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800562
한자 現代
영어공식명칭 Contemporary Times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충청남도 보령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집필자 정을경

[정의]

1945년 8월 15일 광복부터 현재까지 보령 지역의 역사적인 시기를 구분할 때 지칭하는 용어.

[개설]

1945년 8월 15일 광복과 1950년의 한국전쟁으로 충청남도 보령 지역은 격변의 현대(現代) 시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현대의 시작]

제2차 세계대전이 연합국의 승리로 끝났고, 우리 민족의 끈질긴 독립운동의 결과로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이하였다. 이후 미국과 소련의 진주로 분단의 비극을 맞이하였고, 좌우익의 대립이 격화되면서 지역마다 좌우익의 갈등으로 빚어지는 사건들이 발생하였다.

충청남도 보령 지역에서도 1945년 9월 장항의 공산주의자 수백 명이 대천 장날 시가행진을 진행하였고, 시장 상인들과 충돌하여 경찰이 시위대를 폭도로 간주하여 발포한 총에 맞아 3명이 사망하였는데, 이는 보령 지역에서 처음 발생한 남로당 활동으로 파악된다.

1946년 봄에도 대천천에서 ‘남로당 대회’가 열렸다. 같은 해 10월에는 청소면 지서를 습격하는 사건도 일어났으며, 미산면 도화담 지서 경비 전화를 절단하는 사건도 발생하였다. 또한 주포면 진당산 봉화 사건, 대천농업고등학교 인공기 게양 사건 등이 발생하였다. 정부는 보도연맹을 결성하여 좌익을 통제하였는데, 1950년 1월 26일에 보령경찰서에서 보도연맹 보령지부가 결성식을 갖기도 하였다. 보령지부의 활동도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보령지역의 총선거 실시와 한국전쟁]

이승만의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과 국제연합의 지지를 통하여 1948년 5월 10일 총선거가 실시되었다. 보령 지역의 초대 제헌의원은 대동청년단 소속의 임석규(林奭奎)[보령군 대천면 대천리 거주, 42세, 농업]가 당선되었다.

선거 이후 제헌국회를 구성하여 대통령 중심제 헌법을 제정하였고, 헌법에 따라 이승만을 대통령으로 하고 이시영을 부통령으로 하는 대한민국 수립을 1948년 8월 15일에 선포하였다.

1950년 6월 25일 한반도 최대의 비극인 한국전쟁이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발생하였다. 다행스럽게도 서해안에 자리하는 보령 지역은 북한군과 전쟁으로 인한 큰 피해는 피할 수 있었다. 한국전쟁 당시 보령 지역에 남하한 인민군은 제6사단이었으며, 6사단장은 팔로군 출신의 방호산(方虎山)[1916~?]이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인민군 제6사단은 6월 28일 김포에서 한강, 7월 3일 인천, 7월 4일 영등포에서 대전, 부산 그리고 천안까지 남진하였다.

보령 지역에서는 1950년 7월 13일 후퇴 명령이 내려졌으나, 다음 날 장항에서 다시 비인으로 가라는 명령을 받고 비인에 충청남도 서부경찰서 병력이 집결하였다. 그리고 오후 3시경 철도경찰대를 선두로 주산면 지서에 도착하여 인원 점검을 하던 중 인민군의 공격을 받아 6명이 전사하고 10명이 포로가 되어 결국 총살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한국전쟁 기간 중 보령 지역에서는 47명이 피살되었고, 피랍자는 490여 명으로 파악된다. 피랍자는 인민군이 남한을 점령하고 있던 기간 동안 인민군들이 점령 지역에서 의용군을 모집하였는데, 아마도 의용군에 피랍되거나 강제로 징집되었던 인원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전쟁 이후 보령지역]

한국전쟁 이후 이승만 정권이 끝나고 제2공화국 출범을 위한 1960년 7월 29일 총선에서는 민주당의 김영선(金永善)[1918~1987] 후보가 보령 지역의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이후 1963년 11월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민주공화당의 김종갑(金鍾甲)[1922~1996]이 당선되었으며,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민주공화당의 이원장(李源長)[1924~1999], 제8대는 최종성(崔鍾聲)[1927~2014]이 각각 당선되었다.

보령 지역은 1963년 1월 1일 대천면이 대천읍으로 승격하였으며, 그 뒤 성주산의 탄광 개발로 급속하게 성장하여 1986년 1월 1일 대천읍이 대천시로 다시 승격되었다. 이때 대천시는 보령군에서 분리되었다. 이후 1995년에 다시 보령군과 대천시가 통합되여 보령시로 명칭을 바꿔 현재에 이르고 있다.

[참고문헌]
  • 『보령시지』(보령시지편찬위원회, 2010)
  • 두산백과(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163061&cid=40942&categoryId=33371)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https://encykorea.a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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