여기에서 달구벌은 경덕왕 때 대구현(大丘縣)으로 고친 달구화현(達句火縣)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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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시대 대구 지역과 신라 신문왕의 달구벌 천도 시도. 『삼국사기(三國史記)』 신라본기 신문왕 9년[689] 조에 도읍을 달구벌(達句伐)로 옮기고자 하였으나 실현하지 못하였다[未果]고 기록되어 있다. 여기에서 달구벌은 『삼국사기』 지리지에 나오는 달구화현(達句火縣)을 말하며, 경덕왕 때 대구현(大丘縣)으로 고쳐진 현재의 대구 지역을 뜻한다. 기존에는 달구벌 천도 계획에 대하여 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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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시대 대구광역시 달성군에 있던 소국. 『삼국사기(三國史記)』 권1, 신라 본기 파사 이사금 29년[108] 5월 조에는 군대를 보내 다벌국(多伐國)을 정복하였다는 기록이 있고, 『삼국사기』 권37 지리 조에는 ‘삼국의 이름만 있고 그 위치가 상세하지 않은 곳’ 항목에 다벌국이 포함되어 있다. ‘다벌국’은 ‘달구벌국(達句伐國)’의 별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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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대구광역시 중구, 서구, 동구 일부, 북구 일부, 달서구 일부를 관할한 신라의 지방 행정구역. 달구화현(達句火縣)은 현재의 대구광역시 중구, 서구, 동구 일부, 북구 일부, 달서구 일부를 관할한 757년(신라 경덕왕 16) 이전 신라의 지방 행정구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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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시대 대구광역시 달성군에 있던 지방 통치 구역. 신라가 고대 국가로 성장함에 따라 확대된 영토를 효과적으로 통치할 목적으로 군현 제도를 시행하였다. 이에 지금의 대구광역시 달성군 일대는 달구화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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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9년 1월 19일 지금의 대구 지역인 달벌에서 신라의 왕족 김우징이 민애왕 군대와 싸워 승리한 전투. 836년 12월에 흥덕왕이 죽자 격심한 왕위 쟁탈전이 벌어졌다. 상대등 김균정(金均貞)이 피살되고 김제륭(金悌隆)이 승리하여 희강왕이 되었다. 희강왕은 다시 상대등 김명(金明)의 핍박을 받아 자살하고, 김명이 민애왕(閔哀王)으로 즉위하였다. 그러나 다시 궁복(弓福)[장보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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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신라가 현재의 대구 지역에 축조한 성. 지금의 대구광역시 일대에 신라가 축조한 성이다. 삼국시대 당시 대구 지역은 ‘달벌성’ 또는 ‘달불성’으로 불린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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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시대 대구광역시 달성군에 있던 성. 지금의 대구광역시 일대는 신라 때 달벌성(達伐城) 또는 달불성(達弗城)이라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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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감문리 달서고등학교 내에 있던 조선 후기 경상도 관찰사와 대구 판관의 선정비. 달서고등학교 내에는 경상도 관찰사 황선(黃璿)과 조영복(趙榮福), 대구 판관 김병우(金炳愚)와 송태진(宋泰鎭)의 선정비가 있었으나 현재는 멸실된 상태이다. 황선은 1727년 7월부터 1728년 4월까지, 조영복은 1725년(영조 1) 6월부터 1726년 5월까지 경상도 관찰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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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서구의 선사시대 발달상을 보여 주는 유적들. 대구광역시 전역에 걸쳐 발견되는 입석, 토기, 공룡 발자국 등은 대구의 오랜 역사를 말하여 준다. 분지 지형인 대구는 공간의 특성과 자연환경의 영향으로 선사 및 고대 유적이 종종 발견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달서구는 선사시대 유적이 집중 분포되어 선사유적공원이 있을 정도이다. 2025년 대구광역시청 신청사 예정지인 달서구가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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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서구의 선사시대부터 근대까지 주요한 문화유산. 달서구에는 국가지정문화재인 보물 25건, 사적 1건, 대구광역시 지정 유형문화재 9건, 무형문화재 2건, 민속문화재 1건 등 모두 38건의 지정문화재가 있다. 보물 23건과 유형문화재 7건은 계명대학교의 구입소장품으로 순수한 달서구의 문화재로 보기는 어렵다. 지정문화재는 2021년 6월 2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개정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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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하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에 세운 정자. 달성 하목정(達城霞鶩亭)은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하목정길 56-10[하산리 1043-1]에 있다. 대구 문양 차량 기지 사업소에서 국도 30호선을 따라 성주 방면으로 약 3.2㎞ 가면 동곡 교차로가 나오는데, 동곡 교차로 우측에 달성군 하빈면 하산리가 있다. 달성 하목정은 동곡 교차로에서 성주 대교 방향으로 약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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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 상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얼음 창고. 달성 현풍 석빙고(達城玄風石氷庫)의 축조 연대에 대해서는 그동안 여러 설이 있어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었다. 그러나 1982년에 달성 현풍 석빙고의 주변 보수 작업을 할 때 '현풍 석빙고 건성비(玄風石氷庫建成碑)'가 발견되면서 정확한 시기를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현풍 석빙고 건성비에 따르면, 이 빙고가 축조된 것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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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 상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석빙고 건립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 달성 현풍 석빙고 건성비는 1982년 달성 현풍 석빙고 주변 보수 작업 때 발견되었다. 비에는 달성 현풍 석빙고 건립 연도와 건립에 관련된 인물들이 기록되어 있다. 달성 현풍 석빙고 건성비에 따르면 빙고는 1730년(영조 6)에 건립되었다. 현감(縣監) 이우인(李友仁)을 비롯하여 도감(都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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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달성 지역의 역제. 조선은 건국 초기 고려의 역제(驛制)를 답습하였으나 역(驛)의 관리 체제 개혁, 역원(驛員)의 보충, 역로(驛路)의 보수 등을 지속적으로 추진하였고, 『경국대전(經國大典)』의 완성으로 새로운 조선의 역제를 확립하였다. 역을 관할하는 최고 기관은 병조(兵曹)였으며, 지방의 각 도(道)에는 찰방(察訪)과 역승(驛丞)을 파견하여 도내(道內)의 역 업무를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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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달성 지역의 호구 상황. 조선 조정의 국가 통치에 있어 역(役)의 동원 및 조세의 수취 등 재정 확보를 위한 자국민의 인구수 파악과 현황을 조사하여 관리하는 일은 중요한 업무였다. 따라서 주기적으로 호구 즉 호주를 중심으로 한 가족의 거주지, 인구수, 연령, 성별 등을 파악하여 행정에 반영하였다. 이를 위해 조선은 한 지역의 인구수를 기준으로 하여 관리 운영에 적합한 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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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달천리에 있던 신석기 시대와 조선 시대의 유적. 달천리 135유적은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달천리에 있는 달내 마을 좌측 편에 위치한다. 이곳은 박산[215.4m]과 용산[250m] 정상에서 남쪽으로 뻗어 내려오는 구릉의 말단과 접하고, 동편과 서편은 이 구릉 사이에 형성된 낫끌골 등 소규모 골짜기와 접해 있다. 유적의 남쪽은 달내 마을에서 다사읍 소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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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가천동에 있는 삼국시대 고분군. 대구 가천동 고분군(大邱佳川洞古墳群)은 고모령을 넘어 대구광역시로 들어서면 나오는 수성구 가천동 마을의 북쪽 능선 일대의 해발 76m 정도의 낮은 구릉에 넓게 분포한다. 대구 가천동 고분군은 고산~무열로 간 국도와 중앙고속도로 사이에 있으며, 고분군의 북쪽에는 금호강이 인접하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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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가천동에 있는 고려시대 생활 유적. 대구 가천동 공방지는 대구선 철도 이설 공사에 앞서 영남문화재연구원에서 1998년 11월 16일부터 1999년 7월 31일까지 발굴 조사를 진행하였다. 조사 결과 남북국시대에서 고려시대에 이르는 수혈 유구(竪穴遺構), 도랑 유구(溝狀遺構), 기둥구멍[柱穴], 화덕자리[爐蹟], 동물 매납 유구, 하천 등이 확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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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가천동에 있는 삼국시대 고분. 대구 가천동 유적1은 천을산[해발 156m]에서 서쪽의 가천동 마을로 뻗어 내린 능선 끝부분인 대구광역시 수성구 가천동 산11-17, 산11-35 일대이다. 북쪽에는 가천동 고분군①과 가천동 고분군②, 동쪽으로 이어지는 언덕에는 가천동 유물산포지③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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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가천동에 있는 청동기시대 생활 유적. 대구 가천동 유적2는 대구-부산 간 고속도로 건설을 앞두고 영남문화재연구원이 2002년 3월 30일부터 2002년 10월 8일까지 진행한 다섯 개 지구의 발굴 조사 중 제1지구에 해당하며, 청동기시대 집터와 더불어 시대를 알 수 없는 구상유구(溝狀遺構)가 확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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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가천동에 있는 삼국시대 고분 및 고려시대 생활 유적. 대구 가천동 유적3는 대구-부산 간 고속도로 건설을 앞두고 영남문화재연구원이 2002년 3월 30일부터 2002년 10월 8일까지 진행한 다섯 개 지구의 발굴 조사 중 제2지구에 해당하며, 삼국시대 돌덧널무덤과 고려시대 건물터가 발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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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가천동에 있는 조선시대 생활 유적. 대구 가천동 유적4는 대구-부산 간 고속도로 건설을 앞두고 영남문화재연구원이 2002년 3월 30일부터 2002년 10월 8일까지 진행한 5개 지구의 발굴 조사 중 제4지구에 해당하며, 조선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도랑 형태의 유구가 확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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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가천동에 있는 삼국시대 고분과 조선시대 고분 및 생활 유적. 가천동 유적5는 대구광역시 수성구 가천동 541-12, 544-1, 347-1번지 일대에 있다. 천을산[해발 156m]에서 서쪽으로 뻗어 내린 능선의 끝부분에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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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중구 포정동에 있는 조선시대 경상도관찰사가 집무를 보던 관아의 터. 대구 경상감영지(大邱 慶尙監營址)는 조선의 지방 통치를 담당하던 8도제가 확립된 이후 경상도를 관할하던 관찰사가 거처하며 집무를 보던 곳이다. 조선 전기에 경상도는 좌도와 우도로 나누어졌다가 합쳐지기가 되풀이됨에 따라 경상감영도 여러 곳으로 옮겨 다녔다. 개국 초부터 1407년(태종 7)까지는 감영을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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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고모동에 있는 삼국시대 고분군. 대구 고모동 고분군(大邱顧母洞古墳群)은 대구광역시 수성구 고모동에 있는 삼국시대 고분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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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관음동에 있는 삼국시대 고분 및 조선시대 생활 유적. 대구 관음동 유적은 대구-춘천 간 고속도로 건설을 앞두고 1990년 6월 1일부터 1990년 12월 17일까지 경북대학교박물관에서 발굴 조사를 진행하였다. 조사한 결과를 보면, 삼국시대의 돌덧널무덤과 조선시대의 기와 폐기장이 확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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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중구 교동 일대에 있었던 청동기시대 고인돌. 대구 교동 고인돌은 칠성동 고인돌과 동문동 고인돌 사이에 있으며, ‘신천 좌안의 고인돌’ 또는 ‘신천 유역의 고인돌’로 불린다. 『대구부사(大邱府史)』에 따르면 북룡강정(北龍岡町) 서쪽 도로의 서쪽이며, 기예학교(技藝學校)의 북쪽에 있었으나, 일제강점기 오구라 다케노스케[小倉武之助]의 집으로 옮겼다고 기록되었다. 교동 일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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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구암동에 있는 삼국시대 고분군. 대구 구암동 고분군(大邱鳩岩洞古墳群)은 대구에서 조성된 고분군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며, 팔거산성과 구암동 생활 유적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특성을 보인다. 2015년 지표조사를 통하여 222기가 추가로 확인되어 모두 379기의 봉토분이 확인되었다. 함지산 정상에서 구암중학교와 구화사 방면으로 뻗어 내린 2개의 능선에 대형 봉토분을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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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구암동에 있는 청동기시대 생활 유적 및 남북국시대 병영지 유적. 대구광역시 칠곡 3택지의 개발에 앞서 한국문화재보호재단에서 1997년 8월 1일부터 1998년 11월 15일까지 2구역과 3구역에 대하여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2구역 조사 결과 청동기시대 유구는 돌무지[적석유구(積石遺構)] 1기, 도랑 11기, 기타 2기 등 14기가 확인되었고, 남북국시대 유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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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구암동에 있는 삼국시대 마을 유적. 대구 구암동 삼국시대 취락지(大邱鳩岩洞三國時代聚落地)는 대구광역시 북구 구암동에 있는 삼국시대 마을 유적이다. 칠곡 택지2지구 조성사업에 앞서 1992년 8월 6일부터 1992년 10월 6일까지 경북대학교박물관에서 Ⅰ구역에 대하여 발굴 조사를 진행하였다. Ⅱ구역은 중앙부가 보존구역으로 설정되어 공원이 조성되었고, 가장자리 도로 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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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구암동에 있는 삼국시대 고분과 조선시대 고분, 생활 유적. 대구 구암동 유적(大邱 鳩岩洞 遺跡)은 대구광역시 북구 구암동에 있는 삼국시대 고분과 조선시대 고분, 생활 유적이다. 2001년 6월 18일부터 7월 5일까지 영남문화재연구원에서 발굴 조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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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국우동에 있는 고려시대 생활 유적. 대구 국우동 건물지는 고려시대의 생활 유적으로, 칠곡3택지 개발사업과 관련하여 영남문화재연구원에서 1998년 2월 4일부터 1998년 7월 31일까지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조사 결과 고려시대 적심건물기 10기, 고상건물지 3기, 수혈건물지 2기, 담장 1기, 화덕자리 18기, 수혈 9기, 도랑 1기와 고려시대 이후의 삼가마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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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국우동에 있는 청동기시대부터 초기 철기시대의 생활 유적. 대구 국우동 유적(大邱國優洞遺蹟)은 청동기시대부터 초기 철기시대까지의 생활 유적이다. 대구 칠곡3택지개발에 앞서 한국문화재보호재단에서 1997년 8월 1일부터 1998년 11월 15일까지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조사 결과 청동기시대부터 초기 철기시대 집자리[住居址] 8기, 고상건물지 6기, 수혈 14기, 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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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금호동에서 발굴 조사된 고려시대 및 조선시대 생활 유적. 대구 금호동 건물지는 대구-춘천 간 고속도로 건설과 관련하여 1990년 6월 1일부터 1990년 12월 17일까지 경북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조사 결과 정면 1칸, 측면 1칸의 문지와 남북으로 긴 건물의 측면 일부가 확인되었으며, 도질 토기 조각, 청자, 백자, 분청사기, 기와 등 시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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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금호동에 있는 삼국시대 고분군. 대구 금호동 고분군(大邱琴湖洞古墳群)은 대구광역시 북구 금호동에 있는 삼국시대 고분군이다. 1990년 10월 25일부터 11월 30일까지 대구교육대학교박물관에서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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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중구 남성로에 있는 조선시대 및 현대 생활 유적. 대구 남성로 유적(大邱 南城路 遺蹟)은 대구광역시 중구 남성로에 있는 조선시대 및 현대 생활 유적이다. 한방테마거리 조성 사업에 앞서 영남문화재연구원에서 2003년 4월 1일부터 2003년 5월 3일까지 발굴 조사하였다. 조사 결과 수혈 유구 12기, 우물 7기가 확인되었으며 유물로는 자기류, 옹기류, 원형가공품 등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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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노변동에 있는 삼국시대 고분군. 대구 노변동 고분군(大邱蘆邊洞古墳群)은 대구광역시 수성구 노변동에 있는 삼국시대 고분군이다. 1992년 3월 15일부터 1995년 3월 15일까지 영남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 조사하였고, 1999년 2월 1일부터 2000년 8월 28일까지 영남문화재연구원에서 발굴 조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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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노변동 일대에 있는 대규모 고분군. 대구 노변동 유적(大邱蘆邊洞遺跡)은 대구광역시 수성구 노변동 일대에 있는 대규모 고분군이다. 삼국시대 및 조선시대 무덤과 유구가 발굴 조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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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중구 달성동에 있는 삼국시대 성곽. 달성은 신라가 대구 지역을 통치하기 위하여 중심부에 쌓은 군사 및 공해 시설이다. 처음에는 토성의 형태로 쌓았다가 5세기 이후 석축을 부가하여 토석혼축성(土石混築城)으로 완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처음에는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첨해이사금(沾解尼師今) 15년(261) 2월 달벌성이란 이름으로 축성하였다는 기록이 전한다. 이후 『경상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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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서구 비산동과 내당동에 있는 삼국시대 고분군. 대구 달성 고분군(大邱達城古墳群)은 달성토성의 남서쪽에 있으며 달성토성과 함께 대구의 중심부에 있는 유적이다. 일제강점기 조사 때 행정구역상 ‘달서면 고분군’으로 명명되었다가 1938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비산·내당동 고분군’으로 불리었다. 최근에는 인접한 달성에서 이름을 따 ‘달성 고분군’으로 불린다. 대구 달성 고분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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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서구 비산동과 내당동 일대에 분포하고 있는 달성 고분군에서 출토된 유물 일괄. 대구 달성 고분군(大邱 達城 古墳群)은 달성(達城)에서 시작하여 서쪽 와룡산(臥龍山) 방면으로 연결되는 구릉에 조성된 고분군인데, 모두 일곱 개의 무리로 나누어진다. 지금은 파괴되어 거의 흔적이 확인되지 않지만, 일제강점기에 봉분이 있는 것만 87기가 확인되었다. 봉분 중에서 34호 2덧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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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서구 대곡동에 있는 청동기시대 생활 유적. 대구 대곡동 유적은 진천 지구 토지구획정리사업을 앞두고 대구교육대학교 박물관과 경북대학교 박물관이 1998년 9월 25일부터 1998년 10월 14일까지 공동으로 시굴 조사를 실시한 생활 유적이다. 조사 결과, 조사 지역의 북쪽과 남쪽에서 각각 소혈 수혈(竪穴) 1기와 민무늬토기 포함층이 확인되었고, 뚜렷한 정형성을 갖춘 유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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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에 있는 삼국시대 고분군. 대구 대명동 고분군(大邱 大明洞 古墳群)은 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에 있는 삼국시대 고분군이다. 2019년 7월 23일부터 2019년 11월 13일까지 삼한문화재연구원에서 발굴 조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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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에 있는 굴. 대구 대명동 왕굴(大邱大明洞王窟)은 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에 있다. 고려 왕건(王建)과 후백제의 견훤(甄萱)이 927년 팔공산 공산동수(公山桐藪)에서 전투를 하였는데 왕건에게 전세가 불리하였다. 이때 신숭겸(申崇謙) 장군 등은 왕건이 미복(微服)으로 탈출하도록 하였다. 전투는 대패하였고 신숭겸 등은 지묘동 미리사(美理寺) 앞에서 전사하였다. 왕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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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중구 대봉동 일대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 대구 대봉동 고인돌은 대구광역시 중구 대봉동 일대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이며, 신천 변의 자연제방에 분포하여 ‘신천 좌안의 고인돌’ 또는 ‘신천 유역의 고인돌’로 불린다. 대구 대봉동 고인돌Ⅰ은 현재 ‘경북대학교 사범대학부설중·고등학교 내 지석묘’로도 불린다. 『대구부사(大邱府史)』에 대구사범학교[현재 경북대학교 사범대학부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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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중구 대봉동에 있던 신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생활 유적. 대구 대봉동 유적(大邱大鳳洞遺跡)은 대구광역시 중구 대봉동에 있었던 신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생활 유적이다. 대구상업고등학교[현 대구상원고등학교]가 있었던 자리에 계획된 주상복합건물 신축에 앞서 2003년 9월 16일부터 2004년 11월 30일까지 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에서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조사 결과 신석기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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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서구 대천동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 대구 대천동(大邱大泉洞) 고인돌이 있는 대천동은 달서구의 서남부에 있는 동으로 월배 지구의 일부이며, 아파트 주거 단지로 개발되어 있다. 대구 대천동 고인돌은 한샘마을 일대에 있는데, 노거수 아래 상석 3기가 나란히 놓여져 있었다. 주변에서 옮겨온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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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서구 대천동에 있는 신석기시대 생활 유적. 대구 대천동 신석기 유적(大邱大泉洞新石器遺蹟)은 대구광역시 달서구 대천동 413번지 일대에 있다. 대천동 413번지 일대는 진천천 하류부 북안에 넓게 펼쳐져 있는 월배 선상지의 선단부에 해당되며, 사방으로 선상지 충적평야가 이어진다. 월배 선상지에는 월성동 777-2번지 구석기 유적, 유천동 248-1번지 신석기 유적과 상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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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서구 대천동에 있는 청동기시대 생활 유적. 현대홈타운아파트 신축에 앞서 2005년 7월 26일부터 10월 31일까지 경주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조사 결과 신석기시대 집자리 1기, 청동기시대 집자리 4기, 도랑유구 1기, 유물산포지, 근현대의 우물 20기, 집석 3기가 확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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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대현동에 있는 초기 국가 시대 나무널무덤. 대구 대현동 유적(大邱大賢洞遺跡)은 초기 국가 시대로 추정되는 나무널무덤이 발굴 조사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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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대흥동에 있는 삼국시대 고분군. 대구 대흥동 고분군(大邱大興洞古墳群)은 대구광역시 수성구 남쪽에 솟아 있는 대덕산[599.5m]에서 북쪽으로 뻗어 내린 구릉의 말단부에 있다. 서쪽 구릉 말단부에는 대구 삼덕동 고분군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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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도남동에 있는 개항기 인천이씨 쌍명재공파 국동파 문중의 서사. 대구 도남동 유화당(大邱 道南洞 有華堂)은 1,600년대 중후반 대구광역시 북구 도남동에 세거지를 마련한 인천 이씨 쌍명재공파(雙明齋公派) 국동파(菊洞派) 문중의 서사(書舍)이다. 현재 건물은 1864년(고종 1) 건립되었다. 1916년 대대적인 보수가 있었으며, 별칭으로 ‘국동서실(菊洞書室)’이라고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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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서구 도원동에 있는 고려시대부터 근세까지 무덤 유적. 대구 도원동 분묘군(大邱桃源洞墳墓群)은 대구광역시 달서구 도원동에 있는 고려시대부터 근세까지 무덤 유적이다. 대구대곡택지개발사업에 앞서 1994년 3월 30일부터 7월 31일까지 대구가톨릭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조사 결과 고분지구[가 지구]에서는 고려시대 분묘 4기, 토기요지지구[나 지구]에서 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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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서구 도원동에서 발굴 조사된 삼국시대 토기 가마터. 대구 도원동 토기요지가 있는 대구광역시 달서구 도원동은 달서구 남동쪽에 있는 삼필봉[468m]과 청룡산[794m] 사이의 곡부와 북쪽 산지로 이루어져 있다. 대구 도원동 토기요지는 삼필봉에서 북서쪽으로 뻗어 내린 가지 능선의 말단부에 있으며, 북쪽은 진천천 남안의 충적지가 이어진다. 서쪽의 가지 능선 말단부에는 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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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지역에 조선 전기부터 개항기까지 있었던 지방 행정구역. 1466년(세조 12) 대구군은 대구도호부로 승격하였다. 1601년(선조 34)부터 경상감영이 설치되면서 경산현·하양현·화원현을 속현으로 추가하였으나, 1607년(선조 40) 분리되었다. 1601년 설치되었던 경상감사의 유영(留營)[감영]은 1656년(효종 7) 폐지되었다가, 12년 뒤인 1668년(현종 9) 다시 감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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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중구 동문동 일대에 있었던 청동기시대 고인돌. 대구 동문동 고인돌[지석묘]은 대구광역시 중구 동문동 일대에 있었던 청동기시대 고인돌이며, 주변의 칠성동 고인돌, 교동 고인돌과 함께 ‘신천 좌안의 고인돌’ 또는 ‘신천 유역의 고인돌’로 불린다. 대구 동문동 고인돌은 2개 구역으로 구분되며, 2구역 모두 『대구부사(大邱府史)』에 동문동 도립병원에 있다가 신축 도립병원으로 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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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동변동에 있는 삼국시대 고분군. 대구 동변동 고분군(大邱東邊洞古墳群)은 대구광역시 북구 동변동 산84번지 일대에 있다. 금호강과 동하천 사이에 형성된 구릉의 남서쪽에 해당된다. 대구 동변동 고분군은 금호강과 동하천이 합류하는 지점의 북쪽에 들어선 유니버시아드아파트단지의 동편 구릉 정상부 일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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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동천동에 있는 청동기시대 대규모 마을 유적. 대구 동천동 취락유적(大邱東湖洞聚落遺蹟)은 대구광역시 북구 동천동에 있는 청동기시대 대규모 마을 유적이다. 칠곡3택지개발사업에 앞서 영남문화재연구원에서 1997년 7월 10일부터 1999년 2월 28일까지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조사 결과 청동기시대의 집자리, 고상건물지, 돌널무덤, 우물, 집수지, 집석, 유구, 경작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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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동호동에 있는 청동기시대 생활 유적. 대구 동호동 유적(大邱東湖洞遺蹟)은 대구광역시 북구 동호동에 있는 청동기시대 생활 유적이다. 근린생활시설 신축에 앞서 2005년 1월 10일부터 2월 7일까지 영남문화재연구원에서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조사 결과 청동기시대 도랑유구 2기, 수혈 6기 등이 조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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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두산동에 있는 삼국시대 고분군. 대구 두산동 고분군(大邱斗山洞古墳群)은 대구광역시 수성구 두산동에 있는 삼국시대 고분군이다. 1990년 경북대학교 박물관에서 조사한 지표조사에서 대부분 도굴되거나 자연적 유실에 의하여 석곽이 그대로 노출된 상태로 모두 72기의 고분이 확인되었다. 대구분지의 동남쪽에 있는 법이산에서 북쪽 산록과 이어지는 해발 97.2m의 두산[동묘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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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두산동에 있는 청동기시대 생활 유적. 대구 두산동 유적(大邱斗山洞遺跡)은 청동기시대 생활 유적으로서, 대구광역시 수성구 두산로 도로 확장공사와 관련하여 영남문화재연구원에서 2003년 9월 22일부터 2003년 12월 15일까지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조사 결과 청동기시대 집자리 1기, 수혈 유구 3기, 구상 유구 1기, 기둥구멍 다수, 조선시대 도로 유구 1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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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두산동에 있었던 청동기 출토 유적. 대구 두산동 청동기 유적(大邱斗山洞靑銅器遺蹟)은 발견 당시의 주소가 두산동이여서 ‘두산동 청동기 유적’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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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만촌동에 있는 삼국시대 고분군. 만촌동 고분군은 대구광역시 수성구 만촌동 산161번지 일대이며, 북동쪽의 경부선 철로와 남서쪽의 고산-무열로 간 국도 사이에 위치해 있다. 고모봉의 북쪽 능선 사면 말단부에 해당되며, 북쪽에 위치하는 금호강 수계의 영향을 받는 지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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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만촌동에 있었던 청동기 유적. 대구 만촌동 청동기 유적(大邱晩村洞靑銅器遺跡)은 1966년 대구시에서 아양교에서 금호강 상류쪽으로 500m 정도 떨어진 동촌유원지 진입로와 주차장 확장 공사 중 출토되었다. 당시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발굴 조사하였고, 유구의 정확한 성격은 알 수 없으나 나무널무덤일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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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만촌동에서 출토된 청동기 유물 일괄. 대구 만촌동 청동기 유물 일괄은 1996년 9월 대구광역시 수성구 만촌동 산5번지 동촌유원지(東村遊園地) 주변 주차장 부지 확장 공사 중에 수습되었다. 금호강(琴湖江) 남단에 맞닿아 있는 구릉과 구릉 사이에 형성된 넓은 침식곡(浸蝕谷)의 완만한 경사면 지표 40㎝~50㎝ 아래에서 출토되었다고 한다. 널무덤[木棺墓]의 부장품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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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매천동에 있는 청동기시대 생활 유적. 대구 매천동 유적(大邱梅川洞遺蹟)은 매천택지개발사업에 앞서 영남문화재연구원에서 2007년 9월 13일부터 2008년 8월 13일까지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조사 결과 청동기시대 집자리 10기, 수혈유구 1기, 하도 1기, 도랑유구[溝狀遺構] 3기, 근대의 배수로와 경작 유구, 석축 유구 등이 확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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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매호동에 있던 청동기시대 고인돌을 포함한 무덤군. 대구 매호동 고인돌은 대구 남쪽 지역에 있는 욱수천과 남천이 합류하는 지점에 분포한다. 욱수천 일대에 분포하는 대구 사월동 고인돌, 대구 시지동 고인돌과 함께 ‘고산 지역 고인돌’로 불린다. 대구 매호동 고인돌은 Ⅰ~Ⅳ의 4개 구역으로 구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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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매호동에 있는 청동기시대 및 삼국시대 생활 유적. 대구 매호동 유적1(大邱 梅湖洞 遺跡一)은 대구광역시 수성구 매호동에 있는 청동기시대 및 삼국시대 생활 유적이다. 아파트 신축공사에 앞서 영남문화재연구원에서 2004년 1월 7일부터 2월 26일까지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조사 결과 청동기시대 집자리 1기와 자연 도랑 1기, 삼국시대 고상 건물지 6기, 수혈유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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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매호동에 있던 삼국시대 및 조선시대 생활 유적. 대구 매호동 유적2(大邱梅湖洞遺跡二)는 대구광역시 수성구 매호동에 있던 삼국시대 및 조선시대 생활 유적이다. 시지택지개발사업에 앞서 영남대학교 박물관에서 1992년 3월 15일부터 1995년 3월 15일까지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청동기시대 고인돌군과 주거 유적, 삼국시대 고분과 주거 유적이 대규모로 확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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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산격동 경북대학교 박물관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비석. 대구 무술명 오작비(大邱戊戌銘塢作碑)는 578년 건립된 신라의 비석이다. 1946년 대구사범대학 교수 임창순이 대안동 82-8, 82-9번지 서태균(徐太均)의 집 앞에서 발견하여 대구사범대학에 보관하였다. 6·25전쟁 때 미군이 교정을 수용하면서 7~8년 동안 행방을 알 수 없었다. 이후 종합대학인 경북대학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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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범어동에 있는 남북국시대 고분 유적과 고려시대 생활 유적. 대구 범어동 유적(大邱泛魚洞遺蹟)은 공동주택 신축에 앞서 영남문화재연구원에서 2006년 6월 5일부터 2006년 8월 21일까지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동쪽 사면 지점과 남쪽 사면 지점을 각각Ⅰ구역 및 Ⅱ구역이라 구분하여 조사가 이루어졌는데, Ⅰ구역에서는 남북국시대 돌덧널무덤 1기, 고려시대 기와가마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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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두산동 법이산에 있는 조선시대 봉수대. 봉수(烽燧)는 ‘횃불[烽]’과 ‘연기[燧]’로 변방의 긴급한 군사정보를 중앙에 알리기 위하여 설치되었던 통신수단이었다. 흔히 봉수는 이리 똥을 사용하였기 때문에 낭화(狼火) 또는 낭연(狼煙)이라고도 불렀다. 봉수는 성격에 따라 경봉수(京烽燧), 내지봉수(內地烽燧), 연변봉수(沿邊烽燧), 권설봉수(權設烽燧) 등으로 나뉘며 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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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복현동에 있는 삼국시대 고분군. 대구 복현동 고분군(大邱伏賢洞古墳群)은 대구광역시 북구 복현동 산56번지, 산58번지 일대에 해당한다. 복현오거리에서 공항교 방면으로 가는 도로의 오른편에 있는 복현자이아파트와 대구북중학교가 들어선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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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중구 봉산동 월견산 일대에 있었던 청동기시대 고인돌. 대구 봉산동 월견산(大邱鳳山洞月見山) 고인돌[지석묘]은 신천 서쪽에 신천과 나란하게 형성된 해발 78m의 나지막한 구릉에 있었다. 구릉은 과거 월견산(月見山), 연귀산(連龜山), 운귀산(雲龜山), 오포산(午砲山), 자라바우산 등으로 불렸다고 한다. 월견산은 조선의 문신이자 학자인 서거정(徐居正)[1420~1488]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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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서구 비산동에 있는 삼국시대 고분군. 대구 비산동 200-82유적과 비산동 202-1유적은 현 제일고등학교 남쪽 200m 거리에 있는 구릉에 있다. 대구 비산동 200-82유적은 비산4동의 상록경로당에서 대구비산도서관 방향으로 이어지는 소방도로 구간에 해당하며, 비산동 202-1유적은 현재 대림황실빌라가 들어선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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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서구 비산동 와룡산 일대에서 발견된 청동기 유물 일괄. 대구 비산동 출토 청동기는 1956년 지금의 대구광역시 서구 비산동 와룡산 기슭에서 주민이 우연히 발견한 유물 일괄이다. 지름 5~6m 쯤 되는 범위 안에서 각종 청동기와 철기가 발견되었다. 출토된 유물은 세형동검(細形銅劍) 5점, 동투겁창[銅矛] 3점, 동꺾창[銅戈] 2점 등 청동 무기와 함께 호랑이 모양 허리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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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사월동에서 발굴 조사된 청동기시대·삼국시대 생활 유적. 대구 사월동 유적1은 주상복합아파트 건립 공사를 앞두고 영남문화재연구원이 2004년 6월 9일부터 2004년 8월 4일까지 발굴 조사를 실시한 생활 유적이다. 조사 결과, 청동기시대 집터 1기와 삼국시대 구상유구(溝狀遺構)[도랑 모양의 유구] 2기가 조사되었고, 유물은 청동기시대 민무늬토기 4점과 미완성 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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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상동에서 발굴 조사된 청동기시대·조선시대 생활 유적. 대구 사월동 유적2는 대구광역시 수성구 사월동 296번지에 있다. 이 지역은 성암산[해발 472m], 안산[해발 470m] 사이를 흐르는 욱수천에 의하여 형성된 고산 선상지의 앞쪽 끝부분에 해당된다. 고산 선상지에는 청동기시대의 고인돌 유적과 마을 유적, 삼국시대 생활 유적이 대규모로 확인되었고, ‘대구 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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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삼덕동에 있는 삼국시대 고분군. 대구 삼덕동 고분군(大邱三德洞古墳群)의 위치는 대구광역시 수성구 삼덕동 196-2번지, 산200번지, 302-1번지 일대에 해당한다. 시지에서 범물동 방향으로 진행하는 월드컵로의 좌측에 있는 대구육상진흥센터와 뒤쪽의 야산에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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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중구 삼덕동 일대에 있었던 청동기시대 고인돌. 대구 삼덕동 고인돌[지석묘]은 ‘신천 좌안의 고인돌’ 또는 ‘신천 유역의 고인돌’로 불린다. 1943년 간행된 『대구부사(大邱府史)』의 기록 중 도청관사(道廳官舍) 내에 있었다고 하는 청동기시대 고인돌로 추정되며, 도청관사는 현재 대구시립중앙도서관의 남쪽에 있는 관음사(觀音寺)라는 절 주변에 있었다고 한다. 관음사의 동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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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중구 삼덕동 일대에 있는 청동기시대 집자리와 돌널무덤 유적. 대구 삼덕동 유적(大邱三德洞遺籍)은 대구광역시 중구 삼덕동 일대에 있는 청동기시대 집자리[주거지]와 돌널무덤[석관묘] 유적이다. ‘대구 삼덕동 188-1번지 유적’이라고도 부른다. 대구 삼덕동 유적에서 북쪽으로 300m 정도 떨어진 곳에 삼덕동 고인돌이 있으며, 남쪽으로 100m 정도 떨어져 대봉동 고인돌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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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상동에서 발굴된 청동기시대 생활 유적. 대구 상동 유적1은 대구광역시 수성구에 있는 수성랜드 내에 아이스링크를 신축하기에 앞서 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이 2005년 5월 17일부터 2005년 5월 27일까지 진행한 조사에서 발굴되었다. 조사 결과, 청동기시대 도랑 3기, 수혈 7기, 조선시대 도랑 1기, 기둥구멍 17개가 조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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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상동에서 발굴 조사된 생활 유적. 대구 상동 유적2는 대구수성초등학교의 현대화 재개발 시범학교 건립 사업을 앞두고 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이 2001년 3월 8일부터 2001년 4월 6일까지 1차 발굴 조사를 실시하고, 2001년 12월 26일부터 2002년 7월 13일까지 2차 발굴 조사를 실시한 생활 유적이다. 조사 결과, 청동기시대는 집터 20기, 수혈유구(竪穴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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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상동에서 발굴 조사된 청동기시대, 남북국시대, 조선시대의 생활 유적. 대구 상동 유적3은 대구한의대학교 한방지원센터 증축을 앞두고 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이 2006년 1월 9일부터 2006년 3월 6일까지 진행한 조사에서 발굴한 생활 유적이다. 대구광역시 수성구 상동 162-12번지에 대한 발굴 조사에서는 청동기시대, 삼국시대 유물 포함층이 확인되었고, 함께 진행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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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서구 상리동에 있는 삼국시대 고분군. 대구 상리동 고분군(大邱上里洞古墳群)은 2004년 2월 2일에서 2월 21일까지 실시한 대구 상리동~세방골 간 도로 건설 구간에 대한 지표조사에서 확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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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서구 상인동 앞산공원에 있는 삼국시대 무덤. 대구 상인동 고분(大邱上仁洞古墳)은 행정구역상 대구광역시 달서구 상인동 산1번지 일원에 있다. ‘대구 상인동 산1번지 삼국시대 고분’이라고도 부른다. 앞산[660m] 정상부에서 남동쪽에 있는 산성산[653m]으로 이어지는 주능선의 해발 572m 선상의 등산로에 있다.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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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서구 상인동에 있는 삼국시대 고분군. 대구 상인동 고분군(大邱上仁洞古墳群)은 대덕산에서 북서쪽으로 뻗어 내린 구릉 말단부에 있다. 대구광역시 달서구 상인동 860번지 일대에 있는 고분군은 대구의 남서쪽 관문인 월촌(月村) 고개의 남쪽 구릉 일대로 남쪽으로는 앞산순환도로가 동서로 통과한다. 상인동 산129번지 일대에 있는 고분군은 도원지의 동북 구릉에 분포하며, 남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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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서구 상인동 일대에 있었던 청동기시대 고인돌. 대구 상인동 고인돌은 대구광역시 달서구 상인동 일대에 있었던 청동기시대 고인돌이다. 월성동 고인돌, 대천동 고인돌, 진천동 고인돌과 함께 월배 지역에 분포하던 고인돌 중 하나로, ‘월배 지역 고인돌’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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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서구 상인동에 있는 청동기시대 선돌. 대구 상인동(大邱 上仁洞) 선돌은 청동기시대 선돌로 정확한 용도는 알 수 없다. 대구광역시 달서구 상인동 당산어린이공원에 이전 복원되었다. ‘대구 상인동 입석’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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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서구 상인동에 있는 고려시대 가마터. 대구 상인동 요지가 위치하고 있는 상인동은 대덕산[583.5m] 남쪽의 산지와 진천천에 의하여 형성된 월배 선상지의 선정과 선앙 부분에 위치한다. 유적은 대덕산 서쪽 비탈 말단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남동쪽으로는 앞산순환도로가 개설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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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서구 상인동에 있는 청동기시대 마을 유적. 대구 상인동 유적은 대구월서초등학교 신축을 앞두고 영남문화재연구원이 2005년 6월 13일부터 12월 8일까지 발굴 조사를 실시한 마을 유적이다. 조사 결과, 청동기시대 집터 22기, 고상(高床) 건물터 1기, 수혈(竪穴) 6기, 야외 화덕자리 1기 등이 조사되었으며, 민무늬토기 바리·항아리·붉은간토기 등 토기류 80점, 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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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서구 상인동에 있는 청동기시대 생활 유적과 무덤 유적. 대구 상인동 유적2는 대구광역시 달서구 상인동에 있는 청동기시대 생활 유적과 무덤 유적이다. 아파트 건립 공사와 관련하여 2005년 9월 5일부터 2006년 7월 10일까지 영남문화재연구원에서 Ⅰ구역을 발굴 조사하였다. 2005년 9월 1일부터 2006년 4월 7일까지 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에서 Ⅱ구역에 대한 발굴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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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서구 상인동에 있는 청동기시대 생활 유적, 철기시대 및 삼국시대 무덤 유적. 대구 상인동 유적3은 대구광역시 달서구 상인동에 있는 청동기시대 생활 유적, 철기시대 및 삼국시대 무덤 유적이다. 도시계획도로 조성과 관련하여 2008년 2월 18일부터 2008월 7월 31일까지 삼한문화재연구원에서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조사 결과 청동기시대 집자리 16기, 고인돌 12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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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동에 있는 삼국시대 고분군. 대구 서변동 고분군(大邱西邊洞古墳群)은 함지산[해발 287.7m]에서 남동쪽으로 뻗어 내린 구릉 말단부에 있으며, 금호강 북안의 금호강과 동화천이 합류하는 북서쪽 구릉에 조영되었다. 대구 서변동 고분군①[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동 산30번지 일대]은 동·서변지구에서 북대구IC 방향으로 진행하는 도로의 양쪽 구릉 사면부 일대에 있다. 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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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동에서 조사된 삼국시대 논 유구. 대구 서변동 논 유구는 북쪽 망일봉[273.67m] 기슭 도곡골의 선상지와 동화천의 범람성 퇴적 지대가 접하는 지점에서 조사되었다. 동서변 택지개발 사업에 앞서 영남문화재연구원에서 1998년 10월 15일부터 2000년 2월 29일까지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조사 결과 삼국시대 논 유구 외에도 신석기시대 집자리를 비롯한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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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동에 있는 조선시대 분묘군. 대구 서변동 분묘군이 있는 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동은 함지산 동쪽에 솟은 망일봉에서 남북으로 이어지는 능선의 동쪽 사면부와 동화천 하류부 서안의 충적지 일대이다. 동화천 하류 서안 충적지에서는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의 마을 유적과 삼국시대 논 유구가 조사되어 알려져 있다. 대구 서변동 분묘군은 서변동에서 동화천을 따라 북동쪽으로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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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동에 있는 신석기시대 생활 유적. 대구 서변동 유적1은 동서변 택지 개발사업을 앞두고 영남문화재연구원이 1998년 10월 15일부터 2000년 2월 29일까지 발굴 조사를 실시한 생활 유적이다. 조사 결과, 신석기시대 집터·수혈 유구(竪穴遺構)·집석 유구(集石遺構) 등 6기, 청동기시대 집터·돌널무덤·수혈유구·집석유구·도랑·하도(河道)·고상(高床) 건물터 등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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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동에서 발굴 조사된 고려시대 생활 유적. 대구 서변동 유적2는 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동 860-1번지의 근린생활시설 신축을 앞두고 영남문화재연구원이 2004년 3월 3일부터 2004년 3월 10일까지 발굴 조사를 실시한 생활 유적이다. 조사 결과, 고려시대 집터 1기가 확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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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서변동에 있는 청동기시대 대규모 취락유적. 대구 서변동 취락유적은 대구광역시를 동쪽에서 서쪽으로 관통하는 금호강에 합류되는 동화천 하류부의 서안에 형성된 충적지에 조성되어 있다. 북쪽으로는 망일봉[273.67m] 북쪽 기슭의 도곡골이 형성되어 있다. 대구 서변동 취락유적이 있는 곳은 도곡골의 선상지와 동화천의 범람성 퇴적 지대가 접하는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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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성동에 있는 삼국시대 고분군. 대구 성동 고분군(大邱城洞古墳群)은 고산(孤山)[해발 95.3m]이라고 불리는 야산에 있어 ‘고산 고분군’이라고도 불리었다. 고산은 금호강과 지류인 남천에 의하여 형성된 넓은 평야의 가운데에 있는 독립 구릉이다. 고산 동쪽에는 남천이 에워싸듯 흐르고 있고, 남쪽과 서쪽은 충적평야가 펼쳐져 있다. 고산의 남쪽면은 모산지를 중심으로 완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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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성동과 매호동에서 확인된 기와 가마터. 대구 성동 와요지(城洞瓦窯址)가 있는 성동은 남천이 하류역에 위치하며, 북쪽으로 금호강에 접하고 있다. 남천 하류부 남안에는 고산으로 불리는 낮은 독립 구릉이 있으며, 대구 성동 와요지는 구릉 남쪽에 형성된 작은 계곡의 경사면에 있다. 구릉 정상부에는 삼국시대 성동산성이 있으며, 남쪽의 사면부에는 삼국시대 성동 고분군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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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서구 송현동에서 발굴조사 된 청동기시대 마을유적. 대구 송현동 유적은 송현동의 아파트 신축을 앞두고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박물관이 1997년 5월 19일부터 1997년 9월 20일까지 발굴 조사를 실시한 마을 유적이다. 조사 결과, 청동기시대 집터 14기와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의 무덤과 수혈(竪穴) 280여 기가 확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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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시지동에 있는 삼국시대 고분군. 대구 시지동 고분군(大邱時至洞古墳群)은 대구광역시 수성구 시지동 산17번지 일대에 있으며, 해발 80m 정도의 고산초등학교 뒤쪽 야산에 분포한다. 금호강 변을 따라 형성된 구릉의 남사면에 해당하는 곳으로 대부분 밭으로 경작되고 있었다. 현재는 초등학교 주변으로 아파트와 주택단지가 조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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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시지동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 대구 시지동 고인돌은 매호동 고인돌, 사월동 고인돌과 함께 ‘고산 지역 고인돌’로 불린다. 대구 시지동 고인돌은 시지택지개발지구에 포함된 유적이며 Ⅰ·Ⅱ의 2개 구역으로 구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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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시지동에 있는 조선 후기 관리들의 공적을 칭송하는 기념비의 무리. 대구 시지동 비석군은 통훈대부김대엽시혜비(通訓大夫金大燁施惠碑), 종이품봉상사제조서상하송덕비(從二品奉常司提調徐相夏頌德碑), 현령이후헌소청덕선정비(縣令李侯憲昭淸德善政碑), 전오위장강대봉송덕비(前五衛將姜大鳳頌德碑), 관찰사조상국강하영세불망비(觀察使趙相國康夏永世不忘碑), 현령심후휘수준청덕애민선정불망비(縣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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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시지동에 있는 청동기시대 돌널무덤. 대구 시지동 석관묘(大邱時至洞石棺墓)는 1983년 1월 3일 대구선명학교 학생이 야산을 개간하다 간돌칼[마제석검]을 수습하여 시에 보고하며 알려졌다. 석관묘 주변에는 시지동 고인돌, 매호동 고인돌, 사월동 고인돌 등 다수의 청동기시대 고인돌이 확인되므로, 유적 주변에 같은 시기의 많은 석관묘가 존재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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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시지동에 있는 청동기시대·조선시대의 생활 유적과 남북국시대의 고분 유적. 대구 시지동 유적1은 고산중학교 신축 예정에 따른 형질변경을 앞두고 2001년 11월 21일부터 2002년 3월 12일까지 영남문화재연구원에서 발굴 조사를 실시한 생활 유적 및 고분 유적이다. 조사 결과, 청동기시대의 집터 2기, 집석유구(集石遺構) 6기, 구상유구(溝狀遺構) 2기, 남북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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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시지동에 있는 청동기시대 생활 유적과 무덤 유적. 대구 시지동 유적2는 시지동 택지개발 사업을 앞두고 영남대학교 박물관이 1992년 3월 15일부터 1995년 3월 15일까지 발굴 조사를 실시한 생활 유적 및 무덤 유적이다. 조사 결과, 매호동 지석묘군Ⅰ의 고인돌 4기와 돌널무덤[石棺墓] 2기, 매호동 지석묘군Ⅱ의 고인돌 2기와 돌널무덤 3기, 매호동 지석묘군Ⅲ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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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신매동에서 발굴 조사된 삼국시대 생활 유적. 대구 시지동 유적3은 시지동 택지개발 사업을 앞두고 영남대학교 박물관이 1992년 4월부터 1993년 9월까지 지표 조사 및 시굴 조사를 실시한 생활 유적이다. 그 과정에서 아파트 시공업자들에 의한 유적 파괴 행위가 자행되어 발굴 조사가 중단되었고, 개발에 따른 유적의 파괴가 얼마나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는가를 단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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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시지지구에서 발굴 조사된 삼국시대 유적. 대구광역시 수성구 시지동과 수성구 사월동에 있는 고인돌의 존재는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었고, 이후 지표조사에서 대구 매호동 고인돌, 대구 욱수동 고분군, 대구 성동 고분군, 대구 가천동 고분군, 대구 옥산동 토기 가마 등의 유적이 확인되었다. 1992년 시지 지역이 택지 개발 지구로 지정되어 발굴 조사가 시작되면서 대구 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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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서구 신당동에 있는 삼국시대 고분군. 대구 신당동 고분군(大邱新塘洞古墳群)은 대구광역시 달서구 신당동에 있는 삼국시대 고분군이다. 1981년 5월경 계명대학교 관리인의 제보로 신당동 토기요지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함께 확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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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서구 신당동에 있는 고려시대 및 조선시대 분묘 유적. 대구광역시 달서구 북쪽에 있는 와룡산[295m]과 와룡산 서쪽에 있는 궁산[252m] 사이에 신당고개가 있다. 대구 신당동 분묘군은 신당고개 남서쪽의 완만한 구릉 사면에 있다. 이어지는 주변 구릉 사면부에는 신당동 고분군과 신당동 토기요지, 신당동 산53번지 유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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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서구 신당동에 있는 남북국시대와 조선시대의 생활 유적. 계명대학교 성서캠퍼스 산학협력관 건물 신축에 앞서 1998년 10월 8일부터 1998년 12월 30일까지 계명대학교 행소박물관에서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조사 결과 남북국시대와 조선시대 건물지가 확인되었다. 남북국시대 건물지에서는 건물지 3기와 기단지, 자연 수로 등이 확인되었고, 막새기와·평기와·토기 등의 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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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서구 신당동에 있는 삼국시대 토기 가마터. 대구 신당동 토기 요지는 1981년 지표 조사를 통하여 처음 알려졌다. 2기의 토기 가마와 짧은목항아리[短頸壺] 조각이 확인되었고, 서쪽 능선에는 소형 돌덧널무덤[石槨墓]이 분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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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신매동에서 발굴 조사된 청동기시대·삼국시대·조선시대 생활유적. 대구 신매동 시지지구 생활유적1은 시지 지구 택지 개발 사업에 앞서 영남문화재연구원에서 1994년 11월 24일부터 1996년 5월 29일까지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발굴조사는 Ⅰ·Ⅱ·Ⅲ지구로 나누어 진행되었는데, 대구 신매동 시지지구 생활유적1은 Ⅰ·Ⅱ지구에 해당된다. Ⅰ·Ⅱ지구에 대한 발굴 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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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신매동에서 발굴 조사된 청동기시대와 삼국시대 생활유적. 대구 신매동 시지지구 생활유적2는 시지 지구 택지 개발 사업에 앞서 영남문화재연구원에서 1994년 11월 24일부터 1996년 5월 29일까지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발굴 조사는 Ⅰ·Ⅱ·Ⅲ지구로 나누어 진행되었는데, 신매동 시지지구 생활유적2는 Ⅲ지구에 해당된다. Ⅲ지구에 대한 발굴 조사 결과 청동기시대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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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신매동에 있는 청동기시대와 삼국시대 생활유적. 대구 신매동 시지지구 생활유적3(大邱新梅洞時至地區生活遺蹟三)은 청동기시대와 삼국시대 생활유적으로서, 시지택지개발사업지구 내 시지고등학교 건립 부지에 대하여 영남문화재연구원에서 1997년 7월 1일부터 1998년 4월 15일까지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조사 결과 청동기시대 수혈유구와 삼국시대 수혈유구, 우물, 기둥구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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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신매동에 있는 삼국시대 생활 유적. 대구 신매동 시지지구 생활유적4(大邱新梅洞時至地區生活遺蹟四)은 삼국시대 생활 유적이다. 시지택지개발지구 내 남쪽 도로구간에 대하여 영남문화재연구원에서 1994년 11월 24일부터 1996년 5월 29일까지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조사 결과 삼국시대 고상건물지, 수혈유구, 기둥구멍, 도랑유구[溝狀遺構]가 확인되었고, 굽다리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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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신매동에 있는 청동기시대 및 조선시대 생활 유적. 대구 신매동 유적1은 아파트 신축에 따른 형질변경을 앞두고 영남문화재연구원이 2000년 9월 18일부터 2000년 10월 9일까지 발굴 조사를 실시한 생활 유적이다. 조사 결과, 청동기시대 집터 1기와 조선시대 수혈 4기, 기둥구멍 등 합께 7기가 확인되었고, 출토 유물은 청동기시대 민무늬토기 조각, 골아가리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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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신매동에 있는 삼국시대 고분군. 대구 신매동 유적2(大邱新梅洞遺跡二)가 있는 대구광역시 수성구 신매동은 성암산[472m], 안산[470m] 사이를 개석(開析)하여 흐르는 욱수천에 의하여 형성된 고산 선상지의 선앙과 선단부에 해당된다. 고산 선상지에는 청동기시대의 고인돌 유적과 마을 유적, 삼국시대 생활 유적이 대규모로 확인되었고, ‘대구 고산 지역 유적’으로도 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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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동구 신천동에서 발견된 청동기 유물 일괄. 대구광역시 동구 신천동에서 출토된 청동기 유물은 1974년 신천동 589-205번지에서 가옥을 수리하던 중에 지하에서 발견되어 수습된 유물이다. 유물이 출토된 지역은 당시 영신고등학교(永信高等學校)가 자리하고 있던 구릉지이며, 서쪽으로 100m 정도 떨어진 곳에 신천(新川)이 흐르고 있었다. 수습된 유물은 동투겁창[銅矛] 두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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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산격동 연암산 일대에 있는 청동기시대와 철기시대 유적. 대구 연암산 선사유적은 대구광역시 북구 산격동에 있는 연암산[134.5m] 일대에 분포하고 있다. 서쪽으로 신천을 사이에 두고 마주하는 침산[130m]에도 선사유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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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연호동에 있는 조선시대 분묘군. 대구 연호동 분묘군은 삼덕동~시지택지 간 도로 건설에 앞서 1998년 10월 7일부터 1998년 11월 22일까지 영남문화재연구원에서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조사 결과 조선시대 토광묘 29기가 확인되었고, 분청사기와 청동제품, 관정(棺釘) 등 108점의 유물이 수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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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욱수동에 있는 삼국시대 고분군. 대구 욱수동 고분군(大邱旭水洞古墳群)은 대구 시지택지개발지구의 서남쪽 성암산에서 북쪽의 금호강을 향하여 뻗어 내린 능선의 사면부에 있다. 대구 욱수동 고분군①[수성구 욱수동 산4, 5-3, 5-4, 48]은 대구광역시와 경산시의 경계 지대로, 성암산에서 북쪽으로 길게 뻗은 해발 90m의 나지막한 능선 일대이다. 대구 욱수동 고분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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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욱수동에 있는 청동기시대·삼국시대의 생활 유적과 초기국가시대의 무덤 유적. 대구 욱수동 유적1은 삼덕동-시지 택지 간 도로 건설을 앞두고 영남문화재연구원이 1999년 4월 1일부터 1999년 7월 11일까지 발굴 조사를 실시한 생활 유적 및 무덤 유적이다. 조사 결과, 청동기시대 집터 3기, 초기국가시대 독무덤 1기, 삼국시대 수혈유구(竪穴遺構) 18기, 우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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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욱수동에 있던 청동기시대 돌널무덤. 대구 욱수동 유적1(大邱旭水洞遺跡一)은 대구광역시 수성구 욱수동 134번지 일원에 있으며, 시지 택지 개발 지구 남쪽 일대에 해당한다. 대구스타디움에서 경산 방면으로 유니버시아드로를 따라 이동하면 덕원고등학교 진입로가 있는 네거리가 나온다. 여기에서 200m 정도 이동하면 도로 오른쪽에 있는 수성정비센터 자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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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욱수동에 있는 청동기시대·삼국시대의 생활 유적. 대구 욱수동 유적2는 덕원중고등학교 이전을 앞두고 영남대학교 박물관이 2001년 5월 14일부터 2001년 6월 22일까지 발굴 조사를 진행한 생활 유적이다. 덕원중고등학교 진입로 부지에 대한 조사는 2002년 3월 13일부터 4월 30일까지 진행하였다. 조사 결과, 학교 부지에서는 청동기시대 집터 1동, 삼국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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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욱수동에 있는 조선시대 생활 유적. 대구 욱수동 유적3은 불광사경북불교대학의 복지관 신축을 앞두고 영남문화재연구원이 2004년 11월 15일부터 2004년 11월 25일까지 시굴 조사를 실시한 생활 유적이다. 조사 결과, 2곳의 트렌치에서 구상유구(溝狀遺構) 2기와 수혈유구(竪穴遺構) 1기, 기둥구멍이 다수 확인되었고, 선사시대·삼국시대와 관련한 유구나 문화층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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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욱수동에 있는 삼국시대 고분과 생활 유적. 대구 욱수동 유적4(大邱 旭水洞 遺蹟四)은 대구광역시 수성구 욱수동에 있는 삼국시대 고분과 생활 유적이다. 건물 신축에 앞서 영남문화재연구원에서 2001년 6월 28일부터 7월 28일까지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조사 결과 삼국시대 돌덧널무덤[石槨墓]과 돌방무덤[石室墓] 13기, 고상건물지(高床建物址) 5기, 구덩이[竪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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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욱수동에 있는 청동기시대 및 삼국시대 생활 유적. 대구 욱수동 유적5(大邱 旭水洞 遺蹟五)는 대구광역시 수성구 욱수동에 있는 청동기시대 및 삼국시대 생활 유적이다. 덕원중·고등학교 이전 부지에 대하여 2001년 5월 14일부터 6월 22일까지 영남대학교박물관에서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조사 결과 청동기시대 집자리, 삼국시대 집자리, 고상건물지, 수혈 유구 16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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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욱수동에 있는 삼국시대 생활 유적. 대구 욱수동 유적6은 영남문화재연구원에서 세 차례에 걸쳐서 발굴 조사를 진행한 생활 유적이다. 먼저 우일교통 차고지 신축을 앞두고 1997년 11월 17일부터 1998년 1월 7일까지 대구광역시 수성구 욱수동 391-2번지에 대한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조사 결과, 삼국시대 수혈유구(竪穴遺構) 4기, 고상(高床) 건물터 2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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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욱수동과 경상북도 경산시 옥산동에서 발굴 조사된 삼국시대 토기 가마 유적. 대구 욱수동·경산 옥산동 유적은 대구광역시 수성구 삼덕동~시지 택지 간 도로 건설과 관련하여 1998년 11월 1일부터 1998년 12월 31일까지 영남문화재연구원에서 1차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고, 노인 전문 병원 신축과 관련하여 2000년 9월 20일부터 2001년 10월 31일까지 영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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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서구 월성동에 있는 삼국시대 고분군. 대구 월성동 고분(大邱月城洞古墳)은 대구광역시 달서구 월성동에 있는 삼국시대 고분군이다. 학산공원 내 남봉[해발 138.6m]의 남쪽 능선 정상부와 북봉[해발 117.2m]에서 남동쪽으로 뻗은 주능선부의 해발 55m 선상에 있다. 기존에는 남봉에서 확인되는 고분 1기만 알려졌지만, 2000년 4월 세종문화재연구원에서 진행한 ‘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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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서구 월성동에 있었던 청동기시대 고인돌. 대구 월성동(大邱 月城洞) 고인돌은 주변의 상인동·대천동·진천동 고인돌과 함께 월배 지역에 있었던 대표적인 고인돌이다. 대구 월성동 고인돌은 1983년 조사 때 4개 구역에서 확인되었으나, 1990년 조사 때는 민가 주변에 있던 대구 월성동 고인돌Ⅰ 이외에는 도시화로 모두 파괴되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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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서구 월성동에서 발굴 조사된 후기 구석기시대 유적. 대구 월성동 구석기 유적은 대구광역시 달서구 월성동 777-2번지 일대에 있다. 월성동 777-2번지 일대는 진천천 하류부 북안에 넓게 펼쳐져 있는 월배 선상지의 끝부분에 해당된다. 남동쪽으로는 해발 100m 내외의 낮은 구릉이 이어져 있고, 북서쪽으로 선상지 충적평야가 이어진다. 유적이 있는 월배 선상지에는 상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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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서구 월성동 학산과 가무내산 일대에 있는 청동기시대 생활 유적. 대구광역시 달서구 월배 선상지 북쪽에는 대덕산[583.5m]에서 서북쪽으로 이어지는 독립 구릉인 학산[118m]과 가무내산[138.2m]이 있다. 대구 월성동 선사유적은 학산과 가무내산 구릉 일대에 있으며, 남서쪽 사면 말단부의 대구 월성동 주거지 유적과 대구 월성동 유적[476-2]에서 집자리 5기,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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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서구 월성동에 있는 청동기시대 생활 유적. 대구 월성동 유적은 대구 상원고등학교 운동장을 확장 조성하던 중 확인되어 경북대학교 박물관이 1988년 4월 9일부터 1988년 5월 6일까지 발굴 조사를 실시한 생활 유적이다. 조사 결과, 청동기시대 집터 2기와 70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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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서구 월성동 집자리 유적에서 출토된 청동기시대 유물 일괄. 대구 월성동 유적은 월배 선상지 북쪽의 독립 구릉인 가무내산[138.2m] 서남쪽 경사면 말단부에 았다. 1988년과 1997년 경북대학교박물관에서 발굴 조사를 실시하여, 청동기시대 집자리 5기와 100여 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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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서구 월성동에 있는 청동기시대·남북국시대 생활 유적. 대구 월성동 유적2(大邱 月城洞 遺蹟二)는 대구광역시 달서구 월성동에서 있는 청동기시대·남북국시대 생활 유적이다. 대구 월배지구 근생 제7구역 도시개발사업과 관련하여 대동문화재연구원에서 2차에 걸쳐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1차 발굴 조사는 2012년 7월 16일부터 11월 7일까지 진행되었는데, 청동기시대 집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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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서구 월성동에 있는 청동기시대 무덤 유적 및 조선시대 생활 유적. 대구 월성동 유적3은 청동기시대 무덤 유적 및 조선시대 생활 유적으로서, 조암중학교 신축과 관련하여 2014년 6월 25일부터 8월 13일까지 세종문화재연구원에서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조사 결과 청동기시대 돌널무덤[石築形石棺墓] 6기, 수혈 1기와 조선시대 수혈 12기, 기둥구멍 4개가 확인되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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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서구 월성동에 있는 구석기시대부터 철기시대의 유적. 대구 월성동 유적4(大邱月城洞遺跡四)는 대구광역시 달서구 월성동에서 있는 구석기시대 유적, 청동기시대 생활 유적, 청동기시대와 철기시대 무덤 유적이다. 월성동 777-2번지 일원에 계획된 공동주택 조성에 앞서 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에서 2006년 4월 1일부터 11월 30일까지 발굴 조사를 진행하였다. Ⅰ구역에서는 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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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서구 월성동에 있는 청동기시대 생활 유적. 대구 월성동 유적5(大邱月城洞遺蹟五)는 대구광역시 달서구 월성동에 있는 청동기시대 생활 유적이다. 아파트 및 부대시설 신축공사와 관련하여 2004년 5월 21일부터 2004년 7월 15일까지 영남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조사 결과 청동기시대 집자리[住居址], 야외화덕자리[野外爐址], 석축형돌널무덤[石築形石棺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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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서구 월성동에서 발굴 조사된 청동기시대 주거 유적. 대구 월성동 주거지는 개발에 의하여 훼손되고 있는 유적이다. 발굴 조사하여 보존하고, 고인돌 공원을 조성하려는 대구광역시 달서구청의 사업 계획에 따라 경북대학교 박물관에서 1997년 10월 26일부터 1997년 11월 30일까지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조사 결과 청동기시대 집자리 3기와 조선시대 널무덤 1기가 확인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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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서구 월암동에 있는 청동기시대 선돌. 대구 월암동 선돌은 고속도로 제45호선[중부내륙고속도로] 지선 서쪽에 있는 대명천을 따라 동서로 5기가 배열되어 있었다. 그러나 대구 월암동 선돌Ⅳ과 대구 월암동 선돌Ⅴ는 2000년대 후반 이후 도로 개설 및 신규 주택 건설 등 도시화로 인해 유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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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서구 유천동에 있는 신석기시대 생활 유적. 대구 유천동 신석기 유적은 대구광역시 달서구 유천동 2433-1번지 일원에 계획된 공동 주택 건설에 앞서 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에서 2006년 10월 23일부터 2007년 5월 21일까지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조사 결과 신석기시대 집자리, 야외 화덕 자리, 도랑유구[溝狀遺構], 수혈, 주혈 등 101기의 유구와 빗살무늬토기, 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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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부 중심부에 돌로 쌓은 성곽. 대구읍성은 ‘대구부성’이라고도 하며, 경상감사 민응수(閔應洙)가 주도하여 1736년 4월에 공사를 시작하여 1737년 6월에 완공하고 11월에 선화당에서 준공식을 하였다. 읍성이 퇴락할 즈음, 경상감사 김세호(金世鎬)가 보수공사를 주도하여 1870년(고종 7) 3월~4월에 착공하여 1871년 11월에 마쳤다. 그러나 개항 이후 19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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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팔달동에 있는 1736년에 대구읍성 성벽을 쌓을 돌을 채석하던 곳. 1735년(영조 11) 경상도관찰사 겸 대구부사 민응수(閔應洙)[1684~1750]가 대구읍성의 부재를 다듬으며 채석할 장소를 물색하여 현 대구광역시 북구 팔달동 산14-1 일대의 돌산을 확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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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남구 이천동 일대에 있었던 청동기시대 고인돌. 대구 이천동(大邱 梨泉洞) 고인돌[지석묘]은 대구광역시 남구 이천동 일대에 있었던 청동기시대 고인돌이다. 5개의 고인돌 무리가 대구를 관통하는 신천의 자연제방 위에 일렬로 분포하고 있어 ‘신천 좌안의 고인돌’ 또는 ‘신천유역의 고인돌’로 불린다. 1927년 고이즈미 아키오[小泉顯夫]가 북쪽에서부터 ‘대봉정(大鳳町) 지석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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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이천동에서 확인된 청동기시대, 고려시대 및 조선시대의 생활 유적. 대구 이천동 유적은 이천동 군사시설 신축공사와 관련하여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이 2003년 12월 17일부터 2004년 1월 17일까지 발굴[시굴] 조사를 실시한 생활 유적이다. 조사 결과, 청동기시대의 집터 2동과 함께,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원형 수혈유구(竪穴遺構) 1기, 구상유구(溝狀遺構) 3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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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조야동에 있는 삼국시대 고분군. 대구 조야동 유적(大邱助也洞遺跡)은 삼국시대 고분군으로 대구광역시 북구 조야동에 있다. 1999년 12월 16일부터 1999년 12월 30일까지 경상북도문화재연구원에서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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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서구 죽전동에 있는 삼국시대 고분군. 대구 죽전동 분묘군(大邱竹田洞古墳群)은 대구광역시 달서구 죽전동 산78-1번지와 98-2번지 일대에 있다. 와룡산[해발 299.8m]에서 남동쪽으로 뻗어 내린 여러 갈래의 능선 중 하나의 능선 말단부에 있다. 현재 용산영남타운의 북쪽 일부와 도로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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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중동 일대에 있었던 청동기시대 고인돌. 대구 중동 고인돌[지석묘]은 대구 상동 고인돌Ⅱ·Ⅲ의 북쪽에 인접하여 있으며, 대구 상동 고인돌[상동지석묘군], 대구 파동 고인돌과 함께 ‘신천 우안의 고인돌’ 또는 ‘신천 유역의 고인돌’로 불린다. 대구 중동 고인돌은 1983년 조사 당시에는 2기가 남북으로 있었다. 1990년대 초까지 1기가 남아 있었지만, 1995년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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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중동에 있는 통일신라 시기 수창군의 관아지로 추정되는 유적. 신라 수창군(壽昌郡)은 본래 위화군(喟火郡)이었는데, 고려시대에는 수성군(壽城郡), 조선시대에는 대구도호부의 속현(屬縣)인 수성현(壽城縣)이 되었다. 치소(治所)는 대구광역시 수성구 상동 대구수성초등학교 인근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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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서구 진천동에 있던 청동기시대 고인돌. 대구 진천동(辰泉洞) 고인돌은 대구광역시 달서구 진천동에 있던 청동기시대 고인돌이다. 대구 진천동 지석묘군, 또는 월배 충적평야의 남쪽 진천천(辰泉川)에 분포하는 고인돌 가운데 하나로 ‘월배 지역 고인돌’이라고 불린다. 진천동 일대에는 많은 고인돌이 있었지만,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고인돌이 점차 사라졌다. 2000년대 이후 진천태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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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서구 진천동에 있는 청동기시대 무덤 유적과 주거 유적, 남북국시대 및 고려시대 생활 유적. 대구 진천동 유적1은 아파트 건설을 앞두고 영남문화재연구원이 2001년 7월 23일부터 2001년 10월 20일까지 1차 발굴 조사를 실시하고 2001년 11월 19일부터 2001년 12월 23일까지 고인돌 하부구조에 대하여 추가 발굴 조사를 실시한 유적이다. 조사 결과, 청동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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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서구 진천동에 있는 청동기시대와 남북국시대의 생활 유적. 대구 진천동 유적2는 공동주택 신축을 앞두고 영남문화재연구원이 2005년 11월 1일부터 2006년 1월 16일까지 발굴 조사를 실시한 생활 유적이다. 조사 결과, 청동기시대 집터 1기, 남북국시대 집터 4기, 수혈(竪穴) 21기, 도랑 1기, 우물 1기, 석조 유구 1기, 담장 석렬(石列) 1기, 바퀴흔 1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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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서구 진천동에 있는 청동기시대 무덤 유적. 대구 진천동 유적3(大邱辰泉洞遺跡三)은 대구광역시 달서구 진천동 15-1번지에 있다. 진천천 하류부 북안에 넓게 펼쳐져 있는 월배 선상지의 선단부의 중앙부에 해당되며, 사방으로 충적평야가 이어진다. 월배 선상지에는 대구 상인동 고인돌, 대구 상인동 선돌, 대구 월성동 고인돌, 대구 월성동 돌널무덤, 대구 진천동 고인돌, 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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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서구 진천동에 있는 청동기시대 석축 기단이 있는 선돌. 대구 진천동 입석(大邱 辰泉洞 立石)은 대구광역시 달서구 진천동에 있는 청동기시대 석축 기단이 있는 선돌이다. 진천천(辰泉川)의 북쪽에 분포하는 진천동 고인돌의 Ⅰ에 해당된다. 조사 당시에는 고인돌의 덮개돌[상석(上石)]로 추정하였으나 석축 기단 위에 세워진 암각화가 시문된 선돌로 확인되었다. 선돌은 자연석 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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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칠성동 일대에 있었던 청동기시대 고인돌. 대구 칠성동 고인돌은 대구광역시 북구 칠성동 일대에 있었던 청동기시대 고인돌이며, 대구 칠성동 고인돌Ⅰ, 대구 태평로 고인돌Ⅱ로 구분된다. 신천의 자연제방에 분포하던 고인돌 중 가장 하류에 있으며 ‘신천 좌안의 고인돌’ 또는 ‘신천 유역의 고인돌’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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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침산동 침산 일대에 있는 청동기시대와 철기시대 유적. 대구 침산 선사유적은 대구광역시 북구 침산동에 있는 침산 일대에 있다. 동쪽으로 신천을 사이에 두고 마주하는 연암산[134.5m]에도 선사유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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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파동에 있는 삼국시대 고분군. 대구 파동 고분군(大邱巴洞古墳群)은 대구광역시 수성구 파동 산1-1번지에 있다. 법이산[해발 333.5m]의 서쪽 구릉 말단부에 있다. 대구 파동 고분군의 앞쪽으로는 신천이 남동에서 북서쪽으로 흐르면서 형성된 하곡 평야가 펼쳐져 있고, 청도로 통하는 산간 계곡의 길목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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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파동 일대에 있었던 청동기시대 고인돌. 대구 파동 고인돌은 상동 고인돌Ⅰ의 남쪽에 인접하여 있으며, 대구 상동 고인돌[상동지석묘군], 대구 중동 고인돌과 함께 ‘신천 우안의 고인돌’ 또는 ‘신천 유역의 고인돌’로 불린다. 대구 파동 고인돌은 1983년 조사 당시에는 1기가 있었으나 ‘수성관’이라는 클럽이 들어서면서 파괴되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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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파동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바위그늘 유적. 대구 파동 암음유적(大邱巴洞岩蔭遺蹟)은 국립대구박물관에서 학술 조사 사업의 일환으로 2000년 12월 6일부터 2000월 12월 23일까지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고, 이후 신천 좌안 도로 건설과 관련하여 2012년 7월 16일부터 2012년 8월 9일까지 대동문화재연구원에서 발굴 조사하였다. 조사 결과 바위그늘 전면부에서 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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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파동에 있는 삼국시대 고분군. 대구 파동 유적(大邱巴洞遺跡)은 대구광역시 수성구 파동 산5-1번지에 있다. 대구 파동 고분군의 남서쪽으로 밀집 주택단지와 인접하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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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도호부의 지방 행정을 책임지던 종5품 지방관. 조선시대 국왕의 명으로 고을을 다스리는 지방관을 수령(守令)이라고 한다. 농민들은 수령을 안전(案前), 사또[使道], 또는 원님 등으로 일컬었다. 대구판관은 대구사또 또는 대구원님이라 불리기도 하엿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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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팔달동에 있는 원삼국시대부터 삼국시대 고분군. 대구 팔달동 유적(大邱八達洞遺跡)은 1980년 예비군 참호를 파면서 존재가 확인되었다. 당시 발견된 유구는 나무덧널무덤[토광목곽묘(土壙木槨墓)]이고, 긴목항아리, 굽다리접시, 쇠검 등이 출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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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에 있는 대구 팔달동 유적의 철기시대와 초기국가시대 널무덤에서 출토된 유물 일괄. 대구 팔달동 유적은 대구광역시 지역 철기시대 및 초기국가시대 문화를 연구하는 데 대표적인 유적으로 알려져 있다. 대구 팔달동 유적은 1992년 경북대학교 박물관과 1996~1997년 영남문화재연구원에서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철기시대에서 초기국가시대에 이르는 널무덤[木棺墓]과 독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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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서구 평리동에서 출토된 청동기시대 유적. 대구 평리동 청동기 유적(大邱坪里洞靑銅器遺跡)은 1970년 아파트[평리청구타운] 건설 공사 중 한국식동검[세형동검(細形銅劍)] 3점을 비롯한 각종 청동기와 철기가 다량 출토되었다. 발견 당시 인부들의 증언에 의하여 출토 지점은 확인하였으나 유구의 형태 등은 확인하지 못하였다. 돌이나 나무 같은 흔적은 전혀 없었다는 것으로 보아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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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학정동에 있는 초기 철기시대부터 원삼국시대 무덤군. 대구 학정동 유적(大邱鶴亭洞 遺籍)은 대구광역시 북구 학정동에 있는 초기 철기시대부터 원삼국시대의 무덤군이다. 대구 학정동 유적이 있는 칠곡 지역은 청동기시대 마을 유적부터 조선시대 기와 가마에 이르는 다양한 유적이 조사되었다. 칠곡 지역의 유적은 함지산의 남쪽 끝자락에 있는 대구 팔달동 유적을 비롯하여 학정동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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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학정동에 있는 철기시대와 삼국시대 생활 유적. 대구 학정동 유적1(大邱鶴亭洞遺蹟一)은 근린생활시설 신축공사를 앞두고 영남문화재연구원이 2004년 5월 10일부터 2004년 5월 20일까지 시굴 조사를 실시한 유적이다. 조사 결과, 청동기시대 수혈유구(竪穴遺構) 1기와 삼국시대 집터[住居址] 1기를 비롯하여 삼국시대 수혈유구 2기, 기둥구멍[柱孔] 20개 등이 조사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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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학정동에 있는 고려시대 생활 유적. 대구 학정동 유적2(大邱鶴亭洞遺蹟二)는 칠곡4택지 개발사업을 앞두고 영남문화재연구원이 2004년 10월 29일부터 2005년 1월 21일까지 1단계 구간에 대한 1차 발굴 조사를 실시하고, 2005년 3월 1일부터 2005년 5월 2일까지 나머지 구간에 대한 2차 발굴 조사를 실시한 유적이다. 조사 결과, 고려시대 수혈유구 2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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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황금동에 있는 조선시대 생활 유적. 대구 황금동 유적(大邱黃金洞遺跡)은 수성구 황금동~만촌동 간 도로 건설에 앞서 영남문화재연구원에서 1999년 4월 21일부터 1999년 5월 12일까지 22일간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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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지역에 1419년부터 1466년까지 그리고 1895년부터 1910년까지 있었던 지방 행정구역. 대구가 대구군(大丘郡, 大邱郡)이었던 시기는 1419년(세종 1)부터 1466년(세조 12)까지와 1895년부터 1910년까지이다. 1018년(현종 9)부터 125년간 경상도 상주목 경산부[지금의 성주군]의 속현이었다가, 1143년(인종 21) 승격하여 지방관인 현령이 파견되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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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만촌동에 있는 조선 후기 비석. 대구부수성비는 1869년(고종 6) 8월에 경상도관찰사 겸 대구도호부사로 부임한 김세호(金世鎬)[1806~1884]가 1870년에 대구부성을 보수하고 그 사실을 기리고자 세운 비이다. 1982년 3월 4일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5호로 지정되었다. 그 후 2021년 6월 2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개정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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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의 선사시대부터 근대까지 주요한 문화유산. 대구광역시 중구, 남구, 달서구, 서구, 북구, 동구, 수성구에는 국가지정문화재인 국보 3건, 보물 68건, 사적 8건, 천연기념물 1건, 국가민속문화재 4건, 국가등록문화재 11건, 대구광역시 지정 유형문화재 69건, 무형문화재 15건, 기념물 14건, 민속문화재 2건, 문화재자료 41건 등 모두 236건의 지정문화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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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대구도호부에 설치한 지방 군사 조직. 1457년(세조 3) 조선 정부는 전국 각지의 요충지를 거진(巨鎭)으로 하여, 거진의 군사기지로서의 성격을 분명히 하고 나머지 주변 지역의 진들이 거진에 소속되도록 하는 진관체제(鎭管體制)로 지방군 체제를 바꾸었다. 진관체제는 행정단위인 각 고을을 군사 조직인 진(鎭)으로 파악하고 각 진을 진관으로 편성한 전국 단위의 군사 체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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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대구광역시 중구, 서구, 동구 일부, 북구 일부, 달서구 일부를 관할한 신라, 고려, 조선의 지방 행정구역. 대구현(大丘縣)은 757년부터 1419년까지 신라, 고려, 조선의 지방 행정구역이다. 현재의 대구광역시 중구, 서구, 동구 일부, 북구 일부, 달서구 일부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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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신라 시대부터 고려 시대까지 대구광역시 달성군에 있던 지방 통치 구역. 신라 경덕왕(景德王)[재위 742∼765]은 귀족 세력의 약화와 왕권 강화를 목표로 하여 한화 정책을 펼쳐 9주·5소경·117군·293현의 고유 지명을 한자식으로 바꾸었다. 이때 달구화현(達句火縣)이 대구현(大丘縣)으로 개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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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 대덕산에 있는 삼국시대 후기부터 통일신라 시기에 축조된 산성. 대덕산성(大德山城)은 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 대덕산에 있는 포곡식 산성이다. 정확한 축조 시기는 알 수 없지만 성곽의 위치와 규모, 성 내부에서 출토되는 토기편과 기와편 등으로 보아 삼국시대 후기 또는 통일신라 때에 축조되었으며 고려시대까지 사용되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위치와 지형으로 볼 때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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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에 해당하는 팔공산 명동에 은거한 조선 후기 대구 지역 유생 14인. 대명 14현은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 굴욕의 화의가 성립되자, 청나라를 배격하고 명나라를 숭상한다는 뜻의 배청숭명(背淸崇明)을 결의한 대구 지역의 유생 14인을 일컫는다. 대명 14현은 경주최씨가 세거한 지역인 팔공산 아래 명동(明洞)[현 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으로 거처를 옮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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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에 있는 임진왜란 때 대구에 정착한 두사충이 명나라에 제향을 드렸다는 제단. 대명단터는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 정착한 명나라 사람 두사충(杜師忠)이 고국을 그리며 매월 명나라를 향하여 제를 드렸다는 제단이다. 대명단의 정확한 위치는 오랫동안 논란의 되어 왔다. 2022년 현재는 대구광역시 남구 앞산순환로 306[대명동 306]인 것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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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대일리에 있던 청동기 시대부터 통일 신라 시대까지의 유적. 현재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대일리에 있는 가창 체육 공원 부지가 대일리 325유적이 발굴 조사된 곳이다. 대일리 325유적은 서쪽으로 국가 지원 지방도 30호선과 접하고 있으며, 북서쪽에는 가창 초등학교가 자리 잡고 있다. 유적은 신천의 상류 지역으로 산쪽 선상지의 곡간 평야 일대 해발 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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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대일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의 고인돌 떼. 대일리 고인돌은 크게 3개소로 분포하고 있다. 대일리 고인돌 Ⅰ군은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대일리 737-1번지에, 대일리 고인돌 Ⅱ군은 대일리 737-2번지에, 대일리 고인돌 Ⅲ군은 대일리 164번지에 위치한다. 대일리 고인돌 Ⅰ군은 9기로, 대일리 고인돌 Ⅱ군에서 신천을 따라 북쪽으로 200m 지점의 도하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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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동구 도동에 있는 도동 측백나무 숲의 자연·인문지리 및 역사적 가치와 그것을 노래한 문인들과 단체. 대구광역시 동구 불로동 다리 남쪽 제방을 따라 동으로 약 2㎞ 정도 가면 길 오른편에 불로천을 끼고 있는 향산(香山)이 나타난다. 향산 북쪽 비탈 낭떠러지를 덮고 있는 울창한 숲이 우리나라 천연기념물 제1호인 대구 도동 측백나무 숲이다. 대구광역시 달성군의 비슬산에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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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 도동리에 있는 삼국 시대의 산성. 도동리 석문산성(石門山城)의 축조 시기를 명확히 알 수 있는 자료는 없지만, 성의 북동쪽에서 죽곡리 산성(竹谷里山城)이나 문산리 산성(汶山里山城) 등에 있는 것과 유사한 돌무지 망대가 확인된다는 점에서 삼국 시대의 산성으로 추정된다. 석문산(石門山)과 진등산(陳登山) 기슭이 맞닿은 협곡 절벽 전면에 우뚝 선 암석이 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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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 도동리에 있던 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의 유적. 구마 고속 국도 현풍 IC에서 달성 도동 서원(達城道東書院)으로 통하는 지방도를 따라가면 달성군 구지면 도동2리 절골 마을이 나타나는데, 도동리 유적(道東里遺蹟)은 절골 마을의 서북쪽에 위치하며, 서쪽의 낙동강과는 약 250m 정도 떨어져 있다. 유적은 크게 두 개의 구역으로 나뉜다. Ⅰ구역은 진동산[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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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지역에서 조선시대에 사람이나 탈것 등이 다니도록 땅 위에 만들어 놓은 도로와, 짐을 옮기는 데 쓰이는 교통수단. 조선시대는 서울[한양, 한성]이 나라의 중심이었기 때문에 전국의 도로망은 서울을 중심으로 9개의 간선도로를 설정하였다. 서울에서 지방으로 뻗은 도로는 그 멀고 가까움에 따라 등급을 대로·중로·소로로 나누었다. 영남로의 경우 죽산 분행역(分行驛)[후기에는 광주 낙생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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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4년 대구 유생 도신징이 올린 의례 상소문. 1623년 인조반정 이후 정국은 반정을 주도한 서인 세력이 집권한 가운데 남인 세력이 견제하는 형태였다. 정치적으로 열세였던 남인 세력은 서인 정권을 견제하기 위하여 영남 유림의 공론에 의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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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 지역에 형성된 성이 같은 사람이 모여 사는 마을. 조선 후기 친족 질서는 내외친이 망라되는 양계적(兩系的) 친족 질서에서 적장자(嫡長子) 중심의 부계적(父系的) 친족 질서로 변화되었다. 구체적으로 혼인 형태에서 유교적 요소의 강화, 적장자 중심의 남녀 차등 상속, 장자 단독 봉사(奉祀), 부계 혈연을 중심으로 한 문중(門中)의 결성과 동성마을의 형성 등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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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두산동에 있었던 저수지. 둔동제(屯洞堤)는 대구광역시 수성구 두산동에 있었던 저수지이다. 1768년 편찬된 것으로 추정되는 『대구읍지(大丘邑誌)』에는 둔동제는 수동(守東)에 있으며, 둘레가 1,429척이며 수심이 7척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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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명곡리에 있는 삼국 시대 고분. 명곡리 고분 떼는 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명곡리 556-2번지에 위치한다. 달성군 화원읍에 있는 달성 중학교에서 명곡리 아파트 단지를 거쳐 흠실 마을로 가는 도로의 북동쪽 능선에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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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명곡리에 있던 통일 신라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의 생활 유적. 명곡리 유적(椧谷里遺蹟)은 남북 방향의 나지막한 구릉과 곡부에 분포하고 있으며, 명곡 체육 공원[다목적 운동장] 조성을 위해 발굴 조사되었다. 조사 지역의 해발은 35~45m로 통일 신라 시대 건물 터 등의 유구는 경사가 거의 없는 비교적 아래쪽인 해발 38m 선상에, 조선 시대 건물 터와 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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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세기 몽고가 고려를 침략한 전쟁. 1225년[고종 13]에 고려에서 무례한 행동을 하던 몽고 사신 저고여(著古與) 일행이 귀국 도중 압록강 가에서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몽고는 이 사건을 구실로 삼아 1231년 살례탑(撒禮塔) 부대를 보내 고려를 침략하였으나, 귀주성(龜州城)에서 박서(朴犀) 부대의 항전 등 고려 군민의 저항을 받아 1232년 강화를 맺고 돌아갔다. 고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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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1년부터 1259년까지 몽골군이 고려에 침입하여 특히 2차, 3차, 6차 때 대구 지역에 침입한 사건. 고려시대인 1232년(고종 19) 몽골의 2차 침입 때 몽골군의 일부가 영남 지역까지 깊숙이 들어와 노략질하였다. 이 사실은 대구 부인사(符仁寺)에 소장되어 있었던, 거란 침입기에 제작된 초조대장경판(初雕大藏經板)이 임진년[1232]에 소실되었다고 한 기록에 의하여 확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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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묘리 묘골의 순천 박씨들에 얽힌 이야기. 묘골[竗谷]로 불리는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묘리 묘동은 조선단종 때 사육신(死六臣)의 한 사람인 박팽년(朴彭年)[1417~1456]의 후손들이 540년간 대를 이어 살아온 영남의 대표적인 양반 마을이다. 묘골은 세 개의 마을로 이루어져 있는데, 한 때는 70여 호나 되는 큰 집성촌이었다. 지금은 후손들이 도시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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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지역에 공자를 비롯한 중국과 한국 유학자들의 위패를 모신 공간. 대구 지역의 문묘(文廟)는 대구향교, 칠곡향교, 현풍향교 등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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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문산리에 있는 삼국 시대 고분. 문산리 고분 떼는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문산리 산24-1번지 나룻가의 구릉에 위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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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문산리에 있는 삼국 시대의 산성. 문산리 산성(汶山里山城)은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문산리 산27번지 안마 마을 남쪽에 위치한다. 달성군 하빈면에서 남쪽으로 이어지는 마천산 줄기의 해발 89m에 자리하고 있다. 북쪽으로는 경상북도 성주군 선남면·용암면 일대, 남서쪽으로는 고령군 노곡리 고분군(蘆谷里古墳群)과 더불어 그 주변의 산지, 남동쪽으로는 죽곡리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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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문양리에 있는 삼국 시대 고분. 문양리 고분 떼는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문양리 산30번지에 위치한다. 대구~성주 간 국도 변의 해발 60~70m 구릉에 고분 떼가 형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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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동구에 있는 국가 지정 및 대구광역시 지정 문화유산 「문화재보호법」에 의하면, 문화재란 인위적이거나 자연적으로 형성된 국가적·민족적 또는 세계적 유산으로서 역사적·예술적·학술적 또는 경관적 가치가 큰 것을 말한다. 이러한 문화재는 성격에 따라 유형문화재·무형문화재·기념물·민속문화재로 분류되며, 지정 여부에 의해 지정문화재와 비지정문화재로 구분된다. 지정문화재는 지정 주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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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 도동리에 있는 조선 후기 박성의 묘비. 박성(朴惺)[1549~1606]은 조선 중엽의 학자·의사(義士)로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덕응(德凝), 호는 대암(大庵)이다. 정구(鄭逑)[1543~1620]의 문인이다. 배신(裵紳)[1520~1573]에게 사사하였으며, 과거 시험에의 뜻을 버리고 학문에 정진, 최영경(崔永慶)·김면(金沔)·장현광(張顯光) 등과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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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본리리에 있던 통일 신라 시대와 조선 시대의 유적. 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본리리 남평 문씨 본리 세거지(南平文氏本里世居地) 쪽에 바로 접해 위치한다. 조사 지역은 남평 문씨 본리 세거지를 비롯한 인흥 마을의 중앙부를 관류하는 천내천의 상류 북안의 장방형 대지이다. 발굴 조사 후 유구는 현장에 보존 조치되었으며, 성토를 한 후 공사가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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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옥포읍 본리리에 있는 삼국 시대 고분. 본리리 고분 떼는 대구광역시 달성군 옥포읍 본리리 산51번지 일대의 구릉 지대에 위치한다. 옥포읍 행정복지센터 북쪽 구릉과 구마 고속 국도 동쪽 LG 물류 센터 사이의 능선들에 분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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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본리리에 있던 청동기 시대부터 삼국 시대까지의 유적. 현재 대구광역시 달서구 대곡동과 달성군 유가읍 테크노폴리스로 통하는 도로 구간 중 본리 터널과 명곡 터널은 고가 도로로 연결되어 있는데, 본리리 유적(本里里遺蹟)은 고가 도로의 하부에 위치하고 있었다. 비슬산 천수봉 일대에서 발원하여 낙동강으로 유입되는 천내천 상류로, 발원지에서 북쪽으로 3.82㎞ 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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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에 있는 전통 시대 군사 통신 시설. 봉수(烽燧) 또는 봉화(烽火)는 횃불이나 연기를 피워 올려 변방 지역에서 발생한 적의 침입이나 난리를 중앙에 알리던 통신 제도이다. 원래 봉수라는 용어는 밤에 불로서 알리는 봉인 연봉(燃烽)[횃불]과 낮에 연기로서 알리는 번수(燔燧)[연기]를 합친 말이다. 봉수가 행하여진 것은 삼국시대부터였으나 본격적으로 법제화한 것은 고려 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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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달성 지역의 봉수. 봉수(烽燧)는 횃불[烽]과 연기[燧]로 국경과 해안의 안위를 약정된 신호 전달 체계에 의해 국경 지대의 군정(軍情)을 신속하게 중앙에 보고하던 군사 통신 수단이다. 삼국 시대부터 원시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하였으며 고려 시대에 정례화되었다. 조선 전기에 다섯 개 노선의 봉수망이 정비되면서 전국적으로 700여 개소에 이르는 봉수대가 설치·운영되었다. 봉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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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봉촌리에 있는 삼국 시대 고분. 봉촌리 고분 떼는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봉촌리 산7번지 일대에 위치하고 있다. 새촌 마을 서북쪽을 감싸고 있는 해발 90m 내외의 능선에 고분이 분포한다. 고분 떼 서쪽과 남쪽에는 낙동강의 연안 평야가 펼쳐져 있다. 새촌 마을의 서쪽 능선은 말굽을 엎어 놓은 요형(凹形)인데, 새촌 마을의 서북 산록의 구릉부와 동쪽 비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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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 부리에 있는 삼국 시대 고분. 부리 고분 떼는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 부리 138번지에 위치한다. 성하리 고분 떼 Ⅱ의 동쪽에 계곡을 사이에 두고 마주하는 능선으로, 현풍읍 행정복지센터와 대구 현풍 초등학교로 연결되는 북쪽 능선 일대이다. 대구 현풍 초등학교는 기존의 상리 토기 산포지로 삼국 시대 토기 조각들이 학교 내에 흩어져 채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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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9년 대구광역시 동구 공산동, 신무동, 용수동 일대에서 백불암 최흥원이 실시한 동약. 북송의 남전여씨(藍田呂氏)에 의해 창안된 향약은 남송대 주자의 수정·보완을 거치면서 성리학적 향촌사회의 운영원리로 『소학』교육과 함께 각광받게 되었다. 여말선초 성리학의 수용과 함께 유입된 주자향약은 1515년(중종 10)을 전후하여 사림 세력에 의해 실시 논의가 활발히 전개되었는가 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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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동구 신무동에 있는 고려 현종 때 거란의 침입을 물리치기 위하여 판각한 우리나라 최초의 대장경판이 보관되었던 사찰. 부인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桐華寺)의 말사이다. 부인사(符印寺) 또는 부인사(夫人寺)라고도 일컬어진다. 부인사지(符仁寺址)는 대구광역시 기념물 제3호로 지정되어 있다. 부인사 관련 자료집으로는 『부인사의 역사와 문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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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의 선사시대부터 근대까지 주요한 문화유산. 북구에는 국가지정문화재인 보물 7건, 사적 1건, 대구광역시 지정 유형문화재 1건, 무형문화재 1건, 기념물 2건, 문화재자료 2건 등 모두 14건의 지정문화재가 있다. 이 중 보물 7건은 경북대학교의 소장품으로 북구 지역의 문화재로 보기는 어렵다. 비지정문화재는 신석기~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성격의 유적이 발굴 조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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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에 위치한 비와 정려 현황. 비(碑)는 사적(事績)을 후세에 오래도록 전하기 위해 나무·돌·쇠붙이 따위에 글을 새겨 세워 놓는 것을 말한다. 재질에 따라 목비·석비·철비로 구분되며, 석비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목비는 현존하는 것이 없고, 철비는 수량이 많지 않다. 비는 내용에 따라 탑비(塔碑)·묘비(墓碑)·신도비(神道碑)·송덕비(頌德碑) 등으로 나뉘는데, 대개는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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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용계리에 있는 성터. 사방산 성터는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용계리 사방산 마을의 남쪽 능선에 위치한다. 주암산(舟岩山)[846m]에서 북쪽으로 가창댐까지 길게 뻗어 내린 산록의 중턱 해발 300m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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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사월동 일대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 대구 남쪽에 남천과 합류하는 욱수천을 사이에 두고 대구 사월동 고인돌Ⅰ과 대구 사월동 고인돌Ⅱ가 있다. 대구 매호동 고인돌, 대구 시지동 고인돌과 함께 ‘고산 지역 고인돌’로 불린다. 욱수천의 남쪽에 분포하는 대구 사월동 고인돌Ⅰ은 원래 9기의 고인돌 덮개돌[상석]이 있었으나 2기는 도로에 묻히고 1기는 깨어져 현재 6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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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지역에서 사직에게 제사를 지내는 제단. 조선시대에는 국가 사직단 외에도 각 고을마다 사직단을 조성하였다. 토지 신인 사(社)는 다스리는 영토와 관련되고, 오곡(五穀)을 주관하는 신인 직(稷)은 백성의 삶과 관계되었다. ‘종묘사직이 위태롭다’는 말이 있듯이 사직은 곧 국가 그 자체로 인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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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지역에 있는 적의 침입을 방어하고 영토를 보전하기 위하여 축조한 고대 산성. 산성은 산에 의지하여 만든 성을 말한다. 산성은 적의 침입을 방어하고 영토를 보전하기 위하여 지리적 요충지에 축조하는 시설물이기도 하다. 험한 자연 지세를 이용하여 적의 공격을 약화시키고 항전을 계속할 수 있도록 축조한 성이다. 우리나라는 산지가 많은 까닭에 산성이 많이 축조되었다. 산성을 쌓으면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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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신라 시대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 일대에 배치된 지방군. 『삼국사기(三國史記)』 직관지에 따르면, 십정(十停)은 544년(진흥왕 5)에 설치된 것으로 나타난다. 이로 미루어 보아 삼량화정(參良火停)은 544년(진흥왕 5)보다 훨씬 뒤인 경덕왕(景德王)[재위 742∼765] 때 새로운 지방 제도가 확립되는 과정에서 설치된 것으로 보인다. 당시 십정은 국방상 요지인 한산주(漢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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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논공읍 삼리리에 있는 삼국 시대 고분. 삼리리 고분 떼는 대구광역시 달성군 논공읍 삼리리의 해발 32~78m의 낮은 구릉에 위치하며, 동쪽으로 8㎞ 지점에 성산리 고분 떼와 설화리 고분 떼가 있다. 고분 떼에서 봉토분이 분포하는 곳은 구릉의 북동쪽 자락에 해당하는 안건 마을 북쪽 달성군 논공읍 삼리리 산51-1번지 일대이며, 씩실 마을 북쪽 삼리리 산40-1번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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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삼산리에 있는 봉수 터. 삼산리 봉수 터는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삼산리 182-1번지와 경상북도 청도군 이서면 팔조리에 걸쳐 위치한다. 봉수 터는 달성군 가창면 삼산리에서 청도군으로 넘어가는 옛 국도에 있는 팔조령 휴게소 오른쪽에서 주행하는 능선에 자리한다. 능선 봉우리를 따라 남쪽으로는 청도군 이서면, 북서쪽으로는 달성군 가창면으로 나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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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삼산리에 있는 삼국 시대의 성터. 삼산리 성터는 북으로는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을, 남으로는 경상북도 청도군을 조망할 수 있는 육로 교통로의 요충지에 입지한 삼국 시대의 성터로 추정되고 있다. 특히 청도군 방향인 동남쪽에 성벽이 잘 남아 있는데 이는 임진왜란 시 개축된 것으로 판단되며, 1960년대 이후 새마을 사업을 하면서 성을 밭둑으로 사용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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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상동 일대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과 무덤. 상동지석묘군[고인돌]은 대구를 관통하는 신천을 따라 형성된 자연제방 위에 나란하게 분포하고 있어 ‘신천 우안의 고인돌’ 또는 ‘신천 유역의 고인돌’로 불린다. 2006년 4월 20일 대구광역시 기념물 제12로 지정되었다. 그 후 2021년 6월 2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개정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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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시대 대구광역시 수성구와 달성군 가창면에 있던 지방 통치 구역. 『고려사(高麗史)』 권57 지리지 동경 유수관 경주 수성군 조의 위화군 세주(細註)에 “수성군(壽城郡)은 본래 신라의 위화군[상촌창군이라고도 한다]으로, 경덕왕(景德王)[재위 742∼765] 때 수창군(壽昌郡)으로 고쳤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삼국사기(三國史記)』 지리지 수창군 조에는 상촌창군이라는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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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서구의 선사시대부터 근대까지 주요한 문화유산. 서구에는 국가지정문화재는 없지만 국보인 비산동 청동기 일괄품이 서구에서 출토되었으며, 대구광역시 지정 무형문화재가 3건이 있다. 비지정 문화재는 대부분 10여 건의 발굴 조사와 지표조사를 통하여 확인된 유적들로 초기철기시대 한국식 청동기가 다량 출토된 비산동과 평리동의 청동기 유적, 삼국시대 달성 고분군, 조선시대 대구부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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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서재리에 있는 삼국 시대 고분. 서재리 고분 떼는 대구광역시 달서구계명 대학교 성서 캠퍼스 북쪽 궁산의 동쪽 해발 25~52m의 경사면과 끝자락에 위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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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서재리에 있던 통일 신라 시대와 조선 시대의 유적. 서재리 유적(鋤齋里遺蹟)은 와룡산[295m] 중앙부 서쪽 능선의 해발 53~55m 사이, 현재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서재리에 있는 신성서진흥 더블 파크 아파트 103동 일원에 위치한다. 와룡산에서 서쪽으로 뻗어 내려오는 중앙부 능선의 말단부로 아파트 부지 중 남동쪽 가장자리에 해당된다. 발굴 전에는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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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에서 돌을 활용한 도구를 만들어 사용한 시기의 역사와 문화. 석기시대는 인류 문명의 역사에서 도구를 만든 재료를 기준으로 구분할 때 가장 앞선 시기이자, 인류 역사에서 가장 오랫동안 이어져 온 시대이다. 청동기와 철기를 사용하기 이전의 시기로, 돌과 돌을 서로 부딪치거나 두드려 떼어서 제작한 뗀석기[타제 석기(打製石器)]를 사용한 구석기시대와 돌들을 여러 가지 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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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각자의 리더십과 마을 근대화 달성군 옥포읍의 재적자 명부를 떼보면 다리목 마을 출신자가 절반 정도를 차지한다고 한다. 이유는 교육열이 높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외지로 나가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다리목 마을 사람들은 대구를 비롯하여 서울, 부산 등 대도시로도 많이 나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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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의 구석기시대부터 초기철기시대까지 유적과 유물. 선사시대(prehistory)는 역사시대(history)와 대칭되는 말로 문헌 기록이 없는 시대를 말한다. 우리나라 고고학계에서는 구석기시대·신석기시대·청동기시대·초기 철기시대까지를 포괄하는 개념으로 이해되고 있지만, 역사학계에서는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이 성립하는 청동기시대부터는 역사시대로 구분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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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기 시대부터 초기 철기 시대까지 달성 지역의 역사. 선사 시대는 문자로 역사적 사실을 기록하기 시작하는 역사 시대와 대칭되는 개념으로, 일반적으로 선사 시대의 종말을 문자의 출현을 기준으로 할 때 한반도의 경우 구석기 시대, 신석기 시대, 청동기 시대, 초기 철기 시대까지 포괄하는 시대 개념으로 이해되고 있다. 인류가 처음 출현한 때부터 문자가 만들어지기 시작한 때까지의 기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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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기 시대부터 청동기 시대까지 대구광역시 동구 지역의 유적과 유물. 대구광역시를 구성하고 있는 8개 군구(郡區) 가운데 가장 넓은 범위를 차지하고 있는 곳이 동구(東區)이다. 대구광역시는 북쪽으로 팔공산(八公山)을, 남쪽으로는 비슬산(琵瑟山)을 최고봉으로 해서 작은 산맥이 이루어져 이들이 동서 방향으로 달리면서 안팎을 가름으로써 마치 남북을 가로막은 병풍과 같은 형세를 한 분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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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설화리에 있던 삼국 시대 고분. 설화리 고분 떼는 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설화리 556-16번지, 화원 고등학교와 농협 하나로 마트 동쪽 성천로를 따라서 남-북 방향 해발 43m의 구릉에 분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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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설화리에 있는 삼국 시대의 산성. 설화리 산성(舌化里山城)은 삼국 시대의 산성이다. 다사 지역 성곽과 더불어 서북 지역 방어를 비롯한 낙동강 서안의 방어와 하천 교역로를 방비하기 위한 목적으로 5세기 중엽경에 구축되어 사용된 성곽으로 판단되며, 이후 대가야 멸망 시점까지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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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설화리에 있던 삼국 시대부터 근대까지의 유적. 설화리 유적(舌化里遺蹟)은 현재 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설화리 농협 하나로 유통 달성 농수산물 종합 유통 센터 동남쪽 부분에 위치하였다. 조사 지역의 남서쪽에는 달성군 여성 문화 복지 센터가, 북쪽에는 월배 국도~화원 유원지 간 도로가 위치한다. 월배 국도~화원 유원지 간 도로 건설과 관련하여 2002년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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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시대 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에 있던 지방 통치 구역. 신라는 고대 국가로 성장함에 따라 확대된 영토를 효과적으로 통치할 목적으로 군현 제도를 시행하였다. 파사 이사금 시기에 음즙벌국을 취해 현(縣)을 설치하였다는 것을 예로 보아 설화현(舌火縣)은 108년(파사 이사금 29) 다벌국을 병합함에 따라 파사왕 29년에 설화현을 설치하였다고 짐작된다. 반면에 무열왕 이전의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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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 시대 달성 지역의 성. 달성군에서 성의 위치는 낙동강을 중심으로 크게 3개 구역으로 구분된다. 1그룹은 하산리 성터, 문산리 산성(汶山里山城), 죽곡리 산성(竹谷里山城) 등의 달성군 다사읍 지역, 2그룹은 성산리 토성(城山里土城), 설화리 산성(舌化里山城), 위천리 산성(渭川里山城) 등의 화원읍 지역, 3그룹은 성하리 서산성(城下里西山城), 초곡산성(草谷山城), 도동리 석문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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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동구 지역에 있는 흙이나 돌을 쌓아 만든 전통 시대의 방어 시설. 전근대 동아시아의 정주(定住)[일정한 지역에 기반을 두고 거주] 사회에서는 일찍이 취락을 둘러싼 방어 시설이 나타났다. 국가가 발생한 뒤에는 특히 왕이나 제후가 거주하는 곳, 지방관이 파견된 곳 등에 성을 쌓아 보호하였다. 이때 성벽은 지배자의 치소(治所)[옛 지방관청]만을 둘러싸는 경우도 있고, 백성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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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성동 고산 정상에 축조된 고대 성곽. 성동토성 성곽이 위치한 성산은 고산으로도 부르는데, 사방을 조망하기에 좋은 조건을 갖춘 고립된 구릉이라 성을 쌓기에 적합한 지형과 지세를 가지고 있다. 성동토성은 경상북도 경산시 남천면을 흘러 금호강과 합류하는 남천의 동쪽 구릉에 있어 금호강 교역망을 직접 관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선박 정박이 가능한 구릉에 위치한 거점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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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남구 앞산에 있는 고려 전기의 입보용 산성. 성불산고성(成佛山古城)은 『신증동국여지승람』 대구도호부 고적조에 “수성현에서 서쪽으로 10리에 있는데 돌로 쌓았고 둘레가 3,051척[포백척 약 46㎝를 적용하였을 때 약 1,403m]이며 지금은 없어졌다”고 기록되어 있다. 『여지도서』에도 동일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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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성동 고산에 있는 조선시대 봉수대. 성산 봉수(城山烽燧)는 내지(內地) 봉수(烽燧)[조선시대 국경 지역 해안가에 설치한 연변(沿邊) 봉수(烽燧)와 한양의 경봉수(京烽燧)를 연결하기 위하여 내륙에 설치한 봉수]에 해당하며,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병고조(兵考條)에 의하면 제2거 직봉(直烽)[동래-한양 간]에 포함된 간봉(間烽)[5개의 직봉 노선 사이에 연락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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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성산리에 있는 삼국 시대 고분. 성산리 고분 떼는 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성산리 산28번지 일대에 위치한다. 진천천과 천내천이 합류하여 낙동강으로 유입되는 해발 50~85m의 구릉에 봉토분 30여 기가 분포한다. 화원 유원지 내 산비탈에 위치하는 4기[Ⅱ군]를 제외한 대부분은 윗잔뫼 마을 뒷산에서부터 마을 사이의 능선과 산비탈[Ⅰ군]에 분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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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성산리에 있는 삼국 시대의 토성. 성산리 토성(城山里土城)은 화원 토성, 사문진성, 구라리(九羅里) 성터 등으로도 불린다. 영남 문화재 연구원이 2000년에 대구 화원 동산 개발 지구 내 문화 유적 시굴 조사 때 성내에서 삼국 시대 토기편을 포함한 수혈 유구(竪穴遺構)와 평탄지를 확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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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 성하리에 있는 삼국 시대 고분. 성하리 고분 떼는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 성하리 일대에 분포한 고분 떼로 두 군데에 분포한다. 성하리 고분 떼 Ⅰ은 달성군 현풍읍 성하리 산20번지 세미실골 서쪽 구릉, 즉 남대구 자동차 운전 전문 학원 북쪽의 능선과 비탈에 위치한다. 성하리 고분 떼 Ⅱ는 세미실골 동쪽의 구릉인 달성군 현풍읍 성하리 228-2번지에 위치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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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 성하리에 있는 조선 후기에서 근대에 건립된 경상도 관찰사와 현풍 현감 등의 공덕비. 성하리 비석군(城下里碑石群)은 옛 관아 입구에 있던 35기와 1977년 구마 고속 도로 공사 시 성하동 옛 쌍산 고개 도로변의 2기, 군민체육관 앞 도로 공터에 있던 1기를 현풍 체육관 앞 공터 도로변에 모아 두었던 것을 1997년 현재의 장소에 연도별, 관직별로 분류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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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 성하리에 있는 산성.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 성하리 693번지 성하 마을에서 낙동강 쪽으로 향하는 해발 60m가량의 구릉 끝자락에 위치한다. 북쪽에서 내려오는 낙동강이 이곳에서 'S' 자로 곡류하며 달성군 현풍읍 쪽에서 내려오는 현풍천과 합류한다. 『현풍 읍지(玄風邑誌)』에는 '서산성(西山城)' 또는 '수문진성(水門津城)'으로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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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 성하리에 있던 통일 신라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의 유적. 성하리 유적(城下里遺蹟)은 4대강 살리기의 일환으로 실시된 달성 도동 지구 외 4지구의 농경지 리모델링 사업으로 인해 발굴 조사되었다. 농경지 리모델링 사업 부지는 달성군 구지면 도동리, 현풍읍 성하리, 논공읍 상리·하리, 옥포읍 본리리, 하빈면 동곡리 일원으로 낙동강 중하류의 동안에 위치한다. 성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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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대구 지역에서 성황에 제사 지내기 위하여 세운 서낭당. 성황사(城隍祠)는 고려시대부터 지배층의 종교적 기구의 하나로 존재하여 왔으며, 조선 초부터는 전국 모든 고을에 하나씩의 성황사를 두었다. 현풍현의 성황사는 비슬산에 있었는데, 정성대왕(靜聖大王)의 신(神)이 장마나 가뭄, 역질이 있을 때에 기도하면 응답이 있으므로 제사 지내려는 자가 몰려들었다. 제사 때마다 모인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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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지역에 있던, 농사에 필요한 물을 공급하기 위한 각종 시설, 저수지, 제언(堤堰). 조선시대 주요 수리시설은 물을 가둘 수 있도록 만든 저수지이며, 제언(堤堰), 방축(防築), 제, 언 등이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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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의 선사시대부터 근대까지 주요한 문화유산. 수성구에는 국가지정문화재인 국보 3건, 보물 13건, 국가민속문화재 2건, 대구광역시 지정 유형문화재 8건, 무형문화재 2건, 기념물 4건, 문화재자료 4건 등 모두 36건의 지정문화재가 있다. 이중 국보 3건, 보물 13건, 국가민속문화재 2건은 국립대구박물관 소장품으로 순수한 지역문화재로 보기는 어렵다. 비지정 문화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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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대구광역시 수성구, 남구, 달성군 가창면을 관할한 고려의 지방 행정구역. 수성군(壽城郡)은 현재의 대구광역시 수성구, 남구, 달성군 가창면을 관할한 고려의 지방 행정구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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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 대구광역시 수성구 지역과 달성군 가창면에 있던 지방 통치 구역. 940년(태조 23) 태조 왕건은 전국의 군현(郡縣) 명칭을 개정하는 개편을 단행하면서, 이때 경덕왕(景德王)[재위 742∼765] 시기 만들어진 수창군(壽昌郡)을 수성군(壽城郡)으로 개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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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대구 지역에 있던 지방 행정구역. 수성현(壽城縣)은 조선 전기 대구 지역의 행정구역이다. 조선 후기 수성현은 수현내·수북·수동·상수서·하수서·상수남·하수남면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대체로 현재의 신천 동남쪽의 달성군 가창면, 남구, 시지 지역을 제외한 수성구와 중구 대봉동 및 동구 효목동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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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대구광역시 수성구, 남구, 달성군 가창면을 관할하던 신라의 지방 행정구역. 수창군(壽昌郡)은 현재의 대구광역시 수성구, 남구, 달성군 가창면을 관할하면서 주변의 현(縣)들을 거느린 757년(신라 경덕왕 16) 이후 신라의 지방 행정구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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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신라 시대 대구광역시 수성구 중동·상동 및 달성군 가창면에 있던 지방 통치 구역. 신라 경덕왕(景德王)[재위 742∼765]은 귀족 세력 약화와 왕권 회복을 목표로 한화 정책을 펼쳐 9주·5소경·117군·293현의 고유 지명을 한자식으로 바꾸면서 위화군(喟火郡)을 수창군(壽昌郡)으로 개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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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 성하리에 있는 조선 후기 수철원교의 건설 과정이 새겨진 비. 비문에 의하면 수철원교(水鐵院橋)는 현풍현의 서쪽에 있는 다리로 1706년(숙종 32)에 중수되었다가, 1736년(영조 12) 다리가 붕괴되어 1760년(영조 36) 다시 만들었다고 한다. 참고로 『포산지(苞山誌)』에 “풍제원교는 현 서쪽 1리에 있다. 지금은 수철원교라 부른다[豊濟院橋縣西一里今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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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국시대 지금의 대구 지역인 수창군 호국성 남령에 세워진 팔각등루의 기문. 「신라수창군호국성팔각등루기(新羅壽昌郡護國城八角燈樓記)」는 통일신라 수창군(壽昌郡) 호국성(護國城) 남령(南嶺)에 세워진 팔각등루(八角登樓)의 기문(記文)이다. 수창군은 지금의 대구광역시 수성구 일원이다. 군치(郡治)와 대구현(大丘縣), 팔리현(八里縣), 하빈현(河濱縣), 화원현(花園縣) 등 4현으로 구성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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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신천 좌안에서 분포하는 청동기시대 고인돌. 대구광역시 상동 부근에서 대구분지로 유입되어 대구 지역의 중심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며 금호강에 합류하는 신천 일대에는 다수의 청동기시대 고인돌 유적들이 분포하고 있다. 고인돌은 주로 상류 쪽은 ‘신천 우안’, 중·하류는 ‘신천 좌안(新川 左岸)’에 집중된다. 신천 우안에는 상동 고인돌을 중심으로 대구 파동 고인돌, 대구 중동 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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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읍 쌍계리에 있는 삼국 시대 고분. 쌍계리 고분 떼는 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읍 쌍계리 현풍천 북안에 접한 속칭 치마거랑 마을 북서쪽 해발 87.8m, 해발 89.1m의 남북 두 구릉에 위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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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읍 쌍계리에 있던 신석기 시대와 삼국 시대의 유적. 현재 대구광역시 달서구 대곡동과 달성군 유가읍 대구 테크노폴리스로 통하는 도로 구간 중 초곡 터널을 통과하여 조금 가다 보면 우측 편에 쌍계리 고양내 마을과 좌측 편에 동부 마을이 나타난다. 쌍계리 유적(雙溪里遺蹟)은 고양내 마을과 동부 마을 사이의 성토되어 조성된 도로 아래에 위치하고 있었다. 쌍계리 유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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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부터 조선중기까지 대구광역시 동구 안심 일대에 있었던 특수행정구역. 고려시대 현 대구광역시 동구 일대에 있었던 지방행정구역은 해안현(解顏縣), 안심소(安心所) 등이다. 안심소는 특별행정구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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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헌 김성노 선생의 학덕과 유림계 향사 유학자이자 선비로 이름난 김성노(金成魯, 1769-1831) 선생은 다리목 마을 입향조 김유원(金有元) 공의 10세손이다. 조선시대 영조 때의 사람으로 일찍 학문에 뜻을 두고 향시에도 세 번씩이나 합격하였다. 하지만 난세의 정치무대에 나아가기보다는 다리목 마을 금계산(金鷄山) 자락에다 ‘낙교재(洛橋齋)’라는 서당을 지어 후학 양성에 전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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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읍 양리에 있는 삼국 시대 고분. 양리 고분 떼는 비슬산의 한 산맥에 위치하는 초곡산성(草谷山城)과 초곡산성 남쪽으로 뻗어 내린 달성군 유가읍 양리·초곡리 사이의 능선과 산비탈을 중심으로 분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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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읍 양리에 있는, 조선 후기 곽재훈의 아들 네 명의 효행과 관련 있는 석굴. 조선 시대의 의병장 망우당(忘憂堂) 곽재우(郭再祐)의 사촌형 곽재훈(郭再勳)에게는 곽결(郭潔), 곽청(郭淸), 곽형(郭泂), 곽호(郭浩)의 네 아들이 있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이들 사 형제는 병환 중인 아버지를 모시고 비슬산 중턱에 있는 동굴에 숨어 피란 생활을 하였다. 그런데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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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지역에서 조선시대 지배층인 양반들이 살던 집. 조선시대 대구 지역에는 소수의 지배층인 양반과 다수인 평민 및 노비가 살았다. 신분이나 경제력에 따라 수십 칸의 기와집에서부터 2~3칸의 초가집[초옥] 등에서 거주하였다. 주재료가 목재나 흙이었기 때문에 내구연한이 수십 년에서 몇백 년이었다. 산업화 과정에서 시멘트 등 새로운 건축 소재들이 사용되고, 양옥과 아파트 보급이 확산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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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지역에서 제사를 받지 못하는 혼령이나 돌림병을 퍼뜨리는 귀신을 제사 지내던 제단. 여단(厲壇)[여제단]은 대구 지역에서 제사를 받지 못하는 혼령이나 돌림병을 퍼뜨리는 귀신을 제사 지내던 제단이다. 조선 초 이래 각 고을의 관아가 있던 읍치 지역은 3단 1묘를 운영하였다. 사직단(社稷壇)은 관아의 서쪽에 있고, 여단은 관아의 북쪽에 있었으며, 문묘(文廟)와 성황단(城隍壇)[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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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대구광역시 역사. 대구는 지형적으로 영남의 중심부이며, 지리적으로 경상도 상변에서 뻗쳐 나온 소백산맥에 연이어 팔공연령이 병립하고 남쪽에는 구조곡이 나란히 발달한 가운데 산들이 겹겹이 펼쳐지면서 낙동강 중류에 합류하는 금호강과 금호강 지류인 신천이 퍼져 흐르는 분지에 속한다. 대구시 가로의 주요부는 대구분지 중앙에 자리 잡은 신천의 범람원으로 형성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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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달성 지역의 역사. 달성 지역에 처음 사람들이 살기 시작한 시기는 대구 월성동 유적(月城洞遺蹟)을 통해 후기 구석기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달성군의 역사는 대체로 대구의 역사와 함께 살펴보아야 하며, 대구에서 분리되었던 시기[1914~1995년]는 독립적으로 고찰해야 한다. 대구는 예로부터 달구벌(達句伐), 달구불[達句火], 달성(達城) 등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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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대구광역시 동구의 역사와 문화. 1. 신석기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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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지역에서 조선시대 국가의 공적인 육상교통의 동맥 역할을 하였던 역과 원. 국가의 공적인 도로망인 역(驛)은 왕명과 공문서의 전달, 외국 사신과 공무 여행자들의 편의 제공, 공공 물자의 운송 등 육상교통의 동맥 역할을 하였다. 대구광역시 영역에는 조선 초기 5곳의 역이 있었다. 대구부 관아에서 동으로 9리 수성현 범어역, 하빈현의 서쪽 1리 신역(新驛)인 금천역(琴川驛), 현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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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서구 비산동에 존재하였던 것으로 추정되는 저수지. 연화지(蓮花池)는 대구광역시 서구 비산동에 존재하였던 것으로 추정되며, 연화지의 건립 시기나 위치는 명확하지 않다. 1768년 편찬된 것으로 추정되는 『대구읍지(大丘邑誌)』에는 연화제(蓮花堤)는 서상(西上)에 있으며, 둘레가 1,980척이고 수심이 3척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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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에 대구도호부 부사인 금유가 경상감영의 금학루에서 읊은 한시. 「영각서풍청(鈴閣暑風淸)」은 대구도호부(大丘都護府)의 부사인 금유(琴柔)[1379~1444]가 경상감영(慶尙監營)의 누각인 금학루(琴鶴樓)에서 읊은 한시이다. 「금학루시(琴鶴樓詩)」라고도 불린다. 금유는 조선 전기의 문신이다. 본관은 봉화(奉化), 호는 청원정(淸遠亭)이다. 아버지는 금극해(琴克諧), 아들은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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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만촌동에 있는 대구읍성의 남쪽 성문. 영남제일관(嶺南第一關)는 경상도관찰사 겸 대구부사 민응수(閔應洙)[1684~1750]가 1736년(영조 12) 축성한 대구읍성의 남쪽 성문이다. 대구토성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여 석성(石城)으로 축성하면서 동서남북 사방에 성문을 세웠는데, 남문의 다른 이름이 ‘영남제일관’이다. 영남제일관은 1906년 대구읍성과 함께 해체되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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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지역에서 16세기 이래 영남을 이끌어 간 재지사족 세력. 조선 초기 경상도에서는 학문적 계보가 김안국을 매개로 손소·손중돈 계열에서 이언적이, 권벌·이우·이현보의 기반 위에서 이황이, 정여창·김굉필·김일손의 학문 전통 위에서 조식이 나온 것으로 인식하였다. 영남학파는 사림파로부터 자기 자신의 인격 수양하는 위기지학(爲己之學)의 기초가 되는 『소학(小學)』 교육과 『주자가례(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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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만촌동에 있는 조선 후기 경상감영의 성을 축성하고 건립 경위를 기록한 비석. 영영축성비(嶺營築城碑)는 1735년(영조 11) 3월 경상도관찰사로 부임한 민응수(閔應洙)[1684~1750]가 조정에 건의하여 축성하였다. 1736년 1월 착공하여 11월 성을 완공하였다. 영영축성비 비문은 관찰사 민응수가 지었다. 영영축성비는 1982년 3월 4일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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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 예현리에 있던 청동기 시대·삼국 시대와 조선 시대부터 근대까지의 유적. 현재 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 예현리 이제 마을 동쪽의 달성 2차 산업 단지 지원 도로 하부에 예현리 유적이 위치하고 있었다. 달성군 구지면 예현리는 구지면의 최남단에 위치하며, 조사 지역은 해발 36m 내외의 낮은 구릉과 그에 접한 경작지에 입지하는데, 1/5가량은 구릉 비탈이고 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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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오리에 있는 시대 미상의 성터. 오리 성터는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오리 삼거리 마을 동북쪽에 위치하며 북쪽은 가창댐과 연접하여 있다. 산성이 있는 곳은 남쪽의 해발 약 905m의 최정산(最頂山)에서 사방으로 흘러내린 능선 중 서쪽의 용계천(龍溪川) 앞까지 뻗은 서쪽 구릉의 해발 300m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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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7년 공산전투에서 패한 왕건과 관련한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매곡리에 있는 왕선고개의 의미.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매곡리에 있는 왕선고개는 고려태조 왕건(王建)[877~943]의 후삼국 통일과 관련이 깊은 곳이다. 왕건이 927년 공산전투(公山戰鬪)에서 패하여 도주하다가 왕선고개에 이르러 살았음을 확인하고 재기의 결의를 다졌고, 이것이 후삼국을 통일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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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7년 대구광역시 동구 팔공산 일대에서 고려 태조 왕건과 후백제 견훤 사이에 벌어졌던 큰 전투. 후삼국 시기 고려와 신라는 친밀한 관계를 맺고 후백제를 공동의 적으로 삼아 군사행동을 함께 하였다. 이러한 정세 하에서 대구[대구광역시] 지역을 무대로 한 공산전투가 벌어졌다. 공산전투는 927년(태조 10) 지금 대구광역시 동구 팔공산 일대에서 후백제 견훤과 태조 왕건 사이에 벌어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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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남구 대덕산 산 끝자락에 있는 고대 산성. 용두산성(龍頭山城)은 테뫼식 산성이다. 적의 침입에 대비한 방어 성곽이고 대구 분지 전역을 관찰할 수 있는 거점성이다. 대구광역시 남구 대덕산 산 끝자락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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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읍 용리에 있는 삼국 시대 고분. 용리 고분 떼는 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읍 용리 산49-2번지 일대에 위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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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말 고려 초 현재 대구광역시 수성구에 편입된 고산 지역에 있었던 성. 『신증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경산현 고적 조에 고포성(古浦城), 금성(金城)과 함께 나타나 있다. 세주(細註)에 인용된 『주관육익(周官六翼)』에는 신라 때 이 세 성을 합쳐서 압량군(押梁郡)을 만들었고 통합한 뒤 다시 고쳐서 세 성으로 만들었다고 되어 있는데, 대체로 신라 말에 3성으로 분립하였다가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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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초 경상도 대구도호부 우록동에서 실시된 동 단위의 자치 규약. 우록동약(友鹿洞約)은 17세기 초 모하당(慕夏堂) 김충선(金忠善)[1571~1641]이 신분 질서와 부세제(賦稅制)를 유지하기 위해 우록동[현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에서 실시한 동 단위의 자치 조직이다. 김충선의 문집인 『모하당집(慕夏堂集)』에 「내외 자손 급 동리인 약조(內外子孫及洞里人約條)」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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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욱수동 자양산 정상에 있는 고대 산성. 욱수동산성(旭水洞山城)은 대구광역시 수성구 욱수동 자양산 정상부와 계곡을 감싼 포곡식 산성이다. 유사시 다수의 인원이 입보 항쟁할 수 있는 성곽이자 동시에 경산 지역을 포함한 금호강 유역 전역을 관찰할 수 있는 거점성이다. 자산성지, 자양산성이라고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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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서구 월배 지역에서 확인되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월배 지역은 대구 지역 내에서 집자리, 고인돌 등 청동기시대 유적이 집중 분포하는 지역이다. 덮개돌이 확인되는 고인돌 유적으로는 대구 월성동 고인돌[월성동 1275유적], 대구 대천동 고인돌, 대구 상인동 고인돌, 대구 진천동 고인돌 등이 있고, 덮개돌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청동기시대 돌널무덤이 확인된 유적으로는 대구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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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논공읍 위천리에 있는 삼국 시대 고분. 위천리 고분 떼는 대구광역시 달성군 논공읍 위천리 산24-2번지 우나리 마을 뒷산의 능선에 위치한다. 우나리 마을 뒷산의 남북으로 연결되는 해발 75m 능선에 2기의 원형 봉토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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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논공읍 위천리에 있는 삼국 시대의 산성. 위천리 산성(渭川里山城)은 삼국 시대의 산성이다. 낙동강을 마주한 동안의 최외곽 방어성이자 고령으로 나아가는 교통로에 위치하고 있어, 대가야 세력에 대한 견제와 감시를 목적으로 하는 성으로서 설화리 산성(舌化里山城)에 배속된 보조성으로 추정된다. 수습된 유물 가운데 가장 시기가 빠른 것은 6세기 대의 긴 목 항아리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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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논공읍 위천리에 있던 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의 유적. 위천리 유적(渭川里遺蹟)은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으로 이어지는 국도 5호선과 경상북도 고령군으로 이어지는 국도 26호선이 교차하는 위천 교차로 우측 편의 서남쪽으로 뻗어 내린 능선 말단부에 위치한다. 경사는 비교적 완만하며, 2개의 가지 능선과 골짜기를 포함하고 있다. 시굴 조사 당시 능선부에서 고려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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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남구, 달성군 가창면 지역에 있던 신라의 지방 행정구역. 위화군(喟火郡)은 현재의 대구광역시 수성구, 남구, 달성군 가창면을 관할하면서 주변의 현(縣)들을 거느린 757년(신라 경덕왕 16) 이전 신라의 지방 행정구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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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시대 대구광역시 수성구 상동·중동 일대와 달성군 가창면에 있던 지방 통치 구역. 지금의 대구광역시 수성구와 달성군 가창면 지역은 신라 중고 때 주군을 설치하면서 위화군(喟火郡)으로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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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읍 유곡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의 고인돌 떼. 유곡리 고인돌 떼는 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읍 유곡리 969-3번지에 위치한다. 달성군 유가읍 유곡리 예평 마을 대구 유가 초등학교 북쪽 소나무 숲 사이에 2기의 고인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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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성산리에 있는 조선 후기 대구 판관 유명악의 선정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군. 유명악(兪命岳)[1667~?]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기계(杞溪), 호는 만휴정(晩休亭)이다. 1705년(숙종 31)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1713년(숙종 39)부터 1716년(숙종 42) 1월까지 대구 판관을 지냈으며, 대구 석빙고를 최초로 설치하였다. 판관 재임 시 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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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수성구 황금동 국립대구박물관에 소장된 남북국시대 석상. 의성 관덕동 석사자(義城觀德洞石獅子)는 원래 경상북도 의성군 단촌면에 있는 의성 관덕리 삼층석탑(義城觀德里三層石塔)[국가지정문화재 보물] 모서리에 각각 배치되었던 네 개의 사자상 중 한 쌍이다. 나머지 한 쌍은 1940년에 분실되었다. 조성 시기는 의성 관덕리 삼층석탑과 같은 시기인 9세기 초반으로 추정된다. 원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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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이천리에 있는 조선 전기의 봉수 터. 이천리 마천산 봉수(伊川里馬川山烽燧)는 동래에서 한양을 잇는 제2로의 간봉으로서 남쪽으로 화원 성산 봉수, 북쪽으로 성주 각산 봉수로 각기 대응하였던 직봉 노선상에 있었던 연대 봉화이다. 이천리 마천산 봉수와 관련한 가장 이른 기록인 『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志)』[1425]에 따르면 "마천산 봉화는 하빈현(河濱縣)의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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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옥포읍 교항리 2963 (돌미로 58)에 있는 조선 전기 이철견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신도비. 이철견(李鐵堅)[1435~1496]은 본관이 경주이고, 자는 연부(鍊夫), 시호는 양평(襄平)이다. 1466년(세조 12) 임시 과거인 등준시(登俊試)에 급제하여 선전관을 거쳐 훈련원 도정이 되었고, 1468년 경기도 관찰사에 이르렀다. 1487년 전횡이 심하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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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부터 1598년까지 7년간 조선에 쳐들어온 일본과 싸운 전쟁 가운데 대구광역시 동구 일대에서 치뤄진 전쟁. 임진왜란(壬辰倭亂)은 일본군[왜적(倭賊)]이 1592년(선조 25) 5월 23일에 대규모 병력으로 부산포(釜山浦)[지금 부산광역시]에 진입함으로써 시작되었다. 일본군은 부산성과 동래성을 함락하고 북상하였다. 선조는 1592년 6월 9일에 한양[지금 서울특별시]을 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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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 일본의 조선 침략으로 시작된 동아시아 3국의 7년 전쟁. 전국시대(戰國時代)라는 100년이 넘는 내전을 이기고 통일한 일본은 조선 건국 이후 200년 동안의 조선왕조 평화 체제를 근본적으로 흔든 임진왜란(壬辰倭亂)을 일으켰다. 부산에 상륙한 일본군의 전력은 매우 막강하여 한 달도 되지 않아 서울을 함락하고 이어 함경도 일대뿐만 아니라 평양까지 함락하였다. 이렇게 되자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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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지역에서 조선시대에 대체로 5일마다 열리던 정기시장. 조선시대 시장은 일반적으로 장시, 혹은 장(場)이나 시(市)라고 불렀다. 지방에서 열리는 시장이라 해서 향시(鄕市), 또는 넓은 공터에서 열리기 때문에 허시(墟市)라고도 불렀다. 장시는 매일 열리는 상설 시장이 아니었고, 일정한 간격을 정하여 정기적으로 열리는 정기시장이었다. 조선 초기에는 한 달, 보름 또는 열흘 간격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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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사회 지역 사학의 요람, 낙교재 ‘낙교서당(洛橋書堂)’으로도 일컫는 낙교재(洛橋齋)는 야헌(野軒) 김성노(金成魯, 1769-1831) 선생이 19세기 초에 세운 일종의 사립학교였다. 낙교(洛橋)는 ‘낙동강 교항(다리목) 마을’이라는 의미로 선생이 태어나서 거주해온 다리목 마을의 서당임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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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현풍 현감 김세렴이 제정한 현풍현 향약의 내용과 자치 규범. 현풍현 향약(玄風縣 鄕約)은 1632년[인조 10]에 현풍 현감(玄風縣監)으로 재임했던 김세렴(金世濂)[1593~1646]이 권선징악과 상부상조를 목적으로 만든 향촌의 자치 규약이다. 김세렴은 종래의 '여씨향약(呂氏鄕約)'과 '주자증손여씨향약(朱子增損呂氏鄕約)'에 퇴계(退溪) 이황(李滉)[1501~1570]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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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부터 1897년까지 대구 지역에 조선왕조가 있던 시대. 고려시대에 대구는 1143년(인종 21) 대구현이 현령관으로 승격하면서 화원현과 하빈현을 속현으로 두었다. 그러나 1401년(태종 1) 경산부에 어태를 안치하고 성주목으로 승격되면서 화원현은 성주목의 속현이 되었다. 1414년(태종 14)에는 종래의 하빈현에 수성현과 해안현을 새로이 포함시켰다. 이에 따라 대구현은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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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대구 도호부와 현풍현의 도로. 도로는 물자의 이동, 행정 사무의 전달, 군사의 이동 등에 있어 중앙과 지방을 긴밀하고 신속하게 연결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따라서 중앙 집권을 지향한 조선에 있어 도로의 역할은 극히 중요하였으며 국초(國初)부터 전국의 도로망을 서울을 중심으로 개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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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달성 지역의 역사. 건국 초 고려의 행정 체계를 답습하던 조선은 태종 연간에 전면적인 지방 제도 개편이 이루어짐에 따라 획기적인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다. 전국을 팔도로 구분하고 각 도에 감사(監司)[종2품]를 두어 도정(道政)을 총괄하게 하였다. 그리고 각 도의 감사 아래 해당 읍을 통치하는 수령이 파견되었다. 조선은 전국 약 330개의 모든 고을에 왕권(王權)의 대행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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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에서 1910년까지 대구광역시 동구 지역의 역사와 문화. 조선 초기에 대구[지금 대구광역시]는 현이었다. 조선시대에 지방행정단위를 읍의 규모와 군사적 지휘체계를 고려하여 부·목·군·현이라 나눈 것 가운데 제일 낮은 격이었다. 1403년(태조 3) 3월에 감무(監務)가 있었던 수성현(壽城縣)[지금 대구광역시 수성구]과 해안현(解顔縣)[지금 대구광역시 동구 불로동, 봉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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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죽곡리에 있던 통일 신라 시대부터 고려 시대까지의 유적. 죽곡리 107유적은 현재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죽곡리의 죽곡 청아림 리슈빌 4단지 리슈빌 아파트가 위치하고 있는 곳이다. 조사 지역은 경상북도 성주군 방향으로 이어지는 국도 30호선이 동서 방향으로 지나가며, 북쪽에는 대구 지하철 2호선 대실역이 위치하고 있다. 최근까지 이곳은 대부분 경지 정리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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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죽곡리에 있던 삼국 시대부터 고려 시대까지의 유적. 죽곡리 9-2유적은 현재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에 있는 다사 고등학교 우측 편의 죽곡 하우젠트 아너스빌 아파트 일원에 자리하였다. 발굴 조사 지점은 남서쪽으로 국도 30호선과 접해 있고, 서쪽 경사면 위쪽으로는 주택과 상가 및 공장 건물이 연접해 있다. 조사 구역 내에는 2~3채의 상가 건물이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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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죽곡 2리에 있는 삼국 시대 고분. 죽곡리 고분 떼는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죽곡 2리 산21-2번지 강정 마을에서 북쪽의 산 능선을 따라 남북으로 뻗은 능선[114m]의 정상부[Ⅰ지구]와, 죽곡 1리의 북동쪽 비탈 361번지 일대로 죽곡산 자락에서 북동쪽으로 뻗은 구릉의 말단부와 비탈[Ⅱ지구]에 위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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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죽곡리와 매곡리에 걸쳐 있는 삼국 시대의 산성. 죽곡리 산성(竹谷里山城)은 삼국 시대의 산성이다. 5세기 말로 편년되는 죽곡리 고분군(竹谷里古墳群)이 죽곡리 산성의 돌무지 망대를 폐기하고 만들어졌으므로, 죽곡리 산성의 축조와 돌무지 망대의 사용 시기는 그 이전으로 추정할 수 있다. 죽곡리 산성은 일명 '노고성(老姑城)'이라고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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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중구의 선사시대부터 근대까지 주요한 문화유산. 중구에는 국가 지정 문화재인 보물 1건, 사적 5건, 대구광역시 지정 유형문화재 17건, 무형문화재 2건, 기념물 1건, 문화재자료 4건과 국가등록문화재 5건 등 모두 35건의 지정문화재가 있다. 비지정문화재로는 청동기시대의 분묘와 취락, 삼국시대 달성, 조선시대 대구읍성, 경상감영 관련 건물 등이 있으며, 일제강점기의 각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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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중구 포정동에 있는 조선 후기 관찰사가 거주하였던 경상감영 관아에 딸린 처소. 징청각(澄淸閣)은 선화당(宣化堂) 뒤편에 있으며, 경상감영 내에서 관찰사의 처소로 쓰였다. 1601년(선조 34) 감영을 대구부로 옮겨 올 때 선화당, 응향당(凝香堂), 옥영루(玉靈樓)[징청각 동루 편명] 등과 함께 건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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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 창리에 있던 삼국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의 유적. 창리 901유적은 행정 구역상 달성군 구지면 화산리·창리·수리리에 위치한다. 중부 내륙 고속 국도 현풍 IC에서 지방도 1093호선을 따라 구지면 소재지를 지나면 도로의 우측에 낙동강으로 진입하는 창리교가 나온다. 창리교에서 1.5㎞ 정도 가면 낙동강 제방과 해발 50m 내외의 소구릉이 형성되어 있는데,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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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천내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의 고인돌 떼. 천내리지석묘군(川內里支石墓群)은 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천내리 515-1번지에 위치한다. 현재까지 8기의 고인돌이 확인되었는데, 사찰 화장사(華藏寺) 안에 3기, 담에 1기, 사찰 바깥 대구 교도소 담 밑에 4기가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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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에서 쇠로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던 시기의 역사와 문화. 청동기 시대에 이어서 새로 유입된 철기 문화 시대가 시작되었다. 철기시대란 철기가 사용되기 시작한 서기전 300년경부터 삼국이 정립된 서기 300년까지를 말한다. 철기시대를 두 시기로 나누어 서기전 300년에서 서기 전후[혹은 기원후 100년]까지를 초기 철기시대로, 서기 전후[혹은 기원전 100년]부터 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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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에서 확인된 철기시대 유적. 한국고고학에서는 초기 철기시대라고 지칭한다면 청동기시대에 이어서 새로이 유입된 철기문화가 확산된 시기를 말한다. 그런데 한반도에서는 철기의 유입과 이미 정착되어 있던 발달된 청동기문화와 시기적으로 뚜렷하게 나눌 수 있을 정도로 잘 구분되지 않기 때문에 청동기문화를 포함하여 기원전 300년부터 서력기원 전후까지를 초기 철기시대로 설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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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들이 앞장섰던 새마을운동 1960년대부터 시작된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의 활발한 추진으로 도시화와 산업화가 빠르게 추진되었지만, 이농 인구의 증가 등 낙후된 농촌 문제 해결이 절실하였다. 새마을운동은 이와 같은 상황에서 근면, 자조, 협동을 바탕으로 농촌의 근대화를 추진할 대안으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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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김씨 입향조 창원공ㆍ유원공 원산 묘역과 향사 교항리 다리목 마을은 청도김씨의 집성촌으로 현재 80여 호를 이룬다. 1990년대 가장 많을 때는 120여 호에 이르렀다. 청도김씨는 성주 이씨 다음으로 다리목 마을에 정착해서 지금까지 커다란 문벌을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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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김씨 재사 구목당 건립과 중건 구목당(九睦堂)은 다리목 마을 청도김씨 입향조인 처사(處士) 창원공(昌元公)과 선전관(宣傳官) 유원공(有元公) 형제의 공덕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한 재사(齋舍)이다. 구목당 명칭은 건립 취지를 대변하듯 위로 고조, 아래로는 증손에 이르기까지 입향조 후대 모든 자손들의 ‘화목’을 상징한다. 이러한 ‘화목’의 도리와 실천은 <구목당소지(九睦堂小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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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에서 확인된 청동기시대 유적. 한국의 청동기시대는 청동합금을 도구로 만들면서부터 시작하여 철기가 도구로 대체되기 전까지의 시기를 말한다. 그러나 실제 청동기보다는 민무늬토기[無文土器]의 등장을 청동기시대의 시작으로 보는 것이 보편적이며, ‘무문토기시대(無文土器時代)’라는 명칭이 자주 사용되기도 한다. 한반도에서는 청동기시대 시작과 함께 간석기[磨製石器]의 제작 기술이 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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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성 지역에서 청동으로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던 시기의 역사와 문화. 청동기시대는 인류 역사의 발달 과정을 사용한 도구의 재료를 기준으로 나눈 3시대, 즉 석기 시대·청동기시대·철기 시대 가운데 하나로, 청동기가 생산되어 도구로 사용하기 시작한 때로부터 철기를 처음 사용하기 시작한 때까지를 가리킨다. 한반도에서는 청동기시대 전 기간 동안 간석기를 병용해서 사용하였고, 철기가 일반화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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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읍 초곡리에 있는 삼국 시대의 산성. 초곡산성(草谷山城)은 삼국 시대에 축조된 산성이다. 성말랭이라 불리며 읍지(邑誌)에는 현풍과녀성(玄風寡女城)이라 하였고, "현의 동쪽 8리[3.14㎞], 비슬산 산록의 주위 60리[23.56㎞]를 감쌌다. 삼국 상쟁 시에 한 과부가 축성하고 적병을 막았다[在縣東八里 琵瑟山麓周六十里 俗傳三國相爭時 一寡女舊義築城禦賊兵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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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시대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에 있던 지방 통치 구역. 추량화현(推良火縣)은 지금의 달성군 현풍읍의 신라 때 지명이다. 삼양화(三良火)라고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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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5년부터 757년까지 대구광역시 동구일대에 있었던 삼국시대 및 남북국시대 지방 행정 구역. 치성화현은 현재 대구광역시 동구 팔공산 아래 마을이다. 팔공산 일대는 경상북도 영천시 신녕면, 경상북도 군위군, 경상북도 경산시 하양군, 경상북도 칠곡군, 대구광역시 북구 등으로 갈 수 있는 교통의 중심지이자 군사적 요충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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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와 칠곡군 지역에 있던 지방 행정구역. 칠곡도호부(漆谷都護府)는 조선 후기 대구와 칠곡군 지역에 있던 지방 행정구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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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읍·현풍읍의 대구 테크노폴리스 조성 부지에 있던 청동기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의 유적. 대구 테크노폴리스 조성 부지 유적은 현재 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읍과 현풍읍에 위치하고 있다. 조사 지역은 비슬산에서 뻗어 내려온 남서쪽 구릉과 왕지들·금리들·유곡들과 같은 합류 선상지 등 복합적인 지형적 특성을 가진다. 조사 전에는 대규모 경지 정리와 과수원 등의 경작이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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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 상리 대구 경북 과학 기술원 내에 있던 청동기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의 유적. 현재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 상리에 있는 대구 경북 과학 기술원[DIGST] 정문 우측 편에 종합 체육관과 테니스장·풋살 경기장이 있는데, 테니스장과 풋살 경기장 일원이 테크노폴리스 DGIST 부지 유적 Ⅰ-1구역이고, 입구 쪽 도로 일원이 테크노폴리스 DGIST 부지 유적 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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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대구 지역의 각 고을에서 많이 생산되는 물건, 토산, 물산. 토산(土産) 혹은 토산물은 조선시대에 각 고을에서 다른 고을에 비하여 많이 생산되는 물건으로 물산(物産)이라고도 한다. 조선시대 대구부는 영역 내에 고산지대, 평야지대, 하천을 두루 갖추었고, 기후가 온화하고 수량이 풍부하며, 토질이 비옥하였다. 이에 따라 농산물, 어산물, 임산물, 약재 등이 고루 생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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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시대 달성 지역 일대를 본관으로 삼는 성씨 집단. 토성(土姓)은 전 근대 이전, 지금의 달성군에 존재하였던 군현 지역에 토착해 온 지배적인 성씨 집단을 말한다. 한국의 성씨와 관련하여 가장 구체적으로 조사 수록한 최초의 자료는 1432년(세종 14)에 편찬된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소재 각읍 성씨조이다. 『세종실록지리지』에 대구군(大丘郡)의 토성으로는 백(白),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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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노곡동 함지산에 있는 삼국시대 산성. 팔거산성(八莒山城)은 대구광역시 북구 함지산(函芝山)[287.7m]에 있다. 함지산 정상을 돌아가며 축조된 테뫼식 산성이다. 함지산은 산의 모양이 함지를 엎어 놓은 것과 비슷하다고 하여 ‘함지산’ 또는 ‘방티산’이라고도 불렀기 때문에 팔거산성도 ‘함지산성’ 또는 ‘방티산성’으로 불렀다. 조선시대에 함지산 일대 지역을 팔거현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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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대구광역시 북구 일부,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지천면, 동명면을 관할한 신라의 지방 행정구역명. 팔거리현(八居里縣)은 현재의 대구광역시 북구 일부,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지천면, 동명면을 관할한 757년(신라 경덕왕 16)이전 신라의 지방 행정구역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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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대구광역시 북구 일부를 관할한 고려, 조선 전기의 지방 행정구역명. 팔거현(八居縣, 八莒縣)은 현재의 대구광역시 북구 일부,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지천면, 동명면을 관할한 고려시대, 조선 전기의 지방 행정구역명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 지리지 양주(良州) 수창군(壽昌郡) 조에 팔리현(八里縣)은 본래 팔거리현(八居里縣)인데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으며, 지금[고려 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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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부터 1598년까지 일어난 임진왜란 당시 대구광역시 동구 일대에서 결성되어 조선을 지킨 의병들. 1598년(선조 31) 8월 도요토미 히데요시[豐臣秀吉]가 죽으면서 1592년(선조 25)부터 시작된 7년 동안 한반도를 고통과 혼란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은 임진왜란(壬辰倭亂)은 막을 내렸다. 그러나 전쟁의 결과는 매우 참혹하였다. 기근·전염병·포로 등으로 인구가 급속히 줄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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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동구에 위치한 팔공산의 역사와 문화유산. 팔공산이란 이름을 갖게 된 연유에 관해 몇 가지 설이 있다. 먼저, 후삼국시대 신숭겸과 김락 등 여덟 장군이 이 곳에서 순절했다고 해서 팔공산이 되었다는 설이다. 두번째는 여덟 고을에 걸친 산이라 하여 팔공산이 되었다는 설이다. 세번째는 원효의 제자 여덟 성인이 팔공산에서 득도함에 유래했다는 설이다. 마지막으로 태조 왕건이 후백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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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북구 일부에 있었던 신라의 지방 행정구역. 팔리현(八里縣)은 현재의 대구광역시 북구 일부,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지천면, 동명면을 관할한 757년(신라 경덕왕 16) 이후 신라의 지방 행정구역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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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 평촌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의 고인돌 떼. 평촌리 고인돌 떼는 크개 3개소로 나누어 분포한다. 평촌리 고인돌 떼 Ⅰ은 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 평촌리 202-3번지 사창 마을에, 평촌리 고인돌 떼 Ⅱ는 평촌리 589번지 들말 마을에, 평촌리 고인돌 떼 Ⅲ은 평촌리 413-1번지 소태정 논 가운데에 위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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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 평촌리에 있던 청동기 시대부터 삼국 시대까지의 유적. 평촌리 유적(坪村里遺蹟)은 현재 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 평촌리 들말 마을과 장승밖 마을 사이에 있는 달성 2차 지방 산업 단지 지원 도로 하부에 위치하고 있었다. 달성군 구지면 평촌리는 구지면의 동남쪽에 위치하며, 일대는 낙동강 지류인 차천 유역의 충적지로 1980년대 초반 대대적인 경지 정리를 거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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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구읍성 남문 밖 저지대에 있었던 갖바치 백정 마을. 조선시대에는 가죽제품인 피물(皮物)을 만드는 장인을 피장(皮匠), 갖바치, 피쟁이로 불렀는데, 신분적으로 양인이지만 대대로 천역인 소 도축과 가죽제품 생산에 종사하면서 천인보다 못한 대우를 받았다. 『대구부 호적대장』을 보면, 대구부 서상면 노하리는 1738년부터 1876년까지 140여 년 동안 피쟁이마을이었다. 노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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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논공읍 하리에 있는 삼국 시대 고분. 하리 고분 떼는 대구광역시 달성군 논공읍 하리 55-1번지에 위치한다. 약산 마을 윤재훈(尹載勳) 효행 비각 좌측에 위치한 서북쪽으로 뻗어 내린 능선 남쪽 말단부의 비탈에 수 기의 봉토분이 분포해 있다. 낙동강 인안 나루터에서 약 600m 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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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신라 시대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에 있던 지방 통치 구역. 경덕왕(景德王)[재위 742∼765]은 귀족 세력의 약화와 왕권 회복을 목표로 한화 정책을 펼치며 지방 제도를 고쳐 9주·5소경·117군·293현의 고유 지명을 한자로 바꾸었다. 이때 다사지현(多斯只縣)을 하빈현(河濱縣)으로 개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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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하산리에 있는 삼국 시대의 성터. 하산리 성터는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하산리 산29-1번지, 하목정(霞鶩亭) 북쪽의 남북으로 주행하는 능선의 정상부에 위치한다. 서쪽은 낙동강이 북에서 남으로 흐르며 능선 척추부를 경계로 경상북도 칠곡군과 달성군으로 나누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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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학자인 정구의 학맥을 계승한 사족 집단. 낙동강 중류 지역은 지금까지 퇴계학의 전통이 강하게 남아 있는 안동을 중심으로 한 낙동강 상류 지역과, 남명학의 온상이었던 낙동강 하류 지역의 ‘경계’나 ‘사이’에 있다. 낙동강 중류 지역의 유학자들은 이러한 지리적 조건으로 인하여 퇴계학과 남명학의 영향 속에서 이 둘을 융합 및 회통하려는 한편 다양한 학문을 수용하는 데에도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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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때의 귀화 장군인 김충선에 대한 한 일 양국 간의 인식 변화와 현대적 의미. 김충선(金忠善)[1571~1642]은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일본군 장수의 선봉이 되었다가 조선에 귀화하여 일본 공격에 앞장을 선 특이한 경력을 가진 인물이다. 그는 항왜(降倭)[조선에 투항한 왜군]로서 공을 세워, 김해 김씨(金海金氏)와 충선(忠善)이라는 이름을 하사받아 사성 김해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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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읍 한정리에 있는 삼국 시대 고분. 한정리 고분 떼는 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읍 한정리 산41번지 원산 마을 평바닥들 동쪽 산록[75~100m] 오른쪽의 남쪽으로 뻗어 내린 능선에 위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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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7년부터 1684년까지 대구광역시 동구 일대에 있던 지방 행정 구역. 경덕왕은 지방의 효과적인 통치를 위해 지방의 편제를 군현제로 재편하였다. 이 때, 압독군이 장산군(獐山郡)으로 명칭이 바뀌었고, 영현이었던 치성화현(雉省火縣)도 해안현(解顏縣)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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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행정리에 있는 삼국 시대 고분. 행정리 고분 떼는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행정리 산77번지 흥덕 마을 뒷산에 위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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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수령을 보좌하던 지방행정 실무자. 원래 고려시대 향리는 지방의 행정 및 세금 징수를 주관하던 고을의 지배 세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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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경상도 현풍현의 지방 사족의 명부. 『현풍 향안(玄風鄕案)』은 조선 후기 경상도 현풍현의 유향소(留鄕所)를 운영하던 지방 사족들의 명단이다. 이를 '현풍현 향안', '포산현 향안', '포산 향안' 등이라고도 한다. 유향소는 향청(鄕廳)·향당(鄕堂) 등으로도 불렸는데, 고을에서 재지 사족(在地士族)들의 여론을 모으고 수령의 지방 통치를 보조하는 일종의 자치 행정 기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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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 상리 대구 경북 과학 기술원 내에 있던 청동기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의 유적. 현풍읍 상리 유적(玄風邑上里遺蹟)은 대구 경북 과학 기술원 내의 정보 통신 융합 공학관[1구역]과 학술 정보관[2구역], 컨벤션홀[3구역] 일원에 위치한다. 조사 지역은 북동쪽에 위치한 비슬산[1,084m]에서 남서 방향으로 내려오는 주 능선의 말단부에서 다시 여러 갈래로 갈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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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에 있던 지방 통치 구역. 『고려사(高麗史)』 권57 지리지 현풍현 조(玄豊縣條)에 “현풍현은 본래 신라의 추량화현(推良火縣)으로, 경덕왕 때 이름을 현효로 고치고, 화왕군(火旺郡)의 영현이 되었다. 1018년(현종 9) 밀성군(密城郡)에 내속되었다. 1390년(공양왕 2)에 감무를 두고 밀성군의 구지산 부곡(仇知山部曲)을 소속시켰다”라고 기록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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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2년 김세렴이 경상도 현풍현의 향촌 교화를 위해 제정하였던 자치 규약. 현풍현 향약은 1632년[인조 10]에 현풍 현감(玄風縣監)으로 재임했던 김세렴(金世濂)[1593~1646]이 권선징악과 상부상조를 목적으로 만든 향촌의 자치 규약이다. 이를 '포산 향약(苞山鄕約)', '현풍 향약' 등이라고도 한다. 김세렴은 종래의 '여씨향약(呂氏鄕約)'과 '주자증손여씨향약(朱子增損呂氏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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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신라 시대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에 있던 지방 통치 구역. 신라 경덕왕(景德王)[재위 742∼765] 때 왕권 강화를 위해 한화 정책을 펼치며 추량화현(推良火縣)에서 현효현(玄驍縣)으로 이름을 바꾸었고, 화왕군(火王郡)의 영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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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대구 지역의 집과 사람, 또는 집과 사람의 수. 호구(戶口)는 국가가 공물(貢物)과 부역(賦役) 등의 세금을 부과하는 기준이었기 때문에 호구 수의 파악이 매우 중요하였다. 1414년(태종 14) 대구현은 이전부터 관할하던 하빈현과 함께 수성현과 해안현을 관할하였다. 1419년(세종 1)에는 1,000호 이상이 되어 군으로 승격하였는데 1,300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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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국시대 대구 지역에 축조된 성. 호국성(護國城)은 후삼국시대 대구 지역에 축조된 성이다. 908년(신라 효공왕 12) 10월, 호국의영도장(護國義營都將) 중알찬(重閼粲) 이재(異才)가 수창군 호국성 남령(南嶺)에 팔각등루(八角燈樓)를 세웠다. 국가의 경사를 기원하고 병란을 없애기 위하여 최치원(崔致遠)이 작성한 등루기(燈樓記)가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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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천내리 화원읍사무소에 있는 조선 후기와 일제 강점기에 세워진 송덕비군. 모두 4기의 비가 있는데 이 중 대구 판관을 지낸 김기현[1846년 12월~1849년 6월]의 선정비를 제외한 3기는 일제 강점기에 세워진 것이다. 김기현의 선정비는 경상 감영 공원과 경북 대학교 박물관 야외 전시장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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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신라 시대 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에 있던 지방 통치 구역. 경덕왕(景德王)[재위 742∼765]은 귀족 세력 약화와 왕권 회복을 목표로 한화 정책을 펼쳐 제도 개혁을 단행하였다. 이때 9주·5소경·117군·293현의 고유 지명을 한자로 고쳤는데, 설화현(舌火縣)은 화원현(花園縣)으로 개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